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5화. 악플 (5)
[로코코 엔터테인먼트, 라벤더베리 관련 허위사실 유포자 고소!]
[루머에 강력 대응. 결코 선처 없을 것!]
[걸그룹 라벤더베리, 루머와 악플로 엄청난 손해 입어……]
라벤더베리 소속사인 로코코 엔터테인먼트는 경찰에 허위사실 유포와 모욕에 대해 고소장을 접수하고 수사를 요청했다.
이 소식이 알려졌음에도 악플러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어차피 페이스노트나 투위터 같은 외국 SNS는 수사가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소한다고? 어이 없네ㅎㅎ
-인터넷에서 욕한 게 뭐가 잘못인데? 니들이 욕먹을 짓을 했으니 욕하는 거 아니야?
-ㅋㅋㅋ 지들이 잘못해놓고 ‘너 고소’ 시전!
-고소해서 강간을 덮으려고? 어디 한번 해봐!
-이런 식으로 진실을 은폐할 수 있을 것 같아?
-ㅎㅎ 백날 고소해보라고 해~
-응응. 어차피 투위터 절대 못 잡아!
이때까지만 해도 그렇게까지 주목을 받는 일은 아니었고, 여전히 라벤더베리 관련 루머는 투위터에서 확산되고 있었다.
그런데…….
투윗 하나가 올라오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투위터는 가짜뉴스 해결을 위해 한국 경찰에 적극 협조할 것!]
알렌 에버하트는 모두가 아는 세계 최고의 유명인.
그의 말 한마디, 투윗 한 줄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이 투윗으로 인해 라벤더베리 관련 뉴스는 순식간에 전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 * *
[(WST 단독) 한국 걸그룹 라벤더베리 소속사, 악플러에 강력 대응!]
(전략)
아이돌 게임 대회와 관련해 당일 루머가 퍼졌다.
자칭 라벤더베리와 데이나의 팬은 라벤더베리 팬클럽 남성들을 모아 보이그룹 팬들을 무차별적으로 강간하겠다고 선언했고, 당일 투위터에는 수많은 피해 글들이 올라왔다.
[지금 제 친구 벤치에서 라면 먹다가 남자들에게 끌려갔어요! 제발 구해주세요!]
[제 친구 지금 화장실에서 강간당하는 중이에요. 하지만 워니미 오빠들의 이름만은 더럽힐 수 없어서 온몸으로 플래카드를 끌어안고 끝까지 지켜냈습니다!]
[아겜 계신 분들 꼭 서로 손잡고 다니세요. 남자들이 다가와서 누구 팬이냐고 물으면 꼭 라벤더베리라고 하세요. 벌써 보이그룹 팬덤 중 10명인가 실종됐다고 하네요.]
[택시도 조심하세요. 택시 기사로 위장한 라벤더베리 팬들이 보이그룹 플래카드든 팬들만 골라 태워 납치한다고 합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지금 차 트렁크에 갇혀있는데 라벤더베리 CD가 잔뜩 있어요.]
[모두 안전하게 살아서 집에 돌아올 수 있기를ㅜㅜ]
누군가 올린 엎어진 컵라면 사진 한 장은 강간의 증거가 됐고, 납치돼 차 트렁크에 갇힌 사람은 박스에 들어있는 라벤더베리 CD를 봤다고 증언했다.
여기서 라벤더베리가 CD앨범을 출시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후 직접 해당 경찰서에 확인해보았지만, 당일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실종과 관련해 단 한 건의 신고도 들어온 게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진실은 루머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에 대해 부인을 하면 부인을 했다고 욕을 퍼부었고, 사과를 하면 ‘잘못한 게 맞지 않냐’, ‘진정성이 없다’, ‘너무 늦었다’며 욕을 퍼부었다.
또한 이 루머가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팬클럽 해체 루머가 떠돌았다.
(중략)
이렇듯 어떠한 근거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루머는 계속 확산하는 추세다.
