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화. 콘솔 출시 (4)
판타지아 테일즈R 한국과 미국에서 흥행 중인 가운데, 게임스파크 편집장 짐 슈나이더와 총괄 제작자인 강선우 디렉터의 인터뷰가 공개됐다.
[(게임스파크) 판타지아 테일즈R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전략)
슈나이더: 이번 리메이크에서 메인 콘텐츠 외에 다양한 서브 콘텐츠가 추가되었습니다.
강: 그건 원래 기획 단계에서부터 있었던 겁니다. 이제야 추가를 하게 된 거죠.
슈나이더: 그럼 전에는 왜 뺐던 건가요? 개발 단계에서 시간이 없었나요?
강: 경영팀에서 결제가 없는 콘텐츠는 빼라고 했거든요.
슈나이더: 이번에 그 콘텐츠들을 넣은 것은 돈보다 유저들의 즐거움을 우선시하기 위함인가요?
강: 아, 그렇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돈을 벌기 위함이죠. 그러한 콘텐츠들로 인해 유저가 게임 세계에 애정을 갖는다면, 이는 가입자 수 증가와 결제로 이어질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슈나이더: 한국 게임사들은 보통 P2W 게임을 만들고, 랜덤박스와 과금 유도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지 않습니까?
강: 전 그렇게 하지 않고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습니다.
슈나이더: 한국의 한 게임사의 경우 이러한 가챠게임에 대해 ‘한국 유저들은 결제 태도가 불량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게임사도 남는 게 없다’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 미친 소리죠. 그리고 남는 게 없기는요. 유저가 남지 않습니까?
(중략)
슈나이더: 강선우 디렉터님, 그리고 SW게임즈의 목표는 뭔가요?
강: 제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바로 계속 게임을 만드는 겁니다.
해당 인터뷰는 즉시 번역돼 한국에도 소개됐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결국 멀쩡하게 기획된 게임을 LD스튜디오가 말아먹었다는 것.
-그래. 저게 진리지!
-맞는 말만 하는데도 왜케 눈물이 나냐 ㅜㅜ
-뽑기좆망겜 시대에 한 줄기의 빛!
-한국에서 이런 게임이 나왔다는 게 자랑스럽네요.
-다시는 한국 게임을 무시하지 마라!
-강선우! 빛선우!
-흑우들아! 대체 언제까지 브라더후드M에서 가챠 돌릴 거냐?
-이제 대세는 판타지아 테일즈R이다!
그동안 한국 게임의 막장 운영에 지친 유저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본사에 트럭을 보내고, 시위를 하고, 간담회를 열어봐야 그때뿐. 정작 고쳐지는 것은 별로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출시된 판타지아 테일즈R은 가뭄의 단비나 다름없었고, 루미나스, 시나몬 스토리, 차일드런 등의 게임에서 유저들이 대거 옮겨가기 시작했다.
판타지아 테일즈R의 인기가 심상치 않자, 스트리머들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그동안 프로모션을 받고 브라더후드M을 홍보하던 스트리머들조차도 판타지아 테일즈R로 갈아타며 공짜로 게임을 홍보해주었고, 서로 합방을 진행하기로 했다.
인방계에는 그야말로 ‘대 판타지아 테일즈R 시대’가 열렸다.
다른 게임 유저들도 판타지아 테일즈R로 옮겨가고, 즐겨보던 스트리머들마저 일제히 돌아서자, 엉덩이가 무겁기로 유명한 브라더후드M 유저들마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브라더후드M 난민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체인지 뽑기하다가 빡쳐서 계정 삭제하고 건너왔습니다.
-이제 정신 차려서 예전처럼 현질 안 하고 조금만 하려고 합니다. 일단 500만 원만 지를 생각인데, 뭐부터 뽑으면 되나요?
-월 100만 원 소액결제 유저인데, 이걸로 재밌게 할 수 있나요?
-게임이 좀 이상하네요. 결제도 안 했는데, 펫이 그냥 뽑혔어요. 이거 시스템 오류인가요?
-뽑기 확률도 잘못 표기한 듯. 5퍼센트라니. 0.00001이 정상 아닌가?
* * *
LD스튜디오 주주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망해서 서비스를 종료한 게임을 500억 원에 팔았는데, 리메이크 출시 후 초대박이 터지다니!
