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458화 (458/529)

458화. SNS는 인생의 낭비 (13)

우리는 다 같이 잔을 부딪치고 부어라 마셔라 했다.

알렌 에버하트는 술에 잔뜩 취한 채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아서 전용기를 타고 돌아갔다.

하루 자고 갔으면 했는데, 내일도 스케줄이 잔뜩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는 가기 전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오늘 한 말 믿어도 되겠지?”

“그럼요.”

난 누구랑 다르게 약속을 지킨다.

* * *

알렌 에버하트는 그동안 무수히 많은 기행을 벌였다.

그러나 그런 그조차 남의 회사에 무작정 쳐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 그의 투윗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전세계가 주목했다.

다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고 있는데, 알렌 에버하트의 투윗이 새로 올라왔다.

놀랍게도 그는 오코너 펍에서 오코너 버거와 흑맥주를 먹는 사진을 찍어 올렸다.

[컨티뉴 캐피탈에서 그동안 쌓인 오해를 풀었다. 우리는 앞으로 미래를 함께 그려나갈 거라 생각한다.]

[오우! 여기 햄버거랑 맥주 끝내주는데! 텍사스에는 왜 이런 곳이 없지?]

[오코너 버거를 티슬라와 스페이스Z 구내식당에 들여놓을 것!]

이 투윗에 모두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에버하트 형 이거 뭐야?

-아니, 헤드기어 끼고 스파링이라도 한판 뜰 줄 알았는데, 뭔 햄버거 인증샷을 찍고 있어?

-설마 뉴욕 본점에 오코너 버거 먹으러 갔나?

-형, 오코너 버거 홍보대사야?

-컨티뉴 캐피탈에게 털린 거 생각하면, 오코너 버거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적이 주는 빵 한 덩이, 물 한 모금도 얻어먹지 말라는 격언 몰라?

-그런데 햄버거랑 흑맥주 처먹고 있음 ㅋㅋㅋ

-혹시 데이비드 록허트의 협박을 받고 있는 거라면, 감튀를 흔들어주세요~

-근데 졸라 맛있어 보이긴 함.

-ㅇㅇ 인정. 나도 당장 먹으러 간다!

이 투윗은 기사로도 나왔다.

[컨티뉴 캐피탈에 쳐들어간 에버하트, 오코너펍 방문 인증!]

[알렌 에버하트, 오코너 버거 먹으며 엄지 척(Thumbs Up)! 진심인가, 조롱인가?]

오코너 버거는 원래 장사가 잘됐다.

그런데 알렌 에버하트가 투윗을 올리자 다음 날 오픈 전부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직원들은 길게 늘어선 대기줄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오픈하자마자 밀려 들어온 사람들은 일제히 주문했다.

“오코너 버거 세 개 주세요!”

“지금 주문하면 얼마나 걸리나요?”

“얼른 포장해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 * *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었다.

“헉!”

난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일어났어요?”

고개를 돌려보니, 방문 앞에 머리를 대충 묶고 간편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트리시가 서 있었다.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어디예요?”

“제 방이에요.”

“헉! 서, 설마…….”

“안심해요. 전 소파에서 잤으니까요.”

“아, 그렇군요.”

여기가 트리시 방이라니.

침대와 책상, 옷장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 한쪽에 쌓여있는 책들을 보니 급하게 치운 티가 났다.

왠지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불과 베개를 보니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흐음, 의외로 소녀 취향이었군요.”

그러자 트리시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왜, 왜요? 불만 있어요?”

“없어요.”

캐릭터 좀 좋아할 수 있지.

“그나저나 제가 여기에는 어떻게 왔어요?”

“아빠가 안고 왔어요.”

“아…….”

어젯밤 일이 기억나는 것 같다.

웬 아일랜드 해적 같은 아저씨한테 공주님 안기를 당했던 것 같은데, 납치되는 느낌이었다.

“데이비드는요?”

“메기가 자다 깼다고 먼저 집으로 돌아갔어요.”

“…….”

이런 배신자. 날 버리고 혼자 가다니.

“그러게 이기지도 못할 술을 왜 그렇게 마셔요?”

“……그건 먹인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네요.”

분명 나보다 훨씬 마셨을 텐데, 트리시는 말짱한 모습이었다.

“일단 아침 먹어요.”

난 쓰린 속을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탁에는 베이컨과 베이글, 스크램블드에그가 차려져 있었다.

이런 걸 먹고 해장이 되려나?

북엇국이나 콩나물국 없나?

