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화. 드림페이 (8)
박정국이 P2E 게임을 허용해 달라며 물고 늘어진 건 어디까지나 블록밸리와 나이트라이트.
그럼에도 SW게임즈가 나선 이유는 컨티뉴 캐피탈 산하의 게임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정국이 컨티뉴 캐피탈에 느끼는 감정은 애증이었다.
컨티뉴 캐피탈은 레전드게이즈를 통해 엔플과 구블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고, 결국 구블의 인앱결제 수수료 인하와 외부결제 허용을 이끌어냈다.
그로 인해 수많은 게임사들이 이익을 봤고, 이는 위너팩토리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지금은 드림페이로 인해 존폐의 위기에 처했다.
컨티뉴 캐피탈이 게임 개발자와 게이머들에게 받는 지지를 생각한다면, 토론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가능하다면 피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한국에도 P2E 게임이 서비스돼야 한다며?
-매번 혼자 떠들지 말고 토론 나가서 발라버리면 되겠네 ㅎㅎ
-지금 리믹스 가격이랑 위너팩토리 주가 보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리믹스를 홍보할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가 왔는데, 설마 모른 척하진 않겠지?
-그럼그럼. 박정국 대표님이 토론회 피할 리가 없지.
-이거 피하면 드래곤 레거시W도 리믹스도 끝장임.
-뭔가 확실히 보여줘!
-눈물의 똥꼬쇼라도 해라!
-믿습니다, 박정국 대표님!
-리믹스 가즈아!!!
현재 위너팩토리 주가와 리믹스 가격은 동반 추락 중이고, 리믹스 생태계는 붕괴 직전.
당연히 투자자들은 분노했고, 일부 주주들은 주가 폭락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임시 주총 소집을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토론을 피한다면 여론은 물론이고 투자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잠깐.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쁜 일도 아니지 않나?’
박정국은 강선우의 경력을 살펴보았다.
하이스트 졸업 이후, 바로 게임회사에 입사.
그 이후로는 계속 게임 개발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LD스튜디오에서 쫓겨난 뒤,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를 받아 SW게임즈를 설립하고, 여러 스튜디오와 아이스스톰을 인수했다.
하지만 이러한 회사 설립과 인수는 강선우가 아니라, 컨티뉴 캐피탈이 주도했다.
‘강선우는 그저 게임만 개발했을 뿐이지.’
그가 천재 개발자라는 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건 그가 만든 게임 하나만 해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
그러나 천재 개발자인 것과 말을 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오히려 이런 사람일수록 세상 물정을 잘 모르거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법이지.’
반면, 박정국은 20년 넘게 수많은 개발자를 데리고 회사를 이끌어왔다.
상대가 기업가나 투자자라면 모를까, 개발자라면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박정국은 SW게임즈 대표와 당당하게 토론을 하고, 리믹스 생태계의 무궁한 발전과 성장을 얘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심어주고, 리믹스의 반등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지도 몰라.’
어차피 토론을 한다고 뭔가 결론이 나오는 건 아니다.
그저 목소리 높여 자기주장만 하다 오면 그만이다.
‘어차피 상대는 아직 어린 애송이일 뿐!’
그렇게 판단한 그는 홍상순에게 토론을 받아들이겠다는 답변을 보냈다.
* * *
“……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아.”
내 말에 강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을 알고 상대를 알아야 한다.
자신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는 만큼, 상대에 대해 알아보았다.
위너팩토리가 만들어진 건 PC통신 초창기.
그사이 무수히 많은 게임사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동안 위너팩토리는 꾸준히 성장했다.
지금은 온갖 욕을 먹고 있는 LD스튜디오와 렉슨이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시대를 관통하는 대작을 만들어냈다.
반면, 위너팩토리는 여러 게임을 내놓긴 했어도 엄청난 명작이라 할 만한 건 없다.
그럼에도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시대의 흐름을 잘 탔기 때문.
월드 오브 워로드와 브라더후드가 인기일 때는 온라인게임 ‘소울리스’를 내놓았고, 이후 모바일게임이 대세가 되자 발 빠르게 ‘드래곤 레거시’ 모바일 버전을 출시했다.
이후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한창 떠오르고 각종 알트코인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에는 재빨리 리믹스 코인을 만들고 P2E 게임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것만 봐도 박정국 대표의 사업 감각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본인은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신할 테고, 강선우는 그저 게임만 잘 만드는 애송이 정도로 여기겠지.
하지만 이건 선우에 대해 몰라서 하는 얘기.
내가 같이 치킨집을 해봐서 아는데…… 얘의 현실 감각은 절대 나보다 뒤지지 않는다.
단지 게임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게임사를 운영해나갈 수 없다.
게임은 엄연히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산업.
정해진 개발 기간 안에 게임을 내놓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고, 직원들 월급을 주고 사무실 월세를 내려면 적정한 과금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애초에 판타지아 테일즈R의 유저 친화적이라 불리는 과금 체계는 실제로는 더 많은 유저들을 게임으로 불러들이고, 게임의 수명을 더 길게 가져가기 위해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실제로 판타지아 테일즈R은 랜덤박스로 떡칠이 되어 있는 게임들보다 훨씬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만약 박정국 대표가 한 번이라도 직접 선우를 만나봤다면, 욕을 먹고 비난을 받더라도 어떻게든 이번 토론을 피하지 않았을까?
난 웃으며 말했다.
“원래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함정에 걸려들기 쉬운 법이지.”
* * *
드림페이의 가입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게임 결제와 앱 결제는 물론이고, 오코너 버거와 블랙우드 호텔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결제도 속속들이 도입됐다.
많은 곳에서 사용 가능하니 드림페이 이용자가 늘고, 이용자가 늘어나니 더욱 많은 곳이 드림페이 결제를 받아들였다.
