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화. 드림페이 (14)
DAXA 회의실에 모인 5대 거래소 관계자들은 각자 한마디씩 했다.
“대체 박정국 대표는 왜 이렇게 일을 키운 거야?”
“왜 토론회에 나가서 이 난리를 일으켜?”
“남서국 의원은 또 뭐야?”
“이거 괜히 거래소까지 욕먹게 생겼는데.”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조치해야 합니다.”
거래소의 수익 대부분은 수수료에서 나온다.
따라서 수수료만 챙길 수 있다면, 굳이 상장폐지까지 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이걸 신고한 곳이 다름 아닌 컨티뉴 캐피탈이라는 것이다.
컨티뉴 캐피탈은 한때 세계 최대 스테이블 코인이었던 페더를 공격해 몰락시키며 암호화폐 시장에서 그 명성을 떨쳤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페니라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했다.
얼마 전 내놓은 간편결제 서비스 드림페이에 이용자들이 몰린 덕분에 페니는 세계 최대 스테이블 코인으로 올라섰다.
페니의 이용자가 많아진 만큼, 한국 5대 거래소 역시 진작 페니를 자신들의 거래소에 상장시켰고, 지금도 활발하게 거래가 이뤄지는 중이다.
이런 곳에서 직접 자료를 모아 신고를 했으니, 대충 넘길 수가 없다.
고심 끝에 결론을 내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괜히 길게 회의하긴 했지만, 이미 결과는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 * *
박정국 대표는 리믹스 담보 대출을 조기에 상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설마 거래소에서 리믹스를 상폐시키지는 못할 테고. 적당히 눈치보다가 뭉개면 되지 않겠어?’
그러나 DAXA에서는 상장폐지를 언급하며 소명자료 제출을 계속 요구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박정국 대표는 부랴부랴 보유한 현금을 털어 담보 대출 상환에 나섰다.
그는 보란 듯이 말했다.
“리믹스 담보 대출은 전액 상환했습니다. 거래소가 요구한 대로 유통량도 정상으로 맞췄고, 충분한 소명자료를 제출했습니다. 리믹스 상장폐지는 절대 없을 겁니다.”
이러한 해명이 효과가 있었는지 리믹스는 800원 대에서 하락을 멈추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 * *
DAXA가 심사에 들어가며 리믹스는 5대 거래소에서 ‘유의 코인’으로 지정됐고, 코인 이름 옆에는 경고가 붙었다.
이는 위험한 코인이니 투자에 주의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위기라고 생각할 때 기회를 본 사람도 있었다.
에이튜브 채널 하이에나.
본명 하인수.
유명 코인 투자자이자 코인 투자 방송을 하는 그는 암호화폐 열풍 당시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트리며 한때 100억 원 넘는 돈을 벌어들이며 코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신화적 존재로 등극했다.
그는 생방송을 켰다.
“리믹스 투자자들 다 모여. 지금부터 전재산 배팅 들어간다. 인생 뭐 있어? 한강뷰 아니면 한강 물이지.”
그는 화면 한쪽에 거래소 화면을 띄웠다.
“내 방송 계속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내가 왕년에 진짜 잘 나갔거든. 잔고가 100억 원이 넘었고, 한남동 고급 빌라에 월세로 살며 페라리 타고 다녔지. 응? 그렇게 돈이 많았는데 집 안 사고 왜 월세 살았냐고? 그때는 집 사는 게 바보였어. 그 돈을 코인에 굴리면 10억이고 100억이고 더 벌 수 있으니까. 강문도 그 새끼 때문에…… 아니, 컨티뉴 캐피탈 때문인가? 아무튼 새턴, 타이탄 코인 사태 때 졸라 날려 먹었지.”
한국이 만든 스테이블 코인 새턴과 알고리즘으로 새턴의 가치를 받쳐주는 타이탄.
이를 만든 사람은 한국인인 강문도다.
하필 여기에 투자하는 바람에 90퍼센트를 넘게 날렸다.
그 뒤 남은 돈으로 이 코인 저 코인에 투자했지만, 예전 같이 매수하기 무섭게 폭등하는 일은 없었고, 자산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이제 남은 돈이라고는 2천만 원.