“아! 치킨 수프도 있어요.”

“오! 트리시가 만든 거예요?”

“아니요. 아빠가 만들어 놓고 갔어요.”

칼이 만든 음식이라면 믿을 만하지.

치킨 수프를 떠먹으니 속이 좀 가라앉는 것 같다.

그렇게 트리시와 식사를 하고 있는데, 숀 오코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그는 경악하며 말했다.

[어쩌다 저희 아버지가 알렌 에버하트와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은 겁니까?]

“글쎄요.”

참고로 그 사진은 트리시가 찍었다.

“장사는 잘되나요?”

[지금 매장마다 재료 발주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일부 매장은 재료가 떨어져 영업을 중단했구요.]

“알렌 에버하트의 투윗이 대단하긴 하네요.”

이걸 보니, 왜 스타 마케팅이 필요한지 알 것 같다.

SNS가 인생에 도움이 될 때도 있구나.

만약 오코너 버거가 상장기업이었다면, 지금쯤 10퍼센트가량 주가가 상승했을 것이다.

[헉! 혹시 일부러 이런 상황을 의도하신 겁니까?]

“흠,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난 아니지만, 트리시가 의도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아! 그리고 티슬라와 스페이스Z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구내식당에 오코너 버거를 들여놓자는 제안이 왔는데요.]

아무래도 그 투윗은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세요.”

옆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트리시가 물었다.

“숀이에요?”

“예.”

그러자 숀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자, 잠깐. 옆에 트리시인가요? 왜 이 시간에 대표님이 제 여동생과 함께 있는 겁니까? 설마 밤새 같이 있었던 건…….]

“아! 급한 전화가 걸려와서. 이만 끊을게요.”

설명하기 귀찮은 관계로 그냥 끊었다.

나중에 트리시가 알아서 설명하겠지.

* * *

[엔플과 구블은 30퍼센트라는 말도 안 되는 수수료를 거둬들이고 있어. 이거야말로 사기 아니야?]

[그들은 투위터 이용자들의 돈을 갈취하고 있어!]

[난 앱공정성연합을 지지하며, 그들과 함께할 것이다!]

티슬라로 돌아간 알렌 에버하트는 연달아 투윗을 올렸고, 기자들은 이를 기사로 썼다.

-아니, 컨티뉴 캐피탈과 싸우러 가서 왜 갑자기 엔플을 까?

-이 형의 의식의 흐름은 따라잡을 수가 없음.

-ㅋㅋㅋ 뒤에서 응원하던 마이크 골드버그 개뻘쭘.

-집에 있던 탐 키튼 어리둥절~

지금 상황에서 가장 황당한 것은 바로 엔플.

티슬라 공매도는 알렌 에버하트의 역린을 건드렸고, 그가 직접 컨티뉴 캐피탈에 찾아가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둘의 충돌이 어떻게 될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뭔가 살짝 기대했던 것도 사실.

그런데 이게 웬걸?

알렌 에버하트는 컨티뉴 캐피탈과 오해를 풀었다고 하더니, 엔플의 수수료 정책을 비난하는 투윗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엔플 주가마저 3퍼센트가량 하락했다.

쏟아지는 투윗과 기사를 본 탐 키튼은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대체 한미루는 에버하트에게 무슨 얘기를 한 거지?”

* * *

“대체 에버하트와 무슨 얘기를 한 거예요?”

연락을 받고 온 사라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난 그녀에게 오간 얘기를 요약해서 말해주었다.

“용케 설득했네요.”

“엔플과 구블이 실질적인 위협이라는 것은 그가 더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전기차는 수소차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그러나 엔플과 구블과는 공존할 수 없다.

그들은 지금도 자동차 회사들에게 자사의 운영체제를 깔 것을 요구하며,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 타이밍만 노리고 있다.

엔플과 구블의 시장 진입을 막을 수만 있다면 알렌이 우리와 손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가 말한 것 중 사라는 또 하나의 대목에 주목했다.

“티슬라 주식을 매수하기로 했다구요?”

“예. PIF에게도 좋은 기회일 거예요.”

한때 1210달러까지 찍었던 티슬라 주가는 현재 3분의 1 가격인 42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록허트 대표가 말하길 세상에 나쁜 기업은 없대요. 그저 나쁜 가격만 있을 뿐이죠.”

훌륭한 기업을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것이, 적당한 기업을 훌륭한 가격에 사는 것보다 낫다.

