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화. 악플 (1)
김범석.
그는 대학 졸업 이후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신라대 경영학과를 나와 각종 자격증을 딴 만큼, 어느 회사든 골라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쉽게 결정하지 못한 이유는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
부모님 뜻에 따라 공부에 매진하긴 했지만,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은 버리기 힘들었다.
취직을 하면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장 생활에 치이다 보면 음악과 멀어지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진로를 고민하고 있던 찰나, 친구인 이동호의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컨티뉴 캐피탈 한국지사의 첫 직원이 됐다.
입사를 결정한 것은 직장 생활과 음악 활동을 병행하게 해준다는 약속 때문.
이름 모를 사모펀드에 취직하겠다는 얘기에 부모님이 강하게 반대하긴 했지만, 경험을 쌓고 나중에 대형 증권사나 사모펀드로 옮기겠다고 설득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구멍가게나 다름없던 컨티뉴 캐피탈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한국지사 역시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다양한 투자활동을 벌였다.
그중 주력은 패션과 엔터.
이 중 엔터 쪽 투자는 대부분 그가 담당했다.
처음에는 ‘언제 이직할 거니?’라며 물어보던 부모님은 이제 아들이 컨티뉴 캐피탈 부지사장이라고 자랑하고 다니기에 바빴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그래도 김범석은 음악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발표한 곡들은 물론, 작사작곡한 곡들 역시 대박을 터트렸다. 그의 곡을 받기 위해 수많은 엔터사들이 줄을 지어 대기할 정도였다.
‘발라드 명인’으로 불리며 만든 곡마다 히트를 치다 보니, 음원 수입 역시 10위 안에 들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컨티뉴 캐피탈에서 일하며 버는 돈에 비하면 새발의 피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김범석은 음악 활동을 포기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더욱 열정을 불태웠다.
그리고 이번에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김범석의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에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체가 술렁거렸다.
“컨티뉴 캐피탈 부지사장 공연이라니!”
“우리도 다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이건 무조건 참석해야지.”
“투자도 받아야 하고, 곡도 받아야 하고.”
“일단 티켓부터 예매해!”
* * *
동호 선배는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야! 우리 범석이가 단독 콘서트라니.”
다들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축하해요.”
“뭘요.”
동호 선배는 힘차게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파이팅, 김범석! 브라보! 멋지다, 범석아!”
“……놀리냐?”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중이야.”
난 김범석에게 말했다.
“저도 갈게요.”
“오실 겁니까?”
“그럼요. 저 팬이라니까요.”
“하하, 감사합니다.”
내 말에 김범석은 멋쩍게 웃었다.
1회차 때, 힘들던 시절.
그의 노래가 마음에 큰 위안이 됐었다. 가끔 새벽에 ‘고백’이나 ‘이별 편지’를 들으며 상념에 젖기도 했지.
노래방 가서도 자주 불렀다.
혹시라도 내가 고용하는 바람에 1회차 때와는 달리 음악 활동을 안 하거나 줄이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문제 없다.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일도 바쁠 텐데, 대체 시간이 어떻게 나서 음악활동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난 일할 때 제외하면 침대에 시체처럼 쓰러져있기 바쁜데.
동호 선배는 슬쩍 물었다.
“초대 가수는 없어?”
“고민 중이야.”
“걸그룹 불러, 걸그룹. 괜히 남자 부르지 말고.”
“…….”
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선배 이러는 거 아름 씨는 알아요?”
내 말에 동호 선배는 당황했다.
“아, 아니.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바람피우는 것도 아니고.”
민아름이 남돌에게 열광해도 과연 이런 말이 나올지 궁금하다.
김범석은 동호 선배에게 말했다.
“일단 지유는 부를 것 같아. 예전부터 콘서트하면 꼭 참석하겠다고 했거든.”
“지유가 한대?”
“응. 바로 연락 오던데.”
