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0화. Don't be evil (11)
구블 인앱결제 확대는 전세계에서 이슈였고, 한국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구블 방지법’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물론 구블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답게 반도의 국법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당당하게 꼼수로 빠져나갔다.
그랬던 구블이 이번에는 알아서 인앱결제를 철회하고 수수료까지 낮췄다.
이를 본 국회의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기 덕분이라고 자화자찬하기 바빴다.
[국민 여러분! 우리국민당이 해냈습니다!]
[새정치당이 정부와 여당을 대신해 구블의 수수료 인하를 이끌어냈습니다!]
선우는 그 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지들이 한 게 뭐가 있다고 숟가락을 얹어?”
“그러게 말이야.”
일은 우리가 다 했는데, 공치사는 정치인들이 하는 중이다.
어쨌거나 굳이 국정감사장에 구블코리아 사장을 부를 필요가 없어졌고, 덕분에 존 킴 사장은 집에서 편하게 쉴 수 있게 됐다.
어쩌면 이번 일로 인해 계속 푹 쉬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선우는 감탄하듯 말했다.
“이게 진짜 되네. 레전드게임즈가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때만 해도 해결될 거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텐데.”
“탐 스콧 CEO가 열심히 하긴 했지.”
“업계에서는 거의 성인 취급받고 있어. 다들 세인트 스콧으로 부를 정도야.”
그도 그럴 것이 수수료 인하는 게임 업계의 숙원이나 다름없던 일이니까.
앱마켓 수수료가 높다는 것에 모두가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누구도 불만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혼자 행동으로 옮겼다.
레전드게임즈는 나이트라이트뿐 아니라, 써릴 엔진의 개발사기도 하다. 그럼에도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고 소송을 걸었다.
이건 컨티뉴 캐피탈이 지원하지 않았던 1회차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사실 1회차 때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컨티뉴 캐피탈, NS, 유성전자가 지원해준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
비록 절반의 승리지만, 이것만 해도 어딘가?
“국내 게임사들 이익도 크게 증가할 전망이야. 이번 일로 가장 크게 이익을 보게 된 곳이 LD스튜디오라는 게 아이러니지.”
LD스튜디오는 수익 대부분은 모바일과 국내에서 나온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이번 플레이마켓 수수료 인하로 가장 큰 혜택을 볼 기업으로 손꼽혔다. 덕분에 연일 하락하기만 하던 LD스튜디오 주가는 모처럼 반등에 성공했다.
난 진태경 사장을 떠올렸다.
나한테 고맙다는 문자라도 하나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안타깝게도 향후 전망은 별로 좋지 않지만.”
“어째서?”
“브라더후드M의 BM을 베낀 게임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으니까.”
브라더후드M은 한국 게임 중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게임.
매달 수백만 원은 우습고, 랭커 중에는 수백억을 결제한 사람도 있을 정도다.
다른 게임사들이 이 모습을 보며 얼마나 부러웠겠는가?
그래서 브라더후드M과 거의 비슷한 게임을 만드는 데 다들 뛰어들었고, 그 게임들이 최근 줄줄이 출시됐다.
“어차피 과금을 하는 고래들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어. 이전에는 브라더후드M과 브라더후드U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지만, 이제는 다른 선택지가 생긴 셈이지.”
그로 인해 브라더후드 시리즈의 매출은 크게 감소할 전망이다.
“그걸 LD스튜디오가 가만히 보고만 있어?”
“그럴 리가. 해당 게임사들을 저작권 침해로 고소했지만…… 어차피 판결이 나오려면 한참 걸려. 그리고 게임은 웬만해서는 저작권 침해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고.”
다른 나라 게임사들은 더 재밌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 한국 게임사들은 브라더후드 베껴서 돈 뽑아먹을 궁리만 하는 중이다.
“그나저나 엔플은 버티려는 모양이네.”
“그러든가 말든가.”
엔플 없으면 없는 대로 장사하면 되는 거지.