이전까지 티슬라는 너무 고평가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각종 악재로 주가가 폭락하긴 했지만, 사실 티슬라의 본질적 가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엔플과 구블의 자동차 시장 진출을 막을 수 있다면?

이건 티슬라에게 엄청난 호재다.

그러니…….

“지금이 티슬라 매수의 적기예요.”

티슬라는 미국 제조업의 상징과도 같은 기업.

이 기업이 무너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내 말에 사라는 미소를 지었다.

“전에 티슬라를 싸게 살 기회가 있을 거라더니. 그게 바로 지금인가 보네요.”

“맞습니다.”

* * *

[SW게임즈, 아이스스톰 인수 절차 마무리!]

[강선우 대표, 아이스스톰의 개발 문화 존중할 것. 결코 구조조정 없어]

[아이스스톰, SW게임즈와 협력해 최고의 게임을 만들어나갈 것]

[SW게임즈와 아이스스톰의 합병, 게임업계에 미칠 파장은?]

맥스비전 스톰은 아이스스톰을 분할해 SW게임즈에 매각했다.

애초에 맥스비전, 아이스스톰, 퀸닷컴 세 회사는 물적분할되어 있고, 본사도 따로 있을 뿐 아니라 회계도 따로 하는 만큼, 매각 절차는 빠르게 완료됐다.

그 외에 기존에 맺고 있던 계약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아이스스톰을 인수하며 컨티뉴 캐피탈은 NS와 게임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했다.

NS는 Z박스 스토어에 블록밸리와 판타지아 테일즈R을 들여놓았고, 반대로 레전드덱에는 게임퍼스트를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인수 완료 소식에 인터넷 반응은 뜨거웠다.

-이야! 신생 게임사인 SW게임즈가 역사와 전통이 있는 아이스스톰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다니!

-미쳤네. 컨티뉴 캐피탈이 지원한 건가?

-티슬라 공매도해서 번 돈으로 저걸 산 건가?

-아무리 그래도 아이스스톰을 인수하다니!

-이제 스타는 한국의 전통 민속놀이다!

-3L <<< 넘사벽 <<< SW게임즈

이번 일로 SW게임즈는 새삼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신생 게임사인 이곳은 MFW와 협력해 블록밸리 게임을 여럿 출시했고, 내놓은 게임들마다 대박을 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의견이 일부 있었다.

어디까지나 블록밸리 스튜디오를 활용한 게임을 만드는 것일 뿐, 오리지널 게임이 없지 않냐는 것이다.

그러나 판타지 테일즈R 출시 이후 그런 얘기는 쏙 들어갔다.

레전드덱과 함께 출시된 판타지아 테일즈R은 한국과 미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으니까.

벌써 글로벌 매출이 8억 달러를 넘었다.

패키지 게임이 매출 8억 달러를 넘기려면, 대략 1000만 카피를 팔아야 한다.

게다가 더욱 고무적인 건, 판타지아 테일즈R은 모바일 앱마켓 95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는 엔스토어와 플레이마켓에 입점하지 않고도 이 정도 매출이 나왔다는 것.

만약 양대 앱마켓에 들어갔다면 매출이 이보다 몇 배는 더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 하나가 성공했다고 해서 아이스스톰을 인수할 만큼 게임사가 성장한 건 아니었다.

그런 만큼 새우가 고래를 삼킨 인수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강선우는 직원들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이제 SW게임즈와 아이스스톰 엔터테인먼트는 하나가 됐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각자 개발은 따로 해나갈 겁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와아아!”

“아이스스톰을 인수하다니!”

“이게 꿈이야, 생시야?”

사실 지금 상황이 가장 믿기지 않는 사람은 바로 말하는 강선우 본인이었다.

‘사달라고 말했더니, 진짜 사줄 줄이야.’

459. 박스오피스 (1)

난 사티아 샤말란 CEO와 통화했다.

[이걸로 잘 마무리됐군요.]

“끝까지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계약을 지킨 것뿐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계약을 안 지키는 놈들이 수두룩하지.

SW게임즈는 매출이 그리 크지 않기에 아이스스톰 인수에 대해 따로 심사를 받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NS와 맥스비전 모두 게임업계의 거대 기업인 만큼, 각국에서 기업 결합 심사를 받아야 한다.

역시나 소뉴는 벌써부터 절대 안 된다고 드러누워 반대했다.

그래도 기업 규모가 30퍼센트가량 줄어든 만큼, 이전보다는 심사가 수월해질 전망이다.

