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화. 콘솔 출시 (2)
게임 개발사들은 레전드덱 출시에 큰 관심을 가졌다.
레전드게임즈에서는 메이저는 물론 인디 개발사들에게 시제품을 보내주거나, 기기를 구매할 수 있는 코드를 따로 보내주었다.
때문에 개발자들은 비교적 손쉽게 레전드덱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다들 직접 만져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게 정말 1세대 제품이라고?”
“레전드게임즈가 엄청 투자한 모양인데.”
“완성도가 장난 아니야.”
“기기도 잘 만들었지만, 리눅스를 기반으로 한 레전드OS가 더 놀라운데.”
“오오! 고사양 게임도 30프레임 이상으로 부드럽게 돌아가.”
레전드스토어가 저렴한 수수료를 무기로 여러 개발사들을 끌어들이긴 했지만, 여전히 입점을 주저하는 개발사들이 적지 않았다.
레전드게임즈가 엔플과 구블과 인앱결제 수수료를 놓고 소송을 벌이고 있기 때문.
엔스토어와 플레이마켓에서 괜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레전드덱의 판매 돌풍이 심상치 않다.
“정말로 엔플과 구블의 독점을 깰 생각인 모양인데.”
“신작을 레전드스토어에 동시 출시하는 것도 검토해봐야 하지 않을까?”
변화의 흐름을 감지한 개발사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 * *
[레전드덱! 콘솔 시장에 지각변동 일으키나?]
[레전드덱 평가, 압도적 긍정!]
[한동안 품귀 현상 지속될 듯……]
쏟아지는 긍정적인 기사에 탐 스콧 CEO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완전 대박입니다!”
켄은 나를 보며 물었다.
“이 정도로 잘될 줄 예상하셨습니까?”
“어느 정도는요.”
내가 잘 팔릴 거라 자신한 이유는 1회차 때 스트림덱의 흥행을 봤기 때문이다.
레전드덱은 그것보다도 훨씬 잘 만들었다. 셀룰러 모델에 모바일 게임도 가능하니까.
그래서 잘 팔릴 거라 예상하긴 했는데, 이건 그 예상을 뛰어넘었다. 설마 첫날…… 아니,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100만 대가 전부 팔릴 줄이야.
높은 완성도에 호평이 자자했지만, 부정적 의견도 일부 있었다.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히는 건 무게와 짧은 배터리 시간.
저사양 모바일 게임의 경우 7시간, 고사양 게임을 최대 옵션으로 돌릴 경우 2시간이 한계다.
뭐, 이건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거고…….
현재 초도 물량은 전부 게임스타트를 통해 유통했다.
인수 계약서에 사인했을 때부터 출시 준비를 착착 해왔기 때문에 유통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그럼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 매장의 직원은 물량을 빼돌려 리셀러에게 팔았다가 걸리기도 했고, 배송이 지연되거나 분실되거나 파손되는 사태도 여럿 발생했다.
당연히 환불을 해주었지만, 구매자들은 돈이 아닌 제품을 보내달라며 항의했다.
역시 이 정도로 많은 물량을 생산하고 유통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미국에서는 게임스타트와 유성전자가 함께 유통하고, 그 외 다른 지역은 전부 유성전자가 맡기로 했다.
판매마진이 크진 않지만, 이를 통해 유성전자 기기들의 게이밍 성능을 함께 홍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유성디지털프라자에 시연대 등을 설치하고, 스마트폰, 게이밍노트북 할인 이벤트도 벌일 계획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유재호 회장은 바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 * *
레전드덱 초도 물량이 매진된 것만큼이나 좋은 소식이 있다.
바로 PC 게임사들은 물론이고, 모바일 게임사들 역시 속속들이 레전드게임즈에 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레전드덱을 출시한 목적은 콘솔을 팔아 이익을 내기 위함이 아닌, 레전드게임즈의 생태계를 키우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이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성공을 거둔 거라 할 수 있다.
개발사들 입장에서도 선택지가 많아지는 것인 만큼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경쟁은 언제나 옳은 법이지.
기본적으로는 PC 게이머들의 수요를 노리고 만든 제품이지만, 의외로 모바일 게이머들의 반응도 열광적이었다.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요즘 모바일 게임들 사양이 장난 아니거든.”
초창기 모바일 게임은 폰의 성능 부족으로 인해 퍼즐이나, 리듬 게임 같은 라이트 게임이 주류였다.
그러나 현재는 RPG, 어드벤처, FPS, 시뮬레이션 등 각종 고사양 게임들이 늘어나는 추세.
오죽하면 모바일 게임을 PC로 돌리겠는가?
고사양 모바일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값비싼 최신 폰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두가 최신폰을 쓰는 건 아니고, 누군가는 터치가 아닌 컨트롤러로 조작하고 싶어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399달러의 레전드덱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스콧 CEO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디.
“통신사 쪽과도 협의하고 있습니다.”
미국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통신사가 요금 약정과 기기를 묶어서 판매한다. 따라서 일부 통신사와 협의해 약정으로 출시할 생각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에 다들 기뻐했지만, 딱 한 명만은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난 선우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그렇게 긴장할 것 없어.”
