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5화. SNS는 인생의 낭비 (10)
난 혼자 미팅실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백인 남성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TV에서 자주 보던 바로 그 사람이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는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본 그는 마치 한 대 칠 것 같은 기세로 성큼성큼 내 쪽으로 다가왔다. 강렬한 위압감이 들었지만 난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처음 든 생각은 생각했던 것보다 덩치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키 192센티에, 몸무게 95킬로그램.
목이 굵고 어깨가 떡 벌어져 있다. 워커홀릭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체격이 이 정도는 돼야 젊은 시절부터 주 120시간씩 일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체력도 타고난 재능 중 하나다.
그는 내 앞에서 멈춰 섰다.
“당신이 한미루?”
“맞습니다.”
알렌 에버하트가 내 이름을 알고 있을 줄이야.
이걸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맞습니다.”
그는 놀랍다는 듯 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어리군.”
“동안이라는 얘기 많이 듣습니다.”
내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밖에 나가면 보통 서너 살은 어리게 본다.
“내 소개를 해야 하나?”
“괜찮습니다.”
유성그룹 회장이 유재호라는 건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알아도 외국인이라면 모를 수 있다.
구블 CEO나 NS CEO가 누군지 관심 없는 사람들은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알렌 에버하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는 거대 기업의 CEO라는 것을 넘어서 대중들의 인기 스타였다. 인지도 면에서는 세계 최강이다.
그를 모르면 간첩…… 아니, 지구인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왠지 북한 사람들도 다들 알고 있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외계인도 알고 있지 않을까?
대체 어떤 놈이 그렇게 지구 밖으로 위성을 쏘아대나 궁금해서 알아봤을 수도 있지.
그는 제대로 씻지도 않았는지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얼굴은 살짝 번들거렸다.
정말로 투윗하다가 갑자기 달려온 것 같은 모습이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그는 의자에 앉았다.
“뭐 드시겠습니까?”
“커피.”
남들 보고는 커피값 아껴서 투위터 유료회원 가입하라고 하더니, 본인은 잘만 마시는 모양이다.
“록허트 대표는?”
“먼저 퇴근했습니다.”
귀여운 딸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 나도 그런 딸이 있으면 바로 집으로 달려갔을 거다.
아무리 알렌 에버하트라도 메기를 이길 수는 없지.
그는 숨을 돌리듯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보지?”
“좀 신기해서요.”
회귀해서 좋은 점은 TV에서나 보던 유명인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 것.
마이크 골든버그, 사티아 샤말란, 탐 키튼, 재타이거 등등 이제까지 수많은 유명인을 만나봤지만, 눈앞의 남자는 느낌이 좀 색다르다.
그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한둘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
인류 최강의 사나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혁신가.
화성에 가겠다는 몽상가.
……아! 이 중 세계 최고 부자는 당분간 빼도 되겠지?
“티슬라 공매도로 돈 좀 벌었다고 들었는데.”
“그럭저럭요.”
“흥.”
불만 가득한 표정이다.
하기야 그동안 공매도 세력들을 그렇게 비난하고 조롱했는데, 이번에 제대로 털렸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겠지.
“그래서 컨티뉴 캐피탈에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나한테 한 방 먹인 사람이 누군지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겠다 싶어서.”
“설마 공매도한 걸 따지기 위해 오신 건 아니죠?”
“그렇다면?”
“그럼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따지셔야죠.”
“당신 말고 누구한테 따지라는 거지?”
“티슬라 주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투위터를 인수하고, 티슬라 주식 200억 달러를 팔아치운 사람에게 따져야 하지 않을까요?”
“…….”
내 말에 그는 얼굴을 붉히며 인상을 찡그렸다.
원래 팩트폭행이 가장 아픈 법이지.
“궁금한 게 몇 가지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
남들은 궁금한 게 있으면 전화를 하지, 전용기를 타고 날아오진 않는다.
뭐, 어쨌거나 여기까지 왔으니 답변 정도는 해줘야겠지.
“그럼요. 뭐든 물어보시죠.”
그는 몸을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투위터를 매수하기로 한 건 당신 생각이었나?”
“아니요. 록허트 대표의 생각이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누가 계약을 맺었든 지킬 수밖에 없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럼 티슬라를 공매도한 건?”
난 솔직하게 말했다.
“그건 제 생각이었습니다.”
“어째서?”
“CEO가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치울 거라 예상했으니까요.”
“그걸 어떻게?”
그야 회귀를 했기 때문이지만…… 이렇게 말하면 놀리는 것으로 받아들이겠지?
“투위터 인수는 좋은 기회였으니까요.”
“좋은 기회?”
“예. 티슬라 주식을 처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요.”
그는 일전에도 세금을 핑계로 주식을 매도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매도량은 그가 내야 할 세금의 무려 세 배나 되는 금액이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
그는 세계 최고(현재는 2위)의 부자. 그러나 재산 대부분은 주식으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이중 일부를 팔아 현금화하고 싶은 유혹을 계속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이유 없이 주식을 팔았다가는 주주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주가는 더 크게 하락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는 주식을 매도할 명분이 필요했다.
물론 명분이 있어서 매도한다 해도 주가는 떨어지고 주주들에게 욕먹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냥 파는 것에 비해서는 최소화할 수 있다.
“사실 투위터 인수는 대출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전부터 티슬라 주식을 팔고 싶어 했죠. 마침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으니, 재빨리 대량 매도에 나선 거죠. 아닌가요?”
내 말에 그는 살짝 찔린 듯한 표정이었다.
“그 모든 걸 예상했다니. 제법이군.”