“필요한 일이 있다면 저희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든든하군요. 감사합니다.]

난 이어서 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스스톰을 갖게 된 기분이 어때?”

[아직도 실감이 안 나.]

엄밀히 말하면 그냥 사준 건 아니다.

“열심히 게임 만들어서 갚아.”

내 돈이라면 그냥 빌려줄 수 있겠지만, 이건 기업끼리의 거래라 어쩔 수 없다.

그냥 주면 애 버릇 나빠진다. 하지만 빚으로 달아두면 더 열심히 할 동기가 생기겠지.

[죽기 전에 다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판타지아 테일즈R로 버는 거 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요즘 매출 찍히는 걸 보면, 얘가 정말 천재 개발자인 모양이다.

이런 게임을 망가뜨린 LD스튜디오는 도대체…….

인수가 이뤄지는 사이 SW게임즈와 아이스스톰은 스노우 크래시에서 개발한 클라우드 기반 화상통화 프로그램 후긴(Hugin)을 활용해 업무망을 구축했다.

때문에 약 1만 킬로미터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모여서 회의하고, 함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시차는 어쩔 수 없지만.

[너, 집에는 언제 와?]

“기다려. 영화 한 편 보고 갈 테니.”

* * *

원래는 슬슬 돌아가려고 했는데, 핸드폰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영화 시사회의 초대장이었다.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다리안 헤럴슨.

“아, 맞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슬슬 개봉할 시기가 된 모양이다.

난 바베이도스 해변에서 그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새로 영화를 찍으면 시사회에 초대한다고 하더니,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가겠다고 약속했으니 가봐야겠지.

초대장에는 원한다면 비행기표와 숙소도 끊어주겠다고 적혀 있다.

난 바로 문자로 답장을 보냈다.

[기꺼이 참석하겠습니다.]

내 얘기를 들은 트리시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리안 헤럴슨이요? 영화배우를 말하는 거예요?”

“예. 알아요?”

“모를 리가 있어요? 저 엄청 팬이에요.”

“오! 그래요?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나요?”

“‘마이애미에서 생긴 일’이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합격. 뭘 좀 아시는군요.”

“헤헷.”

설마 이런 공통 관심사가 있었을 줄이야.

하긴, 다리안 헤럴슨은 미국의 국민배우이니, 그의 영화를 안 본 사람이 더 드물겠지.

트리시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미루가 다리안을 어떻게 알아요?”

“아, 전에 바베이도스로 휴가 갔을 때 우연히 만났어요.”

내 말에 트리시는 깜짝 놀랐다.

“예!? 정말요? 왜 말 안 했어요?”

“음…….”

얘기를 했어야 했나?

난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얘기해주었다.

트리시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 그럼 그때 제롬쇼에서 다리안이 휴양지에서 만났다고 했던 사람이 미루였던 거예요?”

“그럴 거예요.”

“그럼 다리안이 복귀한 게 미루 덕분인 거네요.”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나 아니었으면 복귀가 3년은 늦어졌을 테니까.

얘기를 다 들은 트리시는 눈을 빛냈다.

“저도 가도 돼요?”

“어! 트리시도요?”

“네. 저도 그 영화 관심 있어요. 다리안 헤럴슨도 취재하고 싶고.”

“트리시는 경제부 기자 아니에요?”

“아, 아무튼요.”

매우 가고 싶어 하는 표정이다.

하긴, 이런 블록버스터 영화의 시사회에 참석할 기회가 흔치 않지.

혹시 연예인 구경하고 싶나?

그가 보내준 초대장을 보면 동반자 참석이 가능하다.

“좋아요. 같이 가요.”

“오예!”

* * *

‘리버티’의 개봉을 앞두고 LA의 한 극장에서 시사회가 열렸다.

할리우드의 흥행감독으로 이름이 높은 벤자민 디아민드 감독의 아홉 번째 작품으로 사이버펑크를 배경으로 인간과 기계의 싸움을 그린 영화다.

주연 자크 디스킨의 역할을 맡은 배우는 다리안 헤럴슨이기 때문.

그는 한때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였으나, 애니타 버몬트와의 이혼과 그 뒤 이어진 소송으로 인해 바닥으로 추락했다.

다행히 그는 소송에서 승소함으로써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비록 소송에서는 이겼지만, 애니타 버몬트는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이로 인한 공방 역시 이어졌다.

때문에 일부 여성단체들은 촬영 기간 내내 인터넷에서 개봉 반대 운동을 펼쳤고, 시사회장 앞에서도 시위를 벌였다.

