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480화 (480/529)

480화. Don't be evil (1)

성폭행 혐의를 완전히 벗은 매트 쿠퍼는 무사히 아이스스톰 CEO에 취임했다.

이전까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던 언론, 정치인, 시민단체 등은 막상 폭로자들의 사과문이 나오자 일제히 입을 다물고, 언제 그랬냐는 듯 모른 척했다.

전임 CEO인 조나단 호퍼는 CEO직에서 내려와 오버클락2 개발팀으로 돌아갔다.

매트 쿠퍼는 사내 메신저로 보낸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스스톰을 부활시키기 위해 내 영혼을 바치겠다!”

그는 아이스스톰의 조직을 개편하는 한편, 과거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 영입에 나섰다.

인력을 빼앗길 상황이 된 AE와 UP소프트는 불만을 표했지만, 매트 쿠퍼에게 지은 죄가 있는 만큼 강하게 항의하지는 못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아이스스톰 팬들은 두 팔 들고 환영했다.

-ㅋㅋㅋ 영혼을 바치겠대. 메피스토랑 계약했나?

-의욕 장난 아닌데.

-성추행 혐의로 쫓겨나 있을 때 SW게임즈 대표가 찾아가서 결백을 믿는다며 CEO직을 제안했다 함.

-감동이네ㅜㅜ

-이제 개발 속도 좀 빨라질 듯.

-월드 오브 워로드 신작 하나만 내자!

-메피스토가 먼저임. 우리 지금 10년째 기다리는 중이다 ㅜㅜ

* * *

난 NS 사티아 샤말란 CEO의 연락을 받았다.

[아이스스톰의 새 CEO가 일을 잘하는군요. 짐 스펜서 사장이 아까운 인재를 놓쳤다고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가 그렇게 빨리 해결될 줄 알았으면, 저희가 데려왔을 텐데요.]

“저희가 데려온 게 NS에도 좋은 일일 겁니다.”

[어째서입니까?]

“아이스스톰의 IP를 활용해 콘솔 게임을 제작할 계획이니까요.”

아이스스톰의 4대 IP라 할 수 있는 스타스페이스, 월드 오브 워로드, 메피스토, 오버클락 모두 강한 내러티브를 지니고 있다.

매트 쿠퍼의 별명은 ‘RPG의 신’.

이 IP들을 활용해 얼마든지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월드 오브 워로드부터 시작하겠다고 하더군요.”

월드 오브 워로드는 그 명성만으로 1천만 카피를 팔 수 있는 게임이다.

이 게임이 콘솔로 나오면 소뉴의 PS 진영에 밀리고 있는 Z박스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하! 그건 마음에 드는 일이군요.]

어느 정도 잡담을 나눈 다음, 우리는 일 얘기를 나눴다.

클라우드 분야에서는 경쟁자지만, 그 외의 다른 분야에서는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중이다.

사티아 샤말란은 프래그래머이자 원래 클라우드 사업부 출신. 그런 만큼 시드의 천재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 *

아이스스톰이 새 CEO를 맞아 재정비를 하는 사이.

한국 IT업계에서는 지각변동이라 할 만한 엄청난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그건 바로…….

[구블 인앱결제 모든 디지털 콘텐츠에 확대 적용!]

[구블 플레이마켓의 모든 결제를 구블이 제공하는 인앱결제만 사용하도록 강제!]

[구블, 고객 개인정보 보안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

기사를 본 동호 선배는 고개를 내저었다.

“얘들 아직 정신 못 차렸네.”

“정신 못 차렸죠.”

사실 약관은 진작 바꿨고, 그동안 유예기간이라는 명목으로 시행을 미뤄왔을 뿐이다. 그걸 이제 하겠다고 칼을 뽑아든 거고.

“게임사들 분위기는 어때?”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조용해요. 거기랑은 별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아! 그렇지.”

그 이유는 게임은 이미 30퍼센트씩 수수료를 받아가고 있었기 때문.

