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5화. 드림페이 (3)
난 알렌 에버하트와 통화했다.
[차는 어때? 마음에 들어?]
“좋던데요. 역시 전기차는 티슬라죠.”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닌 진심이다.
[하하! 역시 그렇지?]
목소리에서 자신이 만든 차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다.
직접 타보니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티슬라가 처음 차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이 비웃었다.
신생 기업이 노력해봐야 역사와 전통이 있는 자동차 기업을 따라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티슬라 차는 지금도 완성도와 마감이 떨어지기로 유명하다.
내가 받은 차도 단차가 좀 있고, 도장이 까져 있더라.
그러나 티슬라는 모두가 전기차가 ‘차’라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 ‘전기’에 초점을 맞췄다.
마치 스마트폰처럼 차의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 새로운 기능을 추가했고, 배터리를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자율주행기술을 고도화했다.
여기에 양산까지 성공하며, 티슬라는 이제 전세계 모든 자동차회사의 시총을 합친 것보다도 더 큰 회사가 됐다.
처음에는 조소를 지으며 지켜보던 기존 자동차회사들은 이제 다들 티슬라를 따라 하고 뒤쫓아가기에 바빴다.
이런 걸 보면, 이상한 짓을 많이 하긴 해도 역시 대단한 사람이란 말이지.
“투윗 잘 봤어요. 정말로 투위터와 티슬라에 드림페이 결제를 도입할 생각이에요?”
[물론. 알다시피 난 한 번 한 말은 반드시 지키지.]
“…….”
잘 모르겠는데.
그동안 안 지킨 말이 너무 많아 뭐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다.
“설마 반트코인 때처럼 잠깐 하다가 중단하는 건 아니죠?”
[에이, 반트코인이야 시세 변동 때문이었고.]
암호화폐는 거래를 하는 그 잠깐의 순간에도 시세가 오르내린다. 하지만 스테이블 코인은 가치가 고정되어 있는 만큼 그런 리스크가 전혀 없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도움이 됐어요.”
그의 투윗 이후 전세계에서 드림페이 관련 기사가 쏟아졌고, 가입자가 폭증했다.
알렌 에버하트의 대중 영향력이란…….
괜히 투자자들이 그가 언급해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가 이렇게 나선 것은 단지 나에 대한 호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 친분과 비즈니스를 구분 못 할 사람도 아니고.
그러니 그가 드림페이에 힘을 실어준 이유는 아마도…….
“혹시 엔플과 구블 때문인가요?”
내 말에 알렌 에버하트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군.]
“잘 생각하셨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발목을 잡아야죠. 그렇지 않으면 금융에 이어 전기차 시장으로 발을 뻗을 테니까요.”
[그래서? 드림페이가 구블페이나 엔플페이를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아?]
난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럼요.”
알렌 에버하트는 재밌다는 듯 말했다.
[그쪽 반응이 궁금하네.]
* * *
간편결제 서비스는 한국에만 백 개가 넘게 난립해있다. 더 넓게 보면 세계적으로는 수천, 수만 개가 있다.
그러나 이 중 글로벌하게 활용되는 건 극소수.
새로 진입하기 힘든 이 시장에서 드림페이는 출시 일주일 만에 1천만 명이 넘는 이용자를 확보하며, 거센 돌풍을 일으켰다.
언론에서는 간편결제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고 표현했고, 몇몇 핀테크 업체들은 자신들도 스테이블 코인을 기반으로 한 간편결제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구블에서는 또다시 비상회의가 열렸다.
지난번 열린 비상회의는 컨티뉴 캐피탈 때문. 그리고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블페이 결제와 플레이마켓 인앱결제 매출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매출 상위 게임사들이 드림페이 결제를 유도하며 이벤트를 시작했습니다.”
“플레이마켓 상위 100위 앱 중 70퍼센트가 드림페이 결제를 도입했습니다.”
구블은 지난 번 사태로 인해 기존 30퍼센트의 인앱결제 수수료를 20퍼센트로 인하하고, 외부결제를 허용했다.
이렇게 하면 코스믹스토어로 빠져나간 게임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적어도 수수료를 인하한 만큼 결제액이 늘어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부결제 허용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글로벌 결제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비용과 인력이 발생한다.
이를 게임사가 일일이 신경 쓰기란 쉽지 않다.
자국 내에서 외부결제를 도입하더라도 글로벌 서비스에서는 결국 플레이마켓의 인앱결제를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드림페이의 등장이 상황을 바꿔놓았다.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하는 만큼 각 나라마다 결제 시스템을 따로 구축할 필요없이, 그저 드림페이 하나만 도입하면 그만이었다.
그 과정 역시 어느 간편결제보다도 쉽고 편했다.
이렇다 보니, 모든 게임사들이 드림페이 결제를 도입했고, 이는 즉시 구블에 영향을 끼쳤다.
외부결제가 늘어나며 플레이마켓의 결제액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미트 굽타 CEO는 분통을 터트렸다.
“이런 젠장!”
* * *
엔플 역시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전세계 간편결제 시장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고,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곳은 어딜까?
정답은 엔플이다.
엔플은 엔폰과 엔패드 등 전세계에 10억 대가 넘는 활성화 기기가 있다.
전세계에서 10억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 직접 만들고 관리하는 만큼, 엔플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간편결제 서비스 엔플페이 보급에도 앞장섰다.
현재 엔플페이는 세계 80여 개국에 진출했고, 4억 명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엔플이 엔플페이로 벌어들이는 수수료 수익은 연간 10억 달러.
평균 0.15퍼센트 수수료를 받는 걸 고려하면, 결제액은 7천억 달러에 달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엔플은 엔플카드, 엔플월렛, 엔플캐시 등을 출시하며 금융 서비스를 확대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예금 상품까지 내놓았다.