세상에서 가장 잘 팔리는 스마트폰에 입점하지 못하는 게임과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게임을 하지 못하는 스마트폰.
둘 중 어느 쪽 손실이 더 클지는 지나 보면 알겠지.
“바자르는 망해가던데. 스튜디오도 해체되고, 개발자들은 떠나고.”
엔플의 게임 구독 서비스 바자르는 원래 위태위태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엔플이 마치 게임 업계의 적처럼 비치며 개발자들 이탈이 가속화됐다.
자업자득이지.
슬슬 탐 키튼 CEO도 깨달았을 것이다.
게임이라는 게 무작정 돈만 쏟아붓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난 뉴욕에 있는 데이비드와 통화했다.
[결국 해냈군요. 지켜보면서도 좀 놀랐습니다.]
“이제 겨우 한 대 때렸을 뿐인데요.”
구블이든 엔플이든 이 정도로 휘청거릴 기업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라고 봐도 좋겠지.
[그 한 대가 꽤 치명타인 모양입니다. 벌써 이곳저곳에서 수수료 인하 요구가 나오고 있으니까요.]
7대3은 그동안 업계의 불문율이었다.
이는 꼭 앱마켓뿐 아니라 오만 곳에 다 적용됐다. 그 불문율이 깨진 만큼 앞으로는 지금처럼 쉽게 수수료 장사를 하기는 힘들겠지.
한동안 일 얘기를 한 다음, 일상에 관한 대화도 나눴다.
“메기는 잘 지내고 있죠?”
[예. 보스를 보고 싶어 합니다.]
“저도 보고 싶다고 전해주세요.”
선물이라도 사서 보내야겠다.
요즘 여자애들은 뭘 좋아하려나?
난 통화를 끝낸 다음 이어서 레전드게임즈의 탐 스콧 CEO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는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고생은 대표님께서 더 많이 하셨죠. 게임업계 모두를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뭘요.”
전면에 나서서 싸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총대를 메고 나서지 않았다면, 여론을 이끌어내기 힘들었겠지.
그래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레전드게임즈는 게임업계의 수호자로 우뚝섰다. 레전드스토어에는 게임이 몰려들었고 레전드덱도 불티나게 팔렸다.
비슷한 일은 스노우 크래시에도 벌어졌다.
온라인을 지원하는 게임의 경우 클라우드 컴퓨팅이 필수.
게임 업계에서는 ‘스노우 크래시의 클라우드를 이용하자’는 운동이 벌어지며 수많은 게임사의 계약 요청이 밀려들었다.
게임 개발자들의 강력한 지지는 그것만으로도 큰 자산이다.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는 거다.
“소송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구블과의 소송은 취하했고, 엔플과의 소송은 계속 진행할 겁니다.]
1심 판결은 사실상 엔플의 판정승. 때문에 이미 항소 절차를 밟는 중이다.
하지만 구블과의 소송은 목표로 했던 수수료 인하와 외부결제가 받아들여진 만큼 취하했다.
[역시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를 받기로 한 건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난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저도 기쁘네요.”
* * *
일 하나를 마무리 짓고 나니, 어느새 연말이 가까워졌다.
동호 선배는 달력을 보며 말했다.
“왠지 한 해가 엄청 길었던 것 같은 느낌인데.”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그 이유는 워낙 다양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
1년 동안 그 많은 일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지금 이렇게 열심히 발로 뛰면 나중에 편하게 쉴 수 있겠지. 회귀빨(?) 다 떨어지면 은퇴해야 할지도 모르니.
“크리스마스에는 뭐할 거야?”
“꼭 뭘 해야 하나요?”
그저 똑같은 공휴일일 뿐이거늘.
그냥 집에서 쉬어도 되지 않을까?
“아름이가 다 같이 식사하자는데.”
“다 같이라면 또 누구요?”
“그야 윤아 씨지.”
“좋죠.”
어차피 할 일도 없었는데 잘됐다.
퇴근하는데, 트리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헤이, 미루. 뭐하고 있어요?]
“지금 퇴근 중이에요.”
