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화. 아이스스톰 (5)
[(게임스파크) SW게임즈의 새로운 시도]
(전략)
……NS의 맥스비전 인수도 충격적이지만, 그보다 SW게임즈와 아이스스톰의 합병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아이스스톰은 30년 넘는 역사를 지닌 게임사. 그런데 설립된 지 채 2년도 안 된 SW게임즈가 아이스스톰을 인수합병하기로 한 것이다.
SW게임즈 강선우 CEO와 조나단 호퍼 CEO는 인수합병이 공식화되자 공동 이름으로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두 사람은 두 게임사가 하나가 되는 것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앞으로도 지금처럼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말했다.
또한 아이스스톰은 맥스비전 스톰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독립적으로 운영될 것이라 밝혔다.
SW게임즈와 아이스스톰이 인수는 과연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건 SW게임즈가 게임 개발의 방식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SW게임즈는 산하 스튜디오 중 일부를 전문 외주 제작사 형태로 개편했다.
(중략)
반복되는 대량 고용과 대량 해고, 그리고 이제는 당연시되는 크런치 문화는 게임업계의 심각한 문제다.
이러한 형태의 산업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강선우 대표는 여기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개발사는 필요할 때 인력을 고용하고 해고하는 대신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외부 인력을 활용해 제작할 수 있게 하는 방향이다.
이렇게 하면 시간과 비용이 절감되고, 개발자들의 고용이 안정화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제작 방식은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런데 유독 게임업계만큼은 한 스튜디오 내에서 모든 제작을 하려는 경향이 짙다.
이 방식이 정답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섣부르지만, 게임업계의 악순환을 끊어내려는 하나의 시도라는 것은 분명하다.
* * *
NS와 SW게임즈의 맥스비전 스톰 분할 인수 소식에 연일 게임업계가 시끌시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는 게임업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인수였다.
이 소식에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은 바로 일본의 소뉴.
현재 전세계 게임업계 순위는 1위가 위챈트, 2위가 소뉴, 3위가 NS다. 그런데 NS가 맥스비전을 인수하면 순위가 뒤바뀐다.
소뉴와 NS는 콘솔 게임 시장의 최대 라이벌.
소뉴는 즉각 NS의 맥스비전 인수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맥스비전이 매년 출시하는 FPS게임 콜 오브 아너가 콘솔 게임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제품이고, 이를 NS가 독점할 시 공정한 경쟁을 해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만큼 NS는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다행히 SW게임즈의 아이스스톰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별다른 코멘트가 없네.”
선우의 말에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반대할 수 있을 리 없지.”
아이스스톰 인수는 NS가 먼저 맥스비전 스톰을 인수해 SW게임즈에 매각하는 방식. 만약 이를 막는다면 아이스스톰은 예정대로 NS가 맥스비전과 함께 인수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NS에 넘어가는 것보다는 SW게임즈에 넘어가는 게 나을 테니, 태클을 걸 수가 없는 것이다.
“뭐, 사실상 그냥 독립하는 거나 다름없기도 하고.”
SW게임즈 규모라고 해봐야 아이스스톰에 비한다면 10분의 1도 안 되니.
“직원들은 뭐래?”
“다들 놀랐지. 처음에 기사 보고 이름만 같은, 다른 게임회사인 줄 알았대.”
“하긴.”
얼마 전까지만 해도 LD스튜디오의 직원이었던 선우가 이제는 그보다 큰 게임사를 소유하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쨌거나 내년 스톰컨에는 참가할 수 있겠네. 관람객이 아닌 회사 대표로서.”
“내가?”
“응. 단상 위에 서서 기조연설 같은 거 해야지.”
“뭐라고 해?”
“뭐, 님폰없 같은 말만 안 하면 되지 않을까? 그 외에 고객님 개별의 선택이나, 변동확률이나, 랜덤박스는 자부심과 성취감을 제공하기 위함 등등.”
이딴 헛소리를 지껄이는 순간, 유저들이 바로 트럭을 본사 앞에 보내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마차를 보내기도 하고.
“어디 스톰컨뿐이겠어? GDC(게임 개발자 컨퍼런스), E3, 게임스컴, 도쿄 게임쇼 등에도 전부 참가해야 할 텐데.”