“이야! 역시 우리 지유가 의리가 있어. 불러주는 곳이 한둘이 아닐 텐데.”
김범석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동호 선배는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지유 요즘 괜찮나?”
난 놀라 물었다.
“왜요?”
“엄청 욕 먹고 있는 모양이던데.”
“뭐 잘못했나요?”
“딱히 잘못한 건 없을걸.”
“그런데 왜 욕을 먹어요?”
“음, 욕하는 데 굳이 이유가 필요할까?”
“…….”
그건 그렇다.
원래 사람이 사람을 욕하는 것은 별 이유가 없는 법이지.
* * *
당연하게도 한국지사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
출근해도 딱히 할 일은 없었기에 난 인터넷에서 지유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동호 선배의 말대로 지유에 대한 악플이 넘쳐났다.
그 시작은 바로 김윤선이라는 기자가 쓴 칼럼.
[세븐 라운드, 여성 캐릭터의 성 상품화 논란. 언제까지 이런 불편함을 참아야 하나?]
(전략)
세븐 라운드에서 주인공 한수 다음으로 비중이 큰 캐릭터는 바로 연희다. 위기에 처한 연희를 한수가 도와줘 살려주고, 이후 연희는 한수를 따라다니며, 그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결국 여성은 남성의 도움을 받고, 남성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시대착오적인 여성상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생존이 위협받는 공간에서 이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만든다.
중년 남성과 어려 보이는 여성의 유사 가족 형태는 마치 불륜물을 보는 것 같으며, 부적절한 성 관념을 심어주게 하는 작품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또한 연희는 싸우는 과정에서 수차례 옷이 찢어지고 상처를 입는다.
이러한 장면에서 여성에 대한 가학적인 사디즘을 느낀 것은 과연 나뿐일까?
감독은 여성을 마조히즘적인 존재로 묘사했고 지유는 이를 훌륭하게 연기해냈다.
(중략)
지유가 맡은 것은 어디까지나 배역일 뿐. 그녀에게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지유는 파급력이 큰 연예인이고, 또래 세대의 상징적인 가수다.
그런 그녀가 여성을 성 상품화한 배역을 선택하는 등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보인다면 비판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테러에 가까운 극단적인 인신공격은 자제해야겠지만, 지금 가는 길이 본인이 선택한 것이라면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 역시 본인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
이게 대체 뭔 소리야?
당연하게도 세븐 라운드를 보면서 전혀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다.
왜냐하면 한수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연희(지유)뿐 아니라, 창식 등 여럿이었으니까.
게다가 연희 캐릭터가 여성의 성 상품화라니!
오히려 라운드마다 성장하며 제 몫을 해내는 캐릭터 아니었나?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윤선 기자가 쓴 다른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여자 아이돌 노출 의상, 이대로 괜찮나?]
[미나 짧은 치마의 간호사 복장 논란, 이제는 간호사라는 직업마저 성 상품화?]
[걸그룹 복장 규제, 정부가 나서야!]
[영화 ‘더 글루미’ 여주인공 가슴 노출 장면, 꼭 필요했을까?]
“으음.”
역시나 성에 대해 엄청 보수적인 기자인 모양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반대의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눈호강 타임! 뱅크뮤직서 SNT8 멤버 전원 상의탈의!]
[명장면 예고! 워너미 멤버 루민의 가슴골에 흐르는 땀방울! 약수가 따로 없어!]
[남자 아이돌 에이콘 멤버들끼리 열애설! 당사자들 부인에도 여성팬들은 열광!]
[우철 오빠 복근 파티! 초콜렛 복근에 여심 녹아내려!]
[알페스, 하나의 팬 문화로 인정하고 수용해야……]
“…….”
이게 정말 같은 기자가 쓴 기사가 맞나?
이런 모순을 견디며 기사를 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언론인의 자세인 모양이다.