그나마 레전드게임즈와의 소송 이후 연매출 100만 달러 미만에 대해서는 15퍼센트로 낮춘 게 고작이다.

“이거 실행되면 웹툰, 음악, OTT 등 디지털 서비스 가격은 다 오르겠네.”

“그렇겠죠.”

이렇게 하면 인앱결제시 5000원이던 스트리밍 서비스는 6000원으로, 100원이던 웹소설은 120원으로 오르게 될 것이다.

물론 PC나 웹에서 결제하면 100원 그대로니, 꼭 웹에서 결제하도록 하자.

“그런데 엔플은 원래부터 받지 않았나?”

“그랬죠.”

사실 구블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엔플은 처음부터 수수료를 받고 있었으니까.

그동안 엔플이 수수료를 갈퀴로 긁어가는 걸 옆에서 보고만 있으면서 얼마나 배가 아팠겠는가?

그래서 이번에 본인들도 한밑천 챙기겠다고 나선 거고.

쏟아지는 비난 여론에 대해 구블은 ‘엔플은 진작 걷고 있는데 왜 우리에게만 뭐라고 하냐’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 둘은 명백한 차이가 있다.

“엔플이야 처음부터 약관이 그랬던 거고, 구블은 갑자기 약관을 바꾼 거죠.”

무상으로 임대해준다고 들어오라고 해놓고, 상권이 활성화되니 어느 날 갑자기 매출의 30퍼센트를 받아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싫으면 나가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독점 기업일 경우 그게 쉽지가 않다. 갈 데가 있어야 가든지 말든지 하지.

동호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을 독점하고 나면 수금에 나서는 건 플랫폼 기업들이 흔히 쓰는 방법이지.”

“스타트업들 타격이 만만치 않을 거예요.”

“안 그래도 난리인 모양이야. 내 친구 중에서도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애들이 한둘이 아닌데, 다들 한숨만 내쉬고 있을 듯.”

현재 IT 산업은 모바일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따라서 구블의 이번 정책으로 인해 모든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동호 선배는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너 승훈이랑 친하지?”

“박승훈이요? 그럭저럭요.”

학교 남자 동기 중에선 가장 친하지 않았을까?

“걔 요즘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데.”

“그래요?”

“응. 나중에 한번 연락해봐.”

기왕 생각난 김에 난 박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미루야.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은. 얘기 들었는데 너 요즘 스타트업에서 일해?”

[응.]

“창업한 거야?”

[아니, 창업은 아니고. 아는 형이 같이 해보자고 하기에 합류했어.]

“네오틴은 어쩌고?”

[그만뒀지. 대기업 그만둔다고 하니 주위에서 다 말렸는데, 이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더라.]

“잘했어.”

사람이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지.

그나저나 얘가 1회차 때는 어땠더라?

그때도 네오틴 그만뒀다는 얘기는 들었던 것 같은데, 어디로 갔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아마 프리머스 사태가 터진 이후라 나도 주위를 챙길 만한 여유가 없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박승훈이 물었다.

[너 요즘 시간 있어?]

“없진 않지.”

[그럼 우리 회사에 한번 놀러올래?]

“응?”

[한번 놀러와.]

“언제?”

[내일 괜찮아?]

“별다른 스케줄은 없는데…….”

얼떨결에 약속까지 잡았다.

난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했다.

얘는 왜 이렇게 날 회사로 부르려 하는 거지?

이런 경우는 보통…….

“…….”

잠깐.

이거 설마 다단계는 아니겠지?

* * *

선우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이제 좀 살겠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던 중이었지만, 이제는 좀 살아난 것 같은 표정이다.

신임 CEO 선정이 조금만 늦어졌어도 얘 죽을 뻔했다.

오죽하면 치킨 만들던 1회차 때가 훨씬 건강해 보일 정도였다.

“쿠퍼 CEO는 잘 적응한 것 같아?”

“응. 의욕이 불타오르고 있나 봐.”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는 법이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생긴 덕분에 아이스스톰 일에 일일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덕분에 선우는 SW게임즈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아! 별건 아니고…….”

