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491화 (491/529)

491화. 크리스마스에 생긴 일

안 그래도 슬슬 차를 바꿔줘야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지금 차는 너무 작으니.

“페라리 타고 싶다며?”

“그건 농담이었어.”

“농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막상 타고 다니기 힘들 것 같아서. 기름도 엄청 먹구.”

“무슨 바람이 불어서 티슬라야?”

“얼마 전, 티슬라 CEO가 나와서 소개하는 거 보니 차가 좀 예쁜 것 같아서.”

“…….”

역시 알렌 에버하트가 원흉이었구나!

설마 내 동생한테까지 헛바람을 집어넣었을 줄이야.

“티슬라는 전기차라 환경에도 좋고 유지비가 얼마 안 든대. 오토드라이브도 있어서 운전도 편하다고 하고.”

“흠.”

티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이 뛰어나긴 하지.

괜히 전세계에서 가장 시총 높은 자동차 회사가 아니다.

“무슨 모델이 갖고 싶은데?”

“모델Z.”

모델Z는 티슬라의 대형 SUV.

“그건 너무 크지 않나?”

“애들 다 태우고 놀러 다니려면 그 정도는 돼야 해.”

“…….”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그저 놀러 다닐 생각만!

뭐, 기왕 바꾸는 거 큰 차가 좋긴 하겠지?

테크노킹에게 잘 얘기하면 할인이 좀 되려나?

“사이버트론은?”

“아! 그거 엄청 갖고 싶어. 그런데 아직 안 나왔잖아. 한국에 출시되려면 3년은 더 걸릴 거라던데.”

문득 일전에 사이버트론 시제품을 주겠다던 알렌 에버하트의 제안이 떠올랐다.

그걸 받아서 한세나를 주면 어떨까?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내 표정을 본 세나는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사줄 거야?”

“너 하는 거 봐서.”

사달라는 거 다 사주면 애 버릇 나빠진다.

세나는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되도 않는 애교를 부렸다.

“아잉, 오빠앙.”

“좀 떨어져.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

“헤헷.”

이러고 있으니 아주 어렸을 때 일이 떠올랐다.

늦게 생긴 여동생이다 보니 너무 귀여워서 반쯤 업고 다녔었는데. 그런 애가 어느새 다 커서 이렇게 징그러워졌다.

자세히 보면 아주 살짝 귀여운 것 같기도…… 아닌가?

“효도는 잘하고 있지?”

“물론. 항상 엄빠에게 웃음과 행복을 안겨드림.”

“영어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고?”

“오브 코오스. 아이 스터디 잉글리시 베리베리 하드.”

“…….”

전혀 믿음이 안 가는 대답이다.

“시드랑 요즘도 연락해?”

“응응. 내가 넷플레이에서 뭐 봐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어. 나중에 오빠랑 함께 미국 놀러오라고 하던데.”

“…….”

둘이 어떻게 연락을 끊게 만들지?

우리 착한 시드가 세나 같은 애한테 나쁜 물들면 안 되는데.

“저녁은 먹었어?”

“아직. 오빠랑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지.”

“뭐 먹고 싶은데?”

“파스타 먹고 싶어.”

“파스타라…….”

“맛있는 데 알아?”

“모르진 않지.”

예전이라면 잘 몰랐겠지만, 요즘은 좋은 레스토랑을 많이 다닌 관계로 웬만큼 맛있는 파스타 가게를 잘 알고 있다.

일전에 성윤아와 함께 갔던 곳이 괜찮았지.

난 벗어놨던 코트를 집어 들었다.

“나가자.”

“응, 오빠.”

세나는 쪼르르 나를 따라왔다.

* * *

일하느라 바빠서 신경을 안 쓰는 사이, 어느새 세상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물들어 있었다.

사방에서 연락과 함께 파티나 행사 참석 요청이 쏟아졌다.

피터 테일러 회장, 사티아 샤말란 CEO, 알렌 에버하트 등은 물론이고,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과 처음 들어보는 단체에서도 연락이 왔다.

