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515화 (515/529)

515화. 에런 베이커 (5)

한미루와의 만남 이후.

에런 베이커는 그가 말한 내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AI, 반도체, 로봇, 에너지 등등.

얘기를 듣고 나니 어째서 컨티뉴 캐피탈이 그런 투자를 했는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한미루가 그리고 있는 미래는 현실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으니까.’

한동안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반겨주었다.

[그와 만남은 어땠나?]

전화를 받은 사람의 이름은 찰스 뱅거.

화이트로드 부회장인 그는 에런 베이커의 오랜 친구이자 조언자였다.

“만나러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네.”

[어떤 얘기를 나눴나?]

에런 베이커는 한미루의 얘기를 전해주었다.

조용히 얘기를 들은 찰스 뱅거는 놀란 듯 말했다.

[매우 흥미롭군.]

어떻게 보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얘기다.

하지만 말이란 내용만큼이나 누가 했느냐가 중요하다.

“앞으로 투자 방향을 좀 수정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변화가 생겼다면 받아들여야지.]

투자가 처음 생각했던 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얼마 없었다. 다행히 두 사람 다 변화를 인정하고 빠르게 대처할 줄 알았다.

“아무래도 한국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네.”

에런 베이커는 규칙적인 삶을 좋아했고, 집을 오래 떠나있는 것을 싫어했다. 때문에 원래는 한미루를 만난 뒤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알았네.]

에런 베이커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가 들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그사이 그의 인생에서 최고의 투자를 할 생각에 흥분됐다.

동시에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졌다.

‘조금 더 젊었다면 좋았을 텐데.’

에런 베이커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 * *

난 회사 근처 레스토랑에서 대학 동기를 만났다.

진세연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미루야! 우리 되게 오랜만이네.”

“그러게.”

“연락 좀 하지 그랬어?”

“미안. 좀 바빴어.”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통통치킨 출시 때였나?

“요즘도 많이 바빠?”

“직장인이 다 그렇지.”

사실은 할 일 없어서 출근해서 놀고 있지만.

난 그녀를 보며 말했다.

“요즘 엄청 잘나가던데.”

“잘나가기는.”

“이제 SBC 간판 아나운서잖아.”

“에이, 그 정도는 아니야.‘

“아! 영화배우 류지훈이랑 사귄다며?”

내 말에 진세연은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응. 뭐.”

나이는 32살.

잘 생기고 연기도 잘해서 그야말로 톱스타라 할 만한 영화배우다.

둘이 한강에서 데이트하는 모습이 파파라치에게 찍혔고, 결국 두 사람은 연애 사실을 인정했다.

난 감탄했다.

“이야! 내 동기가 톱스타와 연애라니. 대단하네. 류지훈이 한눈에 반해 계속해서 쫓아다녔다며?”

“응. 처음에는 거절했었는데…… 몇 번 만나보니 좋은 사람 같아서.”

내가 연예계 일에 별 관심이 없긴 하지만, 사회면 쪽에는 안 나왔던 걸로 볼 때 사생활에 별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난 진심으로 말했다.

“축하해.”

“고마워.”

진세연은 화제를 돌렸다.

“유나에게 얘기 들었는데, 라벤더베리랑 유나가 고소할 수 있게 니가 도와줬다며?”

유나란 지유의 본명.

“뭐, 나보다는 동호 선배가 힘을 많이 썼지.”

실제로 컨티뉴 캐피탈 한국지사가 악플 퇴치 운동을 적극 지지하며 큰 도움이 됐다.

연예인들 보호를 명분으로 연예기획사들이 공동 대응에 나선 덕분에 우호적인 여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할 얘기가 있다는 건 뭐야?”

“일단 밥부터 먹자.”

듣고 나면 밥이 안 넘어갈 수도 있으니.

식사를 끝낸 뒤.

난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지금 에런 베이커 회장이 한국에 와 있는 거 알지?”

“당연하지. 안 그래도 지금 그것 때문에 난리잖아. 방송국들도 괜히 특집 편성해서 내보내고 있고. 대체 무슨 일로 한국에 온 거래? 혹시 뭐 들은 것 좀 있어?”

“글쎄.”

난 짐짓 모른 척했다.

“방송국들마다 섭외하려고 난리야. 우리 방송국도 화이트로드 쪽에 섭외 요청은 보낸 모양이고.”

난 슬쩍 말을 꺼냈다.

“니가 인터뷰 한번 해볼래?”

진세연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누구를 인터뷰 해?”

“에런 베이커 회장 말이야.”

이내 그녀의 눈이 커졌다.

“뭐? 정말?”

“응. 언론 인터뷰를 할 생각이 있는 모양이야. 내 생각에는 니가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내 말에 그녀는 당황하며 물었다.

“자, 잠깐. 넌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데?”

난 적당히 둘러댔다.

“에런 베이커가 지금 컨티뉴 캐피탈과 접촉 중이거든. 그래서 얘기가 나온 모양이야.”

“지, 진짜야?”

“에이, 내가 이런 걸로 거짓말하겠어? 어때? 생각 있어?”

그러자 진세연은 소리치듯 말했다.

“당연하지!”

에런 베이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투자자.

말 한마디로 증시를 오르내리게 할 수 있을 만큼 파급력이 큰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언론 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했다.

주주총회를 제외하면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경우도 잘 없고.

그런 에런 베이커를 인터뷰한다면?

전세계에 송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해당 영상은 두고두고 자료로 쓰이게 될 것이다.

