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화. 드림페이 (13)
[(WST) P2E 게임 토론 여파. 리믹스 상폐 위기?]
(전략)
위너팩토리는 과거 투자자들 몰래 리믹스를 대량매도해 2,900억 원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해당 사태로 인해 리믹스가 폭락하자, 박정국 대표는 사과하며 공시 없이는 매도하지 않겠다고 투자자들을 달랬다.
그런데 이번에는 투자자들 몰래 리믹스를 담보로 대출받은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박정국 대표는 매도가 아니니 문제될 게 없다고 했지만, 이는 위너팩토리가 언제든 리믹스를 현금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실 예치된 달러만큼 발행할 수 있는 법정통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과는 달리, 게임 코인은 게임사가 멋대로 발행해 판매할 수 있다.
이는 사실상 증권을 발행해 자본을 조달하는 행위와 비슷하지만, 암호화폐라는 특성상 어떠한 규제도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러한 행위는 투자자들에게 큰 피해가 될 수 있는 만큼 관련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
(중략)
토론 직후, 컨티뉴 캐피탈은 위너팩토리에 대한 매도 리포트를 내놓았다.
리포트의 내용에는 ‘DAXA가 공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유통량을 속이고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명백한 상장폐지 사유이다. 그런 만큼 리믹스의 상장폐지는 확정적이다. 리믹스의 상장폐지는 위너팩토리의 핵심사업 붕괴를 뜻하는 만큼, 위너팩토리의 주가 폭락 우려가 매우 크다. 컨티뉴 캐피탈은 이미 공매도를 진행했다.’
이 기사에 투자자들은 깜짝 놀랐다.
-뭐야? 이제 보니 위너팩토리를 공매도 때린 거였어?
-선 공매도, 후 토론이었나?
-이래도 되는 거야?
-뭐, 없는 얘기한 것도 아니니 상관없지 않을까?
-속인 놈이 잘못이지. 그걸 밝힌 놈이 잘못은 아니잖아.
-아니, 그런데 컨티뉴 캐피탈 같은 거대 기업이 위너팩토리 따위를 신경 쓴다고?
-먼저 건드린 건 위너팩토리 아님? 박정국이 블록밸리와 나이트라이트도 P2E 게임이라고 물고 늘어졌잖아.
-ㅋㅋㅋ 그러게 가만히 있는 컨티뉴 캐피탈은 왜 건드려?
-이런 더러운 투기자본!
-우리가 힘을 합쳐 리믹스를 지킵시다!
-상폐 멈춰!
-DAXA 꼼짝 마! DAXA 까불면 나한테 죽어!
위너팩토리 박정국 대표는 분통을 터트렸다.
“뭐야!? 이놈들이 공매도를 친 거였어?”
어쩐지 뜬금없이 토론을 제의한다 했더니, 설마 공매도라는 수작을 부렸을 줄이야!
그렇다는 건 처음부터 리믹스 담보 대출 사실을 폭로해 상장폐지로 몰고 갈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위너팩토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치밀한 계획이었나?’
사실 먼저 시비를 건 사람은 그였지만…… 그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으아악! 이런 개자식들!”
* * *
난 선우와 함께 민아름과 성윤아를 만났다.
두 사람은 강선우를 보며 말했다.
“토론 봤는데, 너무 잘했어요.”
“보면서 너무 통쾌하던데요.”
“저녁 뭐 먹고 싶어요? 제가 살게요.”
“아니에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민아름과 성윤아 모두 서로 사겠다고 난리였다.
강선우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훗.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요.”
“…….”
이 자식이 우쭐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배가 아프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토론에 나갈 걸 그랬나?
내가 나갔으면 얘보다 훨씬 잘할 자신 있었는데.
성유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리믹스 시총이라고 해봐야 4천억 원 정도였잖아요. 그럼 상폐된다고 해봐야 회사가 입는 손실은 3천억 원에 불과할 텐데, 주가는 왜 이렇게 떨어지는 거예요?”
대답은 나 대신 선우가 했다.
