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0화. 아이스스톰 (4)
호텔로 돌아온 난 선우를 기다리다가 먼저 잠들었다.
푹 자고 늦게 일어났는데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얘 잘하고 있는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락을 해봤지만 받지 않았고, 점심과 저녁이 지날 때까지 따로 연락도 없다.
설마 아이스스톰에 감금됐나?
911에 신고할까 말까 고민하는데, 해가 완전히 진 뒤에야 선우가 돌아왔다.
그사이 씻지도 못했는지 꾀죄죄하고 지친 모습이다.
“뭐 하다 이제 왔어?”
“그냥 뭐…… 개발 책임자들도 만나고, 직원들과도 얘기하고, 오버클락2도 살펴보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
선우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우리가 인수하기로 했어.”
“진짜? 어떻게 설득했는데?”
“디렉터들 만나서 앞으로의 개발 방향에 대해 얘기하고, 오버클락2는 히어로들 레벨 디자인 함께 수정해보고, 판타지아 테일즈R을 어떻게 제작했는지 물어보기에 대답해주고.”
이 얘기를 들으니 먼저 일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같이 있었다면,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그냥 앉아만 있었을 테니까.
“잘됐네.”
서로 별일 아니라는 투로 얘기를 나누긴 했지만, 실제로는 게임업계를 뒤흔들만한 엄청난 일이다.
SW게임즈가 아이스스톰을 인수하다니!
다른 게임사도 아닌 바로 그 아이스스톰이다!
선우의 입가가 씰룩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마 내 표정 역시 비슷할 것이다.
“오오!”
“우와아!”
우리는 누가 먼저라도 할 것도 없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거 실화냐?”
“우리가 해냈어!”
우리는 동서남북으로 뛰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렇게 한 10분 뛰다 보니, 둘 다 힘들어서 털썩 주저앉았다. 오랜만에 소리를 질렀더니 목이 아프다.
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선우는 탈진한 듯 고개를 뒤로 꺾은 채 나에게 물었다.
“근데 진짜 돈은 있는 거야? 그쪽에서도 좀 걱정하는 것 같던데.”
난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다 빌려줄게.”
“진짜지? 나중에 딴말하면 안 돼.”
“그럼. 이자만 꼬박꼬박 내.”
“……응?”
이게 내가 받고 싶어서 받는 게 아니라, 기업끼리 빌려줄 때는 정해진 이자를 받게 되어있어서 어쩔 수 없다.
* * *
아이스스톰 인수를 위해서는 NS와 맥스비전 스톰과 삼자협상을 진행해야 하고, 각종 계약을 맺어야 한다.
이제부터가 진짜 양복쟁이들이 업무라 할 수 있다.
난 뒷일은 데이비드에게 맡겼다.
“잘 부탁드립니다.”
[예. 다행히 NS 측에서 꽤 협조적이군요.]
인수 과정에서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건 바로 기업 가치와 인수금액을 책정하는 일.
이를 위해 보통 수개월에 걸쳐 실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NS는 진작 단독 인수협상자로 선정됐고, 이미 맥스비전 스톰에 대한 실사를 끝냈다. 그리고 주당 98달러에 인수하기로 협상까지 끝마친 상태였다.
그러니 여기서 아이스스톰만 분리해 계산하면 되는 것이다.
[NS 측이 아이스스톰에 책정한 금액은 286억 달러입니다.]
“……비싸네요.”
대체 뭔 프리미엄을 이렇게 많이 얹어줬지?
어쨌거나 NS가 이미 이만큼 지불하겠다고 해놨는데, 우리가 나서서 깎을 수는 없는 노릇. 결국 그만큼의 금액을 지불하는 수밖에.
더 달라고 안 하는 게 다행이다.
NS에 지분을 넘기고 나머지 차액에 대해서는 현금으로 지급할 계획이다.
인수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난 샤말란 CEO의 연락을 받았다.
그는 농담처럼 말했다.
