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507화 (507/529)

507화. 드림페이 (15)

난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잠시 후, 코트를 입은 여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미안해요. 많이 늦었죠? 갑자기 길이 막혀서요.”

“아니요. 딱 맞춰왔어요.”

그녀는 어깨와 머리에 쌓인 눈을 살짝 털어냈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마주 보며 커피를 마셨다.

“리믹스는 정말로 상장폐지됐네요.”

“당연한 일이죠.”

이건 토론 같은 게 없었던 1회차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서국 의원 일은 미리 알고 있었어요?”

“그럴 리가요.”

사실은 1회차 때 봐서 알고 있었다.

탈당한 뒤 잠적한 것까지 똑같다. 본인은 계속 정치 활동을 하고 싶어 했지만, 이때의 일로 사실상 정계를 은퇴한다.

아니, 쫓겨났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참고로 남서국 의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위너팩토리가 열심히 국회를 드나들며 여야 가릴 것 없이 국회의원들을 만나고 다닌 일이 밝혀지며, 입법 로비가 아니냐고 또다시 큰 논란이 됐다.

다른 건 몰라도 P2E 게임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알 것 같다.

성윤아는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많이 벌었어요?”

“별로 못 벌었어요.”

리믹스 상폐 소식과 함께 위너팩토리 주가는 또다시 미끄러져 내렸다.

토론 이전까지만 해도 4조가 넘었던 시총은 이제 1조 원 수준으로 70퍼센트 넘게 하락했다.

하락률로 보면 엄청나지만, 코스닥 기업이라 애초에 공매도 가능한 수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약 4천억 원을 공매도했고, 2,500억 원 정도를 벌었다.

금액을 들은 성윤아는 입을 쩍 벌렸다.

“돈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벌 수 있는 거였어요?”

“쉽게 벌긴요. 힘들게 토론까지 했는데.”

내가 나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인건비는 건진 셈이다.

리믹스가 몰락한 것과는 달리, 페니는 계속해서 승승장구 중.

드림페이의 이용자들이 계속 유입되고 거래액이 커지며 페니의 시총은 3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올해 안에 500억 달러를 넘을 걸로 예상된다.

“아! 어머님께 회장되신 거 축하드린다고 전해줘요.”

양자은 부회장은 정식으로 DA금융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마침 드림페이와의 협력 덕분에 주가가 상승 중인 만큼, 주주와 이사회 모두 그녀의 회장 취임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어머니야말로 미루 씨에게 감사하다고 전해달래요. 전부 미루 씨 덕분이라고.”

“에이, 무슨 말씀을.”

뭐, 내가 프리머스 사태를 폭로해 양정욱 전무를 날리지 않았다면, 그녀가 회장이 되는 일은 없었겠지만.

여성이 금융그룹의 수장이 된 건 처음인 만큼 이는 꽤 큰 이슈였고, 자연히 무남독녀인 성윤아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혹시 나중에 DA금융그룹을 물려받을 생각 있어요?”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 없어요. 어머니야 할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우며 함께 회사를 키워왔지만, 전 그런 것도 아니니까요.”

그녀는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전 이제 드림 파이낸셜의 CEO잖아요.”

그럼 양자은 회장이 퇴임할 때쯤에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되려나?

커피를 다 마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밥 먹으러 갈까요? 돈 벌었으니 제가 살게요.”

* * *

점심 무렵 회사로 출근하자, 빌딩 앞에 웬 트럭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뭔가 해서 보니 커피 트럭이다.

트럭 옆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SW게임즈 파이팅!]

[강선우 대표님 힘내세요!]

난 바로 SW게임즈 본사로 향했다.

처음에는 한 개 층만 사용하던 SW게임즈는 인원이 점점 늘어서 현재는 다섯 개 층을 사용 중.

안으로 들어가자 입구에서부터 택배, 편지, 화분 등이 잔뜩 쌓여있었다.

난 선우에게 물었다.

“이게 다 뭐야?”

“팬들이 보내줬어.”

“팬이라고?”

“응.”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보냈는지 주소가 영어로 적혀 있었다.

난 편지를 몇 개 뽑아서 읽어보았다.

[강선우 대표님, 응원합니다!]