하인수는 그 돈으로 전부 리믹스를 매수했다.
도저히 맨정신으로 할 수 없는 짓이라 그는 소주병을 입에 대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니, 시발.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살았냐? 나 진짜 안 해본 일 없이 열심히 살았거든. 고시원에 살며 상하차에 노가다해서 번 돈으로 코인 투자도 열심히 하고. 그런데 세상이 나한테 왜 이래?”
그가 생방송을 한다는 소문이 커뮤니티에 퍼지자, 리믹스 홀더들은 물론 구경꾼들까지 몰려들었다.
“박정국 대표가 절대 상장폐지는 안 될 거라고 하잖아. 이번에 담보 대출도 상환해서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어차피 거래소도 수수료로 먹고사는 놈들인데 굳이 멀쩡한 코인 상폐할 이유가 없잖아. 안 그래? 일단 상폐 위기만 벗어나면 다시 3천 원 대로 반등하겠지. 그러니까 지금이 딱 매수 타이밍이란 말이야. 딱 3배만 먹고 나온다.”
말은 그렇게 해도 속으로는 덜덜 떨렸다.
때문에 그는 계속해서 소주를 입에 물고 병나발을 불었다. 그렇게 안주도 없이 혼자서 마신 소주가 다섯 병째였다.
“오늘 시발 리믹스가 죽나 내가 죽나 가는 거야. 뒤에 소주 한 짝 보이지? 저거 다 마실 때까지 방송한다.”
다행히 리믹스는 상승해서 1천 원으로 올라섰고, 그의 잔고는 2500만 원으로 늘었다.
그런데…….
[(속보) DAXA 리믹스 상장폐지 결정!]
(전략)
DAXA는 유통량 초과가 심하다는 것, 소명 자료에서 대량의 부적합이 발견됐다는 것, 그리고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리믹스를 상장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2주간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국내 5대 거래소에서 거래 지원이 중단될 예정이다.
리믹스는 그동안 글로벌 게임 코인이라는 점을 홍보해왔지만, 정작 거래의 90퍼센트 이상이 한국 거래소에서 이뤄진다.
때문에 한국 거래소에서 상장폐지가 된다는 것은 사실상 거래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로 인해 투자자들의 큰 피해가 예상된다.
실시간 채팅창은 순식간에 폭발했다.
-뭐야? 진짜 상폐됐네.
-아니 ㅅㅂ 상폐 안 된다며?
-박정국이 상폐 안 된다고 했는데 ㅜㅜ
-몰래 팔다가 걸리자 다시는 안 팔겠다고 약속해놓고 담보로 맡기고 대출받은 놈의 말을 믿었음?
-리믹스 또 속았냐?
-리또속~ 리또속~ 신나는 노래~
-오늘 한강 정모 열리겠는데.
-책임져! 내 코인 책임져!
-ㅋㅋㅋ 그러게 진작 팔라고 했잖아.
-형 괜찮아?
기사가 나가자, 리믹스는 바로 100원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그리고 잠깐 2500만 원을 넘었던 그의 잔고는 순식간에 300만 원으로 변했다.
차트는 마치 폭포처럼 흘러내렸고, 그의 잔고는 뜨거운 태양 앞에 얼음처럼 녹아내렸다.
하인수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술에 취해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화면을 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99원이 됐다.
한때 36,000원을 찍고 한국 암호화폐의 대장 역할을 하던 리믹스가 이제는 100원짜리 동전 하나만도 못한 가격이 된 것이다.
도저히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게 실화인가?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술기운으로 인해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끄어억!”
하인수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까뒤집었다. 이내 그의 몸은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가며 화면에서 사라졌다.
-쇼하는 거야?
-ㅋㅋㅋ 하여튼 이 형 개그 욕심은.
-하나도 재미없으니, 일어나~
-술 먹방 계속해야지~ 소주 한 짝 사놓은 건 다 마시자~
-리믹스 1원 될 때까지 노가리나 털자.
-잠깐. 이거 진짜 같은데??
-정신 차려!
