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화. SNS는 인생의 낭비 (11)
엔플과 구블의 자동차 시장 진출은 그저 시기의 문제일 뿐.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동차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나?”
아무래도 스마트폰보다는 만들기 어렵긴 하지. 품질을 유지하며 대량 생산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고.
나라마다 규제도 다르고.
사실 이건 티슬라가 시장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도 들었던 얘기다.
하지만…….
“엔플과 구블은 수천억 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돈이면 어느 자동차 회사든 인수할 수 있죠. 그래서 지금도 여기저기 찔러보고 있지 않나요?”
티슬라가 전기차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기차 기술은 빠르게 상향평준화되고 있다.
이제 웬만한 업체들은 500킬로미터 이상 주행거리를 지닌 전기차를 내놓는다.
사실 중요한 건 전기차냐 수소차냐가 아니다.
변화의 핵심은 바로 소프트웨어.
과거 자동차는 엔진과 변속기로 이뤄진 기계였지만, 현재는 디스플레이와 반도체가 들어간 움직이는 전자기기다.
티슬라가 자율주행 분야에서 막대한 데이터와 기술력을 쌓았지만, 데이터라면 엔플과 구블 역시 뒤지지 않는다.
“티슬라가 밀릴 거라는 건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티슬라가 미래에 가질 시장을 그들에게 빼앗기게 될 것만은 분명합니다. 엔플과 구블이 얼마나 탐욕스러운지는 잘 알고 계실 텐데요.”
그는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난 알렌 에버하트를 보며 말했다.
“우리는 엔플과 구블에 맞서 공동전선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공동전선이라…… 방금 말한 대로라면 어쨌거나 그 둘은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 텐데. 그렇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러니까 전기차 시장에 못 들어오게 막아야죠.”
내 말에 알렌 에버하트는 눈을 번쩍 떴다.
“어떻게?”
“엔플과 구블의 핵심 비즈니스를 망가뜨리면 되지 않을까요?”
본진이 털리면 신산업에 진출할 생각도 못 하겠지. 티슬라 주가가 폭락하니 그가 투위터 경영에서 손을 뗀 것처럼.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난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요.”
* * *
알렌 에버하트는 맞은편에 앉은 동양인 남자를 보았다.
그가 컨티뉴 캐피탈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토머스 모터스 사태 당시.
그는 토머스 모터스의 기술력이 사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름 모를 사모펀드 하나가 등장해 그 사기 행각을 전세계에 폭로했다.
그 뒤의 행보는 더욱 놀라웠다.
알렉스 프레스턴과 롤프 부치에게서 스노우 크래시를 인수했고, 블랙우드 인터내셔널의 랜섬웨어 사태를 해결했으며, 블록밸리와 나이트라이트 게임을 성공시켰다.
한국 게임사의 확률 조작을 밝혀내기도 했고, 사마라 회장을 일본에서 탈출시켜 키오노스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 외에도 GL케미칼, GL엔텍, 페이스노트, 페더 등등.
마치 마이더스의 손을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투자한 것마다 대박을 터트렸다.
컨티뉴 캐피탈이 사들인 주식은 올랐고, 그들이 공매도한 주식은 떨어졌다.
설마 그 투자대상이 본인이 될 거라는 예상치 못했지만…….
어쨌거나 사업을 시작한 이후 이 정도로 당한 건 처음이었다.
때문에 대체 어떤 놈이 이런 짓을 벌였는지 궁금해서 직접 찾아왔다. 그런데 직접 만나 얘기해보니 이건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한미루가 말한 대로 엔플과 구블의 시장 진출은 티슬라에게 실질적인 위협 요인이었다.
엔플은 전세계에 10억 대가 넘는 활성화 기기가 있고, 이를 활용해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중이다.
구블은 전세계 검색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지도 앱을 통해 막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티슬라 역시 구블 지도를 사용하고 있고.
