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3화. Don't be evil (4)
[구블 디지털 콘텐츠 인앱결제 의무화!]
[구블, 외부결제시 고객 결제정보가 새어나갈 위험 커]
[임창식 당대표, 관련 간담회 개최!]
[IT업계 타격 불가피…….]
IT업계 전체가 반대에 나섰고 정치권 역시 제동을 걸었지만, 구블은 인앱결제 확대 방침을 철회하지 않았다.
-구블 지금 수수료 문제를 놓고 레전드게임즈와 소송 중 아닌가?
-당연히 수수료 받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건 엔플이고. 구블은 게임만 받았지, 다른 디지털 콘텐츠는 아직 안 받고 있었음.
-그런데 좀 웃기네. 똑같은 영화라도 앱으로 내려받으면 수수료를 내고, DVD를 구매하면 안 내도 된다는 게.
-인앱결제가 고객 결제정보 보호를 위해서라고???
-그냥 지들 돈 벌려고 인앱결제 강제하는 거면서 뭔 개소리를.
-아주 그냥 돈독이 올랐네!
-그런데 이놈들, 한국에 세금은 제대로 내고 있나?
-국회에서 법 만들어 막겠다는데, 가능하려나?
-기대도 안 함. 국회의원들이 일을 제대로 할 리가.
-하지만 컨티뉴 캐피탈이 출동하면 어떨까?
-컨!
-티!!
-뉴!!!
기사와 인터넷 반응을 살펴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러자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이, 미루. 뭐하고 있어요?]
“뭐하긴요. 일하고 있죠.”
사실은 할 일이 없어서 웹서핑 중이었다. 열심히 하고 있을 데이비드를 생각하면, 놀면서도 마음이 편안하다.
“트리시는요?”
[전 이제 집에 왔어요. 미루가 없으니 심심하네요. 뉴욕에는 언제 와요?]
“때가 되면요.”
[얼른 와요. 제가 맛있는 거 사줄게요.]
“뭐 사줄 건데요?”
[음, 코리안 타코는 어때요?]
“그건 대체 무슨 음식인가요?”
미국에서 파는 타코 자체가 텍스멕스인데, 여기에 코리안이 붙다니.
[김치와 불고기가 들어가요. 요즘 엄청 인기예요.]
“맛있겠네요.”
김치와 불고기가 들어가면 웬만하면 맛있지.
[그래서 무슨 일하고 있었어요?]
“구블 인앱결제 확대에 대해 살펴보던 중이었어요.”
[아! 안 그래도 요즘 그것 때문에 난리던데.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어떻게 하긴요?”
[다들 컨티뉴 캐피탈이 뭔가 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던데요.]
“어째서요?”
[컨티뉴 캐피탈은 인앱결제를 싫어하잖아요. 그래서 게임 수수료 문제를 놓고 엔플과 구블과 소송 중이고.]
1회차 때는 그저 레전드게임즈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로 인해 그때보다 판이 몇 배로 커졌다.
“갑자기 어깨가 무서워진 느낌이네요.”
[그래서 계획이 뭐예요?]
“개인적으로 묻는 거예요, 기자로서 묻는 거예요?”
[둘 다요.]
“정해지면 얘기해줄게요.”
[약속한 거예요.]
* * *
컨티뉴 캐피탈과 그 자회사들은 회상회의시 스노우 크래시에서 개발한 후긴을 사용한다.
로키를 활용해 화질과 프레임을 보정해주기 때문에 마치 드라마나 영화처럼 깨끗한 영상으로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아예 방 하나를 화상회의실로 만들었다.
써릴 스크린에 사용하는 LED스크린을 삼면에 시공했고, 덕분에 최상의 화질로 상대의 얼굴을 크고 아름답게 볼 수 있었다.
벽면을 가득 덮은 디스플레이에서 레전드게임즈 탐 스콧 CEO, 블록게임즈 켄 어틀리 CEO, 아이스스톰 매트 쿠퍼 CEO의 얼굴이 차례대로 나타났다.
화면이 커서 그런지 마치 실제로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선우가 앉아있었다.
심심해서 놀러 온 건 아니고, SW게임즈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켄 어틀리 CEO가 말했다.
“대표님 말씀대로 정말로 구블이 인앱결제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군요.”
“엔플이 하면 구블도 하는 거죠.”
매트 쿠퍼 CEO도 한마디했다.
“인앱결제를 디지털 콘텐츠 전반으로 확대한다는 것은 게임 수수료에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이겠군요.”
“그렇겠죠.”
탐 스콧 CEO는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됩니다.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역시나 엔플과 구블을 상대로 싸우는 문제에 대해서만큼 의욕이 넘쳤다. 왠지 신난 것 같기도 하고.
하기야 이런 성격이니 1회차 때 홀로 그 외로운 싸움을 펼쳤겠지.
오죽 수수료 문제에 한이 맺혔으면, 1회차 때 한국 국회에서 ‘구블 방지법’이 만들어지자 감동받은 나머지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영상을 찍어 올리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번 일이 일어날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고, 그에 따른 대응방법 역시 충분히 준비해놓았다.
“니체가 말했죠.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본인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한때 ‘악해지지 말자’고 했던 구블이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악마가 됐습니다.”
‘Don’t be evil’에서 ‘Don’t’는 뗀 지 오래다.
그래서 최근에는 구블 역시 더 이상 이 구호를 말하지는 않았다.
“메피스토에서 악마를 만나면 어떻게 했는지 다들 아실 겁니다.”
내 말을 들은 선우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때려죽였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
악마에게는 몽둥이가 답이다.
그러자 켄 어틀리 CEO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구블은 때려죽이기에는 너무 강력한 악마지 않습니까?”
“그러니 파티를 모집해야죠.”
