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513화 (513/529)

513화. 에런 베이커 (3)

[화이트로드 CEO, 20년 만에 한국 방문!]

[에런 베이커 회장, 방한 목적은?]

[재계 투자 기대감이 들썩!]

[여야 정치인들, 에런 베이커 국회 초청!]

에런 베이커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자 화이트로드의 본사가 있는 와킨스빌을 벗어나지 않기로 유명했다.

심지어는 월스트리트에서 열리는 각종 컨퍼런스나,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정치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갑자기 한국을 방문한다고 하자 전세계가 주목했다.

게다가 화이트로드의 포트폴리오에서 중국 기업과 일본 기업은 있지만, 한국 기업은 없다.

때문에 90세의 고령인 그가 어째서 열네 시간의 비행시간을 감수하고 한국에 가는 건지 모두가 이유를 궁금해했다.

언론에서는 다양한 추측을 내놓았지만, 무엇 하나 정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미루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 * *

난 피터 테일러 회장의 연락을 받았다.

[에런 베이커 회장이 한국에 간다고 들었네.]

“예.”

[블랙우드 호텔에서 머물 거라고 하더군. 자네 때문에 가는 거라고 생각되는데, 맞나?]

“맞습니다.”

노인네가 눈치도 빠르다.

“그러고 보니, 에런 베이커 회장님을 만난 적이 있나요?”

[예전에 두어 번 만났었지. 투자자나 사업가로서만이 아닌, 인격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분이네.]

“동감합니다.”

[가능하면 블랙우드에 대해 좋은 얘기 부탁하네. 화이트로드가 투자하면 주주들도 좋아하지 않겠나?]

“……네.”

통화를 끝내기가 무섭게 알렌 에버하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에런 베이커 회장이랑 만날 모양이지?]

[어떻게 알았어요?]

[뻔하지. 널 만나는 일이 아니라면 굳이 한국까지 갈 필요가 없을 테니까.]

묻지도 않았음에도 그는 에런 베이커와 관련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예전에 그 할아버지가 티슬라를 공매도한 적이 있거든. 그때 하도 열 받아서 티슬라 로고가 새겨진 숏숏츠를 출시했었지.]

숏숏츠(Short Shorts)는 이름 그대로 엄청 짧은 바지.

또한 공매도 세력(Shorts)을 공매도(Short)한다는 말장난이기도 하다.

이 숏숏츠는 불티나게 팔리며, 알렌 에버하트의 관종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그나저나 나도 공매도했는데…… 혹시 까먹었나?

[티슬라 주식 파는 놈들은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줘야지.]

“…….”

정작 티슬라 주식을 가장 많이 매도한 사람이 바로 본인이라는 것도 까먹은 모양이다.

이런 걸 내로남불이라고 하는 거겠지?

* * *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동호 선배가 말했다.

“에런 베이커가 한국에 온다는 얘기 들었지?”

“네.”

“그것 때문에 지금 난리도 아니야. 뉴스만 틀면 기사가 나오고, 에이튜브는 완전히 도배가 됐어.”

세상에서 투자전문가가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

월스트리트?

천만에.

바로 에이튜브다.

에이튜브에는 코인, 주식, 부동산 등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투자전문가들이 넘쳐난다.

이들은 다들 100억 원쯤 있다고 자랑하며,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부자로 살 수 있는지 알려주겠다며 유료강의나 유료정보방을 모집한다.

계속 투자만 해도 큰돈을 벌 수 있을 텐데, 어째서 아까운 시간을 쪼개 강의를 모집하냐고 물어보면 ‘저 혼자가 아닌, 다 같이 부자가 되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같은 개소리를 늘어놓는다.

그중 자칭 에런 베이커의 제자라는 인간들도 한둘이 아니다.

난 잠깐 에이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살펴보았다.

[경악! 와킨스빌의 현자가 전세계에서 한국만 방문하는 이유?]

[에런 베이커의 방한에 일본이 경악하고 중국이 무릎을 꿇다!]

[베이커 회장 ‘오늘부터 나는 한국인이다’ 챌린지에 동참!]

[한국을 보고 배우는 에런 베이커. 미국의 미래는 한국에게 있다!]

[에런 베이커의 삶과 투자 특강 모집! 선착순 마감!]

[와킨스빌의 현자처럼 투자하는 방법, 유료회원에 가입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

그만 살펴보자.

“정치인들 역시 빠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무슨 강연이니 포럼이니 열어서 에런 베이커 회장에게 초청장을 보내고 있던데? 재벌들도 혹시 에런 베이커가 자기네 회사 언급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모양이고.”

“왜요?”

“왜긴. 에런 베이커가 한마디 해주면 주가가 오를 거 아니야.”

실제로 에런 베이커가 매수를 하거나, 좋다고 칭찬하는 기업은 주가가 상승한다.

이는 알렌 에버하트 역시 마찬가지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의 말 중 절반은 헛소리니 비교가 힘들다.

알렌 에버하트의 추천주가 단타 대상이라면, 에런 베이커의 추천주는 장투 대상이랄까?

아무튼 나라 전체가 이렇게 들썩이는 걸 보면, 역시 와킨스빌의 현자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한국이라니. 대체 무슨 일일까? 혹시 뭐 들은 것 좀 있어?”

“있죠.”

“진짜? 뭔데?”

“저 만나러 오는 거예요.”

“응? 뭐? 뭐라고!? 그게 진짜야?”

“네.”

동호 선배는 놀라 입을 쩍 벌렸다.

