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7화. SNS는 인생의 낭비 (12)
트리시는 사진을 여러 장 찍은 다음, 함께 맥주를 마시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술이 들어갔기 때문인지 알렌 에버하트는 벌게진 얼굴로 트리시의 질문에 편하게 답변해주었다.
“정말로 화성에 갈 생각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잖아요.”
“중요한 건 이런 겁니다. 내가 화성에 가겠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화성에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화성에 가는 게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불가능하다면 뭐가 불가능한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죠. 예. 전 꼭 화성에 갈 겁니다.”
보통 인터뷰는 철저한 준비하에 격식 있게 이뤄진다.
이렇게 편하게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인터뷰는 흔치 않다. 트리시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를 잡은 셈이다.
“아! 잔이 비었네요. 얼른 더 마셔요.”
트리시는 술을 마시면서도 집중해서 질문했다.
내가 같이 마셔봐서 아는데, 그녀는 말술이다. 웬만한 남자보다 훨씬 잘 마신다.
때문에 비슷한 속도로 마시고 있음에도 알렌 에버하트가 먼저 취했다.
그는 연거푸 맥주를 들이켜더니, 오코너 버거를 하나 더 주문했다.
“왜 텍사스에는 이런 햄버거가 없는 거지? 이봐, 친구. 이 햄버거를 텍사스에 들여놓을 생각 없나?”
술을 마시니 호칭부터 달라졌다.
친구(Buddy)라니.
졸지에 나이 많은 친구가 하나 생겼다. 나이로 보면 삼촌쯤 되지 않을까?
“오코너 CEO와 한번 얘기해볼게요.”
“꼭 좀 부탁할게. 우리 직원들이 햄버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대표님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에이, 대표(CEO)라니. 그 호칭은 좀 별론데.
“그럼 테크노킹이라고 부를까요?”
“그런 딱딱한 호칭 말고.”
“…….”
아니, 테크노킹이 뭐가 딱딱해? 이보다 말랑말랑한 호칭도 찾기 힘들 것 같은데.
“그냥 알렌이라고 불러.”
“그래도 되나요?”
“그럼. 우리 사이에.”
“…….”
우리 사이가 대체 무슨 사이야?
방금 만난 거 아니었어?
그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마음 놓고 술 마시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그동안 스트레스로 잠도 잘 못 잤는데.”
하기야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작 멘탈 털려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그는 친근하게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이봐, 친구. 난 네가 마음에 들어. 엔플과 구블과 맞설 배짱도 있고.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
아니야. 난 그 정도로 막 나가진 않았어.
“언제 한번 텍사스에 놀러 와. 크고 아름다운 티슬라 공장을 구경시켜줄 테니까.”
왠지 오늘 한 말을 내일이면 기억 못 할 것 같은 느낌인데.
이 틈을 타서 트리시는 이것저것 요구하기 시작했다.
“저도 티슬라 공장 가도 돼요?”
“그럼요.”
“스페이스Z 공장도요? 발사장도요? 추가 인터뷰도 되죠?”
“언제든.”
“저희 투위터 계정 차단 풀어주시는 맞죠?”
“기꺼이.”
“혹시 티슬라 차 할인도 되나요?”
“…….”
그만 벗겨 먹어!
그 순간, 데이비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난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지금쯤이면 끝났을 텐데 아무 연락 없기에 걱정돼서 먼저 연락했습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설마 911에 신고해야 하는 상황입니까? 혹시 맞고 계시는 거면 ‘민트초코’라고 말씀해주세요.]
“제가 때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드나요?”
그리고 설사 이 자리에서 맞아 죽을지언정 그 단어를 말할 생각은 없다.
[그래서 이기는 중입니까?]
“비슷해요.”
나는 멀쩡한데 상대는 비틀거리며 몸을 못 가누는 중.
이 정도면 내가 이겼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메기는요?”
[방금 잠들었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와보시겠어요?”
잠시 후, 데이비드가 오코너펍으로 달려왔다.
알렌은 데이비드를 보더니 한눈에 알아보고는 반가워하며 말했다.
“오! 데이비드 록허트! 반갑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자자, 일단 맥주부터 한잔하시죠.”
알렌은 데이비드의 손에 잔을 쥐여주고 맥주를 들이부었다.
데이비드는 알렌의 얼굴을 한번 보더니, 다시 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멀쩡한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저 아무 짓도 안 했는데요.”
그리고 말은 바로 해야지.
처음부터 그다지 멀쩡한 사람은 아니었어.
* * *
최근 패션 트렌드는 명품이라 불리는 고가시장과 SPA 브랜드들의 저가시장으로 양분되어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한 패션 기업이 큰 두각을 나타냈다.
바로 MFW(Metaverse Fashion Week).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패션 기업으로, MFW의 마케팅 방식은 다른 기업과는 전혀 달랐다.
TV나 잡지가 아닌, 게임과 SNS를 활용했고, 가상인간을 통한 마케팅을 선보였다.
처음 가상인간을 내놓았을 때만 해도 회의적인 반응이 컸다.
이전까지 나온 가상인간들은 다들 불쾌한 골짜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딘가 어색했고 거부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MFW가 런칭한 가상인간들은 전혀 달랐다.
그들의 외형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고, 각자 강렬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이 인기를 끌자, 다른 기업들 역시 가상인간 마케팅을 위해 컨티뉴 캐피탈에 문의했다.
아예 가상인간으로 이뤄진 아이돌을 만들자는 얘기까지 나왔고, 컨티뉴 캐피탈은 한국 엔터사들과 협력해 가상인간으로 구성된 걸그룹을 런칭하겠다고 밝혔다.
