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화. Don't be evil (3)
랭클의 IR 자료를 살펴본 동호 선배가 말했다.
“여기 꽤 괜찮아 보이는데. 승훈이 얘 지분은 받았대?”
“시리즈B 투자받으며 좀 깎였는데, 한 3퍼센트 정도 있는 것 같아요.”
“잘했네. 그래서 여기에 투자해, 말아?”
“선배가 결정해요.”
“투자했다가 망하면?”
“망하면 망하는 거죠.”
잘되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
어차피 스타트업 중 십중팔구는 3년 안에 망한다. 투자한 것마다 성공하는 것은 10년쯤 회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은 살아남은 기업의 수익으로 손실을 충분히 메울 수 있기 때문.
“어차피 이것도 디지털 콘텐츠 사업인데. 구블에 수수료를 내야 하면 매출에 타격이 크지 않을까?”
“크겠죠.”
“다른 스타트업들도 다들 죽는소리하고 있어. 이놈들은 ‘악해지지 말자’더니 세상 악한 짓은 혼자 다 하고 있네.”
‘Don’t be evil’에서 ‘Don’t’는 뗀 지는 꽤 됐다.
이제는 그냥 ‘Be evil(악해지자)’이랄까?
이런 얘기를 들으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좀 나갔다 올게요.”
“어디 가게?”
“구블에요.”
“미국 가게?”
“아니요. 한국지사에요.”
마음 같아서는 본사에 쳐들어가서 따지고 싶지만 거리의 압박으로 인해, 가까운 곳으로 가서 따지기로 했다.
“거기는 왜?”
“더 이상 나쁜 짓 하지 말라고 좋게 타일러야죠.”
그러자 동호 선배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어…… 걔들이 말한다고 들을까?”
“아님 말구요.”
* * *
YK파이낸스 타워.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강남 지역에 위치한 빌딩 중에서 가장 바닥 면적이 넓다는 것. 건물주는 다름 아닌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
그래서인지 글로벌 기업들의 한국지사가 주로 입주해 있다.
빌딩 앞에서는 시위가 한창이었다.
‘인앱결제 강제 정책 결사반대!’라는 현수막을 든 사람들은 구호를 외쳤다.
“구블은 플랫폼 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IT기업들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인앱결제 철회하라!”
“철회하라! 철회하라!”
“독점기업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난 그 모습을 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 구블이 있는 층으로 향했다.
50대 초반의 검은 머리 외국인 사장은 나를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한 대표님.”
“안녕하세요.”
그와 만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첫 번째 만남에서는 에이튜브에 로키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 논의했다. 그러나 이는 도중에 멈췄다.
그 이유는 여전히 에이튜브가 혐오 콘텐츠를 제대로 관리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
기껏해야 현시연TV과 사이버렉카 몇 명의 채널을 삭제한 것뿐이다.
따지고 보면 에이튜브에서 혐오 콘텐츠를 삭제하라는 것은, 톡틱에서 시간 낭비하는 콘텐츠를 삭제하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에이튜브 측에서 따로 스노우 크래시와 접촉하고 있는 모양인데…… 참고로 시드는 구블을 별로 안 좋아한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바쁘실 텐데 무슨 일이십니까?”
사실 그가 이렇게 만나기 쉬운 사람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만나자고 찾아와도 바쁘다는 핑계로 요리조리 피해 다니니까.
그런데 내가 만나자고 하니 바로 약속이 잡혔다.
“들어오면서 보니까 밖에서 시위가 한창이더군요. 인앱결제를 디지털 콘텐츠 전반으로 확대하는 게 사실입니까?”
“설마 그것 때문에 오신 겁니까?”
“예. 컨티뉴 캐피탈이 투자하고 있는 스타트업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서요.”
그 말에 존 킴 사장은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동안 충분한 유예기간을 뒀고,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세금도 얼마 안 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수수료를 더 걷어도 되는 겁니까?”
구블코리아는 공시의무도 없고 외부감사도 안 받는 유한회사. 이는 매출과 수익에 대한 정보 공개를 피하고, 세금을 덜 내기 위함.
