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화. 드림페이 (1)
난 새해 처음으로 지유와 통화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 지유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응. 새해 복 많이 받아.”
몇 차례 톡을 나누긴 했지만, 통화를 하는 건 오랜만이다.
원래부터 바빴던 지유는 연말쯤 해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공연, 광고 촬영, 시상식 참석 등등.
게다가 가수이면서 연기자이기 때문에 가요대전과 연기대상 등 양쪽 행사를 전부 참석해야 했다.
말 그대로 몸이 두 개여도 부족했을 것이다.
“힘들진 않아?”
[네. 괜찮아요. 저 엄청 튼튼해요.]
진짜 웬만한 체력으로는 못 버틸 일이다. 나였으면 진작 쓰러져서 실려가지 않았을까?
“아! 상 받은 것 축하해.”
세븐 라운드의 경우 TV에서 방영하지 않고 바로 넷플레이로 직행했기 때문에 인기와는 별개로 방송사 연기대상과는 별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케이블에서 주최한 가요대전에서는 최우수상을 받았다.
참고로 대상은 이제는 글로벌 아이돌그룹이라 할 수 있는 뮤키즈가 가져갔다.
[호, 혹시 시상 소감 들으셨어요?]
“응. 들었지.”
난 지유가 상을 받을 때 했던 소감을 떠올렸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다행이네요.]
“뭐가?”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벤더베리도 이번에 인기상 받았던데.”
[네. 저도 보면서 엄청 기뻤어요.]
한때 악성 루머로 인한 해체 위기를 겪었던 라벤더베리는 아픔을 딛고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그때의 일이 전화위복이 되었는지 대중에게도 제법 유명해지며, 신곡은 계속 차트 상위권에 머물렀고 처음으로 상도 받았다.
멤버들끼리 끌어안고 우는 모습을 보니 짠하더라.
[데이나와 멤버들이 선배님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전해달래요. 다 같이 영상도 찍어서 저한테 보내줬는데, 이따 보내드릴게요.]
“…….”
직접 연락하는 대신 지유를 통해서만 연락하는 걸 보면 다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모양인가?
“신곡이랑 콘서트 준비는 잘돼가?”
[네. 열심히 하고 있어요.]
벌써부터 1년 스케줄이 주르륵 잡혀 있다.
“세븐 라운드 시즌2 촬영도 있잖아.”
[네. 탁동식 감독님이 올해 안에 내시겠대요.]
1회차 때 세븐 라운드는 넷플레이 오리지널 작품이었다. 따라서 시즌 2 역시 넷플레이 소유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컨티뉴 캐피탈이 투자하며 상황이 변했다.
세븐 라운드의 IP는 컨티뉴 캐피탈 한국지사가 공동소유하고 있다.
넷플레이에 독점 출시하긴 했지만, 기한은 1년이고 시즌2는 새로 계약을 맺어야 한다.
세븐 라운드 시즌2는 미국인들이 가장 기대하는 드라마 1위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 작품을 독점으로 가져가면 OTT 가입자를 크게 늘릴 수 있는 만큼, 부르는 게 값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일도 좋지만, 건강 챙기고.”
그러자 지유는 힘차게 대답했다.
[네, 선배님도요.]
* * *
연말과 신년의 들뜬 분위기도 잠시뿐.
회사는 다시 업무를 시작했고, 직원들은 출근해 일했다.
김범석은 트로피 여러 개를 가져와서 책상 주변에 올려놓았다. 다름 아닌 여러 시상식에서 받은 작곡상과 작사상, 프로듀서상 등이다.
그걸 동호 선배는 눈에 불을 켜며 물었다.
“아니, 회사에 왜 개인 물품을 가져와?”
“집에 놓을 데가 없어서.”
“거짓말! 자랑하려고 가져온 거면서! 기만자!”
김범석은 못 들은 척 말했다.
“아, 이거 트로피 놓을 데가 없어서 어떡하지?”