이 둘은 IT산업과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한 거대 기업.
때문에 아무리 그라 해도 엔플과 구블은 조심스러운 상대였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당당하게 그들의 핵심 비즈니스를 망가뜨리겠다고 선언했다.
‘정말로 그게 가능하다고?’
* * *
내 얘기를 들은 알렌 에버하트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어찌나 시원하게 웃는지 눈물까지 살짝 나왔다.
한참 동안 웃은 그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이렇게 웃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재밌었다니 다행이네요.”
내가 이렇게 유머러스한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컨티뉴 캐피탈은 이미 엔플과 구블을 상대로 소송 중이지.”
“예. 그러니 앞으로도 그쪽과 손잡을 일은 없을 겁니다. 반면 티슬라와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구요.”
그는 튕기듯 말했다.
“우리 회사 주식을 공매도하는 사람을 어떻게 믿지?”
“안심하세요. 더 이상 저희가 티슬라를 공매도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 말을 믿으라고?”
그의 물음에 나는 웃음을 지었다.
“하긴 말로 하는 약속은 별 의미가 없죠.”
이건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는 주식 안 판다고 주주들과 약속 해놓고 몰래 팔다가 딱 걸렸으니까.
그러니 확실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느끼겠지.
“못 믿겠다면 직접 티슬라 주식을 매수하죠.”
알렌 에버하트는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공매도해서 주가를 실컷 떨어트려 놓고, 이제 와서 매수하겠다고?”
우리가 공매도해서 떨어트린 게 아니라, CEO가 대량으로 팔아서 떨어진 게 아닌가 싶다만.
“저희가 아니라 PIF가 살 겁니다.”
“사우디 국부펀드가?”
“예. 그쪽 운용본부장이 티슬라에 관심이 좀 많은 것 같아서요.”
“흐음, 그렇다면야…….”
이야기가 잘 풀렸기 때문인지 아까보다 분위기가 좋아졌다.
“몇 가지 물어봐도 되나?”
“아직도 궁금한 게 남아있나요?”
“대체 사마라 회장을 어떻게 탈출시킨 거지?”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제가 탈출시킨 거 아닌데요.”
“에이, 그러지 말고.”
정말로 궁금해하는 표정이다.
“뭐, 제가 한 건 아니지만, 전해 들은 얘기 정도는 해드리죠.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난 그가 질문한 것들을 하나씩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평소 궁금해하던 걸 질문했다.
“처음 로켓 발사에 성공했을 때 어땠나요?”
“글쎄. 별 생각은 들지 않았어. 만약 그게 실패했으면 스페이스Z는 정말로 파산이었으니. 그래서 성공한 걸 보며 그저 ‘다음 로켓도 쏠 수 있겠구나’라고만 생각했지.”
둘이 실컷 얘기하다 보니, 슬슬 해가 저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뭔가 잊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아!”
“왜 그래?”
“잠시만요.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난 밖에 있는 트리시를 부르러 갔다. 그녀는 기다리느라 지쳤는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트리시.”
내가 어깨를 살짝 흔들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앗! 저 안 졸았어요, 국장님.”
“…….”
회사에서 자주 졸았던 모양이다.
트리시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몇 시에요? 에버하트는요? 설마 벌써 갔어요?”
“아니요. 들어와요.”
난 트리시를 데리고 미팅실로 들어갔다.
안에 있는 알렌 에버하트를 본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WST 기자 트리시 오코너예요.”
알렌 에버하트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 오코너 기자군요. 반갑습니다. 알렌 에버하트입니다.”
“어! 저를 아세요?”
“그럼요. 기사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소문보다 훨씬 미인이시군요.”
“아, 감사합니다.”
트리시는 부끄러운지 뺨을 살짝 붉혔다.
역시 칭찬에 약하다니까.
그래도 이제 그만 그 손은 좀 놨으면 좋겠는데.
“그럼 인터뷰를 좀 할 수 있을까요?”