월스트리트 역시 드림페이의 흥행에 대해 주목했다.
“이러다가 구블페이와 엔플페이도 밀어내겠는데?”
“드림페이 성공으로 CBDC에 대한 도입도 가속화되는 거 아니야?”
“드림 파이낸셜에 투자할 방법 없나?”
“수혜를 볼 업종을 찾아서 투자해야…….”
드림페이를 출시한 드림 파이낸셜 대표는 성윤아.
언론에서는 그녀를 DA금융그룹 회장의 외동딸로 소개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타임즈 기자 트리시는 성윤아에게 그것보다 중요한 배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한미루의 DA증권 입사 동기라는 것.
‘그냥 입사 동기일 뿐이겠지? 분명 그럴 거야.’
트리시는 한미루에게 전화를 걸었다.
“헤이, 미루. 에이튜브 채널에서 위너팩토리와 토론을 한다면서요?”
[벌써 소문이 퍼졌어요?]
“그럼요. 언론에도 나가고, 미국 게이머들도 큰 관심을 나타내는 중이에요.”
[안 그래도 다른 나라 시청자들을 위해 실시간 번역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재밌겠는데요.”
[직접 보면 더 재밌을 거예요.]
그 말에 트리시는 귀를 쫑긋했다.
한미루의 말투에서 특종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뭔데요?”
[보면 알 거예요.]
“미리 말해주면 안 돼요?”
[흠, 토론회 끝난 뒤 기사 내겠다고 약속할 수 있어요?]
“그럼요. 저 엠바고 잘 지키는 거 알잖아요.”
* * *
선우가 토론회를 준비하는 사이, 난 다른 걸 준비했다.
내 얘기를 들은 동호 선배는 깜짝 놀랐다.
“응? 위너팩토리를 공매도하겠다고?”
“네.”
한창 리믹스가 떡상(?)하던 시절, 위너팩터리의 시총은 15조를 찍었다.
이후 리믹스 대량 매도 사태 등 몇 차례 폭락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리믹스 출시 이후 주가는 5배 넘게 올랐고, 두 개의 게임사를 인수합병까지 하며 덩치를 불렸다.
현재 시가총액은 4조 3천억 원으로 코스닥 5위에 머물러 있다.
재벌그룹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게임사 중에서는 대기업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그래도 먹을 게 없진 않을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지금 주가에서 더 떨어질 게 있어?”
리믹스 폭락은 이미 위너팩토리 주가에 반영되었다. 그런 만큼 추가 하락은 제한적일 거라는 것이 애널리스트들의 전망.
하지만…….
“언제나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는 법이죠.”
매수리포트를 내고 주식을 매수하는 것. 매도리포트를 내고 주식을 공매도하는 것.
개념적으로 보면 이 둘은 똑같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전자의 경우 문제가 없지만, 후자는 시세조종에 해당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엄연히 합법.
때문에 공매도는 본사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난 데이비드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했다.
[보내주신 자료는 확인했습니다. 처음부터 공매도를 염두에 두고 토론을 제안했던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그냥 토론을 준비하다 보니, 생각났을 뿐이다.
푼돈도 돈은 돈.
모름지기 투자자라면 돈 벌 기회가 왔을 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직업적 소명을 가지고 살아야지.
난 농담처럼 말했다.
“인건비라도 건져야 하지 않겠어요?”
데이비드 역시 농담처럼 말했다.
[보스의 인건비면 꽤 비싸겠군요.]
* * *
SW게임즈 대표 강선우와 위너팩토리 대표 강선우가 토론회를 한다는 소식에 인터넷은 후끈 달아올랐다.
게이머들이 모인 커뮤니티는 물론, 주식 투자 커뮤니티, 코인 투자 커뮤니티 등등.
-개꿀잼 각이다!
-리믹스 개같이 부활하나?
-개같이 멸망하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위너팩토리 사야 할까요?
-리믹스 사라! 리믹스 지금 한국 거래소에서 3,400원밖에 안 함. 토론 잘 끝마치면 최소 1만 원 회복 본다.
-보긴 뭘 봐?
-위너팩토리든 리믹스든 당장 파는 게 답임.
-닥쳐! 난 나라가 망해도 리믹스야!
-난 다른 말 안 믿고, 오직 박정국 대표 말만 믿어!
-박정국 대표님이 다 해주실 거야 ㅜㅜ
또 한 곳 뜨겁게 달아오른 곳은 다름 아닌 미국의 리딧 채널 ‘월스트리트 에이프’다.
베팅닐은 바로 방송을 켰다.
“헤이, 가이즈. 이번에 컨티뉴 캐피탈 산하에 있는 SW게임즈가 위너팩토리라는 곳과 P2E 게임을 놓고 토론을 하는 거 알지? 그날 실시간으로 중계방송할 테니, 다 같이 맥주 한 잔 마시며 응원하자고. 선착순 100명에게는 내가 피자 쏠게!”
* * *
게임 관련 토론은 ‘홍상무의 게임라이프’ 채널의 주요 콘텐츠인 만큼 세트장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서너 명이 앉아서 토론하던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방청객까지 부르기로 한 만큼 급하게 다른 장소를 대관하고,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리고 드디어 토론회 당일.
강선우와 박정국은 서로를 마주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선우입니다.”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넘기고 정장을 입고 있는 박정국과는 달리, 강선우는 더벅머리에 아무렇게나 기른 수염을 기른 모습이었다. 복장은 체크무늬 남방에 청바지.
평소 딱히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듯했고, 언뜻 보면 어리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박정국은 속으로 웃음을 지으며 악수했다.
“반갑습니다, 박정국입니다. 오늘 좋은 토론 기대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눈 다음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홍상순은 양쪽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홍상무의 게임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