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화. Don't be evil (10)
랭클.
영상통화를 기반으로 한 회화 교육업체인 이곳은 얼마 전 컨티뉴 캐피탈 한국지사의 투자를 받는 데 성공했다.
역시나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업계의 주목을 받았고, 덕분에 시리즈C 투자는 흥행 조짐을 보였다.
투자 걱정은 덜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성환 대표는 한 가지 큰 고민에 빠졌다.
“수수료를 어떡하지?”
구블의 인앱결제 확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국의 안드로메다 대 NOS의 비율은 8대2.
이 비율대로라면 매출 역시 8대2로 나와야 한다. 하지만 실제 매출은 9대1이 넘었다. 그 이유는 플레이마켓에서 판매금액이 엔스토어에 비해 20퍼센트가량 저렴하기 때문.
이는 소비자가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판매금액을 그대로 놔두면 수수료만큼의 매출 손실이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수수료만큼 판매금액을 올리면 고객이 떨어져 나갈 위험이 크다.
스타트업은 초기에는 적자를 감수하고 시장을 키우는 데 주력한다.
여기서 적자가 더 커지는 것도 위험하고, 성장세가 꺾이는 것도 위험하다.
직원들 역시 의견이 엇갈렸다.
“수수료를 내야 하니 엔스토어와 동일하게 가격을 올려야 합니다.”
“안 됩니다. 지금도 가격을 올리면 오히려 매출이 더 크게 감소할 겁니다. 차라리 적자가 늘어나더라도 가격을 동결해야 합니다.”
“딱 반만 올리는 건 어떨까요?”
“일단 경쟁사들 올리는 걸 보고 움직이는 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데 갑자기 문제가 해결됐다.
갑자기 구블이 인앱결제 확대 방침을 철회하고, 인앱결제 수수료를 20퍼센트로 낮추고, 외부결제를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나성환은 박승훈을 보며 말했다.
“자, 잠깐. 이게 된다고?”
“그, 그러게요.”
레전드게임즈가 엔플과 구블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을 때만 해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는다.
그런데 이걸 해낸 것이다.
‘그럼 이제 수수료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건가?’
나성환은 기뻐하며 소리쳤다.
“엔스토어도 내려라, 엔플 놈들아!”
사무실 전체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
* * *
난 유재호 회장을 만났다.
“축하드립니다. 결국 해냈군요.”
“다 회장님 덕분입니다.”
“무슨 말씀을.”
“아닙니다. 루카스 CEO도 샤말란 CEO도 유성전자에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컨티뉴 캐피탈이야 애초에 레전드게임즈를 통해 구블과 소송전을 벌이는 중. NS야 같은 빅테크 기업인 만큼 딱히 구블의 눈치를 볼 것도 없었다.
하지만 유성전자는 얘기가 다르다.
까딱 잘못하면 구블의 보복을 받을 수도 있는 만큼, 결심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회장이 강하게 밀어붙였으니 가능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었겠지.
유재호 회장은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구블의 종속에서 벗어날 기회는 영원히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포크 OS가 정말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루카스 CEO와 샤말란 CEO 모두 자신하던데요.”
NS가 PC 운영체제에 안주하는 사이 스마트폰 시장을 놓친 것은 치명적이었다.
엔플과 구블이 격전을 벌이는 시기 뒤늦게 엔도어즈 모바일을 출시하며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쫄딱 망하며 골로 갈뻔했다.
무너져가던 NS가 부활한 것은 클라우드 사업 덕분.
그리고 당시 NS를 살려낸 클라우드 부문 책임자가 바로 사티아 샤말란이다.
그 공으로 NS 3대 CEO 자리에 올랐고.
“안드로메다보다 뛰어난 OS를 만드는 건 쉬울지 모르지만, 그걸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게 만드는 건 어렵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독자 OS가 될 수 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현재 독자 규격과 독자 OS로 성공할 수 있는 건 엔플 밖에 없죠.”
엔플은 그 자체로 거대한 제국이다.
그러니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럼 우리도 엔플 만큼 규모의 경제를 만들면 되겠네요.”
유재호 회장은 피식 웃었다.
“말은 쉽군요.”
유재호 회장의 지적은 정확했다.
안드로메다와 NOS의 강점은 단지 운영체제가 아닌 수많은 서드파티 앱들이다.
개발사들이 안드로메다와 NOS 앱을 개발하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이 이용하기 때문. 그리고 수많은 안드로메다와 NOS를 이용하는 이유는 수많은 앱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OS를 만들어 내놓는다 한들 많은 사람이 사용하지 않으면, 관련 앱이 나오지 않을 테고, 관련 앱이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은 힘들겠죠. 그래서 일단 다른 스마트 디바이스 쪽을 먼저 파고들 생각입니다. 스마트워치, 스마트TV, 드론, 로봇, 그리고 자동차 OS까지요. 이쪽은 아직 엔플과 구블 어느 쪽도 장악하지 못했으니까요. 이쪽을 먼저 장악한 다음 스마트폰으로 천천히 뻗어나갈 계획입니다.”
구블이 독소조항이나 다름없는 AFA 계약을 맺어가며 안드로메다 포크 OS 개발을 막은 것은 바로 이걸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유성전자는 최고의 파트너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스마트폰과 태블릿뿐 아니라, 스마트워치, 스마트TV, 모니터, 스피커, 자동차 전자장비 등 온갖 전자기기를 생산하니까.
“다행히 이번 일로 모든 개발사들이 구블의 실체를 깨달았을 거예요.”
비록 지금 당장은 인앱결제 확대를 철회하고 수수료를 낮추긴 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수금에 나설 거라는 것을.