이런 논란 속에서 열리는 시사회인 만큼 영화인들과 언론의 시선이 집중됐다.

시사회장에 모인 기자들은 서로 의견을 나눴다.

“부정적 여론이 큰데 흥행은 괜찮으려나?”

“벌써부터 평점 테러당하고 있던데.”

“다리안이 너무 빨리 복귀했어. 여론이 가라앉고, 몸을 좀 추스른 다음 복귀하는 게 좋았을 텐데.”

“이번 영화의 흥행에 따라 앞으로의 행보가 갈리겠는데.”

시사회에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비롯해 각종 유명인들이 몰려들었다.

다리안은 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러나 정작 가장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온다고 했는데. 전화를 한번 해볼까?’

이제까지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은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

그의 친구이자 이번 영화의 감독인 벤자민은 그에게 물었다.

“누구 기다려?”

“아, 아니…….”

“이제 시간 됐어.”

아쉽게도 이제 영화를 시작할 시간이 다 됐다.

‘안 오는 건가?’

다리안은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영화 시작에 앞서 인사를 하기 위해 스크린 앞에 섰다. 그런데 비어있을 거라 생각한 자리에 한 동양인 청년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를 본 순간, 다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

리버티는 공개 전까지 우려가 컸다.

사이버펑크라는 비주류 장르에 다리안 헤럴슨에 대해 논란이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리안이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를 할 때 공황장애로 인해 쓰러지는 바람에 촬영이 중단되는 일까지 있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 크게 걱정했다.

그러나 공개 시사회는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스토리와 세계관은 탄탄했고, 써릴 스크린으로 구현한 CG는 어느 부분이 CG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시사회가 끝나고 나자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고, 언론은 앞다퉈서 기사를 써냈다.

영화 자체의 평가도 좋았지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주연 자크 디스킨 역을 맡은 다리안 헤럴슨의 연기였다.

[리버티, 다리안 헤럴슨 인생 연기!]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강력 후보!]

[다리안 헤럴슨의 화려한 부활!]

[평단과 관객의 호평 속, 상영관 확보에 청신호]

영화 관련 사이트는 리버티에 대한 기사로 도배되었다.

-와! 리버티 평가 엄청 좋네.

-관객점수 89점 찍힘. 특정 집단의 평점 테러를 당했는데도 이 정도임.

-개봉 당일 날 보러 가야겠다.

-그러고 보니, 애니타는 요즘 뭐하고 있나?

-영화 다 짤려서 집에서 놀고 있겠지.

-ㅎㅎ 법원에서 다리안에게 주라고 한 판결금도 못 주겠다고 드러누웠음~

-로펌에서 소송 걸었던데. 그동안 밀린 소송비용 달라고. 그런데 그것도 못 주겠다고 드러누움 ㅋㅋㅋ

-그래도 얼마 전 파티장에서 파파라치에게 찍힌 사진 보니, 잘 놀러 다니는 모양.

* * *

시사회가 끝난 뒤.

난 트리시와 다리안 헤럴슨의 LA 저택에 초대를 받았다.

LA에서도 부촌으로 불리는 베벌리힐스에 위치한 호화 저택이다. 집에는 수영장이 딸려있고, 차고에는 열 대가 넘는 차를 주차할 수 있었다.

청춘 시절부터 잘나갔던 그는 10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애니타 버몬트와 이혼하며 위자료를 듬뿍 안겨줬고, 이어진 소송으로 인해 영화가 줄줄이 취소되고 각종 위약금을 물어주며 6억 달러를 날렸다고 한다.

그래도 이런 곳에서 살고 있는 걸 보니, 벌어놓은 돈이 많아 먹고사는 데는 문제없는 모양이다.

다리안은 친근하게 말했다.

“와줘서 정말 고마워.”

“저야말로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한테는 뭐라고 감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군.”

“에이, 제가 뭐 한 일이 있나요?”

“아니. 그날 거기서 널 만나지 않았더라면, 난 다시는 영화를 찍지 못했겠지.”

“음…….”

사실 내가 아니어도 그는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욱 왕성하게 활동한다.

복귀까지 3년은 더 걸렸겠지만.

전부 내 덕이라고 생각한다는데, 굳이 오해를 풀어줄 필요는 없겠지.

“전보다 훨씬 좋아 보이네요.”

농담이 아니라, 그날 봤을 때보다 지금이 10년은 더 젊어 보인다. 그때는 반쯤 폐인 같은 모습이었는데.