이에 라벤더베리 소속사 로코코 엔터테인먼트는 칼을 빼들었다.
로코코 엔터테인먼트는 ‘라벤더베리에 대한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 악의적 비방, 모욕, 혐오 발언 등이 도를 넘었다. 당사는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증거 자료를 수집했고,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범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어떠한 합의나 선처도 없이 반드시 붙잡아 처벌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달 한국에서는 한 걸그룹 멤버가 루머와 악플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그녀를 둘러싼 소문이 전부 거짓임이 밝혀졌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최근 연예인들을 향한 모욕과 명예훼손은 이미 도를 넘었다.
SNS와 특정 사이트를 중심으로 연예인뿐 아니라, 그들 가족에 대한 지속적인 혐오와 조롱이 마치 놀이문화처럼 번지고 있다.
이러한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투위터 CEO 알렌 에버하트는 가짜뉴스 해결을 위해 한국 경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동호 선배는 기사를 살펴보며 말했다.
“역시 에버하트 형의 영향력이 대단하네.”
라벤더베리 소속사가 고소를 했음에도 기사 몇 개 났을 뿐, 크게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알렌 에버하트가 투윗을 올리자마자 전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이제는 외신들도 이번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주목했다.
난 관련 댓글들을 읽어보았다.
-응? 형이 왜 여기서 나와?
-설마 형이 라벤더베리 팬이야?
-그런데 강간이 사실이야?
-당연히 뻥이지. 신고가 없었다잖아. 뇌가 있으면 제발 생각이라는 걸 좀 해봐라.
-ㅋㅋㅋ 원래 사람들은 기사를 다 읽지 않음.
-그런데 고소한다고 해서 잡을 수 있을까?
-투위터에서 퍼진 거면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이번에는 꼭 좀 잡았으면 좋겠다!
동호 선배는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이놈들 잡을 수 있을까?”
“상당수는 잡을 수 있겠죠.”
투위터에서 수사에 협조해준다고 해도 접속 IP를 위장하거나, 핸드폰 번호를 등록하지 않았거나 허위로 생성한 이메일 주소로 가입했다면 당사자를 특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미성년자들인 이상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투위터가 안전하다는 믿음도 있었을 테고.
“그러고 보니 아름 씨한테 악플 다는 사람은 없어요?”
민아름은 연예인은 아니지만, 웬만한 연예인보다 유명한 셀럽. 기사에도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왜 없겠어? 당연히 있지. ‘얼굴 다 화장빨이다’, ‘예쁜 척하는 게 재수 없다’거나, ‘금수저 물고 태어나 성공한 거면서 능력 있는 척 오진다’ 등등. 그런데 웃긴 건 뭔지 알아?”
“뭔데요?”
“도를 넘는 악플은 없다는 거지. 모욕이나 음담패설, 허위사실 같은. 악플러들도 재벌 무서운 줄은 아는 거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만만한 게 연예인이죠.”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다.
물론 대중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니, 어느 정도 사생활이 침해당하거나,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거나 비난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연예인이라고 해서 부당한 비난이나 말도 안 되는 루머를 감당할 이유는 없다.
“예전에는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었는데, 요즘은 그저 찍히기만 하면 죽을 때까지 물어뜯는 분위기야.”
이런 행위가 일상처럼 벌어지는 이유는 잡기가 힘들고, 잡아봐야 처벌이 힘들기 때문.
어차피 본격적인 수사와 처벌이 이뤄지려면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이 모든 게 허위사실이었다는 자백과 사과를 받아내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슬슬 허위사실을 유포하죠.”
동호 선배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참 나. 허위사실 유포를 잡기 위해 허위사실을 유포해야 하다니.”
* * *
악플러들이 그동안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트리거나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잡히지 않을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동안 온갖 루머를 올리고, 욕을 하고, 각종 글을 퍼날랐다.
