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화. 이노센트 (2)
짐 슈나이더 기자에게 연락한 덕분에 바로 매트 쿠퍼의 행방을 알 수 있었다.
선우는 나에게 말했다.
“지금 세부에 있다는데.”
“세부? 거기는 왜?”
“몰라.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나 봐.”
“일단 가자.”
내 말에 선우는 놀라 물었다.
“바로 가자고?”
“응.”
“일은 어쩌고?”
“세부 다녀오는 데는 하루면 충분해. 그리고 한번 생각해 봐.”
매트 쿠퍼의 장점은 실력뿐 아니라, 넘치는 생산력.
그가 직접 만들거나 관여한 게임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그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찾아 UP소프트 AE 할 것 없이 옮겨 다니며 일했고, 외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말은 곧…….
“매트 쿠퍼만 캐스팅하면, 그가 여기저기서 필요한 사람을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
“흐음, 하긴.”
내 기억에 따르면 판결이 나기 전에 이미 진실이 밝혀진다. 그게 정확히 언제인지는 몰라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전에 먼저 헤드헌팅을 끝내야 한다.
“그런데 만나서 뭐라고 해?”
“무조건 당신을 믿는다고 해. 잘할 수 있지?”
“어, 뭐. 열심히 해볼게.”
“좋아.”
난 선우와 함께 바로 전용기를 타고 세부로 향했다.
* * *
매트 쿠퍼가 마리아를 만난 것은 게임 컨벤션에서였다.
마리아는 그의 팬이었고, 두 사람은 금방 친해졌다. 그는 그날 그녀와 성관계를 하려 했지만, 거절을 당해 돌아갔다.
이후, 두 사람은 친구처럼 지냈다.
그러다가 매트 쿠퍼는 마리아에게서 친구인 제니퍼를 소개받았고, 한동안 그녀와 관계를 가졌다.
제니퍼는 단지 가벼운 관계가 아닌, 그와 정식으로 교제하기를 원했지만 매트는 누군가를 진지하게 만날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제니퍼는 계속 그에게 집착했고, 그는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뒤.
마리아는 매트 쿠퍼가 자신을 성추행하고, 자신의 친구를 성폭행했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처음 이 문제가 공론화됐을 때 매트 쿠퍼는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이는 성폭행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만나는 동안 그녀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과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것에 대한 사과였다.
하지만 마리아는 이를 그가 성폭행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몰아붙였고, 언론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마침 게임업계에서는 각종 성 추문이 수면 위로 떠오르던 시점이었다.
변명해도 소용없었고, 사과해도 소용없었다.
게임회사들은 그의 이름을 지우고, 그가 만든 작업물을 삭제하고, 그의 흔적을 없앰으로써, 자신들이 얼마나 도덕적인지를 증명하려 했다.
그렇게 졸지에 성폭행범이 된 그는 30년 가까이 몸담았던 업계에서 쫓겨났다.
그동안 충분히 많은 돈을 벌었다.
딱히 사치스러운 성격도 아니니, 죽을 때까지 써도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게임 없이는 살 수 없었다. 정확히는 게임을 만들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다.
게임은 그의 삶이자 그의 전부였다.
그가 업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바로 자신의 결백을 밝히는 것뿐이다.
그는 각종 증거를 모으는 한편, 마리아와 제니퍼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그러던 도중 그는 짐 슈나이더의 연락을 받았다.
“저를 말입니까?”
[예. 그쪽에서 꼭 만나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합니다.]
“뭡니까?”
[그건 직접 만나서 듣는 게 좋을 겁니다.]
지금은 별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강선우라고?’
SW게임즈의 대표이자, 최근 가장 떠오르는 개발자였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아이스스톰이라는 거대 게임회사를 인수하기까지 했고.
다른 사람이라면 그는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자신을 만나려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 * *
“어서 오십시오.”
우리는 세부의 한 리조트에서 매트 쿠퍼를 만날 수 있었다.
약 180센티의 키에 표준 체형. 검은 머리와 검은 수염을 기른 남자였다.