[내심 아이스스톰 측에서 거절하기를 바랬는데, 아쉽게 됐군요.]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아이스스톰만 원해서 천만다행입니다.]
만약 맥스비전이었다면, NS도 결코 양보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은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FPS 게임 프랜차이즈 콜 오브 아너를 출시하기 때문.
이 게임은 Z박스와 게임퍼스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임이다.
“이번에 도움을 주신 건 잊지 않겠습니다.”
사실 NS 입장에서는 좀 황당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협상을 끝내고 사인만 앞두고 있는데, 여기서 갑자기 컨티뉴 캐피탈이 갈라먹자고 끼어들었으니.
만약 NS가 양보하지 않았다면 인수는 어림도 없었다.
게다가 인수 협상 과정에서도 NS는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었다. 실사 자료를 넘겨준 것이 대표적이다.
덕분에 인수 과정이 별 잡음 없이 진행 중이다.
상대가 먼저 호의를 보여준 만큼 우리 역시 호의로 화답했다.
이미 NS 게임 사업 부문 짐 스펜서 사장과 레전드게임즈 탐 스콧 CEO가 레전드스토어에 게임퍼스트를 들여놓는 문제를 놓고 협상에 들어갔다.
또한 향후 SW게임즈와 아이스스톰이 발매할 싱글 게임에 대해서는 Z박스에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샤말란 CEO는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빅테크 기업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
페이스노트와는 철천지원수가 됐고, 구블과 엔플과는 전쟁 중이다. AMZ와의 사이도 그저 그렇고.
그러니 적어도 NS와는 친하게 지내는 편이 좋겠지.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언제든 NS에 놀러 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 *
인수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JR블랙우드 호텔에 머물렀다.
난 데이비드와 계속 통화하며 진행 상황을 체크했고, 선우는 아이스스톰으로 출퇴근하며 회사를 둘러보고 개발팀과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각자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형!”
“그동안 잘 지냈어?”
“네.”
갈색 더벅머리에 주근깨가 남아있는 20대 청년.
다름 아닌 시드 루카스다.
난 선우를 소개해주었다.
“이쪽은 내 친구. SW게임즈 대표.”
“안녕하세요. 강선우입니다.”
시드는 반가워하며 말했다.
“얘기 많이 들었어요. 형 친구니 말씀 편하게 하세요.”
“어, 그, 그래.”
선우는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쟤는 원래 널 이렇게 따라?”
“뭐, 그렇지.”
복숭아나무 아래서 형제가 되기로 맹세를…… 하지는 않았지만, 의형제 같은 사이랄까?
“일단 식사부터 하러 가자.”
시드가 온다는 얘기에 호텔 프론트에 얘기해 LA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한식 레스토랑을 예약해뒀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노우크래시 CEO가 LA로 온 이유는 매우 중요한 행사가 있기 때문.
바로 좀비네이도3의 시사회다.
* * *
좀비네이도는 1편이 나왔을 때만 해도 주목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B급 영화였다.
그런데 좀비네이도2가 예상치 못한 대박을 터트리며 흥행했고, 사람들은 다음작에 대해서도 기대했다.
그리고 이번에 드디어 3편이 개봉한다.
개봉을 앞두고 LA의 한 극장에서 비공개 시사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사이먼 라이너스와 페르난도 산체스는 물론, 주연인 네이트 호르비츠도 참석했다.
라이너스 CEO와 산체스 감독은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드야 전에 봐서 이미 알고 있지만, 선우와 만나는 건 처음이다.
난 그들에게 선우를 소개해주었다.
우리는 앞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이 영화는 프리즈너뿐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로키와 써릴 스크린을 활용해 처음으로 제작한 첫 영화기 때문.
아마도 할리우드 영화사에 기록으로 남지 않을까?
극장의 조명이 꺼지며 영화가 시작됐다.
내용은 좀비네이도 1편과 2편에서 이어지는 뒷이야기. 여전히 B급 감성을 담고 있지만, CG 퀄리티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토네이도에 좀비떼가 섞여 날아다니는 좀비네이도를 본 선우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CG 미쳤는데.”