대체 내 메일 주소는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는 게임 속 세상 역시 마찬가지.

나이트라이트, 블록밸리, 판타지에 테일즈R 등의 게임은 대대적인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벌여 유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사히 업데이트를 끝마친 선우는 크리스마스에서는 좀 쉴 수 있겠다며 한숨을 돌렸다.

난 청담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성윤아를 만났다.

그녀는 롱코트에 흰색 목폴라티, 그리고 잘록한 허리가 부각되는 베이지색 플레어 코트를 입고 힐을 신었다.

단정하면서도 차분한 복장이 잘 어울린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성윤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네요. 구블을 굴복시키다니.”

“굴복이라니요. 그저 수수료 조금 낮춘 것뿐인데요.”

“그게 엄청난 거죠. 정치인들도 못한 일을 해낸 건데.”

“정치인들은 다 자기들이 해낸 줄 알고 있던데요.”

이게 한국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세계 정치인들이 돌아가며 숟가락을 언는 중이다.

뭐, 구블을 압박하는데 티끌만큼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니.

잠시 후, 동호 선배와 민아름이 도착했다.

“먼저 와 있었네.”

“언니!”

성윤아는 반갑게 두 사람을 맞이했다.

민아름은 역시나 패션 리더답게 눈에 띄는 화려한 복장이었다.

신세기그룹 막내딸이자 셀럽인 그녀는 원래 명품을 즐겨 입었다. 때문에 명품 회사들은 신상품이 나오면 알아서 보내줄 정도였다.

하지만 MFW를 시작한 뒤로는 MFW가 투자한 브랜드의 옷만 입으며 걸어 다니는 광고판 역할을 했다.

민아름의 표정을 본 성윤아가 물었다.

“표정이 좋은 걸 보니,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그러자 동호 선배가 대신 말했다.

“지금 MFW가 최대 매출을 올리는 중이거든.”

MFW는 연말 쇼핑 시즌을 맞아 각종 판촉 행사와 이벤트를 벌였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사상 최대의 매출을 이끌어냈다.

계속해서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고 전세계에 오프라인 매장을 늘리고 있으니, 내년 매출은 몇 배는 더 크게 성장할 전망이다.

“벌써 크리스마스이브라니. 시간 참 빠르네.”

동호 선배의 말에 모두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뭔 시간이 거의 빛의 속도다.

민아름은 날 보더니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이브에 처음 만났네요.”

“아! 그러게요.”

정확히 2년 전이다.

성윤아가 말했다.

“그때랑 사람 한 명만 바뀌었네요.”

우리가 다 같이 웃자 동호 선배가 물었다.

“응? 그땐 누구였는데? 설마 전남친?”

민아름이 농담처럼 물었다.

“신경 쓰여요?”

그 말에 동호 선배는 애인의 과거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쿨한 웃음을 지었다.

“훗! 어차피 옛날 일인데.”

그런데 왜 입가가 파르르 떨려?

난 당시의 일을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자 동호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주현진이라. 그 이름 오랜만에 듣네. 지금 뭐하고 살고 있을까?”

“뭐, 잘 살고 있겠죠.”

한정치킨은 그동안 치킨값 상승의 주범이었다.

때문에 통통치킨 출시 이후 한정치킨은 여론의 집중 포화를 얻어맞았고, 매출이 반토막 났다.

매출이 반토막이라는 건 순이익은 마이너스라는 얘기.

하지만 재벌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오늘 뭐할 거예요?”

내 물음에 민아름이 말했다.

“식당 예약해 놨어요. 명동에 있는 호텔에서 파티가 열린다고 하는데 가볼래요?”

“좋죠.”

한창 얘기를 나누는데, 성윤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잠시만요.”

웃으며 전화를 받던 그녀의 표정이 한순간에 변했다.

“네. 알았어요.”

성윤아는 짧은 통화를 끝내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건가?