“응. 이제는 술도 끊고 운동도 다시 시작했어.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고.”

그는 옆에 있는 트리시를 가리키며 나에게 물었다.

“이쪽은 여자친구?”

트리시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에요. 여, 여자친구라니…….”

“…….”

부끄러워하는 건가?

난 대신 소개를 해주었다.

“이쪽은 WST의 트리시 오코너 기자예요.”

그러자 벤자민 감독은 깜짝 놀랐다.

“아! 어디서 본 것 같다 했더니, 오코너 기자님이셨군요!”

“저를 아세요?”

“그럼요. 책도 사서 읽었습니다. 마침 잘됐네요. 안 그래도 한번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저한테요?”

“사실 다음 영화로 게임스타트와 관련한 작품을 구상 중이라서요. 컨티뉴 캐피탈과 인터뷰도 하셨으니, 그 일에 대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영화화하기 엄청 좋은 소재긴 하지.

이런 좋은 소재를 할리우드가 놓칠 리 없다. 때문에 이미 여기저기서 눈독을 들이는 중이다.

“그건 저보다 미루가 더 잘 알 텐데요.”

“그게 무슨……?”

트리시는 본인이 말하는 대신 나를 보았다.

난 솔직하게 정체를 밝혔다.

“제가 그 일의 당사자라서요.”

“당사자라니? 혹시 그때 공매도한 헤지펀드에서 일하고 있나?”

“아니요. 컨티뉴 캐피탈 CEO로 일하고 있습니다.”

다리안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자, 잠깐. 컨티뉴 캐피탈 CEO는 데이비드 록허트로 알고 있는데.”

“공동 CEO예요.”

다리안은 할 말을 잃은 듯했고, 벤자민 감독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다리안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자, 잠깐. 그럼 설마 날 위해서 써릴 스크린을 만들어준 건가? 내가 그린 스크린에서 연기를 못한다는 것을 알고?”

“어…….”

그건 아닌데.

460. 박스오피스 (2)

당연하게도 부자일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리조트는 웬만한 부자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설마 컨티뉴 캐피탈 CEO였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컨티뉴 캐피탈은 현재 월스트리트…… 아니,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모펀드다.

‘그런 곳의 CEO라니!’

다리안은 애니타와의 이혼 소송과 폭로전을 겪으며 자신의 커리어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해변에서 만난 청년의 말 덕분에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바로 술을 끊고 전력을 다해 소송에 매진했다.

결과는 승소였다.

이전까지의 상황을 보면 이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명예를 회복한 그는 다시 영화계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걸로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연기는 다 잘해도 그린 스크린 앞에만 서면 애니타의 얼굴이 떠오르며 공황장애가 일어났으니까.

영화 제작에 있어서 그린 스크린 촬영은 필수다.

따라서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배우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언제까지고 마냥 촬영을 미룰 수는 없으니, 이번 영화에서는 하차를 해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다음 영화에 출연하기가 더욱 어려워졌겠지.’

가뜩이나 가정폭력과 소송으로 이미지가 안 좋아졌는데, 개인적 문제로 영화 제작마저 중단시킨다면?

어느 영화사가 그런 배우를 데려다 쓰겠는가?

그런 그를 구원해준 것은 바로 써릴 스크린.

컨티뉴 캐피탈의 자회사인 스노우 크래시와 레전드게임즈의 협력을 통해 만들어진 써릴 스크린은 LED스크린과 써릴 엔진을 활용해 배경과 광원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하는 기술이었다.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해도 아무것도 없는 초록색 배경 화면 앞에서 허공을 보며 연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이러한 벽에 부딪혀 연기를 그만두는 배우들도 많다.

하지만 써릴 스크린은 실제와 최대한 비슷한 환경에서 연기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배경이 변했고, 빛과 그림자가 따라 움직였다.

덕분에 다리안은 무사히 촬영을 끝마칠 수 있었다.

‘그날 해변에서, 그리고 써릴 스크린으로 또 한번 구원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둘이 같은 사람이었을 줄이야!

* * *

내 정체를 들은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잠시 후, 디아민디 감독은 놀란 듯 말했다.

“대체 어떻게……?”

“그럼 안 되나요?”

“아, 아니, 안 될 건 없는데…….”

여전히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다.

뭐, 그럴 수 있지.

다리안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설마 그날 해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컨티뉴 캐피탈 CEO였을 줄이야.”

