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1화. Don't be evil (2)
난 괜히 정색하며 말했다.
“너, 이러려고 나 만나자고 한 거야?”
어쩐지 자꾸 회사로 오라고 하는 게 수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투자 유치가 목적이었을 줄이야.
“그, 그런 거 아니야.”
“회사 청소까지 한 것 같은데.”
“아, 아니. 그건 마침 대청소할 때가 돼서…….”
문득 갑자기 주말에 사단장 온다고 하는 바람에 쉬다 말고 관물대 다 뒤집어엎고, 밖으로 뛰쳐나가 낙엽 쓰는 등 반나절 동안 대청소했던 게 생각난다.
그러나 막상 사단장 시키는 오지도 않았지.
승훈이는 변명하듯 말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우리 회사 정말 괜찮아. 아직 적자긴 하지만 계속 성장하고 있고.”
“확실해?”
“그럼. 내가 설마 친구한테 사기 치려고 그러겠어?”
얘가 그런 캐릭터가 아니긴 하지.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 1회차 때 그러지 않았다고 해서 이번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중소기업벤처부에서 지원도 받았고, 조만간 시리즈C 투자를 모집할 건데, 참여하겠다는 투자사들도 많아.”
“흐음.”
“진짜야. 어차피 알아보면 다 나올 거 아니야?”
“다른 데서 투자하겠다는데, 왜 컨티뉴 캐피탈 투자를 받고 싶은 건데?”
“그 전에 컨티뉴 캐피탈 투자를 받으면 가치평가가 좀 달라지지 않겠어?”
금융계에서 컨티뉴 캐피탈의 명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컨티뉴 캐피탈이 투자한 기업이라는 것만으로도 기업 가치를 좀 더 올려서 투자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다른 직원들은 사모펀드에서 높은 분이 실사 나온 줄 알고 저러고 있는 건가?
“일단 한번 둘러보고 동호 선배한테 잘 좀 말해줘.”
“직접 말하면 되잖아. 연락처 알면서.”
내 말에 승훈이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어우, 어려워서 그걸 어떻게 직접 말하냐?”
“동호 선배가 뭐가 어려워?”
학교 다닐 때도 맨날 후배들과 장난치고 놀러 다녔는데.
난 동호 선배보다 쉬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우리 동기 중에 그 선배 안 어려워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걸.”
“어째서?”
“컨티뉴 캐피탈 한국지사장이잖아. 그 정도면 웬만한 재벌 정도는 찜 쪄먹을 텐데. 괜히 쓸데없는 얘기 꺼냈다가 찍히기라도 하면 어떡해?”
“아, 하긴.”
내 입장에서나 실없는 선배지, 다른 애들이 보기에는 어려운 상대일 수 있겠구나. 반면, 나야 동기기도 하고 그냥 직원으로 알고 있으니 이렇게 오라고 한 거고.
이런 걸 보면 얘가 확실히 개념이 있다.
승훈이는 아부하듯 웃었다.
“아무튼 잘 좀 봐달라는 거지.”
“오케이.”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다지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스타트업이 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부담 주려는 건 아니고.”
“응. 전혀 부담 안 가져.”
“아니. 약간은 가져도 되는데…….”
우리는 다시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아까부터 문밖을 슬쩍 기웃거리던 남자는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려 노력하지만, 매우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와 인사했다.
“아이고, 손님이 오셨네요. 안녕하십니까.”
승훈이는 그 남자를 소개해주었다.
“아! 여기는 우리 대표님. 나성환.”
정수리가 살짝 벗겨지고 뿔테안경을 쓴 30대 초반의 남자. 복장은 청바지에 체크 무늬 셔츠다.
“안녕하세요. 한미루입니다.”
“반갑습니다.”
“회사 분위기가 참 좋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동안 박성훈 팀장에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컨티뉴 캐피탈에서 일하신다고.”
“예. 한국에서는 투자본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VP라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오! 그렇군요.”
참고로 미국에서는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지만.
괜히 부담 가질까 봐 그건 말 안 하기로 했다.
“엄청 훌륭한 회사에 다니시네요. 스타트업 쪽에서도 컨티뉴 캐피탈의 명성이 자자합니다.”
난 그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서 앉았다.
한쪽에 프로젝터가 있는 걸 보니, 회의실 겸 미팅실인 모양이다.
그는 직접 냉장고에서 병으로 된 주스를 꺼내주었다.
“저희는 회사 클라우드도 스노우 크래시의 판게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예. 써보니 판게아만큼 편한 서비스가 없더라구요.”
그는 한참 동안 판게아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스타트업의 경우 자체적인 서버를 구축할 만한 여력이 안 되는 만큼, 다들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한다.
그쪽이 업무에 훨씬 효율적이기도 하고.
이건 요즘 웬만한 대기업들도 마찬가지.
난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어떻게 창업을 하게 되신 건가요?”
그 물음에 나성환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제가 하버드를 다녔습니다.”
“오! 하버드.”
“하하,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닙니다. 사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제가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토익이나 토플도 항상 만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미국 대학에 가보니, 회화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렇죠.”
나도 일하면서 고생 좀 했다.
“그래서 미국 명문대에 다니는 학생들과 영어 회화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교육 서비스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서 창업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앱을 만들었다.
하버드를 다니며 만든 인맥을 활용해 강사들을 모집하고, 마케팅을 통해 이를 이용할 고객들을 모았다고 한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그는 신나서 설명해주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타겟으로 마케팅을 했는데, 오히려 직장인이나 취업준비생들이 더 큰 반응을 보이더군요. 그래서 바로 그쪽을 타겟팅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미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 서비스는 레드오션이다. 그리고 이쪽은 회화보다는 독해와 문법이 중심.