“원래 위너팩토리는 제법 능력이 있는 개발사였어요. 초대박을 내지는 못했어도 수익을 내는 괜찮은 게임들을 여럿 만들어냈죠. 하지만 리믹스 코인을 발행한 뒤로는 P2E 게임 개발에 매진했어요. 그런데 이 P2E 게임이라는 게 큰 틀에서 보면 바다스토리랑 별반 다를 게 없거든요. 바다스토리 아시죠?”
민아름과 성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파칭코랑 비슷한 거 아닌가요?”
“어렸을 때라 잘 모르지만, 한때 뉴스에서 난리였잖아요.”
“맞아요.”
바다스토리가 나온 것은 2004년.
국산 ‘아케이드 게임’이라고 출시됐지만…… 그 형태는 파칭코나 다름없었다.
그림을 맞추면 구슬이 쏟아지고, 이를 경품으로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오락실 옆에 붙어있는 경품교환소에서는 그 경품을 다시 현금으로 바꿔줬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게 버젓이 게임기로 판매됐고, 전국 곳곳의 오락실에 도입됐다.
그리고 그 결과 도박 중독자가 양산되고, 전재산을 날리고 파산한 사람과 자살자가 속출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한국 아케이드 게임은 완전히 망했고,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출범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게임물등급위원회가 그동안 어떤 삽질을 했는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지만, 그래도 이때 만들어진 규제로 인해 한국에서는 지금까지도 P2E 게임이 완전히 금지됐다.
“아무리 블록체인이니 NFT니 아무리 가져다 붙여도 본질은 사행성 게임이에요. 구슬을 경품으로, 경품을 다시 돈으로 바꾸듯, 골드를 암호화폐로, 암호화폐를 돈으로 바꾸는 것뿐이죠.”
사실 P2E 게임이라고 해도 P2E 요소만 제거하면…… 그러니까 게임 내 재화를 리믹스로 환전할 수 있는 부분만 삭제하면 얼마든지 국내에서도 서비스가 가능하다.
하지만 돈 벌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면, 적당히 베낀 것 같은 양산형 게임을 누가 하겠는가?
실제로 드래곤 레거시5의 경우 그렇게 해서 한국에 출시했지만…… 처참하게 망했다.
선우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리믹스 생태계는 붕괴됐고, P2E 게임이 아닌 멀쩡한 게임은 개발할 능력도 없을 테니, 주가가 폭락할 수밖에요.”
* * *
리믹스 상장폐지 문제를 놓고 게임 업계와 암호화폐 업계가 난리 난 사이.
불똥이 갑자기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속보) 남서국 의원, 리믹스 코인에 10억 이상 투자!]
(전략)
리믹스 유통량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남서국 국회의원이 10억 원으로 리믹스를 매수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공직자윤리법상 국회의원은 매년 재산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주식이나 부동산과 달리 암호화폐는 신고 내역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남서국 의원은 본지의 질문에 대해 ‘암호화폐는 정보 공개 대상이 아니라 자세한 말씀은 드릴 수 없다. 현재 리믹스 보유 내역에 대해서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하며, ‘다만 공직자 재산 신고는 법률에 따라 문제없이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중략)
리믹스가 최고점을 찍었을 때는 약 50억 원의 수익을 올렸을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국회에서 남서국 의원은 암호화폐 과세 유예 법안을 공동발의한 것으로 알려져,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기사를 본 남서국은 당황하며 소리쳤다.
“아니! 대체 왜!?”
리믹스 코인 홀더 남서국.
그의 본업은 다름 아닌 국회의원.
그가 리믹스에 투자한 건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다.
그런데 대체 이게 어떻게 알려진 걸까?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지자, 남서국 의원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당시 주식을 매도한 자금으로 리믹스에 투자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불법도 없는 정상적인 거래였습니다. 암호화폐에 투자한 게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는 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입니다!”
그의 말대로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아예 법이 없기 때문이다.
주식과 달리 암호화폐는 재산공개를 할 의무도 없고, 내부정보로 선행매수를 했더라도 불법이 아니다.
그는 해명을 하며 거래내역을 일부 공개했다.
이는 최악의 실수였다.
블록체인의 특성상 모든 거래내역은 분산원장에 기록되고, 이는 누구나 볼 수 있다.