“저 역시 마찬가지에요. 설마 그날 해변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를 우연히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내 말에 그는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영화는 어땠어?”

“솔직하게 말씀드려요?”

“그럼. 그, 그렇지?”

다리안의 물음에 디아민디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솔직한 감상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난 원하는 대로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최고였어요.”

트리시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오랜만에 정말 재밌게 봤어요.”

그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한순간에 밝아졌다.

우리는 다 함께 요리사가 차려준 저녁을 먹었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경험이다.

어렸을 때부터 보던 무비스타의 집에 초대를 받고, 저녁을 대접받게 될 줄이야. 다 같이 와인을 마시는데, 그는 따로 스파클링 워터를 마셨다.

“와인 안 마셔요?”

“스스로 괜찮아졌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술은 멀리하려고.”

“멋지네요.”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식사가 끝난 뒤, 다리안은 나에게 말했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원래는 다시 만나게 되면, 차고에 있는 차 중에서 마음에 드는 차를 골라서 가져가라고 하려 했는데.”

그 말에 나와 트리시는 깜짝 놀랐다.

트리시는 재빨리 물었다.

“정말 아무거나 골라도 돼요?

나야 그렇다 치고, 트리시는 왜 은근 기대하는 표정을 짓는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스타들이 그러하듯 그는 슈퍼카 매니아. 차고에 롤스로이스, 페라리, 람보르기니, 맥라렌, 포르쉐 등이 나란히 주차되어 있다.

그가 산 차 중에는 특별 한정판도 있어서, 오히려 새 차보다 가격이 몇 배가 오른 차도 있다.

“그런데 컨티뉴 캐피탈 CEO라고 하니, 차로는 어림도 없겠군.”

“…….”

그냥 주면 되지 왜 갑자기 쓸데없는 고민을 하지?

참고로 난 남이 주는 건 사양하지 않는 성격이다.

다리안은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다짐하듯 말했다.

“앞으로 더 좋은 영화로 보답하겠다고 약속할게.”

“…….”

아니, 그런 약속 같은 건 필요 없으니, 그냥 페라리 한 대 주면 되는데.

동생이나 가져다주게.

* * *

리버티는 평단과 관객에게 극찬을 받으며, 개봉 첫 주에만 1억 3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10억 달러 돌파를 점쳤다.

물론 주연 배우가 얼마 전까지 가정폭력 논란에 휩싸였었던 만큼 부정적인 여론이 없지는 않았다.

-이딴 영화 무료로 뿌려도 볼까 말까인데, 누가 돈 내고 보냐?

-레알. 돈 내고 볼만한 가치는 1도 없음.

-인터넷에서 공짜로 다운로드 받아서 본 내가 승자!

-이런 거에 돈 쓰지 맙시다~ 배우 버릇 나빠짐.

-피해자는 숨어 지내는데, 가해자는 뻔뻔하게 복귀하다니!!!

-ㅋㅋㅋ 아니,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지, 불법 다운로드 받은 걸 자랑이라고 썼냐?

-아! 보고는 싶은데 돈은 내기 싫다고!

-근데 욕은 하고 싶다고! ㅎㅎ

그러나 흥행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관객들은 현실과도 같은 CG에 열광했다.

리버티의 흥행으로 인해 언론들은 써릴 스크린에 대해 다시 주목했다.

그전에 좀비네이도3가 최초 써릴 스크린으로 찍은 영화로 대박을 치긴 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B급 영화.

그러나 리버티는 대규모 자본이 들어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만큼,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컸다.

[리버티 배우들, 써릴 스크린에서 연기 선호!]

[디아민디 감독, 써릴 스크린 덕분에 제작비 및 제작 기간 크게 단축할 수 있어……]

[써릴 스크린, 그린 스크린을 완벽하게 대체!]

써릴 스크린은 이제 업계의 주류로 자리매김할 분위기였다. 제작사들은 앞다퉈서 써릴 스크린을 도입했다.

이런 가운데 써릴 스크린을 활용해 찍은 또 하나의 작품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 * *

탁동식 감독.

그는 넷플레이 독점 드라마 ‘방과 후 생존활동’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이번에 넷플레이를 통해 새로운 드라마를 공개했다.

제목은 ‘세븐 라운드’.

박한수라는 남자는 술자리에서 우연히 스마트폰 하나를 줍게 된다.

걸려온 전화와 문자를 보고 게임에 참여하기만 하면 100만 원을 준다는 얘기를 듣고는 바로 약속장소로 향했다.