-야, 누가 앰뷸런스 좀 불러라~
-갑자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
-역시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해.
-내일 출근 준비해야겠다.
* * *
리믹스 상장폐지가 확정되자 박정국 대표는 분노의 비명을 내질렀다.
“아, 안 돼!”
리믹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저 코인을 찍어서 내다파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
그동안 수천억 원을 챙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사는 70퍼센트가 넘는 리믹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리믹스 달러, 리믹스 디파이, 리믹스 DAO 등등.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게 생겼다.
박정국 대표는 그동안 절대 상장폐지는 없을 것이라며 여러 언론에 인터뷰를 해왔다.
그런데 막상 상장폐지가 되고 나자 심신의 충격을 받았다며 예정되어 있던 언론 인터뷰를 전부 취소했다.
대신 짧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DAXA의 부당한 결정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의를 제기하는 한편, 해외거래소에 리믹스를 상장해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주력하겠습니다. 위너팩토리는 앞으로도 리믹스 생태계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쨌거나 리믹스 상장폐지는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상장폐지 발표가 나오자 리믹스 가격은 100원으로 폭락했고, 변동성은 극에 달했다.
몇 분 사이에도 수십 퍼센트가 오르내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거래량이 폭발했다.
-아니, 지금 사는 놈들은 대체 뭐야?
-상장폐지된다니까 미친놈들아! 상장폐지가 뭔지 몰라?
-그게 중요해? 50원만 올라도 50퍼센트 먹는 거다!
-이럴 때 잘하면 두세 배 먹는 거 일도 아니다!
-단타 칠 절호의 기회가 왔다!
-내일 상폐되더라도 나는 오늘 먹고 나오겠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도박의 민족 아닙니까?
-ㅅㅂ 또 천하제일 단타대회 열렸네 ㅋㅋㅋ
-ㅎㅎ 전재산 배팅 들어간다!
-리믹스 가즈아!
* * *
위너팩토리가 선두주자였을 뿐.
블록체인과 NFT를 접목한 P2E 게임을 내놓으려는 것은 전세계 게임사들이 마찬가지였다.
NFT가 붙은 캐릭터 카드를 판매하거나, 펫들을 무작위로 교배시켜 새로운 희귀 펫을 탄생시켜 거래하거나, 게임 내 가상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판매하는 것 등등.
게임사들은 특정 캐릭터나 아이템이 비싼 값에 팔린 사례를 언급하며, 사행성을 부채질했다.
위너팩토리가 리믹스로 꿀 빠는 것을 본 한국 게임사들은 뒤따라 자체 코인을 발행했다.
컴포스에서는 C4X코인을, 렛마블에서는 렛츠코인을 발행해 리믹스 생태계와 연동하겠다고 홍보했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인해 P2E 게임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커지며, 게이머들이 대거 이탈하고, 이미 허용 중인 나라들마저 규제할 조짐을 보였다.
이로 인해 코인 발행과 P2E 게임 개발이 줄줄이 취소됐다.
오죽하면 박정국 대표가 P2E 게임의 숨통을 끊어놨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제길! 대체 토론에는 왜 나간 거야?”
“빌어먹을! 위너팩토리는 그동안 실컷 해먹기라도 했지.”
“우리는 이제 코인 발행 해보려고 하는데.”
“지금 개발 중인 P2E 게임은 어쩌라고?”
리믹스 상장폐지 소식에 투자자들과 몇몇 게임사들은 절망했지만, 게이머들은 대체로 환호하는 반응이었다.
-ㅋㅋㅋ P2E 게임 진절머리가 났는데 다행이네
-안 그래도 게임회사들이 코인 발행하고 NFT 붙인다고 하는 거 볼 때마다 역겨웠음.
-뭔 게임사들이 게임 만들 생각은 안 하고 과금에만 혈안이 되어 있냐?
-망겜의 잡초를 심을지언정 P2E 게임의 싹을 틔우게 해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P2E 게임들 싹 다 규제 때립시다!
-컨티뉴 캐피탈은 게임계의 빛이다!
-돈 모아서 회사로 커피 트럭 한 대 보내는 게 어떨까요?
-오! 좋은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