반트코인 채널에 모인 투자자들은 거래시간과 매수량을 보고 남서국 의원의 전자지갑을 추적해 분석했다.
-고점 때는 진짜 50억 원 벌었겠는데.
-어! 근데 리믹스 팔아 클로이페이에도 30억을 투자했네.
-응? 저거 스캠코인이잖아. 프로젝트팀이 먹튀하지 않았나?
-ㅇㅇ 지금은 0원 됨.
-아마존코인, 메타월드코인, 빅투코인 등등. 온갖 잡코인은 다 샀네.
-야! 이거 뭐냐? 거래시간을 보니 이때는 국정감사 중이었는데.
-잉? 국정감사 도중 코인을 사고팔았다고?
-뉴스 찾아보니 진짜네. 질의하다가 갑자기 핸드폰 만지고 있음.
-ㅋㅋㅋ 우리 의원님 바쁘시네.
-이래놓고 코인 수익 과세 유예 법안을 발의했다고? 미친 거 아니야?
-공직자 재산공개에 암호화폐는 왜 빠져있어?
-회사나 거래소에서 정보를 받아 투자를 해도 불법이 아니라는 게 말이 되냐? 이거 주식이었으면 범죄수익 몰수에 감방행 아님?
-그럼 코인은 뇌물로 받아도 무죄인가?
-이거 국회의원들 전수조사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싹 다 까보자!
* * *
동호 선배는 황당해하며 말했다.
“반트코인도 엘더리움도 아니고, 리믹스에 10억을 태워!?”
1회차 때 나도 기사 보고 깜짝 놀랐다.
입법 활동 열심히 하라고 뽑아놨더니, 설마 코인 투자를 열심히 하고 계셨을 줄이야.
“뭐, 한때는 50억 원까지 벌었다잖아요.”
안타깝게도 그 뒤에 온갖 잡코인에 투자하다가 상당 부분 날려 먹었지만.
“그때 뺐어야지.”
“그게 어디 쉽나요?”
원래 매수보다 매도 타이밍 잡기가 어렵다.
매수가 기술이라면 매도는 예술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아니, 그런데 남서국 의원이 10억이나 투자할 만큼 돈이 많았어? 맨날 밑창까진 구두에 낡아빠진 가방 들고 다니던데.”
“구두랑 가방 살 돈 아껴서 코인했나 보죠.”
이래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이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남서국 의원은 해명 탈당계를 제출하고 잠적했고, 양당에서는 앞으로 공직자 재산 신고에 암호화폐도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정작 시행은 내년부터 하기로 했네. 그사이 해외 거래소로 옮기면 그만 아니야?”
“뭐, 그런 거죠.”
어쨌거나 정치권까지 얽혀들며 여론이 더욱 악화했으니, 거래소들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 *
DAXA(디지털자산 거래소 공동협의체)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주식 거래소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주식 거래소가 엄격한 통제와 규제를 받는 것과는 달리, 암호화폐 거래소는 그딴 게 없다.
주식의 경우 거래소에 상장을 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상장예비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암호화폐는 아무런 기준이 없다 보니, 애초에 사기 칠 목적으로 만들어진 스캠코인이 상장하는 일도 빈번했다.
초창기만 해도 거래소가 뒷돈을 받고 상장시켜 주거나, 프리 ICO에 참여해 사전에 코인을 받고 상장해준 다음 이를 대량으로 매도해 이익을 챙기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스캠코인으로 투자자들이 수십, 수백억 원을 날리는 동안에도 거래소는 막대한 수수료를 벌어들였지만, 나중에 문제가 터져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주식 시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것은 역시나 법이 없기 때문.
투자자들 피해가 점점 커지고 여론이 악화되자, 정치권은 규제에 나섰다.
심지어 암호화폐 거래소를 전부 폐쇄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기도 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5대 거래소는 부랴부랴 DAXA(디지털자산 거래소 공동협의체)를 출범했고, 투자자 보호, 거래지원, 시장 감시, 교육 등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또한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스캠코인들을 대량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가이드라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유통량과 투자자 공시.
그런데 리믹스가 여기에 딱 걸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