“뭘요.”
상대가 쏘아보든 말든 난 느긋하게 커피를 마셨다.
직접 겪으면서도 잘 믿기지가 않는다.
세상에 자기 회사 주식 공매도했다고 찾아와서 따지는 CEO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알렌 에버하트라면 가능하다.
사실 그가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다.
공매도 세력들을 상대로 티슬라 숏팬츠(Short Shorts)를 만들어 조롱했고, 행사장에서 만난 베일 게이츠를 붙잡고 티슬라를 공매도했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이런 걸 보면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가 보다.
정말이지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다.
“아무튼 잘 오셨습니다. 저도 꼭 한번 만나고 싶었으니까요.”
“나를?”
“예. 사실은 존경하고 있거든요.”
그가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내거나 노벨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인류 문명을 진일보시켰다.
티슬라 이전에도 전기차는 있었지만, 형편없는 성능과 주행거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기존 내연기관차보다 더 뛰어난 전기차를 시장에 내놓았다.
이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스페이스Z.
NASA가 향후 우주탐사에 집중하기 위해 위성 운용과 발사 등을 민간업체에 위탁하겠다고 발표하고 기술을 이전해주기로 했지만, 이로 인한 혜택은 대부분 록히드마틴이나 보잉 등 기존 군사기업이나 항공기업들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로켓을 쏘아 올리겠다는 일념으로 아무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직원과 전문가들을 끌어모아 로켓을 만들고 부수고, 쏘아 올리기를 반복했다.
나중에는 아예 발사대를 마음껏 쓸 수 있는 마셜제도의 콰잘레인으로 본사를 옮겼다.
초창기 때 스페이스Z는 여러 민간우주기업 중 한 곳일 뿐이었다.
맨바닥에서 로켓을 만들고, 정부의 보조금을 타내고, NASA의 수주를 받는 등 모든 것이 난관이었다.
당시 알렌 에버하트는 그저 20대 큰돈을 번 수많은 부자들 중 한 명이었고, 그의 재산은 고작 2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기어이 로켓을 발사했고, 민간우주기업 시대를 활짝 열었다.
화성에 간다는 그의 꿈이 실현될지는 알 수 없지만(적어도 내가 회귀하기 전까지는 못 갔다), 그 덕분에 이제는 누구나 돈만 내면 우주여행을 갈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야말로 인류 역사를 바꿔놓았다 할 수 있다.
그가 처음 전기차를 대중화시키고, 인류를 화성에 보낼 우주선을 만들겠다고 말했을 때 모두가 그를 비웃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그의 말을 비웃지 않았다. 반대로 언젠가는 그 모든 일들이 현실이 될 거라 여겼다.
알렌 에버하트는 코웃음을 쳤다.
“존경은 개뿔.”
“먼저 오해를 좀 풀고 싶습니다.”
“무슨 오해?”
“저희는 티슬라의 적이 아닙니다.”
“티슬라 주식을 실컷 공매도해 놓고 적이 아니라고?”
“공매도는 청산했습니다.”
“수소차를 미는 건?”
“넥스트로젠은 PIF 지배하에 있습니다. 저희가 직접 투자하는 건 아니죠.”
뭐, 러시펀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투자하고 있긴 하다만.
“그리고 전기차와 수소차는 적대적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상용차와 승용차로 시장이 구분되어 있으니까요. 오히려 함께 시장을 구축해나가며 내연기관차의 퇴출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전기차가 대세인 것처럼 보여도 아직 전체 자동차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퍼센트가 채 안 된다.
내연기관차가 퇴출된다면 이 시장은 열 배로 커지게 될 것이다.
“그건 마음에 드는 얘기로군.”
“그리고 티슬라의 진짜 적은 따로 있습니다.”
“진짜 적? 그게 누구지?”
“엔플과 구블입니다.”
내 말에 에버하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엔플과 구블이라니…….”
“알고 계실 텐데요.”
전세계 교역량 1위 품목은 뭘까?
에너지다.
인류 문명은 석유 없이는 돌아가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2위는 뭘까?
바로 자동차다.
당연히 이 거대한 시장을 엔플과 구블이 지켜만 보고 있을 리 없다.
“경쟁은 이미 시작되지 않았나요? 엔플은 전기차 개발을 위한 티탄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죠.”
이 프로젝트 책임자로는 티슬라 개발팀장 출신의 리처드 에르홀츠. 그 외에도 엔플은 높은 연봉을 미끼로 티슬라 개발인력을 속속 빼갔다.
이에 분노한 알렌 에버하트는 당국에 고발하겠다고 엔플에 으름장을 놓았지만, 엔플은 여전히 티슬라 출신 엔지니어들의 고용을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관련 스타트업들을 집어삼키는 중이니까.
알렌 에버하트는 코웃음을 치듯 말했다.
“그래 봐야 컨셉트카조차 내놓지 못했지.”
“대신 엔플은 플레이카를 내놓았고, 구블은 안드로모빌을 내놓았죠.”
이는 차량용 통합 소프트웨어.
스마트폰을 차량과 연결하거나, 아니면 그냥 스마트폰으로 작동하는 방식으로 차 안에서 지도, 전화, 메시지, 음악 등을 사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엔플과 구블은 차 한 대 없이 차량과 운전에 대한 각종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설마 이들이 심심해서 이러고 있겠는가?
엔플카와 구블카의 등장은 그저 시기의 문제일 뿐.
“엔플과 구블은 언젠가 전기차를 내놓을 겁니다. 아니, 정확한 시기를 알려드리죠. 앞으로 3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