“으음.”
“그러고 보니, 이번에 인수 한 방으로 게임업계 가장 중요한 인물 10위에 니 이름 올라갔던데.”
참고로 그 10인 중에는 미야모토 시타로, 짐 스펜서, 탐 스콧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사방에서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다. 심지어는 호퍼 CEO와 함께 TV쇼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일단은 게임스파크와 WST와만 인터뷰를 했다.
“내가 LD 다닐 때 경영진과 회사 욕 엄청 했거든.”
“그랬지.”
개발자 입장에서, 또는 게이머 입장에서 회사와 경영진을 욕하는 위치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위치에 본인이 서게 된 것이다.
아이스스톰이 엉망인 게임을 내놓는다면, 앞으로는 선우가 욕을 먹게 될 것이다.
이제야 실감이 좀 나는지 선우는 부담돼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글쎄.”
1회차 때 없었던 일이라서 나도 잘 모른다.
아무래도 소규모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게임을 개발하는 것과 직원 수천 명의 거대한 기업을 운영하며 여러 개발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나야 믿고 맡길 수 있는 데이비드가 있지만, 선우는 그런 것도 아니니.
지금 얘한테 필요한 건 자신감.
“나가자.”
“어디 가게?”
“일단 따라와 봐.”
* * *
내가 선우를 데려간 곳은 LA 인근의 오렌지카운티.
이곳에 위치한 헌팅턴 비치는 서핑의 성지로 유명하다. 바닷바람이 좀 쌀쌀했지만, 햇빛이 강렬해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우리는 해변가에 섰다.
“뭐가 보여?”
“바다.”
“바다 말고, 저기 있는 사람들 보이지?”
“서퍼들?”
바닷물이 차가울 텐데도, 여러 사람들이 서핑을 하고 있었다.
셋 중 한 명 정도는 가슴과 어깨에 퀵샤카 로고가 새겨진 서핑복을 입고 있었다.
난 해변가에 늘어선 서핑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에 있는 작은 서핑샵에 불과했던 퀵샤카가 게임 덕분에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지.”
“게임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됐을 수도 있잖아.”
난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내가 패션에 별 관심이 없긴 하지만, 1회차 때 퀵샤카라는 브랜드는 듣도 보도 못했다. 그러니 퀵샤카가 유명 브랜드가 된 것은 전적으로 ‘퀵샤카 오션월드’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게임 하나가 무명 브랜드를 유명 브랜드로 바꿔놓았다.
퀵샤카 오션월드는 지금 스테이지를 계속 추가하며 여전히 블록밸리 1등을 지키고 있고, 정기적으로 대회도 열린다.
난 선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넌 그냥 게임을 만들면 돼. 그게 꿈이라며?”
회귀하기 전에도, 회귀한 이후에도 선우의 꿈은 항상 똑같았다.
바로 게임을 만드는 것.
1회차 때는 그 꿈을 못 이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내 말에 선우는 피식 웃었다.
“하긴. 재밌는지 재미없는지는 어차피 유저들이 판단할 문제지.”
표정을 보니 살아난 것 같다.
“술이나 한잔하자.”
해변에 앉아 마시면 좋겠지만, 미국은 공공장소에서 음주가 불법이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펍으로 들어가서 맥주를 시켰다.
“그런데 진짜 인수 금액 괜찮아?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무리했지.”
만약 인수 시기를 정할 수 있었다면 뒤로 미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건 아니잖아.”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다.
만약 NS에 인수된 이후라면, 그때는 아무리 많은 돈을 싸들고 가도 아이스스톰을 인수하는 것은 불가능했겠지.
가볍게 술 한잔하는데, 30대의 백인 남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난 손을 들었다.
“여기예요!”
다름 아닌 퀵샤카의 창업자인 제프 샌퍼드와 케이티 샌퍼드의 남매다.
두 사람은 기뻐하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드디어 만나 뵙게 되네요.”
“민아름 대표님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화상회의를 통해 본 적은 있어도 직접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임 잘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직원들과 항상 재밌게 하고 있어요.”
선우가 만든 게임이 없었다면, 퀵샤카의 성공 역시 없었다. 그래서인지 남매는 선우에게 연신 감사를 표했다.