게다가 인터뷰 내용을 보면, 원래 멀쩡했던 게임을 LD스튜디오가 말아먹은 거나 다름없었다.
심지어는 그렇게 팔아넘긴 게임이 브라더후드M의 유저들을 빼앗아 가는 중이다.
판타지아 테일즈는 기획부터 브라더후드M과는 유저층이 겹치지 않도록 설계됐다.
이는 신제품이 기존 제품의 매출을 갉아먹는 카니발리제이션(Cannibalization)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애초에 진영전과 PK를 중심으로 설계한 브라더후드M과는 달리, 판타지아 테일즈는 모험과 탐험, 레이드가 중심이었다.
그래서 설사 판타지아 테일즈가 재출시해 성공하더라도 브라더후드M에는 별 타격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판타지아 테일즈R 출시 이후 유저들이 쭉쭉 빠져나갔다.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브라더후드M이 아직도 매출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MMORPG 장르에서는 대적할 만한 게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비슷한 과금구조의 다른 P2W 게임을 하느니, 기존에 하던 브라더후드M을 계속 하는 편이 낫기도 하고.
그런데 진짜 할 만한 MMORPG가 나오자 유저들은 열광했다!
재밌는 사실은 많은 유저들이 판타지아 테일즈R을 브라더후드M이 아닌, 초창기의 브라더후드와 비교하고 있다는 것이다.
LD스튜디오는 떠나가는 유저들을 붙잡기 위해 온갖 이벤트를 벌이고 쿠폰과 재화를 뿌렸지만 역부족이었다.
브라더후드M이 휘청거리자, LD스튜디오 주가도 휘청거렸다.
박수형 부사장이 말했다.
“주가 폭락에 대해 주주들이 대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LD스튜디오는 브라더후드M의 매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때문에 브라더후드M의 접속자와 과금이 줄어들면, 주가 역시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회사도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고, 오래전부터 신작을 준비 중이었다.
“신작 발표를 서두르는 게 좋겠군.”
“알겠습니다.”
진태경 사장은 강선우의 인터뷰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재밌는 게임을 만들어 돈을 벌겠다고?’
그에게도 이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게임성이니 재미니 운운하는 것은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거대 게임사를 이끌어나가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과거 브라더후드를 PC에서 서비스하던 시절 LD스튜디오는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브라더후드M을 출시한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전세계를 뒤져봐도 브라더후드M보다 많은 돈을 번 게임은 몇 안 된다. 그만큼 브라더후드M은 압도적인 매출을 자랑했고, 이는 최대다수의 최대과금을 유도한 BM 덕분이었다.
돈 있는 유저들에게 마음껏 돈을 쓸 수 있게 하는 게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게임이란, 곧 돈을 많이 버는 게임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브라더후드M이야말로 최고의 게임이었다.
‘나는 잘못되지 않았어. 진정한 게임이 뭔지를 보여주마.’
* * *
판교에 위치한 LD스튜디오 본사에서 신작 발표를 위한 쇼케이스가 열렸다.
이 쇼케이스는 온라인에서도 생중계됐다.
기자와 관객들이 모인 가운데, 진태경 대표가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는 MMORPG를 사랑하는 한 명의 게이머로서 LD스튜디오의 신작을 소개하려 합니다. MMORPG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세상을 탐험하고,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누군가는 거대한 세력을 만들고, 누군가는 부를 축적합니다.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세상. 그것이 바로 제가 꿈꾸는 MMORPG입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것만으로도 이 자리에 참석한 주주들은 강렬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해.’
조명이 꺼진 가운데 웅장한 음악과 함께 로고가 떠올렸다.
진태경 사장은 자신 있게 신작을 소개했다.
“LD스튜디오가 개발 중인 신작, 브라더후드U를 공개합니다!”
쇼케이스를 지켜보던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이런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태경 사장은 계속해서 설명했다.
“이번 브라더후드U의 콘셉트는 유니버스(Universe)로, 전세계 게이머들이 다 같이 즐기는 것을 목표로 개발했습니다. 브라더후드U는 브라더후드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전쟁, 혈투, 대립, 화합, 평화의 가치를 담고 있는, LD스튜디오가 그동안 쌓아온 모든 노하우를 집대성한 브라더후드 IP의 결정판입니다. 브라더후드U는 권역을 나눠 통합 서버로 운영되며, 전세계 게이머들이 국가별로 진영전을 벌일 수 있는 시스템을 새로 도입했습니다. 이를 통해 LD스튜디오는 글로벌로 확장해 나가겠습니다.”