당연히 커리어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좋아 어쩔 줄 모르던 그녀는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나야?”

“그야…….”

아는 아나운서가 얘밖에 없기 때문이지.

물론 그보다는 친구가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진세연은 두 손을 불끈 쥐며 말했다.

“고마워, 미루야. 나 진짜 열심히 할게.”

난 미리 준비해놓은 자료를 건네주었다.

“이건 필수 질문이야.”

* * *

[(속보) 에런 베이커 회장, SBC 방송사 인터뷰 출연!]

와킨스빌의 현자이자 세계 최고 투자자로 불리는 화이트로드 에런 베이커 회장이 한국 SBC 방송사 인터뷰에 출연하기로 했다.

그가 언론 인터뷰에 나서는 것은 10년 만의 일로 이 자리에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힐 예정이다.

에런 베이커 회장이 어째서 출연을 결정했는지 배경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후략)

에런 베이커가 한국에서 언론 인터뷰를 한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와! 에런 베이커가 인터뷰를 한다고?

-아니! 절대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하신 분이!

-미국에서도 안 하던걸!

-ㅅㅂ 이걸 어케 했뇨?

-설마 인터뷰하러 한국에 온 건가? ㅎㄷㄷ

-미쵸따미쵸따!

-베이커 옹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니!

-DG아웃사이드 주식 채널러로서 본방 사수한다!

-종목 하나만 찍어주면 좋겠다~~

* * *

난 트리시와 통화했다.

그녀는 내가 에런 베이커를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

[에런 베이커 회장을 직접 만나보니 어땠어요?]

“제 평생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어요.”

회귀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에런 베이커 회장이 SBC 방송과 인터뷰를 한다는 얘기 들었어요?]

“그럼요. 미국 쪽 반응은 어때요?”

[여기도 난리죠. 주요 언론사들이 바로 생방송으로 송출할 예정이구요. 그런데 좀 신기하네요. 언론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한 분인데.]

“사실 제가 부탁했어요.”

내 말에 트리시는 깜짝 놀랐다.

[네. 정말요?]

“예.”

[무슨 이유 때문에 부탁한 거예요?]

난 웃으며 말했다.

“그건 직접 보면 알 거예요.”

* * *

SBC는 프로그램을 취소하고, 2시간에 걸친 특집 생방송을 편성했다.

이윽고 에런 베이커 회장이 스튜디오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터뷰를 맡은 사람은 아나운서 진세연.

그녀는 떨림을 감추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오늘 이렇게 나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에런 베이커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저야말로 이렇게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나이가 됐지만 TV에 나온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입니다.”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눈 다음, 정면의 카메라 맞은편에 비스듬히 마주 보며 앉았다.

인터뷰는 영어로 이뤄졌다.

“정말 오랜만에 한국에 방문해주셨습니다.”

에런 베이커는 회상하듯 말했다.

“벌써 20년 전이로군요. 그사이 한국은 큰 발전을 이뤘고, 이제는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저는 투자를 하며 한국이 한국전쟁 이후 잿더미 속에서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를 지켜봐 왔습니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대단한 일입니다.”

“이번 한국 방문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한국에 방문하셨을 당시 한국 기업에 대해 투자를 하셨는데요.”

“맞습니다. 10년가량 투자를 했지만, 큰 수익을 내지 못하고 주식을 전량 처분했습니다.”

“화이트로드는 미국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기업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한국에 대해 투자를 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에런 베이커는 웃음을 지었다.

“한국은 분명 매력적인 시장입니다. 유성, 대현, GL 같은 세계적인 기업도 있고,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들도 많습니다. 화이트로드가 그동안 한국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수익을 내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그건 아직 답변하기 이르군요. 좀 더 판단이 필요합니다.”

“여러 지표로 볼 때 한국 증시가 저평가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한국 증시가 저평가를 받는 것에는 저평가를 받을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북한의 위협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증시의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구조적인 문제라면 어떤 건가요?”

“하나 살펴볼까요? 저는 배터리 사업이 매우 유망하다고 생각합니다. 화이트로드는 중국의 배터리 기업인 BID에 투자해 큰 수익을 거뒀습니다. 이때 내부적으로 GL케미칼에 투자하는 것도 검토했지만, 이후 지배구조 변화의 위험성을 고려해 투자하지 않았고, 이는 매우 훌륭한 결정이었습니다. 실제로 이후 GL케미칼은 GL엔텍을 물적분할해 배터리 사업부를 떼어냈습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배터리 사업의 미래를 보고 GL케미칼에 투자했겠지만, 물적분할로 인해 그들은 별 이익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는 한국 증시에서 기업의 성장이 주주들의 이익과 별개라는 것을 말해주는 좋은 예입니다.”

에런 베이커는 앞에 놓인 코카콜라를 마셨다.

“또 하나 문제를 얘기해보죠. 주가가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에 나섭니다. 미국에서 자사주 매입은 소각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유통주식수를 줄여 주가를 올리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사주 매입은 어떤가요? 일부 회사들은 자사주를 매입한 이후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고 있다가 이후 재매각하거나 인수합병에 사용하거나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도 합니다. 결국 한국에서 자사주 매입이란 그저 회사돈을 활용해 주식투자를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미국에서는 유통주식수를 기준으로 시가총액을 산정합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발행주식수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한국 증시는 오히려 다른 나라들에 비해 5퍼센트 이상 고평가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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