“SW게임즈 대표 강선우입니다.”
“반갑습니다.”
난 이어서 내 소개를 했다.
“컨티뉴 캐피탈 공동대표 한미루입니다.”
그러자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컨티뉴 캐피탈이요?”
“예.”
“컨티뉴 캐피탈이 무슨 일로……?”
난 선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친구라서요.”
“그렇군요.”
실의에 빠져 허우적대거나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멀쩡한 모습이다.
우리는 인사를 한 다음 자리에 앉았다.
“SW게임즈와 대표님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게이머들과 개발자들이 한국에서 천재 개발자가 나타났다고 환호하더군요.”
“뭘요. 과찬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절 보자고 하신 겁니까?”
선우는 그에게 말했다.
“혹시 저와 함께 일해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그 말에 매트 쿠퍼는 조소를 지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제안을 한 곳은 몇 군데 있었습니다. 단, 비밀유지서약을 하고 가명을 써달라고 하더군요. 제가 관여한 사실이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
그 이유는 그가 기록말살형에 처해졌기 때문.
그가 개발에 관여했다는 사실만 알려져도 여론의 집중포화를 얻어맞게 될 것이다.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전 제 이름을 걸고 게임을 만들 거니까요.”
“아니,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 비밀을 지켜달라거나 가명을 써달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당연히 게임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야죠.”
“그럼……?”
“아이스스톰 CEO직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
그 말에 그는 한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잘못 들었나 싶은 표정이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이스스톰의 CEO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잠시 후, 그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지금 제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 하는 얘기입니까?”
“혹시 성폭행을 하셨나요?”
그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아니라고 하면 믿어줄 겁니까?”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것 보세…… 뭐라구요?”
“믿는다구요. 본인이 아니라고 하면 믿어야죠.”
“…….”
그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저,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선우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듯 단언했다.
“예. 저는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거라 믿습니다.”
“…….”
한참을 멍하게 있던 그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 모습에 선우는 당황했다.
“왜 울어요?”
그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흐끅! 그동안 누구도 제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다들 말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뒤에서는 손가락질했죠. 진심으로 저를 믿어주겠다고 한 건 당신이 처음입니다. 으어엉!”
더 이상 참기 힘들었는지 그는 몸을 숙인 채 오열했다.
난 선우에게 눈빛을 보냈다.
‘뭐해? 빨리 안고 토닥여줘.’
그러자 선우 역시 눈빛으로 대답했다.
‘내가?
‘그럼 내가 하랴?’
선우는 조심스럽게 옆으로 다가가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매트 쿠퍼는 바로 선우의 품에 안겼다.
“흐흑! 으어어엉!”
마치 엄마 품에 안겨서 우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다.
선우는 그렇게 자신보다 덩치가 크고 스무 살은 더 많은 남자를 안고 달래주었다.
‘야,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해?’
‘울음 그칠 때까지.’
사람 마음 사기가 어디 쉬운 줄 아나?
그가 울음을 그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선우는 재빨리 티슈를 뽑아 건네주었고, 그는 그것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부끄러운 꼴을 보여드렸군요.”
“뭘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동안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지 짐작이 된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반대가 심할 텐데요.”
“상관없습니다.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진작 결심을 끝마쳤는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조건은 알아서 해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보답하겠습니다.”
그렇게 선우는 ‘RPG의 신’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 * *
강선우의 얘기를 전해 아이스스톰 호퍼 CEO는 거의 기절할 것처럼 놀랐다.
[매트 쿠퍼 말입니까?]
“예.”
[그는 미투로 쫓겨나지 않았습니까?]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는데 그는 죄가 없습니다. 재판에서 분명 이길 겁니다.”
[재판에서 이긴다고 해도 여론이 쉽게 납득하지는 않을 텐데요.]
“진실이 밝혀지면 여론도 돌아설 겁니다. 이번 일과 관련해 제가 모든 걸 책임지겠습니다.”