* * *
[LD스튜디오, 신작 브라더후드U 발표!]
[진태경 대표, 브라더후드U야말로 MMORPG의 시작과 끝]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최종병기, 브라더후드U!]
[브라더후드U, 글로벌 매출 견인하나?]
LD스튜디오의 신작 발표에 여론은 바로 반응했다.
-ㅅㅂ 신작 발표한다기에 기대했더니, 또 브라더후드였음.
-기대한 니가 ㅂㅅ.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또야? 또 브라더후드라고?
-ㅋㅋㅋ 이 새끼들은 브라더후드 말고 만들 수 있는 게 없냐?
-태경아! 진태경아! 아직도 똥오줌을 못 가리느냐?
-김치찌개 질렸다고 하니까, 김치전골 내오는 센스.
-어허! 일단 한입 잡솨봐~
-아! 꺼져!! 브라더후드 이제 안 한다고!!!
-이게 K-과금을 글로벌로 확장하겠다는 얘기랑 뭐가 달라?
-그런데 저게 진짜 글로벌에서 먹힘?
-ㅎㅎ 버거 형들은 저딴 과금이면 찍먹도 안 함.
-K-과금 한번 맛보면, 없던 혐한도 생겨날 듯.
-브라더후드 BM이 글로벌에서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능지가 신기하다.
게임사의 신작 발표는 보통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기 마련.
하지만 LD스튜디오는 이번 쇼케이스를 통해 새로운 IP를 만들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때문인지 쇼케이스 이후 주가는 더 폭락해 신저가를 경신했다.
* * *
난 브라더후드U 쇼케이스를 보며, 선우에게 물었다.
“저거 잘될 것 같아?”
“글쎄다. 세계 시장에서는 씨알도 안 먹히겠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그럭저럭 히트칠 것 같은데.”
정답이다.
이런 걸 보면 아무리 욕해도 할 사람들은 하는 모양이다.
“그보다는 게리 리처드슨 신작이 좀 궁금하던데.”
예상치 못한 반응에 LD스튜디오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부랴부랴 게리 리처드슨의 신작 ‘스타스트림’의 티저를 공개했다.
그나마 이건 반응이 괜찮았다.
안타깝게도 난 저 게임의 미래를 알고 있다.
게임도 우주로 날아가고, 개발자도 우주로 날아가고…….
“…….”
뭐, LD스튜디오야 어찌 되든 알 바 아니다. 우리 일이 중요하지.
난 선우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넌 나랑 시애틀에 가자.”
“뭔 소리야? 나 돌아가서 일해야 하는데.”
“원격으로 해도 되잖아.”
“그렇긴 한데…… 시애틀에는 무슨 일로?”
“아이스스톰 인수해야지.”
“진짜?”
SW게임즈는 인디 게임사로 분류될 만큼 소규모 스튜디오이자, 이제 막 오리지널 게임을 성공시킨 신생 게임사다.
반면 아이스스톰은 직원수 5700명에 1년 매출이 30억 달러가 넘는 초거대 게임사.
만약 SW게임즈가 아이스스톰을 인수한다면 그야말로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셈이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컨티뉴 캐피탈의 자본이 뒤를 받쳐줄 테니까.
난 진지하게 말했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맥스비전 스톰 전체를 인수하는 건 불가능해.”
“그렇겠지.”
“하지만 아이스스톰만 인수하는 거라면 가능할 거야.”
“어떻게?”
“분할해서 매각하라고 하는 거지.”
맥스비전 스톰은 맥스비전, 아이스스톰, 퀸닷컴 세 회사의 연합 기업.
정확히는 맥스비전이 다른 두 회사를 자회사로 지배하고 있는 형태다. 각각의 게임사는 CEO도 따로 있고, 본사도 따로 있고, 직원도 따로 뽑는다.
“그래서 맥스비전 스톰을 찾아가게?”
“아니. 먼저 NS를 갈 거야.”
내 말에 선우는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 아이스스톰을 인수하는데, 왜 NS를 찾아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