[구글 주가 폭락 때문에 뉴욕이 시끌시끌해요.]
구블은 20퍼센트 가까이 폭락했고, 엔플 역시 6퍼센트가량 하락했다. 시총 1위와 3위 기업의 하락은 나스닥 지수를 끌어 내렸다.
[구블이 굴복한 걸 보고 다들 깜짝 놀랐어요.]
“정말요?”
[예. 오죽하면 월가에서는 ‘컨티뉴 캐피탈에 맞서지 마라’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예요.]
그 말에 난 웃음을 터트렸다.
[크리스마스에는 뭐할 거예요?]
“같이 일하는 선배가 밥 먹자고 해서요.”
[아! 이동호 사장이요?]
“네.”
민아름과 성윤아도 함께할 예정이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트리시는요?”
[전 지난번 갔던 소아병동에 또 취재 갈 예정이에요. 록허트 대표님과 메기도 간다고 해서요.]
“그래요?”
메기는 완치돼 퇴원했지만 기부와 봉사 활동은 계속하는 모양이다.
이런 건 좀 보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어보니 거실에 불이 켜져 있고 TV 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는 아직 회사에서 일하는 중.
참고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게임사들은 바빠진다.
게임 속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유저들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
그럼 집에 있는 사람은 누굴까?
안으로 들어서자 역시나 소파에 편한 자세로 누워 TV를 보고 있는 여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세나는 나를 보더니 누운 채로 손을 흔들었다.
“어, 오빠 왔어? 늦게 왔네.”
누가 보면 자기 집인 줄.
“여긴 어쩐 일이야?”
“강남 온 김에 잠깐 들렀어.”
“…….”
야반도주하듯 몰래 짐 싸서 이사를 하든지 해야지.
세나는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오빠, 크리스마스에는 뭐해?”
왜 이렇게 내 크리스마스 스케줄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아는 사람들이랑 밥 먹기로 했어.”
“그렇구나.”
“넌 뭐하는데?”
“애들이랑 놀기로 했어.”
“애들이면…… 소진이와 아이들?”
“응.”
“다들 남친 없나 보네.”
“그럼그럼. 우리 우정 변치 말자고 굳게 약속했어.”
“…….”
얘는 남친 생기면 가장 먼저 배신하고 이탈하지 않을까?
세나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보다 나 크리스마스 선물 뭐 해줄 거야?”
“응?”
“설마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선물을 준비 안 한 건 아니겠지?”
“…….”
아니, 이게 뭔 소리야?
이 나이에 크리스마스 선물 달라고 하는 건 너무 양심없는 짓 아닌가?
“그러는 너는 하나밖에 없는 오빠 선물 뭐 해줄 건데?”
내 물음에 세나는 당황했다.
“어, 음. 정성이 담긴 크리스마스 카드?”
“…….”
정성으로 때울 거면 목도리라도 하나 떠야 하지 않나?
날로 먹으려는 마인드를 보니, 역시 같은 핏줄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나는 본인이 말하고도 너무 양심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괜히 웃었다.
“오빠 뭐 필요한 거 있어?”
“으음.”
그러고 보니, 딱히 필요한 게 없구나.
예전에는 가지고 싶은 게 많았던 것 같은데, 막상 돈이 생기니 갖고 싶은 것도 별로 없다.
“넌 갖고 싶은 게 뭐니?”
그러자 세나는 갑자기 딴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요즘 환경 문제가 심각하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올라가고 있대.”
“오!”
내 동생이 글로벌 기후 위기에 관심이 있을 줄이야.
이 문제의 심각성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고, 전 세계가 탄소 감축을 위해 노력 중이다.
“알고 보니, 내연기관차가 환경 오염의 주범이래.”
“그래서? 앞으로는 대중교통 이용하게?”
“아니아니. 환경보호에 동참하기 위해 이번 기회에 전기차로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응?”
이건 또 뭔 소리야?
세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티슬라 전기차가 환경에 엄청 좋대.”
“…….”
아! 에버하트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