그곳에서 정신을 잃은 뒤 깨어나 보니 낯선 섬이었다.

모인 사람은 총 200명.

이곳에서 일곱 개의 경기가 펼쳐진다.

첫 게임은 서바이벌로 정해졌다. 200명은 랜덤으로 청팀과 백팀으로 나눠졌고, 각자 페인트총을 받아들었다.

1라운드에 걸린 상금은 무려 10억.

100명이서 나누면 인당 무려 1천만 원이다.

룰은 제한된 시간 안에 더 많이 살아남은 팀이 이기는 것.

이기면 1천만 원을 받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양측은 치열하게 교전을 벌였다. 페인트볼을 맞은 이들은 자동으로 사망 처리되며 탈락했다.

제한 시간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총 112명. 이중 63명이 청팀으로 박한수가 속한 팀이 승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두가 게임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사망처리된 사람은 주취 측에 의해 그 자리에서 바로 사살됐다.

그제야 이 상황이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한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도망가려 했다.

처음에 멍청하게 굴던 박한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게임의 흐름과 룰을 파악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연희라는 금발 소녀와 말을 더듬는 청년을 만나게 되고, 그 뒤로는 팀이 되어서 함께 다니며,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잔혹성과 폭력성으로 인해 미성년자 관람 불가 등급을 받은 데다가 아무래도 배틀로얄이라는 비주류 장르다 보니, 흥행에 대해서는 다들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세븐 라운드는 넷플레이를 통해 공개하자마자 한국과 미국에서 1위를 찍었다.

처음에는 반짝 인기에 그칠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입소문을 타며 일본과 동남아 등 원래 한국 드라마가 인기 있었던 지역들뿐 아니라, 유럽,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까지 전부 휩쓸었다.

무려 96개국에서 1위로 올라섰고, 공개 일주일 만에 시청시간 5억 시간을 돌파했다.

이는 넷플레이 역사상 최단기간의 흥행 기록이었다.

심지어는 중국에서도 비공식 1위를 찍었다!

비공식인 이유는 넷플레이는 중국에서 서비스를 하지 않기 때문. 또한 전세계 불법 다운로드 1위로 올라섰다.

특히 미국에서의 흥행이 심상치 않았다.

미국에서 흥행하는 드라마는 당연히 미국 드라마. 그 외에는 영국이나 호주 등 영어권 작품들이다.

한국 드라마가 잠깐 인기를 끈 적이 몇 번 있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나 세븐 라운드는 달랐다.

흥미로운 스토리와 연출, 특이한 미장센과 어우러지는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가 더해지며, 문화적 현상이라 할 정도로 열풍을 불러왔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세븐 라운드를 봤다고 인증했고, 시청자들은 에이튜브와 톡틱 등에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서 올렸다.

리딧에는 ‘세븐 라운드 리딧’ 게시판이 만들어졌고, 이곳에서 세븐 라운드의 각종 설정과 인물관계, 그리고 향후 전개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다.

당연히 주연배우들에 대한 관심도 폭발했다.

-아! 세븐 라운드 존나 재밌네~

-볼까 말까 고민했는데, 다음 시즌이 없다는 게 화난다 ㅜㅜ

-주인공 처음에는 개찐따 같다가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성장하는 모습이 멋있음.

-박한수는 다른 한국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아! 허지훈이라고 원래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임.

-연희는 누군가요? 금발 여자. 에이튜브 같은 데서 본 것 같은데.

-지유라고 한국에서 유명한 가수입니다.

-가수라고? 그런데 연기를 저렇게 잘해?

-와우! 한국인은 저게 되는구나.

-지유 너무 예쁨ㅜ

-엉엉~ 절 가지세요~

* * *

난 탁동식 감독에게 전화해 축하인사를 건넸다.

“미국에서도 세븐 라운드의 인기가 엄청나네요. 축하드립니다.”

그는 얼떨떨하다는 듯 말했다.

[이렇게 잘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갑자기 글로벌적인 관심을 받게 되니, 당황할 만도 하지.

난 농담처럼 물었다.

“역시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를 받기를 잘했죠?”

[물론입니다.]

원래는 우리가 아닌 넷플레이의 투자를 받으려 했다.

그랬다면 저작권은 넷플레이에 귀속됐겠지.

그러나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를 받은 덕분에 드라마의 저작권은 탁스토리와 컨티뉴 캐피탈 한국지사가 공동으로 보유 중이다.

이를 통해 더 큰 수익배분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얼마든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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