한참의 설득 끝에 호퍼 CEO는 결국 결정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 * *
[(게임스파크) 매트 쿠퍼, 아이스스톰 CEO로 선임!]
매트 쿠퍼는 경력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아이스스톰 CEO가 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만한 인물을 찾기도 힘들었다.
딱 하나의 문제만 제외하면 말이다.
-ㅋㅋㅋ미투로 나락 간 회사가 미투로 나락 간 사람을 CEO로 데려온다고?
-아이스스톰 미쳤네.
-망하려고 작정했나?
-내부에서 반발이 심했는데, SW게임즈 대표가 밀어 붙였다 함.
-미쳤네ㅋㅋㅋ
-앞으로 아이스스톰 게임 불매합니다.
-이딴 식으로 경영할 거면 걍 NS에 인수되는 게 나았을 듯.
-조만간 문 닫겠는데??
기사가 나가고 나자, 게임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지지하는 여론도 일부 있었지만, 부정적 의견에 금세 묻혔다.
시민단체에서는 강하게 규탄했고, 일부는 아이스스톰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여기에는 언론과 정치권도 가세했다.
[여성 인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
[마티스 하원의원, 아이스스톰에 시정 조치 요구할 것!]
[아이스스톰, 성 추문 해결에 대한 진정성 있나?]
[리슨 상원의원, 이는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나 다름없어…….]
반대 여론이 점점 격해졌지만, 매트 쿠퍼와 아이스스톰 측 모두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게임스파크) 미투의 희생양이 된 ‘RPG의 신’]
(전략)
처음 성폭행 문제를 제기했던 마리아와 제니퍼는 소송 해결을 위한 공동 성명문을 발표했다.
이들의 공동 성명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게임업계의 모든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꺼낸 발언이었고, 그로 인해 매트 쿠퍼의 커리어가 희생당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이번 일을 겪는 과정에서 그동안 쌓인 여러 오해를 풀었고, 그가 게임업계로 다시 복귀해 그의 커리어를 이어나가기를 희망한다. 우리의 원래 주장은 잘못 해석되었으며, 언론에 의해 심각하게 부풀려졌다. 우리는 그의 행동에 너무 화가 났고, 그저 사과를 받고 싶었을 뿐이다. 이미 사과를 받은 만큼 앞으로 다시는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것이고, 그에게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동안 나온 증거들로 볼 때 마리아와 제니퍼가 벌인 폭로는 그저 악의적인 조작에 불과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극적인 내용을 좋아하는 대중과 조회수만 신경 쓰는 언론, 그리고 대중들의 비판을 두려워하는 게임사로 인해 매트 쿠퍼는 자신을 변호할 기회도 없이 업계에서 쫓겨나야 했다.
(중략)
결국 이 사건은 폭로 당사자들이 기존의 주장을 전부 철회하고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무고로 끝나게 되었지만, 매트 쿠퍼가 잃은 시간과 그의 실추된 이미지는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을 것이다.
다행히 매트 쿠퍼는 최근 아이스스톰의 새 CEO로 선임되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이겨낸 그가 어서 빨리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주기를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소망한다.
이 기사에서 짐 슈나이더는 매트 쿠퍼가 어떻게 성폭행범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었는지,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는지 담담하게 서술했다.
이로 인해 여론은 순식간에 반전됐다.
-뭐야? 성추행도 성폭행은 없었는데, 그냥 홧김에 폭로했다는 건가?
-멀쩡한 사람 하나 나락 보낸 거였네 ㅎㄷㄷ
-그래서 저 성명문이 대체 뭔 소리야? 사과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재판에서 질 것 같으니 재빨리 합의해 배상금 지불!
-폭로한 쪽에서 배상금 물어준 거면, 게임 끝난 거 아님?
-ㅋㅋㅋ 편들어주던 언론과 정치인들 개뻘쭘하겠네.
-알지도 못하고 욕한 놈들은 반성하자!
-뉴욕타임즈는 왜 보도 안 함?
-본사 앞에서 시위하던 애들 싹 다 사라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