1인당 예금액 상한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중 은행보다 높은 금리에 100억 달러가 몰렸다.
이를 본 미국 은행들은 바짝 긴장했다.
오죽하면 엔플이 은행들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엔플이 이렇게 공격적으로 금융 생태계 구축에 나선 이유는 수익도 수익이지만, 이용자들의 금융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득, 저축, 송금, 대출, 소비패턴 등등.
이를 기존의 엔플이 수집하고 있는 사용자의 데이터와 결합한다면?
향후 상품 판매와 금융 서비스 제공, 대출, 투자 등에 활용하며, 제조업에 이어 금융까지 장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은 현재 엔플 매출의 20퍼센트를 차지하는 금융 서비스가 5년 안에 두 배 이상 증가할 거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엔플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탐 키튼 CEO는 엔스토어에 올라온 드림페이 앱을 살펴보았다.
“스테이블 코인 기반 간편결제 서비스라니…….”
드림페이앱은 출시 이후 엔스토어 다운로드 3위로 올라섰고, 엔플페이 이용자들 중 무려 15퍼센트가 드림페이앱을 다운받았다.
마음 같아서는 드림페이앱을 엔스토어에서 내려버리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불가능했다.
그랬다가는 반독점법으로 소송을 당할 테니까.
드림페이의 가입자 증가 속도는 엔플페이보다도 빨랐다.
엔플페이를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수수료 문제를 놓고 현지 카드사와 은행들과 협상과 계약을 해야 했고, 제휴가 이뤄지지 않은 나라는 서비스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드림페이는 스테이블 코인이 기반인 만큼, 딱히 현재 금융사들과 제휴를 맺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출시하자마자 바로 전세계예서 서비스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스테이블 코인 기반 간편결제라는 것은 위협적이었다.
그렇다면 엔플도 똑같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세계 최대 기업인 엔플이 발행한 스테이블 코인이라면 모두가 믿고 쓸 테니까.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엔플은 세계 최대 기업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기업.
이런 초거대 기업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한다면, 이는 글로벌 금융시장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규제 당국이 이를 허용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 비슷한 예가 있었다.
페이스노트는 한때 스테이블 코인 데브라를 발행하려 했다. 개발을 끝마쳤고 발행 직전까지 갔으나, 규제 당국의 반대로 인해 무산됐다.
스노우 크래시 역시 현재 시점에서는 페니를 발행하려 했다면, 정치권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페니는 페더가 몰락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갔다.
오히려 정부가 규제를 하기도 전에 철저하게 달러 패권 안으로 편입되는 것을 선택했다. 암호화폐의 문제로 지적되는 자금세탁, 재산은닉, 자본유출, 탈세 등에 대해 자체적으로 규제를 하고, 자료를 제출하는 등 노력을 다했다.
구블과는 달리 엔플은 당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탐 키튼 CEO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드림페이는 세계 시장에서 엔플페이와 경쟁을 하게 될 거라는 것을.
‘이 경쟁에서 엔플이 밀린다면, 향후 금융시장의 주도권은 컨티뉴 캐피탈이 가져가게 되겠지.’
레전드게임즈와 블록게임즈의 인수.
SW게임즈와 아이스스톰에 대한 투자.
페더의 몰락과 페니의 발행.
인앱결제 수수료 문제를 놓고 벌인 엔플과 구블과의 소송.
‘설마 이 모든 것들이 드림페이의 출시를 위한 준비였나?’
탐 키튼 CEO는 일전에 만난 동양인 청년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대체 얼마나 앞을 내다보고 움직이고 있는 거지?”
* * *
드림페이의 대성공으로 인해 페니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핀테크 기업뿐 아니라, 은행, 투자은행, 카드사들 역시 페니를 기반으로 한 결제 서비스 출시를 준비했다.
[벨론은행, 페니를 활용한 대출 서비스를 시범 실시!]
[비자카드, 페니를 신용카드 결제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혀]
[스테이블 코인을 기반으로 한 금융 상품 출시는 은행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용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암호화폐 시장은 이를 큰 호재로 받아들였다.
반트코인과 엘더리움 등의 암호화폐는 일제히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제 대세는 암호화폐다!
-다시 폭등장 시작이다! 꽉 잡아라!
-아직 안 올라탄 흑우들 없제?
-앞으로 달러는 사라지고, 모든 결제는 코인으로 이뤄지게 될 겁니다.
-ㅋㅋㅋ 페니는 예치된 달러만큼 발행되는 스테이블 코인인데, 대체 왜 달러가 사라짐?
-이걸 보니 크립토브로들의 능지를 알 만함.
-아니, 페니가 결제에 이용되는 건데, 대체 다른 암호화폐가 왜 오르는 거야?
-언제는 이유가 있어서 올랐음?
-와! 이 와중에 리믹스는 홀로 개떡락 중이네. 이거 뭐냐?
-반트코인도 오르고! 엘더리움도 오르고!! 심지어는 루플까지 오르는데!!! 대체 리믹스는 왜 떨어져?
-몰라서 묻냐?
레전드게임즈와 블록게임즈, SW게임즈, 아이스스톰은 물론, 한국,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 전세계 게임사들은 드림페이 결제를 도입하고 각종 이벤트를 벌였다.
게이머들은 드림페이 전자지갑을 만들고 페니를 활용해 결제했다.
대다수의 게이머가 드림페이 쓰자 자연히 아이템 거래나 계정 거래 등 게임 현거래에도 이용됐다.
암호화폐를 활용한 현거래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전세계 게이머들이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건 페니가 처음이다.
페니가 사실상 게임 업계의 기축통화로 부상하자, 자연히 게임 관련 암호화폐들은 시장에서 밀려났다.
그중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암호화폐가 바로 리믹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