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화. 악플 (2)
난 차를 타고 성수동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공장 건물을 개조한 카페. 공간이 넓고 각각 칸막이로 구분되어 있다,
난 그곳에서 지유를 만났다.
청바지에 흰색 린넨 셔츠를 입고 머리를 묶었다.
나를 본 지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오셨어요, 선배님.”
“어, 안녕.”
지유는 혼자가 아니었고, 옆에 한 사람이 같이 있었다.
나이는 대략 20대 중반.
그녀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는 170센티 정도에 볼륨 있고 늘씬하다.
입술이 짙고 눈꼬리가 올라가 살짝 날카로운 인상이었고, 피부는 살짝 까무잡잡했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 머리는 어깨 아래까지 길게 내려왔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미인이다.
막상 길에서 만나면 말 걸기 힘들 것 같지만.
지유는 소개해주었다
“이쪽은 내가 말한 한미루 선배님. 그리고 이쪽은 제 친구 데이나예요.”
그녀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목소리가 살짝 젖어있다. 자세히 보니 눈이 빨갛고, 눈가가 부어있는 것이 보였다.
설마 조금 전까지 울었나?
난 다시 지유에게 물었다.
“친구면 동갑이야?”
“네.”
나이 차이가 좀 나보이는데.
이는 지유가 체구와 인상 때문에 어려 보이기 때문. 반면, 친구는 성숙해 보였다.
“그럼 친구도 연예인?”
“네. 그룹 라벤더베리의 리더예요.”
“그렇구나.”
일단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처음 들어보는 그룹이다.
난 혹시나 해서 물었다.
“한국인 맞죠?”
“예.”
“혹시 외국에서 자랐어요?”
“아니요. 저 서울에서 쭉 자랐어요.”
“…….”
그런데 왜 이름이 영어야?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 본명은 민정이에요, 강민정. 말씀 편하게 하세요.”
“알았어.”
지유 친구면 말 놔도 괜찮겠지?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지유는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데이나와는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요.”
지유는 차분하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지만, 데이나는 활발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둘은 금방 절친이 됐다.
그 이유는 둘 다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
그렇게 중학생 시절 내내 붙어다녔지만,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헤어지게 됐다. 나중에 꼭 가수가 돼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그리고 정말로 두 사람은 가수가 돼 다시 만났다.
“서로 약속을 지켰네.”
“네.”
가수를 꿈꾸던 중학생 소녀들이 나중에 연예계에서 다시 만나다니. 너무 감동적인 스토리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날 부른 거야?”
설마 이 스토리를 들려주려고 부른 건 아닐 테고.
지유는 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배님께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응? 부탁?”
그 순간, 뭔가 떠올랐다.
“…….”
잠깐. 이거 설마 소개팅인가?
난 데이나를 슬쩍 보았다.
예쁘다.
너무 예쁘다.
진작 이런 여자친구를 만났다면, 지금쯤 결혼해서 애까지 있지 않을까?
요즘 일이 바빠서 한가하게 여자 만나고 다닐 때가 아닌데.
그런데 또 알렌 에버하트를 보면 그 바쁜 와중에 여자를 잘만 만나고 다닌다. 결혼하고, 이혼하고, 바람피우고…… 벌써 애가 몇 명이더라?
“마음은 고마운데, 지금은 내가…….”
“데이나를 좀 도와주세요.”
“……응?”
소개팅 아니었어?
“죄송해요. 많이 바쁘실 텐데. 부탁드릴 사람이 선배님밖에 생각이 안 나서요.”
“아, 아니, 괜찮아.”
아무래도 소개팅은 아니었나 보다.
난 왠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물었다.
“무슨 일인데?”
설마 이삿짐 날라달라는 건 아닐 테고.
지유가 손을 잡아주자 데이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은…….”
그녀는 고등학생 때 중소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갔고, 몇 년간의 연습 끝에 드디어 걸그룹으로 데뷔했다.
6인조 걸그룹으로 그룹명은 라벤더베리.