[사랑합니다, 형님!]

[SW게임즈는 타락한 게임계의 빛과 소금입니다! 진정으로 게이머를 위해주시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게임 많이 만들어주세요.]

토론회 이후 인기가 치솟는다 싶더니,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이런 게 바로 스타 개발자의 위엄인가?

선우는 턱을 치켜든 채 말했다.

“빌딩 앞에 커피 트럭 온 거 봤지? 내 이름 대고 한 잔 뽑아 마셔. 부담 갖지 말고.”

“아니, 뭘 잘했다고 커피 트럭까지…….”

“토론 잘했잖아.”

“그 정도는 누구나 다 하지 않나?”

내가 토론 나갔으면 박정국 대표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면서 바로 엄마에게 일렀다.

선우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추하게 질투하지 말고,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

너무 부러워서 차마 부럽다고 못 하겠다.

아, 배 아파.

“알겠지만 유저들이 보내주는 커피 트럭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야말로 업계 포상 중의 포상이지.”

사람은 쓸데없는 일에 돈을 쓰지 않는다.

게이머들이 돈을 모아 커피 트럭을 보내줬다는 것은 그만큼 게임사가 사랑받고 있다는 뜻.

그래서인지 직원들은 전부 커피 트럭에서 가져온 커피를 한 잔씩 들고 있었다.

사실 커피야 사내 카페에서 얼마든지 무료로 마실 수 있지만, 게이머들이 보내준 커피 트럭에서 받아 마시는 커피 맛은 좀 다르겠지.

난 직원이 커피 트럭에서 받아온 커피를 마시며 중얼거렸다.

“컨티뉴 캐피탈에는 커피 트럭 보내주는 사람 없으려나?”

내 말에 선우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뭔 헛소리야? 컨티뉴 캐피탈 때문에 돈 날린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데. 혹시 누가 커피 트럭 보내준다고 하면 꼭 의심해봐. 트로이목마일 수 있어. 아니면 독을 탔거나.”

“…….”

이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진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커피는 내 돈으로 사먹어야지.

선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데 이게 또 좋은 것만은 아니란 말이지.”

“왜?”

“이랬는데 게임 거지 같이 내놓으면 엄청 욕먹을 거 아니야?”

“음, 그렇긴 하지.”

원래 잘하던 놈이 잘못하면 더 크게 잘못한 것처럼 보이기 마련.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올해는 준비 중이던 신작이 대거 쏟아질 예정. 당장 아이스스톰은 오버클락2 출시를 앞두고 있다.

“원래 오버클락2가 PvE랑 PvP 모드를 같이 내놓는다고 했단 말이야. 그런데 막상 인수하고 나서 보니까 PvE는 개발을 중단한 상태더라.”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성추문 사태로 개발 인력들이 많이 떠났기 때문.

“애초에 1의 업데이트를 중단하고 2를 개발하며 내세웠던 게 대규모 PvE 콘텐츠 추가였잖아. 이제 와서 PvE 뺀다고 하면 쌍욕 처먹을 텐데.”

실제로 1회차 때 그러는 바람에 게이머들이 분노했다.

“알아. 그게 있어야 초보자들도 쉽게 캐릭터 사용법을 익힐 수 있고, 자신이 사용하는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다시 개발 지시했어. 일단 한 번에 다 하는 건 무리라서 캐릭터 별로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야. 쿠퍼 CEO가 있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내가 미국으로 가야 했을걸.”

다행히 매트 쿠퍼 CEO가 회사에서 먹고 자고 하며 어떻게든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슬슬 올 때 됐나?”

“응.”

오늘은 유재호 회장 딸이 친구들을 데리고 회사 견학을 오기로 한 날.

얘 성격상 귀찮다고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흔쾌히 허락해서 좀 놀랐다.

선우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게임 꿈나무들을 위한 일이니까. 견학을 하고 나서 게임에 좀 더 관심을 갖거나, 개발자를 꿈꾸면 좋지 않겠어?”

정말이지 게임과 관련된 일에는 항상 진심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고등학생 때 게임회사 견학 가지 않았었나?”

“그랬지.”

정확히는 얘가 가자고 해서 따라간 거지만.