어쨌거나 김윤선 기자의 기사로 인해 지유는 특정 진영의 표적이 돼 집중 포격을 받았다.
기사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세븐 라운드 보는 내내 너무 역겨웠음.
-중년 남자를 믿고 따르는 어린 여자애라니. 이거 나만 불편해?
-언제까지 로리캐 연기할 건데?
-심지어 한수는 유부남에 애도 있음. 연희는 그런 남자를 믿고 따르는 거고.
-진짜 더럽다~ 너무 역겨워~
-지유 활동 좀 쉬어~ 왜 자꾸 못 기어 나와서 안달이양ㅜㅜ
-얘 어린 척하는 거 넘 재수 없음, 제발 자숙 좀 했으면!
-지유의 연기로 인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입을지 생각하면 손발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나 ㅜㅜ
-이쯤 되면 본인이 입장이라도 발표해야 하지 않나?
-진짜ㅋㅋㅋ 끝까지 못 들은 척 이 악물고 버티고 있음.
-제발 죽었으면 좋겠다~~ 제바알~~
-우리를 위해 죽어줘~ 이렇게 부탁할게!
-앞으로 지유 기사는 은퇴나 부고만 보면 좋겠엉~
웃긴 건 동시에 정반대의 이유로 욕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한수가 도와주는 장면에서 연희는 상대를 경계하며 ‘남자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데, 이게 남성혐오가 아니냐는 것이다.
온갖 기사가 쏟아졌고, 여기에 사이버렉카들이 달려들어 이슈를 키웠다.
[지유 남혐 빼박 증거 발견!]
[지유 미혼모 단체와 여고에 기부! 돈은 남성 팬들에게 벌면서 기부는 여자에게만?]
[지유 ‘만약 너가’ 안무에서 손동작. 남혐 사이트의 로고와 비슷!]
이에 반박하는 댓글도 있었다.
-대본에 쓰인 대로 말했다고 남혐이야?
-그런데 미혼부 단체가 있어? 있어야 기부를 하지 않나?
-모교가 여고니 여고에 기부한 거지. 이걸 가지고 왜 남고에는 기부 안 하냐고 욕하는 건 좀…….
하지만 이런 댓글은 금방 쏟아지는 비난 댓글에 묻혔다.
기본적으로 남을 욕하고 비난하는 것은 좋지 못한 행동이다. 그러나 상대가 욕먹을 짓을 했다면 얘기는 다르다.
욕먹을 만한 상대를 욕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니까.
악플러들은 그동안 했던 말 한마디, 글 한 줄, ‘좋아요’ 누른 게시물 하나를 가지고, 그 사람의 성향을 결정해 욕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지유가 짧은 치마를 입고 나온 것은 여성을 성 상품화하는 일이고, 지유가 미혼모 단체에 기부하는 것은 남성혐오의 증거였다.
내 얘기가 아닌데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사실 지유는 루머와 악플의 피해자였다.
지금이야 톱스타 반열에 올랐으니 별문제 없겠지만, 1회차 때는 그렇지 않았다.
씨랩과 관련해 각종 루머와 악플에 시달렸고, 제대로 활동도 하지 못하고 꿈을 접어야 했으니까.
그래서인지 왠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본인은 괜찮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지유에게서 톡이 왔다.
[혹시 잠깐 통화 괜찮으세요?]
전화를 걸자 바로 통화가 연결됐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무슨 일이야?”
[죄송해요. 많이 바쁘실 텐데.]
“뭐…….”
사실은 할 일이 없어서 인터넷 서핑 중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없어 보이겠지?
“아까까진 바빴는데 지금은 좀 괜찮아. 무슨 일이야?”
[드릴 말씀이 좀 있어서요.]
“응?”
[시간 괜찮으시면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
[네. 혹시 바쁘시면…….]
말하는 게 왠지 다급해 보인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어, 아니야. 지금 괜찮아. 어디야? 내가 그쪽으로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