대충 라벤더 향기를 품은 과일처럼 향긋하고 상큼한 노래를 팬들에게 전달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데뷔했을 때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어요. 음악쇼에 출연하고, 행사를 뛰러 전국을 돌아다니고,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그런 꿈에 부풀어 있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모든 연습생들이 데뷔하는 날을 꿈꾸며 연습에 매진한다. 그러나 데뷔는 끝이 아닌 시작.
매년 무수히 많은 걸그룹이 데뷔한다.
그들 중 대중의 주목을 받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라벤더베리의 1집 활동은 안타깝게도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끝났다.
그런데 또 아주 망한 것은 아니었고, 그럭저럭 TV에도 나오고 차트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성과는 있었다고 한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연습해 2집 활동을 시작했으나…… 이번에도 반응은 애매했다.
그렇게 뜬 것도 아니고 망한 것도 아닌 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멤버도 두 차례 바뀌었고 6인조는 4인조로 줄어들었다.
이중 원년 멤버는 데이나를 포함해 단 두 명뿐이었다.
“저희 정말 열심히 했어요. 멤버들 전부 놀거나 연애도 하지 않고, 매일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데뷔 초만큼의 인기도 얻지 못했고, 해체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 아마 이번에 낸 신곡 역시 반응이 없었다면 정말로 그렇게 됐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계기가 찾아왔다.
3년 전 발표했을 당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던 ‘알콩달콩’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가 카프리아 BJ들 사이에서 후원 리액션용으로 쓰이며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몇몇 BJ들이 사용했는데, 어느새 카프리아 공식 리액션송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게 ‘알콩달콩’은 역주행을 시작했고, 망고 차트에…….
“설마 1위로 등극했어?”
“아니요.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흠, 그래?”
“그, 그래도 43위까지 올라갔어요.”
이보다 큰 성과는 주목을 받으며 이번 신곡 ‘레몬캔디’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것.
레몬캔디는 망고 차트 16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한가 싶겠지만, 누군가에는 꿈만 같은 순위다. 게다가 점점 반응을 얻고 있으니 잘하면 10위권 진입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데뷔 5년 만에 성공 기회를 잡은 셈.
“차트 순위 보고 애들이랑 끌어안고 펑펑 울었어요. 우리 이제 진짜 성공하는 거냐고.”
5년 동안의 고생 끝에 드디어 빛을 보게 생겼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그런데 이 시점에서 큰 문제가 터졌다.
대부분의 큰일이 그러하듯 시작은 정말 별일 아니었다.
* * *
사건의 발단은 한 기사에서 시작됐다.
[워너미 케인, 라벤더베리 데이나와 심야의 데이트!]
바로 유명 보이그룹 워너미와 데이나 사이의 열애설이 터진 것이다.
이는 루머였고 두 사람은 같은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고, 각자의 지인들이 함께 있던 자리였다고 해명했다.
연예인들에게 열애설이야 일상이나 다름없는 만큼, 그렇게 그냥 넘어가나 싶었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워너미의 팬들은 나이가 어리고 열성적이기로 유명했다.
차라리 유명 걸그룹 멤버와 열애설이 났다면 모를까, 팬들 입장에서 라벤더베리는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걸그룹.
이에 열성팬들은 라벤더베리를 공격했다.
-라벤더베리가 인지도 올리려고 우리 오빠 이용한 거 아님?
-케인 오빠 식사하는 곳에 일부러 나타난 거 맞잖아~
-자기들이 열심히 해서 뜰 생각을 해야지. 이런 식의 더러운 언론플레이를 펼치다니.
-우리 오빠 이미지 흠집난 건 어떡할 건데?
-사진 보니까 대놓고 꼬리 치더라 ㅋㅋ
-저 그날 같은 식당에 있었는데, 데이나가 복도에서 케인 오빠 성추행하는 거 봤어요!
-우리 오빠 어떡해ㅜㅜ
이때까지만 해도 금방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아이돌 게임 대회’에서 발생했다. 줄여서 ‘아겜’이라 불리는 이 대회는 수많은 아이돌들이 참가해 각종 게임을 벌이는 대회.
응원을 위해 수많은 팬들이 몰려들었다.