* * *
유성타운 A동 46층 회장실.
처음 여기 올 때만 해도 살짝 떨었던 것 같은데, 하도 자주 와서 그런지 이제는 익숙하다.
잠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자, 붙어있는 다른 방에 있던 유재호 회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전화가 길어졌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급한 전화였나 보네요.”
“아니요. 딸아이랑 좀 싸워서요.”
난 일전에 봤던 유재호 회장의 딸을 떠올렸다.
이름은 유세정. 현재 고등학생이다.
유재호 회장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딸 키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재벌도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왠지 신기하다.
“그 심정 저도 이해합니다.”
“미루 씨는 딸이 없지 않습니까?”
“뭐…….”
딸은 없지만 여동생은 있지.
세나 키우느라 우리 부모님 속 터지신 거 생각하면, 노벨평화상 정도는 받아야 한다.
나라도 열심히 효도해야지.
“그런데 무슨 일로 싸우신 건가요?”
“요즘 게임만 하기에 뭐라고 좀 했더니, 삐진 모양입니다.”
“무슨 게임인데요?”
“블록밸리 게임입니다. ‘니더스에 어서 오세요’라고.”
“어! 선우가 만든 게임이네요.”
“예. 딸애 말로는 친구들이 다 해서 안 할 수가 없다고 하네요.”
“그건 그렇죠. 그냥 게임이 아니라 일종의 SNS 같은 거라서요.”
“그렇습니까?”
“예. 친구들 만나서 노는 거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난 아이들이 블록밸리에서 어떻게 노는지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제가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사실 들어도 잘 모르겠다는 느낌입니다.”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어쨌거나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가 게임만 붙들고 있으면 걱정이 되겠지.
“그럼 친구들과 함께 SW게임즈에 견학 한번 오라고 하세요. 이번 기회에 게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면, 공부도 되고 좋지 않겠어요? 세정이도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을 테고.”
내 말에 유재호 회장은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물론입니다.”
아직 선우의 의사는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얘의 의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유재호 회장은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내가 왜 보자고 했는지 눈치챘는지, 유재호 회장은 먼저 말을 꺼냈다.
“구블이 인앱결제를 강행하려는 모양이군요.”
“회장님께서도 신경 쓰고 계신가요?”
유재호 회장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물론입니다. 저희 쪽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니까요.”
유성전자는 가장 많은 안드로메다폰을 판매하는 구블의 협력사이자, 코스믹스토어로 플레이마켓과 경쟁하는 경쟁사.
따라서 이번 구블의 정책이 시장과 회사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업계가 한목소리로 반대하니, 정치권도 움직이려는 모양입니다.”
스타트업, 중견 IT기업들은 물론이고, 양대 포털사이트인 네오틴과 타피오카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하기야 갑자기 수수료를 최대 30퍼센트씩 걷겠다는데 어느 기업이 반기겠는가?
“이번 국정감사에 존 킴 구블코리아 사장을 부른다고 합니다.”
“별 소용없을 거예요.”
구블이 한국 기업이었다면, 대표를 국정감사장에 불러 쪼인트 몇 번 까면 바로 엉엉 울면서 철회할지 모른다.
그러나 구블은 미국 빅테크 기업.
난 얼마 전 만났던 존 킴 사장을 떠올렸다.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던 검은 머리 외국인. 하지만 국정감사장만 나가면 바보가 된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어 못 알아듣는 척 어버버하다가 ‘힘세고 강한 아침. 만약 내게 물어보면 나는 존 킴’ 같은 개소리나 씨불이다 오겠지.
안 봐도 비디오……가 아니라, 1회차 때 이미 그 지랄하는 걸 여러 번 봤다.
“관련법이 만들어지기 힘들 거라 생각합니까?”
사실 1회차 때 실제로 인앱결제 강제를 금지하는 일명 ‘구블 방지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다.
1회차 때는 임창식이 대통령이었고, 나름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대통령은 남궁석이고, 사회보험 개혁을 추진하는 바람에 역대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됐다.
지지율은 간신히 20퍼센트대에 머물고 있고, 여당과도 사이가 안 좋다.
정치지형이 크게 변한 만큼, 1회차 때처럼 제때 법이 만들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게다가…….
“정확히는 법을 만드나 안 만드나 별 소용없을 거예요. 법이 있어도 찾아보면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구블이 어떤 놈들인데 한국 정책을 순순히 따르겠습니까?”
아무래도 상대가 미국 빅테크 기업이다 보니, 법을 만들더라도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유재호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고는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예?”
“구블을 막을 생각 아닙니까?”
“제가요?”
“그럼 아닌가요?”
그 말에 난 피식 웃었다.
당연하게도 이대로 구블이 편안하게 앉아 수수료를 수금하도록 놔둘 생각은 없다.
레전드게임즈가 소송을 안 했다면 모를까, 싸우기 시작한 이상 끝장을 봐야지.
“제 생각에 이번 일은 유성전자에게 있어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기회요?”
“예. 코스믹스토어를 더욱 키울 수 있는 기회입니다.”
당연하게도 코스믹스토어는 인앱결제를 강제하지 않으니까. 인앱결제시에도 최대 수수료는 13퍼센트에 불과하고, 그게 싫으면 얼마든지 다른 결제를 활용해도 된다.
이런 상황에서 구블이 인앱결제를 강제하며 수수료를 걷는다면?
이제까지는 게임회사들이 중심이었지만, 다른 콘텐츠 회사들에게 코스믹스토어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구블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겠습니까?”
“그래서 회장님께서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내 말에 유재호 회장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어떤 얘기인지 한번 들어보고 싶군요.”
“그러니까…….”
난 생각하고 있는 계획을 말해주었고, 유재호 회장은 눈을 빛내며 내 얘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