그러니 앱 개발사들이 이쪽에 힘을 실어줄 이유는 충분하다.
“성공을 자신하는 모양이군요.”
“그럼요.”
내가 이렇게 자신하는 이유는 이미 봤기 때문.
시기가 좀 빨라지긴 했지만, 안드로메다 기반 포크 OS를 만드는 것은 1회차 때도 있었던 일.
이 새로운 OS는 NOS와 안드로메다를 밀어내며 시장에 안착하는 데 성공한다.
내 말에 유재호 회장은 걱정이 좀 가신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엔플의 반응이 궁금하군요.”
* * *
레전드게임즈는 반독점법 위반으로 엔플과 구블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했고, 양사 CEO는 법원에 출석해 각자 의견을 진술했다.
NS 등 다른 빅테크 기업들마저 진영을 나눠 참전하며, 세기의 소송으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렇게 기나긴 소송과 변론 끝에 1심 판결이 나왔다.
레전드게임즈가 제기한 소송 10건 중 9건을 엔플이 승소했다.
법원에서는 엔스토어에서 레전드게임즈가 외부결제로 판매한 재화에 대해, 인앱결제로 얻었어야 할 수익만큼 레전드게임즈가 엔플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액수는 약 400만 달러로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이는 기존에 맺은 계약이 부당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었다.
다만, 엔플은 인앱결제 독점에 관해서는 패소했다.
법원에서는 엔플이 다른 결제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레전드게임즈는 물론 엔플 역시 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고, 양측은 항소장을 제출했다.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몇 년이 더 걸릴 전망이었다.
엔플은 엔스토어의 수수료가 독점의 횡포가 아니라는 법적 확인을 받아내는 것에는 성공하며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소송과는 별개로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30퍼센트의 수수료는 앱마켓이 생긴 이래 불변의 법칙이자 황금률이었다.
엔플과 구블은 그동안 암묵적인 합의를 통해 이 룰을 지켜왔다. 누구도 31퍼센트로 올리지 않았고, 반대로 29퍼센트로 내리지도 않았다.
앱마켓 시장이 지금보다 백배 천배 성장하더라도 엔플은 영원히 30퍼센트의 수수료를 거둘 테고, 이는 구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구블이 인앱결제 수수료를 내리다니…….’
보고를 받은 탐 키튼 CEO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것도 기존 30퍼센트에서 20퍼센트로 무려 33퍼센트를 인하해버렸다!
여기에 더해 외부결제 허용까지!
언론에서는 연일 이를 대서특필했다.
그리고 역시나 불똥이 엔플로 튀었다.
[구블, 수수료 전격 인하!]
[30퍼센트 인앱결제 수수료 포기한 구블! 엔플의 수수료 정책에 미칠 영향은?]
[엔플, 수수료 인하하나?]
논란이 커지자 엔플은 ‘수수료 인하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구블을 비난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엔플을 비난했다.
-구블이 내렸는데, 니들도 좀 내려라!
-엔스토어 매출이 플레이마켓보다 두 배는 높지 않나? 그럼 돈도 두 배로 번다는 거 아니야?
-그 정도 그만큼 벌어먹었으면 좀 깎아 줄 만도 하잖아.
-ㄴㄴ엔플은 구블과는 다름.
-응. 돌아가. 안 깎아줘. 깎아줄 생각 없어.
-마진탐에게 네고란 없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진!
-수수료는 모르겠고, 엔스토어에 나이트라이트와 블록밸리 언제 다시 들어옴?
-플레이마켓에는 들어왔는데, 엔스토어는 아직도 없음ㅜ
-하지만 엔플에게는 게임 구독 서비스 바자르가 있지!
-응. 너나 해~
-공짜로 줘도 안 함. 무료 3개월이기에 가입했는데 바로 삭제함.
-레전드덱 사세요~ 게임은 레전드덱으로 해야 제맛!
-물량이 있어야 사지. 아직도 품절임ㅜㅜ
구블의 정책 변화로 인해 레전드게임즈, 블록게임즈, SW게임즈, 아이스스톰 등은 플레이마켓에 다시 게임을 등록했다.
가장 인기 있는 모바일 게임이 플레이마켓에는 입점했지만, 엔스토어에는 여전히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웹으로 접속해 클라우드 게이밍으로 즐기는 것은 가능했지만, 네트워크가 불안정해지면 게임이 끊기는 만큼, 많은 엔폰 유저들이 불편함을 호소했다.
그렇다고 이 게임들에게만 특혜를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랬다가는 다른 앱 개발사들 역시 수수료를 낮춰달라거나 외부결제를 허용해달라고 요구할 테니까.
수수료가 낮아지고, 외부결제가 허용된 만큼, 일부 게임사들은 보란 듯이 판매금액을 낮췄다.
그동안 엔스토어와 플레이마켓 간의 가격 차이가 발생했다.
엔플은 그동안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해온 만큼 수수료 차이 때문에 엔폰에서 다른 스마트폰으로 갈아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30퍼센트의 황금률이 깨졌다는 것.
이전까지는 30퍼센트의 수수료를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모두가 너무 높다고 여겼다.
아무리 소송에서 이긴다 한들 30퍼센트 수수료를 고수하는 한, 악덕 기업의 이미지는 벗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엔플은 또 하나의 판결을 앞두고 있었다.
바로 요코하마 일렉트론을 인수 문제를 놓고 소프트박스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엔플은 계약 위반이라며 파기를 주장했지만, 소프트박스는 기존 계약대로 엔플이 인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타깝게도 소송은 엔플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엔플이 겪는 이 모든 일의 배후에 한 사람이 존재했다.
탐 키튼 CEO는 일전에 만났던 동양인 청년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역시 그는 엔플의 적이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