한국에는 세금도 잘 안 내면서 수금하려고 혈안이 됐다.
이래서 하루빨리 구블세를 도입해 세금을 때려야 하는 것이다. 내가 괜히 차기 EU 집행위원장에게 닭한마리로 로비한 게 아니다.
“그건 본사의 방침입니다. 한국만이 아닌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엔플 역시 수수료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엔플이 받는다고 구블이 받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죠. 이제까지는 안 받던 수수료를 갑자기 올려받는다면 많은 업체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요?”
“이제까지 수천수만 개의 앱이 만들어진 것은 플레이마켓의 앱 생태계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기업들이 돈을 벌었고, 수많은 일자리가 생겨났습니다. 현재 플레이마켓에서 서비스하는 앱 중 95퍼센트는 무료이고, 구블은 여기에 어떠한 수수료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역시 오직 수익을 내는 기업만이 대상입니다. 앱마켓의 운영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갑니다. 공짜로 운영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게임사들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습니까? 무려 30퍼센트씩이나요.”
“그 수익이 있었기 때문에 플레이마켓의 운영이 가능했던 겁니다. 어떻게 보면 다른 회사들은 게임사가 내는 비용에 무임승차하고 있었던 거나 다름없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른 디지털 콘텐츠에서 수수료를 받으면, 그만큼 게임 수수료는 내리는 건가요?”
“…….”
“말씀을 못 하시는 걸 보니, 역시나 그럴 생각은 없겠네요.”
그건 그거대로 챙기고, 이건 이거대로 챙기겠다는 거겠지.
결국 말은 그럴듯하게 해도 돈을 더 벌고 싶다는 뜻에 지나지 않았다.
“구블은 자선단체가 아닌 엄연한 기업입니다.”
난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누가 들으면 구블이 손해 보며 장사하고 있는 줄 알겠네요. 당장 플레이마켓만 떼놓고 봐도 매년 100억 달러 가까운 영업이익을 내고 있지 않나요?”
앱마켓 하나로 연간 10조 원을 벌어들이는 것이다. 정말이지 놀라운 기업이 아닐 수 없다.
“인앱결제를 강제하는 것도 문제지만, 수수료가 너무 과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 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수수료가 싸면 인앱결제를 강제할 필요도 없다. 업체들이 알아서 인앱결제를 이용할 테니까.
예를 들어 코스믹스토어는 최대 13퍼센트의 수수료를 받지만, 외부결제도 허용한다.
그럼 게임사들은 수수료를 내지 않기 위해 전부 외부결제를 이용할까?
놀랍게도 80퍼센트가 넘는 게임사들은 인앱결제를 이용한다. 그 이유는 외부결제 역시 각종 수수료가 나가기 때문.
결제망 구축과 관리에 비용과 인력이 들어가는 데다가 코스믹스토어에서 여러 혜택을 제공해주는 만큼, 인앱결제를 이용가 오히려 이익인 셈이다.
“저희는 수수료가 충분히 합리적이고 공정하다 생각합니다.”
“공정이라……. 그럼 에이튜브는요? 혹시 이번에 에이튜브에도 똑같이 수수료를 매기기로 했나요?”
“…….”
유료회원 가입이 필요한 에이튜브 블랙의 경우 엔플에서 구매하면 14,000원이지만, 안드로메다에서는 10,450원이다.
구블의 정책대로라면 안드로메다에서도 이걸 14,000원으로 올려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에이튜브는 구블이 제공하는 서비스니까.
뭐, 이건 엔플뮤직이나 엔플TV 역시 마찬가지.
존 킴 사장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다른 회사의 정책에 간섭하는 것은 대단히 실례되는 행동입니다. 만약 누군가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에 간섭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제가 뭐라고 구블 정책에 대해 이래라저래라하겠습니까? 다만 업계의 우려를 전달해드리기 위해 왔을 뿐입니다.”