“어떡하긴. 이리 줘. 내가 내다 버리고 올게.”
일할 생각은 안 하고, 새해 벽두부터 쓸데없는 걸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고향에 갔던 미국인 직원들도 복귀했다.
난 에드워드에게 물었다.
“오랜만에 뉴욕은 어땠어요?”
“여전하더군요. 오랜만에 타임스퀘어 연말 공연도 봤습니다.”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서는 매년 새해맞이 카운트다운 행사가 열리고, 엄청난 인파가 몰린다.
그 자리에는 취재를 나간 트리시도 있었다.
트리시는 현장에서 찍은 영상을 나에게 보내주며 새해 인사를 했다.
“동네에 가보니 마약 문제가 더 심각해졌더군요.”
“그래요?”
“예. 길거리에서 마약 중독자를 쉽게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뭔 놈의 세계 최고의 부국이 하루가 멀다 하고 마약과 총기 문제에 시달리는 중이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역시 한국이 최고입니다.”
“무슨 국뽕 에이튜브에서나 나올 법한 멘트네요.”
“록허트 대표님의 집에 초대도 받았습니다. 집 엄청 좋던데요.”
“그럼요.”
누가 선물해준 건데.
“그새 메기가 많이 컸더군요. 직접 구워준 쿠키도 가져왔는데, 드시겠습니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제가 단 걸 별로 안 좋아해서요.”
“그러지 말고 하나 드시죠. 민트초코칩 쿠키라서 별로 안 답니다.”
“…….”
그래서 안 먹는다고.
새해 벽두부터 정신없이 일하는 선우와는 달리, 나는 출근해도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난 적당히 앉아 시간을 때우다가 퇴근 시간이 되자 칼퇴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호 선배가 물었다.
“어디 가? 오늘 회식 있는데.”
“전 빠질게요.”
참고로 우리 회사는 회식 참여가 자율이다.
하지만 주로 고급 레스트랑이나 호텔 뷔페 등에서 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참여율은 매우 높은 편.
“왜?”
“약속 있어요.”
* * *
성수동의 한 갤러리 카페.
한때 폐공장이었던 이곳은 현재는 현재 미술 작품을 전시해놓은 카페로 탈바꿈했다.
난 입구에 들어오는 여성을 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여기예요.”
그러자 롱코트를 입은 여성이 다가왔다.
다름 아닌 성윤아.
“먼저 왔네요.”
난 그녀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금방 올 것 같아서 미리 시켜놨어요.”
“고마워요.”
그녀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빨대로 커피를 마셨다.
“잘 끝났어요?”
“그럼요. 어머니도 감사하다고 전해달래요.”
“별말씀을.”
“나중에 자리 한번 마련해서 정식으로 인사드리겠대요.”
난 그녀를 보며 웃었다.
“왜 그래요?”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요.”
성윤아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무렇지도 않은 것 치곤 표정이 좀 우울해 보여는데요.”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새 한 살 더 먹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그래서요.”
“…….”
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때문이 아니라?
난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에이, 만 나이로 바뀐 지가 언제인데요. 생일 지나기 전까지는 괜찮아요. 그리고 윤아 씨 나이면 아직 애기예요, 애기.”
“칫! 애기는 무슨.”
“피부가 애기 피부잖아요. 신생아라고 해도 믿겠는데요.”
“헛소리 좀 그만해요.”
어이 없어서 웃은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웃는 걸 보니 칭찬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렇게 올해도 보니까 좋네요.”
“흐응. 그럼 안 보려고 했어요?”
1회차 때는 그저 회사 동기였을 뿐이다. 때문에 퇴사 후에는 서로 얼굴 볼 일도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지금의 인연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성윤아는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미루 씨는 며칠 동안 뭐했어요?”
“조용히 지냈어요.”
“파티 같은 데는 안 가구요?”
“네.”
