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516화 (516/529)

516화. 에런 베이커 (6)

에런 베이커는 계속해서 한국 증시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이어갔다.

“저는 과거에 ‘바보라도 경영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아 투자하라’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기왕이면 좋은 경영자가 운영하는 회사가 바보가 경영하는 회사보다 좋습니다. 하지만 바보가 경영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인가요?”

“자신을 위해 경영하는 경영자입니다. 경영자는 마땅히 회사와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부 경영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주들의 이익을 훼손합니다. 배당을 적게 하고 그 돈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차명회사를 만들어 자금을 빼돌리거나, 회삿돈을 자기 돈처럼 사용합니다. 경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쪼개거나 합치는 것 역시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는 배당수익률에서도 드러납니다. 기업이 벌어들인 돈은 투자를 제외하면 주주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게 마땅합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배당에 매우 인색합니다. 한국 증시의 PBR이 낮다고 하지만 시가배당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고, 이는 주가를 낮추는 원입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투자자들의 한국 증시 기피는 계속될 것입니다.”

진세연이 물었다.

“말씀하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개개인의 선의에 기댈 수는 없는 만큼, 법으로 이를 뒷받침할 필요가 있습니다. 횡령 배임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고, 소액주주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본의 사례 역시 참조할 만합니다. 또 하나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하는 것입니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란 연기금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개입하는 것.

연기금이 국민들의 자산인 만큼, 마치 집사(Steward)처럼 가입자의 재산을 관리하라는 취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증시는 한국과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 10년 넘는 기간 동안 적극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릴 조치를 하라고 기업들에게 요구했습니다. 압박을 받은 경영진들은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늘렸고, 덕분에 증시는 완만하게 상승 중입니다. 한국 역시 국민연금이 증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만큼, 비슷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겁니다.”

* * *

[(속보) 에런 베이커 회장, 한국 증시 문제점 지적!]

[화이트로드가 한국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와킨스빌의 현자의 쓴소리. 한국 증시 일본을 보고 배워라!]

에런 베이커는 과거 인터뷰에서나 주주총회에서 주로 투자 원칙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다.

‘잘 아는 분야에 집중하라’, ‘내재가치에 주목하라’, ‘10년을 보유하지 않을 주식이라면 1초도 보유하지 마라’ 등등.

화이트로드가 투자한 종목을 제외하면, 종목에 대한 언급 또한 자제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한국 증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를 본 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오늘도 까이는 GL그룹 ㅋㅋㅋ

-ㅅㅂ 헬조선 증시 ㅜㅜ

-한국 증시가 저평가를 받는 것에는 저평가를 받을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ㅋㅋㅋ 명언 지린다~

-베이커 옹이 중국과 일본에는 투자하지만, 한국에는 투자하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세계 최고 투자자는 헬조선 증시에는 투자하지 않습니다!

-일본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는 국뽕 에이튜버들은 뭐하고 있냐?

-요즘 누가 국장 투자하냐? 대세는 일장이다!

-그런데 저 아나운서는 누구야? 묘하게 지유랑 닮았는데.

-그야 지유 사촌언니니까. 이름은 진세연.

-아하! 어쩐지 닮았다 했음.

-영어 엄청 잘하네.

-한국대 경제학과 출신이라서 그런지 경제 얘기도 잘함.

-그래서 종목은 언제 짚어줌?

-단타 대기 중~

* * *

SBC에서 주관한 에런 베이커의 인터뷰는 TV뿐 아니라, 에이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생중계됐다.

때문에 SBC에서는 한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동시 통역을 진행했다.

에런 베이커가 언론 인터뷰를 하는 것은 10년 만의 일인 만큼,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시청자가 몰리며 시청률이 치솟았다.

인터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화이트로드가 한국에 투자하지 않은 이유는 기업만의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건 바로 한국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구조적인 문제라면 어떤 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한국은 세계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국가입니다. 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많은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한국은 고도성장 덕분에 그동안 여러 문제를 뒤로 미뤄놓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진세연은 그 말의 포인트를 바로 알아들었다.

“한국이 앞으로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 거라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가장 큰 이유는 인구구조의 변화입니다.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반면,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에서 계속해서 내려가고 있죠. 고령화가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는 일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낮은 성장률로 인해 앞으로는 노동, 빈곤, 양극화 등 다양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겁니다. 수영장에 물이 가득 차있을 때는 모두가 똑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물이 빠지고나면 누가 벌거벗고 있는지 드러나기 마련이죠.”