“그치?”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이건 그 이상이다.
발 CG나 다름없던 전작과는 비교가 불가능하고, 수억 달러를 들여 만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견줘도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다.
아니, 그보다 훨씬 낫지 않나?
실제로 스크린을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좀비떼의 모습에 일부 관객들은 깜짝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으헉!”
“으어어!”
영화가 끝내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오자 모두가 일제히 박수를 쳤다. 그중 가장 열심히 박수를 친 사람은 시드.
“재밌었어?”
시드는 신난 표정으로 말했다.
“예. 역시 좀비네이도 시리즈는 최고예요.”
* * *
[NS, 맥스비전 스톰 인수! 인수가는 810억 달러]
[맥스비전 스톰 이사회, 아이스스톰 분할 매각 승인!]
[아이스스톰, SW게임즈와 합병 공식 발표!]
맥스비전 스톰 데이브 굿실 CEO는 기업 매각과 관련해 이사회의 승인은 이뤄졌고, 주주들의 동의를 얻겠다고 밝혔다.
현재 주가보다 월등히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주총은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소식에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맥스비전 스톰의 주가는 NS가 인수하기로 한 주당 98달러 선으로 30퍼센트가량 치솟았다.
NS의 인수도 인수지만, 그보다 눈길을 끈 것은 바로 SW게임즈의 아이스스톰 인수.
게임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뭐야? 드디어 맥스비전과 아이스스톰이 쪼개지는 거야?
-SW게임즈가 아이스스톰을 인수한다고?
-ㅅㅂ 미쳤다!
-오오! 한국 기업이 아이스스톰을 인수한다니!
-SW게임즈가 무슨 돈으로?
-컨티뉴 캐피탈이 대주겠지.
-그럼 이제 한국 최대 게임사는 LD스튜디오가 아니라, SW게임즈 아닌가?
-어차피 컨티뉴 캐피탈 소유라 미국 게임사 아닌가?
-그게 뭐가 중요함? 그렇게 따지면 웬만한 게임사는 다 중국 게임사임.
-SW게임즈는 한국에 있고, 한국인이 대표로 있으니, 한국 게임사로 칩시다~
-메피스토랑 월드 오브 워로드 시리즈나 다시 내면 좋겠다.
-일단 오버클락2부터 어떻게 좀 해보자.
* * *
난 데이비드와 통화했다.
[무사히 잘 끝났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결정이야 내가 내려도 그걸 실행하는 것은 데이비드.
데이비드가 내 옆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이번 인수가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까?]
난 1회차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아이스스톰은 꾸준히 성장했다. 그렇다면 내가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일까?
그렇지는 않다.
그 이상으로 성장한 기업은 많으니까.
따라서 1회차 때와 비슷하게 성장한다면, 굳이 인수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그 돈으로 다른 데 투자하는 게 낫지.
그럼에도 인수를 결정한 이유는 선우 때문.
과연 선우가 아이스스톰을 어떻게 성장시킬까?
어쩌면 1회차 때보다 훨씬 크게 성공할 수도 있을 테고…… 반대로 실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난 솔직하게 말했다.
“친구 때문이죠.”
[친구분을 믿으시는군요.]
“예.”
선우라면 분명히 잘할 거다.
[그보다 인수 자금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인수에 필요한 자금은 286억 달러.
NS가 맥스비전 스톰 전체를 810억 달러를 인수하기로 했으니, 컨티뉴 캐피탈이 보유한 지분을 NS에 매각하면 97억 달러는 해결이 된다.
그리고 나머지 190억 달러는 현금으로 마련해 채워야 한다.
가뜩이나 돈 들어갈 일이 많아 죽겠는데, 또 돈 쓸 일이 생기다니.
이래서 돈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것이다.
이 돈을 또 어떻게 벌어야 하나……?
난 자신 있게 말했다.
“뭐, 이제부터 돈 벌 방법을 찾아봐야죠.”
마침 좋은 건이 하나 있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