한동안 그러고 있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럴 만도 하구나.”

“뭐가요?”

“그동안 니가 한 투자를 생각해봐. 내가 에런 베이커라고 해도 궁금해질 것 같은데. 대체 얜 누군데 이렇게 투자를 잘하나 싶어서.”

“으음.”

살짝 양심이 찔린다.

내가 다른 투자자들처럼 대단한 투자 철학이 있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딱히 그런 것도 없으니까.

그저 회귀를 했을 뿐.

“에런 베이커가 너를 만나러 온다는 사실은 누가 알고 있어?”

“다른 사람들은 모르죠.”

그래서 다들 헛다리 짚는 중이고.

“그런데 그 나이에 장거리 비행을 해도 되나?”

“전용기 타고 오겠죠.”

에런 베이커는 원래 개인 전용기가 있었지만 수년 전 매각했다. 아마도 고향 밖으로 나갈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수행원과 주치의가 동행하는 만큼, 회사 전용기를 타고 올 예정이다.

그래도 나이를 감안하면 무리하는 건 맞다.

“그냥 니가 와킨스빌로 가도 되지 않았나?”

“뭐…….”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아무리 전용기를 타고 온다고 해도 고령에 장거리 여행은 좀 부담될 테니. 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한국에서 만나는 게 낫다고 결론 내렸다.

내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니고, 본인이 오겠다는 거니.

동호 선배는 슬쩍 말했다.

“혹시 나도 좀 만날 수 있나?”

“만나서 뭐하게요?”

“뭐, 사인이라도 하나 받는 거지. 사진도 좀 찍고. 나도 팬이야.”

투자자들에게 에런 베이커는 슈퍼스타.

그와 만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향후 독립시키려면 지금부터 동호 선배 체급을 좀 올려놓을 필요가 있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 하는 거 봐서요.”

“아, 아니. 나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 * *

난 에런 베이커 회장을 만나기 위해 정장을 갖춰 입고, 차를 몰고 강남에 있는 JR블랙우드 호텔로 향했다.

왠지 긴장이 돼서 운전하며 심호흡을 했다.

예전에 사우디 왕자를 만날 때와는 달리 별다른 절차는 없었다.

그저 리셉션에 미리 얘기하고 올라가서 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는 게 전부였다.

비서로 보이는 남성이 문을 열어주었다.

안에는 백발에 안경을 쓴 노인이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은 채 서있었다.

생각보다 체구는 작은 편이고,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인자한 시골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짙은 주름 사이로는 관록과 고집이 보였고, 눈에서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장난기가 엿보였다.

난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베이커 회장님. 한미루라고 합니다.”

에런 베이커는 내 손을 붙잡았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한. 에런 베이커입니다.”

난 그와 마주 앉았다.

TV에서나 보던 에런 베이커가 바로 내 맞은편에 앉아있다니.

이게 정말 실화인가?

이렇게 마주 보니 새삼 느끼는 건 나이에 비해 매우 정정하다는 것.

사실 투자자로서 이렇게 장수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존경스러운 일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트레이더나 펀드매니저가 전화하다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주위의 물건을 때려 부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장면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닌 건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

나 역시 큰 투자를 할 때면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경우가 많다.

미래를 아는 내가 이 정도인데, 그는 수십 년 동안 투자를 해오면서도 정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그가 투자에서 스트레스를 크게 안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건 확고한 투자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테고.

내가 한동안 말없이 쳐다만 보고 있자, 에런 베이커가 말했다.

“왜 그럽니까?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아닙니다. 좀 신기해서요.”

회귀를 해서 좋은 점은 대단한 사람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드 루카스, 데이비드 록허트, 유재호, 송 가즈키, 탐 키튼, 알렌 에버하트 등등.

하지만 그중에서도 에런 베이커는 더욱 특별하다.

그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세계 최고의 투자자였고, 지금도 세계 최고의 투자자다.

“제가 회장님을 얼마나 존경하고 있는지 모르실 겁니다. 저에게 이 자리는 매우 영광입니다.”

내 말에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훌륭한 투자자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낯이 좀 뜨겁군요.”

“제가요?”

“전 오랫동안 투자를 해왔고, 수많은 투자자와 경영자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는 뭐랄까…… 그저 놀랍더군요. 록허트 대표에게서 그동안 컨티뉴 캐피탈 투자 대부분을 미스터 한이 했다는 얘기를 듣고,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낯이 뜨거워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에런 베이커가 회귀를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지금쯤 화이트로드의 시총이 5조 달러쯤 가 있지 않을까?

“회장님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습니다.”

에런 베이커는 소파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어떤 겁니까? 마음껏 물어보십시오.”

난 조심스럽게 물었다.

“회장님께서는 세계적인 부자십니다. 대부분의 부자들은 호화롭게 사는데, 어째서 그렇게 검소하게 사시는지 궁금합니다.”

내 말에 그는 웃음을 머금으며 답했다.

“전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원하는 건 다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죠. 더 큰 집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면 진작 큰 집으로 이사했을 거고, 더 큰 차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면 더 진작 차를 바꿨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저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떤 게 중요한가요?”

에런 베이커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도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할 때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아침을 먹으며 전날 무슨 실수를 했는지 반성하고, 오늘 할 일에 대해 생각합니다. 퇴근할 때면 하루의 일이 끝났다는 것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생각에 행복하고, 주말에는 편히 쉴 생각에 설렙니다. 이 모든 것이 저에게는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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