보이그룹이 아닌 걸그룹을 먼저 런칭하는 것은 컨티뉴 캐피탈 한국지사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
어쨌거나 MFW는 이제 게임과 SNS 이용자들이 많은 10대와 20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거대 패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에 힘입어 MFW는 대형 쇼핑몰에 MFW스토어를 열기로 했다.
경기도 구리의 신세기몰.
이곳 3층에 MFW스토어 1호점이 들어섰다.
MFW스토어는 MFW와 계약을 맺은 패션 브랜드 제품을 선보이는 편집숍으로, 300평 규모의 매장은 인테리어부터 디스플레이까지 민아름이 직접 지휘했다.
쇼룸에서는 써릴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서, 직접 옷을 입어 보지 않고도 QR코드를 태그만 하면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감상하거나 비교해볼 수 있다.
MFW스토어는 오프라인뿐 아니라 블록밸리에도 동시에 만들어졌다. 게임 내에서는 스킨과 실물 제품을 바로 구매할 수 있었다.
MFW스토어가 오픈한다는 소식에 신세기몰에는 오픈 전부터 수천 명의 고객들이 몰렸고, 대기 인파는 쇼핑몰 밖까지 길게 늘어섰다.
오픈 행사에는 다수의 연예인들이 와서 사인회를 열었고, 홍보 영상과 브이로그를 찍었다.
그러나 연예인들보다 더욱 주목받은 것은 바로 MFW의 대표 민아름이었다.
그녀는 일반 직원들과 함께 매장을 안내해주고, 고객들과 사진을 찍어주고, 사인을 해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범석은 친구인 이동호에게 말했다.
“부럽다. 너 같은 놈이 저런 멋진 여친을 사귀게 될 줄이야.”
“뭐, 임마? 내가 어때서?”
그러자 김범석은 이동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할 말은 많지만 돈이 없어서 참는다.”
“…….”
이동호는 김범석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넌 만나는 사람 없어?”
“만나는 사람은 무슨. 없어.”
“없긴. 증권사 찌라시 보니까, 너 여자 아이돌과 만난다는 얘기가 있던데. 설마 아니지?”
그 말에 김범석은 괜히 시선을 피했다.
“크흠.”
그 행동에 이동호는 깜짝 놀랐다.
“어! 진짜야? 니가 여자 아이돌을 만난다고? 누구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러니까 누군데? 설마 미성년자는 아니지? 너 그거 범죄야.”
“…….”
오픈 행사가 마무리된 뒤.
민아름은 이동호와 함께 다니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성윤아는 두 사람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언니, 형부. 축하드려요.”
“고마워.”
민아름은 그 옆에서 누군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지유에게 말했다.
“바쁠 텐데 와줘서 고마워요.”
지유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불러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민아름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끝났으니, 다들 점심 먹으러 가요. 내가 살게요.”
멀리 갈 것 없이 쇼핑몰 5층 중식당 특실을 미리 예약해뒀다.
지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미루 선배님은 안 오시는 거예요?”
이동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미국에서 바쁜 모양이야. 요즘 연락도 잘 안 돼.”
“아…… 아직 안 돌아오셨구나.”
“뭐야? 혹시 미루 보러 온 거였어?”
그 말에 지유는 두 손을 내저었다.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성윤아는 살짝 견제의 시선을 보냈고, 민아름은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는 듯 팔꿈치로 애인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이동호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우리 미루 정말 굉장해. 그렇게 줄줄이 대박을 터트릴 줄이야.”
한미루가 미국에서 벌인 투자는 하나하나가 큰 이슈였다.
숏스퀴즈로 인해 헤지펀드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가운데, 컨티뉴 캐피탈은 헐값에 산 게임스타트 주식을 샤크 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맥스비전 스톰 주식으로 교환했다.
그리고 이 주식을 활용해 아이스스톰 인수에 나섰다.
이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투위터 주식을 저가에서 매수해 알렌 에버하트에게 비싼 값에 강매(?)했다.
게다가 티슬라 공매도까지!
이동호는 혀를 내둘렀다.
“설마 투위터를 매수하면서 티슬라를 공매도하다니.”
지유는 감탄하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성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이런 엄청난 투자를 연달아 성공시키다니.”
이동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게 다 내가 잘 가르친 덕분이지.”
그러자 자리에 앉은 사람들 모두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보았다.
민아름은 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테이블 아래로 옆구리를 살짝 쳤다. 이번에는 이동호도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니, 진짠데…….”
민아름이 물었다.
“그보다 아까 본 기사 말이에요. 그거 진짜일까요?”
그러자 성윤아가 물었다.
“무슨 기사요?”
“아! 아까 보니까 알렌 에버하트가 컨티뉴 캐피탈로 쳐들어갔다는데.”
미처 기사를 접하지 못한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성윤아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게 정말이에요!?”
“응? 몰랐어?”
“예. 일하다가 바로 오느라고 못 봤어요.”
이동호는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흠, 그러고 보니 미루가 싸움을 잘했던가?”
지유는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아, 아무 일도 없겠죠?”
“글쎄.”
이동호는 속으로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아! 이런 빅이벤트를 놓치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미국 따라갈걸.’
동시에 걱정도 들었다.
“우리 미루 설마 알렌 에버하트에게 맞고 있는 거 아니야?”
그 말에 성윤아와 지유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서, 설마요.”
“그, 그럼 어떡해요?”
이동호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일단 어떻게 됐는지 연락이나 한번 해봐야겠다.”
그는 한미루에게 톡을 보냈다.
그러자 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어!”
이동호가 놀라자 다들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뭐래요?”
“아무 일 없대요?”
“어…… 알렌 에버하트랑 햄버거 먹으며 맥주 한잔하고 있다는데.”
그 말에 다들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예?”
“뭐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