잠시 그때를 회상하는 듯하던 선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흠,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아니, 그때 내가 게임사 직원들을 봤을 때 엄청 어른 같았거든.”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 입장인데, 전혀 어른 같다는 느낌이 안 든단 말이야.”

“아…….”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나이를 먹으면 자동으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러게 말이야. 어째 나이는 먹었는데 정신연령은 고등학생 때 멈춰있는 것 같단 말이지. 한 5년 정도 지나면 달라지려나?”

“…….”

아니. 내가 그 나이까지 살아봐서 아는데, 똑같아.

잠시 후.

머리를 묶은 여학생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교복을 입은 지난번과는 달리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은 유세정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난 그녀에게 물었다.

“유재호 회장님은? 같이 온다고 들었는데.”

그러자 유세정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안 그래도 아빠가 같이 오겠다고 해서 뜯어말렸어요.”

“어째서?”

“다른 애들도 있는데 부끄럽잖아요. 제가 무슨 애도 아니고.”

“아, 하긴.”

이 나이에는 그럴 수 있지.

난 선우를 소개해주었다.

“이쪽은 SW게임즈 대표 강선우.”

강선우는 인사했다.

“안녕.”

유세정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와! 저 진짜 너무 팬이에요.”

“내 팬이라고?”

“네. 저 원래 게임 전혀 안 했거든요. 블록밸리는 애들이랑 연락하려고 가입했어요. 친구들이 하도 해보라고 해서 ‘니더스에 어서오세요’를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퀵샤카 오션월드’도 시작했는데 이것도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게임만 한다고 아빠한테도 엄청 혼났어요. 저 말고 다른 애들도 다 팬이라서, 이번에 견학한다고 하니까 학교가 난리가 났어요.”

난 재빨리 물었다.

“거기 여고 아니야?”

“네. 여고 맞아요.”

남자 고등학생도 아니고, 여자 고등학생들이 게임사에 이 정도로 관심을 가지다니!

하기야 블록밸리는 게임을 넘어 SNS 기능까지 하다 보니, 가입을 안 한 애들을 찾기가 힘들 정도라고 한다.

이곳의 인기 게임 10위 안에 무려 네 개를 SW게임즈가 만들었다.

“마침 겨울방학 과제로 직업조사가 있었거든요. SW게임즈를 견학할 수 있다는 얘기에 신청자들이 몰려 추첨까지 했어요.”

계속된 칭찬에 선우의 양어깨가 점점 승천하는 것이 보였다.

이러다가 승모근이 귀까지 올라가겠는데?

그러자 음료를 가져다주던 차수연이 선우에게 물었다.

“견학이요? 누가 견학을 오나요?”

그러자 선우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얘기를 안 했나 보네요. 별건 아니고 여고에서 견학을 온다고 해서요.”

“어디를요?”

“어디긴 어디예요? 여기죠.”

그 말에 차수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예!? 정말요?”

“네. 그냥 견학하는 거니까 다들 신경 쓰지 말고 평소처럼 일하면 돼요.”

그러자 그녀는 버럭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그런 중요한 일이 있으면 미리 말했어야죠!”

“그, 그런가요?”

방금까지 우쭐하던 애가 혼나는 모습을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언제 오는데요?”

선우는 시계를 본 다음 말했다.

“지금요. 한 15분 뒤쯤?”

“…….”

이 얘기를 전해 들은 직원들은 난리가 났다.

“뭐라고!? 여고에서 견학을 온다고?”

“몇 명이나 오는데?”

“스무 명이랍니다!”

“헉! 한 명의 여고생이면 두 명의 특수부대원이나 다름없는데.”

“아니. 이런 중요한 사실을 지금 말해주면 어쩌라고?”

“억! 나 오늘 안 씻고 나왔는데.”

“피규어는 어디에 숨기지?”

“저 포스터 누가 붙였어? 당장 떼!”

“야! 거기 애니송 좀 꺼!”

누군가는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는 책상 위를 허겁지겁 치우고, 다른 누군가는 숨을 곳을 찾아 헤맸다.

그 모습을 보다 보니,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왜 이 사람들을 보고 어른이라고 생각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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