잡혀서 처벌받을 걸 알았다면 결코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투위터 CEO인 알렌 에버하트가 직접 나서서 한국 경찰의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하자, 악플러들은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가 정말로 수사 들어오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그럼 큰일인데. 일단 올린 글 삭제해야겠다.
-미치겠네ㅜㅜ 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ㅜㅜ
그러나 정작 루머를 퍼트린 당사자들은 태연했다.
-괜찮아. 어차피 만 14세 이상은 처벌 안 받아.
-그럼그럼. 법적으로 처벌이 안 된다고 하는데, 지들이 어쩔 거야?
-어리면 죄가 안 되는 거잖아.
-촉법소년 체고체고!
-응. 고소해봐, 병신아~ 어리면 그만이야~
그런데 투위터에 갑자기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라벤더베리와 관련해 루머를 퍼트리고 악플 단 사람들 전부 인터넷에 신상을 공개해 박제하기로 결정했다고 함.]
[원래 살인범이나 강간범 등에게 적용되던 신상 공개를 이번부터 악플러에게도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나 이 소문은 순식간에 살이 붙어서 퍼져나갔다.
[최초 루머 유포자는 반드시 찾아서 사진이랑 어느 학교 몇 학년 몇 반인지 인터넷에 전부 공개하겠대!]
[학교에도 알리고, 부모님 이름과 직업까지 공개할 거라고 함!]
[이미 언론사에서 사진이랑 개인정보 다 입수했다고 하네요. 제 친구 벌써 페이스노트랑 린스타까지 털렸어요 ㅜㅜ]
[경찰들이 학교 압수수색할 거래요! 어뜨케!]
얼굴과 이름을 걸고 하라고 했다면, 절대 못 했을 짓이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익명이었기 때문.
그런데 그 익명이라는 장벽이 사라진다면?
악플러들은 자신들의 신상이 공개되면 어떤 꼴을 당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모두가 손가락질할 테고,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변명을 하면 변명을 한다고 욕할 테고, 사과를 하면 사과를 한다고 욕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이 항상 그래왔기 때문이다.
관련 사이트와 오픈톡방 등은 난리가 났다.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나 이거 알려지면 집에서 쫓겨난단 말이야!
-학교에 알려지면 절대 안 돼 ㅠㅠ
-재밌어 보여서 그냥 따라 썼을 뿐인데…….
-부모님한테 알려지면 나 죽어버릴 거야!
이전까지만 해도 루머를 퍼트린 사람, 이를 퍼나른 사람, 거기에 악플을 단 사람 모두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다.
그런데 걸릴 위험이 커지고, 신상이 공개될 위기에 처하자, 갑자기 없던 죄책감이 생겨나기라도 했는지, 그동안 퍼지던 루머 글들이 일제히 삭제되고 사과문이 줄줄이 올라왔다.
[라벤더베리와 관련자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친구가 끌려가서 강간을 당했다고 올린 거 죄송합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전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제가 나이가 어려서 잘 몰라서 그런 거니 선처 부탁드립니다.]
[실수였어요. 진짜 실수로 한 거예요.]
[제가 쓴 게 아니라 저희 집 고양이가 쓴 거예요ㅜㅜ]
이미 기사를 통해 그동안 어떤 루머가 퍼졌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라벤더베리가 얼마나 큰 고통과 피해를 받았는지 잘 알려졌다.
때문에 가해자들의 반성과 사과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멀쩡한 걸그룹을 강간돌이라고 조리돌림한 게 실수라고?
-조직적인 루머를 퍼트려놓고 몰라서 한 일이라고??
-이러다가 나중에는 사람 칼로 찌르고도 실수라고 하겠는데???
-ㅋㅋㅋ 실수라는 건 버스에서 남의 발 밟은 게 실수고. 계정 파서 말도 안 되는 소리 쓰고, 악플 다는 건 명백한 고의지.
-이런 거 선처해주면 이런 놈들 또 나온다.
-ㄹㅇ 절대 선처해주지 말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 이치라더라~
-안 돼. 안 해줘. 선처해줄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