이런 빠른 피봇이 스타트업의 장점이다.
“향후 다른 언어로도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역으로도 서비스가 가능하겠는데요.”
“물론입니다. 뮤키즈 노래가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고 세븐 라운드가 흥행하며 한국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많아졌으니까요.”
그는 눈을 빛내며 열정적으로 향후 비전에 대해 얘기했다.
사실 좋은 아이디어는 누구나 있다.
중요한 건 이걸 실행으로 옮기는 추진력이겠지.
어쨌거나 내가 다단계의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온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오랜만에 친구 얼굴을 보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확실히 성장성과 확정성이 큰 사업모델이네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최근 스타트업계 전반에 투자를 위축시킬 만한 요인이 하나 있지 않나요?”
“네? 어떤……?”
“이번에 구블이 디지털 콘텐츠 전반으로 인앱결제 확대한다는 건 알고 계시죠?”
구블 얘기를 꺼내자마자 그의 낯빛이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나성환 대표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미칠 지경입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생존이 걸린 문제나 다름없으니까요.”
당연하게도 원래 6천 원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5천 원에 판매하지는 않았을 거다. 5천 원이 소비자가 부담할 수 있는 최적의 가격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갑자기 20퍼센트를 올린다면?
100만 원을 결제하던 소비자들이 120만 원을 결제한다고 해도 회사의 이익은 전혀 없다. 다만 그만큼 구블이 수익을 챙겨갈 뿐이지.
실제로는 매출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한 달에 웹소설에 1만 원을 쓰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한 편에 100원일 때는 이걸로 100편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한 편 가격이 120원이 된다면?
그럼 83편밖에 못 본다.
물론 웹에서 결제하면 여전히 100편을 볼 수 있지만, 대부분 소비자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앱에서 결제할 것이다.
그게 편하기도 하고.
어차피 소비자가 수입에서 서비스에 지출할 수 있는 비용은 한정되어 있다. 결국 금액이 오른 만큼 결제를 줄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회사가 수수료를 부담하자니 적자가 감당이 안 되고, 그렇다고 금액을 올리자니 매출이 줄어들 테니까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한국은 안드로메다폰의 사용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라 더욱 타격이 큽니다.”
스마트폰은 두 종료로 나뉜다.
바로 엔폰과 엔폰이 아닌 폰으로.
엔폰은 엔플이 만든 NOS를 쓰고, 엔폰이 아닌 폰은 구블이 만든 안드로메다 운영체제를 사용하니까.
미국에서 엔폰의 점유율은 50퍼센트.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은 유성전자의 본진.
그 덕분에 엔폰의 점유율은 20퍼센트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10명 중 8명은 안드로메다폰을 사용한다는 것.
따라서 구블의 인앱결제 확대 정책에 더욱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레전드게임즈가 엔플과 구블을 상대로 소송을 벌일 때만 해도 모두가 환호했습니다. 어쩌면 엔플이 수수료를 낮추거나 외부결제를 허용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구블마저 수수료를 걷겠다고 나설 줄이야.”
“아직 시행된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국회에서 입법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만 기대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얘기를 다 들은 만큼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IR 자료 있으면 저한테 메일로 보내주세요. 회사로 돌아가 검토해 보겠습니다.”
내 말에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 * *
난 승훈이와 나와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뭐 먹을래? 법인카드 받아왔어.”
“됐어, 인마. 내가 살게.”
나도 법인카드 가져왔다.
우리는 근처 고깃집에 앉아 삼겹살을 먹고 소주를 한잔했다.
“아! 경태 얘기 들었어?”
“뭔 얘기?”
“나도 건너서 들었는데, 핀테크 회사에 취직한 모양이야.”
“그래? 다행이네.”
그래도 걔 정도면 어디 가서 자기 밥벌이는 하겠지.
“스타트업에서 일해보니 어때?”
“힘들지. 월급도 절반이고. 대기업 다닐 때보다 훨씬 재밌긴 해. 내 힘으로 뭔가 만들어가는 것 같고.”
솔직히 나성환 대표도 그렇고, 승훈이도 그렇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지.
“이러다가 나중에 알렌 에버하트처럼 성공하는 거 아니야?”
내 말에 승훈이는 피식 웃었다.
“알렌 에버하트는 무슨. 아! 그러고 보니 알렌 에버하트가 컨티뉴 캐피탈 쳐들어갔다며? 너 그때 본사에 있지 않았어?”
“그랬지.”
“혹시 만났어?”
“뭐, 잠깐.”
“진짜? 대박이네. 나 알렌 에버하트 만나보는 게 소원인데.”
“뭔 소원까지야.”
한국에서 알렌 에버하트 인기가 이 정도다.
요즘 한국 놀러 오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나중에 한번 불러볼까?
대한민국의 중심에서 ‘화성 갈끄니까’를 외치게 만들고 싶다.
“그나저나 구블 인앱결제 문제는 좀 심각한 모양이네.”
승훈이는 소주를 입에 털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심각해. 우리뿐 아니라 모든 스타트업들이 비상이야. 이것 때문에 문 닫는 곳들도 꽤 될걸.”
아무래도 대기업보다는 소규모 스타트업들이 더욱 타격이 크겠지.
난 빈 술잔을 채워주었다.
“동호 선배한테는 내가 잘 얘기해볼게.”
“부탁 좀 할게.”
술 한잔하고 나오니 어느새 해가 졌다.
건물의 불이 하나둘 꺼지는 가운데, 역 근처의 크고 아름다운 건물에서 유독 환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 건물은 뭐야?”
승훈이는 슬쩍 보더니 말했다.
“렛마블.”
“아!”
저기가 바로 구로의 등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