어차피 말로 해서 듣지 않으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 * *
구블 CEO 아미트 굽타.
그는 구블코리아 존 킴 사장의 보고를 받았다.
“한미루 대표가 찾아왔다고?”
[그렇습니다.]
존 킴 사장은 한미루가 어떤 얘기를 하고 갔는지를 전해주었다.
이를 전해 들은 굽타 CEO는 인상을 찡그렸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어떻게 하긴. 그대로 진행해.”
[알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겼다.
최근 플레이마켓은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컨티뉴 캐피탈이 나온다.
컨티뉴 캐피탈의 자회사인 레전드게임즈는 30퍼센트의 인앱결제 수수료 문제를 놓고 엔플과 구블 간에 세기의 소송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러나 소송의 결과와는 별개로 두 기업은 이미 타격을 받고 있었다.
앱마켓에서 가장 큰 매출을 차지하는 것이 게임.
국가별 차이는 있지만, 적으면 70퍼센트에서 많으면 무려 90퍼센트를 차지한다. 사실상 앱마켓은 곧 ESD나 다름없다.
그런데 나이트라이트를 시작으로 게임사들이 플레이마켓의 수수료 정책에 반발하며 떠나기 시작했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곳은 유성전자의 코스믹스토어.
잘나가는 게임 하나 이동했다고 유저들이 덩달아 이동할 만큼 앱마켓이 만만한 시장은 아니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면? 둘이 아니라 셋이라면?
시작은 나이트라이트였다.
디지털 세계에서 메타버스를 구현했다고 평가받는 게임으로 각종 콘서트, 이벤트, 행상, 모임 등이 열리며 사회적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다음은 블록밸리.
게임을 만드는 게임이라는 특성상, 블록밸리는 지금도 그 세계를 무한히 확장해나가는 중이다.
게다가 현재는 단지 게임을 넘어서 10대들의 SNS와 놀이공원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판타지아 테일즈R.
이 게임은 모바일 MMORPG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았다. 이용자 수는 나이트라이트와 블록밸리에 비하면 적지만, ARPU(유저당 평균 매출)은 훨씬 높았다.
킬러 콘텐츠라 할 게임이 무려 셋이나 코스믹스토어를 통해 서비스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아이스스톰 게임들마저 플레이마켓에서 서비스를 중단하고 코스믹스토어로 전부 이동했다.
게이머들이 선호하는 게임들이 전부 플레이마켓에서 내려가자, 게이머들 역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엔플은 엔스토어 외에 다른 앱마켓을 깔지 못하니 타격이 적은 편이었다.
레전드게임즈는 이를 우회해 클라우드 게이밍으로 서비스하고 있다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니.
하지만 구블은 직격탄을 맞았다.
엔드로메다폰에서 이 게임들을 즐기려면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그저 코스믹스토어를 이용하기만 하면 된다. 따로 기기를 새로 살 필요도 없이 그저 앱마켓 하나만 설치하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 구블이 안드로메다의 다른 앱마켓의 설치를 허용했지만, 플레이마켓은 여전히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코스믹스토어가 경쟁자로 급부상하고 게임 매출을 갉아먹자, 플레이마켓 매출은 무려 20퍼센트가 날아갔다!
모바일 시장과 게임 시장은 계속해서 성장 중이다. 따라서 플레이마켓의 매출은 매분기, 매년 증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역성장을 하게 되었고, 이는 구블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구블이 1조 달러가 넘는 엄청난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당장의 수익 때문이 아니라, 미래에 계속 성장할 거라는 강력한 믿음이 있기 때문.
그런데 그 믿음이 부서지자, 주가 역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주가가 떨어지자, 주주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어떻게든 떨어지는 매출을 회복시켜야 했다.
그래서 예정보다 빠르게 인앱결제 확대를 강행했다.
이에 대해 반발이 클 거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던 사실.
시작을 안 했다면 모를까, 한번 시작한 이상 물러설 수 없다.
굽타 CEO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만약 여기서 밀리면…….’
어쩌면 구블은 향후 주도권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