이때 라벤더베리와 데이나의 팬이라고 하는 사람이 SNS에 보이그룹 여성팬들을 무차별적으로 강간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당일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지금 제 친구 벤치에서 라면 먹다가 남자들에게 끌려갔어요! 제발 구해주세요!]
[검은색 승합차가 돌아다니며 어린 여자애들만 골라 납치 중이에요!]
[여자 화장실에 숨어있다가 보이그룹 팬클럽 피켓 든 여자가 들어오면 바로 문 걸어 잠그고 덥치니 조심하세요!]
[누구 팬이냐고 물어보고 보이그룹 이름 말하면 바로 끌고 간다고 합니다. 제 친구 방금 잡혀갔고, 전 간신히 도망쳐 나와서 글 올리는 중이에요.]
[제발 살려주세요! 지금 차 트렁크에 갇혀있는데 라벤더베리 CD가 잔뜩 있어요.]
그렇게 그날 하루에만 20여 명이 강간을 당하고, 10여 명이 실종됐다.
이 정도면 7시 뉴스, 8시 뉴스, 9시 뉴스에 이어 심야뉴스의 헤드라인을 연달아 장식하는 것은 물론, 전세계 언론들이 떠들어댔을 만한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난 몰랐을까?
“…….”
그건 이 모든 게 뻥이었기 때문.
SNS에 온갖 피해 글들이 올라왔지만, 정작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경찰에 신고된 것도 없었다.
얘기를 들은 난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자칭 라벤더베리와 데이나의 팬이 보이그룹 여성팬들을 무차별적으로 강간하다니!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스무 명이 넘는다니!
그중 미성년자까지 있다니!
기본적으로 루머라는 건 최소한의 개연성이라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건 그냥 아무 말 대잔치 수준이다.
“그 얘기를 사람들이 믿어?”
“네.”
“…….”
루머는 루머를 낳았고, 이로 인해 라벤더베리는 궁지에 몰렸다.
가만히 있으면 사태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생각에 리더인 데이나가 직접 나서서 해명했다.
[그날 강간 같은 일은 결코 없습니다. 증거도 없는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어요 ㅜㅜ]
하지만 돌아온 것은 비난의 화살이었다.
-그럼 우리가 거짓말을 했다는 거야?
-증거가 없으니 강간이 아니라고? 어떻게 증거를 대라는 건데?
-사과하지는 못할망정!
-그중 하나라도 진짜면 어떡할 건데?
-내 친구가 끌려가 당했다니까! 책임져!
-이거 2차 가해인 거 알죠?
-이미 경찰과 결탁해서 은폐 작업에 들어갔나 보네!
데이나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설사 그게 다 사실이라고 해도 저희가 한 일도 아니잖아요. 저희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그런데 왜 저희가 욕을 먹어야 하는 거죠?”
“…….”
다시 말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욕하는 데는 딱히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 사건의 진위가 밝혀지기도 전에 또 다른 루머가 퍼지기 시작했다.
[라벤더베리에서 기획사들 고소해서 모든 보이그룹 팬클럽을 해체할 거래요!]
[팬클럽 강제 해산법을 만들기 위해 문체부에 로비 중이라고 합니다! 널리 알려주세요!]
[자기들 범죄 덮으려고 오빠들 응원을 못 하게 만들다니ㅜㅜ]
[팬클럽 활동하다 감옥에 가더라도 끝까지 워너미 오빠들 팬으로 남을 거예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법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더러, 로비를 할 거면 입법부인 국회에 하지 왜 문체부에 하겠는가?
그러나 이 루머에 보이그룹 팬덤 전체가 발칵 뒤집혔고, 또다시 라벤더베리에 비난이 쏟아졌다.
“으음.”
일개 걸그룹이 경찰에 압력을 가해 강간과 실종 사건을 은폐하고, 이제는 팬클럽을 해체하는 법까지 만든다니!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면 굳이 무명 걸그룹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세계를 정복하는 쪽이 빠를 것 같은데.
만약 유명 그룹이었다면, 이런 황당한 루머에 쉽게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라벤더베리는 이제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걸그룹.
강력하게 지지해줄 팬덤이 없는 상태에서 사방에서 공격을 당하니 치명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