“흠, 인터뷰라.”
그는 최근 인터뷰를 잘 안 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미치도록 바쁘기 때문.
뭐, 그런 것 치고는 TV쇼에도 나가고, 바람도 피우고 있지만.
“오신 김에 저녁이라도 드시고 가시죠. 저녁 먹으면서 인터뷰하면 될 것 같은데.”
“배가 좀 고프긴하군. 여기 먹을 만한 곳이 있나?”
난 자랑스럽게 말했다.
“근처에 끝내주는 음식과 맥주를 파는 곳이 있어요. 그것만 먹고 가도 여기까지 온 걸 후회하지는 않을 겁니다.”
“호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그는 트리시를 보며 말했다.
“좋습니다. 인터뷰하죠.”
“앗! 정말요?
“전 한 번한 말은 반드시 지킵니다.”
그러나 안 팔겠다고 약속한 주식은 몰래 팔았지. 작년에 출시하겠다고 약속한 신차는 올해까지도 소식이 없고.
트리시는 한마디 덧붙였다.
“아! 그리고 부탁이 하나 더 있어요.”
“뭡니까? 사인이라면…….”
“사인은 됐으니, WST 투위터 계정 차단된 것 좀 풀어주세요. 저희 8.49달러 내고 그린 뱃지도 달았단 말이에요.”
“…….”
* * *
우리는 알렌 에버하트를 데리고 오코너펍으로 향했다.
마침 오늘은 휴점일.
하지만 트리시가 호출하자 칼 오코너는 바로 달려왔다.
“아빠!”
“오! 마이 도터!”
그 모습을 본 알렌 에버하트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아빠라고? 안 닮았는데?”
“……머리색은 같잖아요.”
그 외에는 좀 안 닮을 수도 있지.
딸과 재회의 포옹을 한 칼 오코너는 나를 보더니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오코너 가문의 은인! 자네도 왔나?”
난 그 품에 안기기 전에 재빨리 말했다.
“오늘은 손님을 데려왔어요.”
“누구?”
“보시면 아실 겁니다.”
칼은 알렌 에버하트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사람은 누구지?”
“예?”
혹시 간첩인가?
우리의 표정을 본 칼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농담이었네. TV에서 자주 봤는데 모를 리가.”
그럼 그렇지.
하지만 이내 슬쩍 내 귀에 대고 물었다.
“그런데 저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많이 보긴 했는데, 생각이 잘 안 나서.”
“…….”
진짜 간첩인가?
CIA에 신고해야 하나?
칼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오코너 버거를 만들었고, 트리시는 직접 흑맥주를 내왔다.
알렌 에버하트는 탐탁지 않은 반응이었다.
“햄버거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핫윙은 없나?”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아직 오코너 버거를 안 먹어본 모양.
“일단 드셔보시죠. 입맛에 안 맞으면 다른 거 시킬 테니.”
그는 햄버거를 들고 한 입 먹어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때요?”
“끝내주게 맛있는데. 이게 정말 햄버거라고?”
“오코너 버거죠.”
“이거 텍사스에도 있나?”
참고로 티슬라 본사는 텍사스 오스틴에 위치해 있다.
“아직이요.”
그러자 그는 소리치듯 말했다.
“어째서!?”
트리시는 카메라를 들며 말했다.
“자자, 일단 사진 좀 찍을게요. 햄버거 들고 여기 봐요. 아! 아빠도 옆에 서봐요. 같이 찍게.”
“…….”
이게 언론 인터뷰인지, 오코너 버거 홍보인지 모르겠다.
뭐, 스타 마케팅은 중요하지.
트리시가 사진을 다 찍고 나자 알렌 에버하트는 스마트폰을 꺼내 셀카를 찍었다.
“갑자기 셀카는 왜……?”
“아! 투위터에 올려야 해서.”
“…….”
내일 오코너 버거 매장들 미어터지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