만에 하나 다단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선우를 꼬실 생각이었다.

나 혼자 죽을 수는 없다. 만약 다단계 교육을 받더라도 같이 받아야지.

내 말을 들은 선우는 되물었다.

“친구네 회사 놀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응.”

“아니, 바빠 죽겠는 데 가긴 어딜 가?”

“전보다는 나아졌다며?”

“그래도 지금 할 일이 태산이야.”

“잠깐만 다녀오면 되지. 별로 멀지도 않아.”

“어딘데?”

“구로디지털단지.”

그 말에 선우는 바로 손사래를 쳤다.

“더더욱 안 가. 게임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그 동네 쳐다도 안 봐.”

“어째서?”

“거기에 렛마블이 있기 때문이지.”

“…….”

렛마블은 LD스튜디오, 렉슨, 렛마블과 함께 3L로 불리는 거대 게임사.

“일련의 사태들로 인해 LD스튜디오가 ‘돈에 환장한 미친놈들 소굴’ 쯤으로 인식되고 있긴 하지만, 이쪽 업력으로는 렛마블도 만만치 않아. 거기는 진짜 카지노 회사니까.”

최근 게임회사들이 만들라는 게임은 제대로 안 만들고 랜덤박스만 출시하자, 게이머들은 ‘이렇게 확률템 장사만 할 거면 차라리 카지노를 차려라’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렛마블은 정말로 카지노를 차렸다.

“…….”

농담이 아니라 진짜다.

무려 30억 달러를 들여 세계 2위 소셜카지노 회사를 통째로 인수했으니까.

“게다가 거기 별명이 구로의 등대야.”

그 이유는 늦은 밤까지 환하게 불을 밝히며 길 잃은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

다시 말해 야근과 크런치가 일상화되어 있다.

이는 다른 게임회사들도 마찬가지지만, 렛마블의 악명이 유독 높은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나마 LD스튜디오는 돈이라도 잘 주지. 그런데 거기는 임금 체불로 고용노동부 감사까지 받았어.”

“그 정도야?”

“원수가 있으면 렛마블에 취직시켜주고 싶을 정도지.”

“…….”

* * *

결국 선우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나는 혼자 차를 타고 구로디지털단지로 향했다.

이곳이 한때는 의류공장 등 제조업 공장들이 밀집해 있던 공단이었던 것도 옛날이야기. 과거 공장이 있던 자리에는 지식산업센터들이 들어섰고, 현재는 한국 IT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난 그중 한 건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알려준 호수로 가자 박승훈이 나와서 나를 반겨주었다.

“어서 와, 미루야.”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말도 마. 대기업 나오면 고생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더라.”

난 승훈이와 함께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직원들이 일하는 중이었다. 직원 숫자는 대략 스무 명 정도.

교육실이 따로 없는 걸 보니, 다단계 같지는 않다.

왠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난 승훈이에게 물었다.

“뭐하는 회사야?”

“아! 랭클이라고, 원어민 화상회화 교육 스타트업이야. 앱을 통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회화를 하며 공부하는 거지.”

“오호.”

대화를 화며 회사를 둘러보는데, 뭔가 좀 특이한 점이 눈에 띄었다.

일단 회사가 이상하리만치 깨끗하다.

다들 책상 위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서류와 볼펜 등은 각이 잡혀 있다. 사단장 방문 직전 관물대의 모습이랄까?

“여기 원래 이래?”

“응? 뭐가?”

“아니…….”

뭔가 대단히 인위적인 모습인데.

게다가 아까부터 직원들은 신경 안 쓰는 척하며 나를 엄청 신경 쓰고 있었다.

한 직원은 이쪽을 힐끔힐끔 보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잠깐 나와 봐.”

난 승훈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물었다.

“너 솔직하게 말해. 왜 회사로 오라고 했어?”

그러자 승훈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음, 그게…… 컨티뉴 캐피탈이 투자 좀 해줬으면 해서.”

“…….”

다단계보다 그게 더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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