노투자자의 농담에 진세연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행히 한국은 물이 완전히 빠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그전에 하루라도 빨리 노동, 연금, 교육 등의 구조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한국 국민들 역시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개혁을 시작하려고 하면,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며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한국이 갈등을 해소할 방법도 의지도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노동개혁을 예로 들어볼까요? 미국은 고용과 해고가 쉬운 나라입니다. 전날 고용한 직원을 다음날 해고하는 것도 가능하죠. 반면, 유럽 일부 국가는 한국보다 엄격하게 적용합니다. 이처럼 노동 문제는 각 나라마다 근무 환경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한국의 현재 노동법은 제조업 중심의 종신고용 문화가 있던 시기에 만들어졌고, 현재에 맞게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당장 정부와 국회, 사업가와 노동자가 한 테이블에 모여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의 반발을 우려해, 개혁을 위한 논의를 하는 것조차 주저하고 있습니다.”

진세연은 반론을 제기했다.

“개혁은 사회적으로 큰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 않습니까? 최근 프랑스의 경우 정부가 연금개혁을 시작하자 노동자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파업과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에런 베이커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갈등과 논쟁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사회적으로 심한 갈등을 겪으며 논쟁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해결책을 노출해야 합니다. 가장 나쁜 것은 갈등을 두려워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에런 베이커는 계속해서 코카콜라를 마시며 말을 이었다.

“영국을 예로 들어보죠. 영국은 모두가 알다시피 산업혁명의 발생지입니다. 최초로 자동차를 상용화한 것 역시 영국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마차는 필수 교통수단이었고,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걸려있는 거대한 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가 등장하자 마부들을 비롯한 관련 종사자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봐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더 이상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자동차가 달릴 때는 빨간 깃발을 든 사람이 앞서서 걸어가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사실상 자동차의 주행을 금지하는 법이었고, 영국의 자동차산업은 하루아침에 사라졌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이 차지했죠. 그렇다면 영국 마부들의 일자리는 지켜졌을까요?”

“그렇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에런 베이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국은 결국 자동차도 잃고 마차도 잃었습니다. 만약 이때 영국이 마차 산업과 자동차 산업 간의 갈등을 조율하는 데 성공했다면, 현재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겁니다. 어쩌면 영국이 자동차 산업을 선도하는 국가가 됐을 수도 있겠죠. 한국은 이 일이 주는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진세연은 진행자료를 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좀 어려운 질문일 수 있는데요.”

그 말에 에런 베이커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흠, 좀 긴장되는군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현재 한국은 사회보험개혁안의 국회 표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혹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회보험개혁은 현재 한국 정치권의 최대 이슈다.

워낙 민감한 주제인 만큼, 원래대로라면 하지 않았을 질문이다. 그럼에도 이 질문을 한 이유는 한미루가 건네준 질문지에 적혀 있었기 때문.

‘정말로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 건가?’

진세연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며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에런 베이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로 어려운 질문이로군요. 이 자리에 나왔으니 솔직하게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 문제를 매우 주의 깊게 보고 있습니다. 먼저 건강보험에 대해 얘기해보죠. 미국은 선진국 중 전국민 의료보험이 없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때문에 한국의 건강보험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미국이 보고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현재 구조로는 지속이 불가능합니다. 10년 안에 그동안 쌓인 적립금이 고갈되고, 이후에는 매년 수백억 달러의 적자가 날 테니까요. 또한 한국의 국민연금은 내는 보험료 대비 받는 혜택이 전세계에서 가장 많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인 미국조차도 12퍼센트를 냅니다. 하지만 한국의 보험료는 9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이게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자료로 입증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를 개혁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사기를 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회보험개혁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사회보험개혁은 모든 대선 후보들의 공약 사항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여야 합의 아래 추진했고, 이를 위해 남궁석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마저 단축했습니다. 이랬는데도 실패한다면, 한국에서는 앞으로 어떠한 개혁도 기대하기 힘들 겁니다. 반면, 사회보험개혁을 시작으로 다른 개혁들을 성공적으로 해낸다면 한국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고,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화이트로드 역시 한국에 투자할 예정입니다.”

진세연은 질문지에 써진 마지막 질문을 물었다.

“만약 이번 사회보험 개혁이 실패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에런 베이커는 그 질문에 대해 나지막하지만 단호하게 답했다.

“그럼 전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투자자들이여, 당장 한국을 떠나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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