이상을 감지했는지 민아름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 아무 일도 아니에요.”

“뭔데? 얼른 말해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게…….”

* * *

[(속보) DA금융그룹 양현성 회장 별세]

양현성 DA금융그룹 회장이 향년 82세로 별세했다.

양현성 회장은 지병인 뇌종양을 앓고 있었고 수술과 치료에 전념해왔으나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DA금융그룹 측에 따르면 고인은 평소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밝혀왔고, 그 뜻에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장례는 고인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에 따라 비공개로 치러질 예정으로, DA금융그룹 측에서도 별도의 분향소는 마련하지 않을 계획이다.

(중략)

한편 DA금융그룹의 경영권은 장녀인 양자은 부회장이 물려받을 전망이다.

양자은 부회장은 고인이 투병하기 이전부터 그룹 내에서 경험을 쌓으며 후계자로서 역량을 다지는데 집중해왔다.

* * *

크리스마스 당일.

난 동호 선배와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아름 씨는요?”

“가족들과 함께 갈 거래.”

우리는 차에 올라타 장례식장이 위치한 풍납동으로 향했다.

“위독하다고 얘기를 듣긴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이야.”

“그러게요.”

나도 좀 놀랐다.

왜냐하면 원래는 내년에 사망했으니까.

당시에는 DA증권을 다니고 있을 때라 정확히 기억한다. 그것 때문에 각종 사내 행사가 전부 취소됐지.

1회차 때보다 일찍 사망한 건 아마도 연명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겠지.

어쩌면 아들이 아닌 딸을 후계자로 선택하며, 믿고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떠난 건지도 모르겠다.

이미 승계 작업을 끝마친 만큼 DA금융그룹은 앞으로 양자은 회장이 이끌고 나갈 예정이다.

이것 역시 1회차 때랑 달라진 점이지.

장례는 비공개로 치러지고, 조문도 최소한으로 받기로 했기 때문인지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상주는 아들인 양정욱.

우리를 보는 그의 표정은 복잡 미묘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둘 다 그가 있던 회사의 일개 직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쳐다보기조차 힘든 위치로 올라섰다.

반면, 그는 그룹 후계자에서 이제는 비상장 계열사의 한직으로 밀려났고.

그러니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겠지.

우리는 먼저 빈소에 절을 하고, 상주와 맞절을 했다.

그는 여러 감정을 숨긴 채 상주로서 담담하게 말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동호 선배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습니까.”

조의금은 받지 않기에 따로 준비해 오지는 않았다.

성윤아는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상복을 입고, 긴 머리는 단정하게 묶은 모습이었다.

“와줘서 고마워요.”

“어머니는요?”

“장례 절차 때문에 잠깐 나가셨어요. 금방 오실 거예요.”

어제부터 밤을 샜는지 많이 피곤해 보였다.

“잠깐 바람 좀 쐴래요?”

“네.”

난 그녀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캔커피 하나씩을 손에 들고 벤치에 걸터앉았다.

“괜찮아요?”

“네.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투병하신지도 오래 됐고.”

그녀는 손에 든 캔커피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남들은 할아버지가 무섭다고 하는데, 저한테는 좋은 분이셨어요. 저를 많이 예뻐하셨거든요.”

“그랬군요.”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에 많이 찾아봬서 다행이에요. 그렇지 않았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 테니까요.”

우울한 표정으로 말을 하던 그녀는 나를 보며 말했다.

“미안해요. 저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망쳤네요.”

“에이,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어차피 크리스마스 같은 건 잘 챙기지도 않는데요.”

“저녁도 못 먹었잖아요.”

“여기서 다 같이 먹으면 되죠. 저 육개장 좋아해요.”

“파티도 못 갔고.”

“장례식 끝나고 우리끼리 하면 되죠.”

내 말에 성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렇게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네요.”

“춥죠? 이만 들어가요.”

“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잊을 뻔했네요.”

“뭘요?”

“메리 크리스마스.”

내 말에 성윤아는 활짝 웃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