사실 불러주는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알렌 에버하트는 애인과 지인들과 섬을 빌려서 파티를 하니 오라고 했고, 다리안 헤럴슨은 할리우드 셀럽들과 자선 파티를 한다고 오라고 하는 등등.
하지만 전부 사양했다.
“선우와 함께 치킨 뜯어 먹고, 부모님 집에 가서 가족들과 식사를 하며 조용하고 건전하게 보냈죠.”
“아, 집에 갔었구나. 여동생은 잘 있어요?”
“걔야 뭐 항상 행복하게 살고 있죠.”
난 세나만큼 행복한 애를 본 적이 없다.
지금쯤이면 친구들한테 티슬라 모델Z를 자랑하고 있지 않을까?
갑자기 내 동생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나 같은 형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나저나 이제 시작이네요.”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하긴 했는데, 잘될지 좀 걱정이에요.”
“잘될 테니 걱정 말아요.”
그러자 성윤아는 나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알아요?”
그야 1회차 때 봐서 안다.
“그냥 한번 믿어봐요.”
내 말에 그녀는 밝게 웃었다.
“미루 씨가 그렇게 말하니 좀 안심이 되네요.”
그녀와 나는 새해를 맞아 큰 이벤트를 앞두고 있었다.
바로 드림페이의 출시다.
* * *
원래 결제는 전통적으로 금융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핀테크가 활성화되며 현재는 제조사, 통신사, IT회사, 물류사, 인터넷 쇼핑몰 등 모두가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너도나도 무슨무슨 페이의 이름을 달고 출시하며, 소비자들이 자사의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도록 유도했다.
이렇다 보니, 간편결제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
수익을 내는 곳은 극소수고, 대부분은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뒤늦게 이 시장에 뛰어들어서는 승산이 없다.
하지만 드림페이는 기존 간편결제 서비스와는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그건 바로 법정통화가 아닌, 스테이블 코인 페니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
주식처럼 가격이 변동하는 반트코인이나 엘더리움 등과는 달리, 페니는 달러와 1대1로 교환되는 만큼 투자상품으로서의 가치는 전혀 없다.
현재 스테이블 코인이 가장 활발하게 쓰이는 곳은 바로 암호화폐 거래소. 때문에 스테이블 코인은 보통 거래소와 관련한 곳에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페니는 원래부터 실제 결제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스테이블 코인을 만드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진짜 어려운 건 이걸 사람들이 쓰게 하는 것.
때문에 컨티뉴 캐피탈은 투자를 통해 드림페이를 설립. 페니를 실제 결제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간편결제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그동안 출시 시기를 조율 중이었는데, 드디어 때가 됐다.
* * *
[(WST) 스테이블 코인 기반 간편결제 서비스 드림페이 출시!]
(전략)
페니는 달러와 1대로 교환되는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 코인이다.
페니의 발행량과 자산 내역의 변동은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모두에게 공개된다. 현존하는 스테이블 코인 중에서 가장 투명한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략)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바로 달러와 1대1로 대응한다면, 그냥 달러를 쓰면 되지 왜 굳이 스테이블 코인을 쓰냐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드림 파이낸셜의 성윤아 CEO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는 송금, 결제, 환전 등에 들어가는 수수료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
예를 들어 카드 결제의 경우 단순히 단말기에 카드를 긁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에는 발급사, 매입사, VAN사, 국제결제사 등이 연관되어 있고 그 과정에서 각각의 수수료가 발생한다.
하지만 드림페이의 경우 그저 전자지갑에서 다른 전자지갑으로 코인이 이동하는 방식이기에 그저 네트워크 비용만 지불하면 그만이다.
둘째는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 시스템이 발달한 선진국 시민이라면 누구나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고,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금융 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간편결제라 해도 법정통화가 기반이라면 은행 계좌 없이는 사용이 힘들다. 하지만 스테이블 코인 기반이라면 전자지갑만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성윤아 CEO는 ‘드림페이는 거래 과정의 수수료를 줄여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금융 시스템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을 제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