“자, 일단 한잔해요.”
난 두 사람에게 맥주병을 건네주었다.
우리는 같이 술을 마시고 저녁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다음 날.
선우는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넌 안 가고?”
“아직 이쪽 일이 좀 남아서.”
“오케이. 그럼 집에서 보자.”
* * *
좀비네이도3는 정식으로 개봉했고, 첫날부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스토리야 워낙 B급 감성과 병맛으로 인해 호불호가 갈렸지만, CG에 대해서만큼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극찬을 받았다.
이미 써릴 스크린을 도입하는 곳이 늘어났고, 1인 영화제작자도 크게 늘었다.
그야말로 영상업계의 혁명이 아닐까?
난 동호 선배의 연락을 받았다.
[좀비네이도3 엄청나네. 한국에서도 인기야.]
“봤어요?”
[응. 아름이랑 같이. 그나저나 게임사 큰 거 하나 인수했던데.]
“예.”
동호 선배는 놀랐다는 듯 말했다.
[다른 게임사도 아니고 아이스스톰이라니. 오랜만에 스타 땡기네. 대학 때 많이 했잖아.]
“많이 했죠.”
주로 동호 선배가 후배들을 PC방으로 끌고 갔다.
생각해보면 내 학점이 그 모양이었던 건 다 이 선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SW게임즈랑 합병하면, 스타는 이제 진짜 한국 민속놀이 아닌가?]
“어…….”
듣고 보니 그러네.
동호 선배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맞다. 세븐 라운드 촬영 끝났다는데.]
“그래요?”
세븐 라운드는 탁동식 감독이 제작 및 연출한 10부작 드라마.
편당 제작비가 60억 원이니, 총 제작비는 600억 원. 한국 드라마 중에서는 최대 규모라 할 수 있다.
원래 넷플레이가 투자하려는 것을 우리가 낚아채 투자했다.
돈을 떠나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좀비네이도3가 로키와 써릴 스크린을 활용해 제작한 첫 영화라면, 세븐라운드는 로키와 써릴 스크린을 활용해 제작한 첫 드라마다.
세븐 라운드는 엄청난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한국 드라마가 된다.
[마지막 촬영 때 컨티뉴 캐피탈 이름으로 커피차랑 오코너 버거 푸드트럭 보내줬어.]
“오! 잘했어요.”
투자자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얘기를 들으니, 지유가 떠올랐다.
지유와 마지막으로 만난 건 메기의 생일날 유성병원에서였다. 그때 내가 컨티뉴 캐피탈의 대표라는 사실을 밝혔다.
왠지 속인 것 같아 좀 미안한 마음이다.
혹시 화났거나 삐쳤을까 봐 걱정했는데, 지금도 가끔 연락이 왔다.
축하 인사 정도는 해도 되겠지?
난 톡을 보낼까 하다가 한국 시간을 확인해 보고는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통화가 연결됐다.
지유는 반가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통화 괜찮아?”
[네. 집이라서 괜찮아요.]
“세븐 라운드 촬영 잘 끝났다며?”
[네. 아! 안 그래도 촬영 끝난 기념으로 내일 세나랑 밥 먹고 쇼핑하기로 했어요.]
“그래? 세나가 너무 귀찮게 하는 거 아니야?”
[귀찮긴요. 저도 무뚝뚝한 남동생 말고 세나 같은 여동생 있으면 좋겠어요.]
“…….”
아니야. 세나 같은 여동생이 있어 보면, 무뚝뚝한 남동생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겠지.
지유는 촬영하며 있었던 일에 대해 재잘재잘 얘기했다. 유명 연예인이라기보다는 아는 동생과 통화하는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선배랑 LA에서 만났을 때 생각나네요.]
“그러게. 그때 같이 오코너 버거도 먹었었지.”
그 말에 지유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커피차랑 푸드트럭 보내주신 거 감사해요. 이거 선배님이 보내주신 거 맞죠?]
“어, 뭐. 그렇지.”
컨티뉴 캐피탈이 보낸 거면, 내가 보낸 거나 다름없지 않나?
[호, 혹시 저 때문에 보내신 거예요? 제가 오코너 버거 좋아하니까……?]
“어…….”
아니, 그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