선우는 씨익 웃었다.
“훗, 긴장은 무슨. 이 몸이 긴장 같은 걸 할 리가.”
“…….”
그런데 왜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려?
얘가 이렇게 긴장하는 이유는 레전드덱 출시와 함께 SW게임즈의 신작이 출시됐기 때문.
보통 게임은 출시 전 기자와 리뷰어에게 미리 배포한다. 그래야 출시와 동시와 기사와 리뷰가 뜨니까.
그러나 판타지아 테일즈R은 공개 전까지 꽁꽁 감춰져 있었다.
심지어는 클로즈 베타와 오픈 베타도 건너뛰었다.
그만큼 게임의 완성도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개발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시네마틱 추가하고 BM 구조만 손본다더니, 뭐 그렇게 오래 걸렸어?”
선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하려고 했지. 그런데 막상 손을 대보니 고쳐야 할 게 한둘이 아니더라고.”
이번에 새롭게 출시하며 뼈대만 남기고 싹 다 뜯어고쳤다고 한다.
이쯤 되면 리메이크(Remake)가 아니라, 리부트(Reboot)나 다름없었다. 원래 게임과 헷갈리지 않도록 이름도 ‘판타지아 테일즈’가 아닌, ‘판타지아 테일즈R’로 지었다. 약자는 FTR.
“예전에 못 넣었던 콘텐츠도 집어넣었고.”
“뭘 집어넣었는데?”
“사냥, 영지 꾸미기, 유물 수집 등등.”
“전에는 왜 안 넣었는데?”
“경영팀에서 돈 안 되는 건 싹 빼라고 했으니까.”
“…….”
역시 LD스튜디오. 이 정도로 한결같은 회사도 흔치 않다.
선우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이번에도 시간만 충분했으면 좀 더 넣었을 텐데.”
“나중에 업데이트하면서 넣으면 되지.”
그렇게 DLC와 확장판이 출시되는 거다.
어쨌거나 선우가 회사에서 먹고 자며 개발에 매달린 덕분에 판타지아 테일즈R은 레전드덱의 출시 타이틀로 낼 수 있었다.
레전드덱 독점으로만 낸 건 아니고, PC와 모바일로도 출시했다.
PC는 레전드스토어, 모바일은 코스믹스토어를 통해 서비스한다. 콘솔 쪽은 출시 예정으로…… 아직 업체들과 협의 중이다.
SW게임즈는 이미 게임 업계에서 유명했다.
그 이유는 컨티뉴 캐피탈에 투자해 설립한 데다가, 블록밸리에서 출시한 게임들이 대히트를 쳤기 때문.
그런 SW게임즈가 첫 오리지널 게임이자 레전드덱의 런칭 타이틀을 출시하자, 수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기본 플레이는 무료지만, 인앱결제가 존재한다.
K-게임답게 뽑기현질 시스템을 탑재……하지는 않았고, 대신 배틀패스를 선택했다.
과거 MMORPG에서 흔히 하던 정액제라고 볼 수 있다.
종류는 한 가지 월 9.9달러로 책정했고, 첫 달은 무료다.
“예전에는 3만 원씩 하지 않았나?”
“그 시절에는 그랬지.”
“그걸로 개발비, 서버비, 운영비가 충당돼?”
“그래서 스킨이랑 이것저것 팔아. 물론 캐릭터 성능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 아이템들만.”
“랜덤박스는?”
“당연히 있지. 강화도 확률이고. K-게임사들 대부분이 랜덤박스가 게임의 재미 요소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그 말은 맞아. 그걸 돈 받고 파는 새끼들이 문제지.”
“전에는 돈 받고 팔았잖아.”
“그래서 쫄딱 망했지. 전혀 다른 게임에 브라더후드식 BM을 쑤셔 넣으니 안 망할 리가.”
선우의 표정이 급우울해졌다.
“아아, 잊고 있었는데, 그때 봤던 댓글이 다시 생각났어.”
“어떤 댓글이었는데?”
“게임 역겹네, 개발자 아이디어 고갈 났냐, 유저들 통수 치냐, 동접자 떨어져 나가는 소리 들린다, 결제할 가치를 못 느끼는 게임이다, 이딴 게임은 공짜로 하는 게 답이다, 거저 줘도 안 할 개쓰레기 게임, 올해의 개망작, 개발자 양심 어따 팔아먹었냐, 내가 발로 만들어도 이거보다는 잘 만들겠다 등등.”
“……그, 그만해.”
듣기만 했는데도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왠지 내가 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선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던 게임을 다시 세상에 내놓게 될 줄이야. 그래도 그때는 회사 때문이라는 핑계가 있었는데, 이번에 망하면 그런 핑계도 못 대겠네.”
이렇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놀리기가 미안하다.
“걱정 마. 잘되겠지. 홍보도 열심히 하고 있잖아.”
레전드게임즈는 레전드스토어 메인페이지에 띄워 홍보했고, 게임스타트 매장에도 홍보 포스터를 부착했다.
유성전자 모바일 사업부 역시 코스믹스토어를 통해 밀어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홍보를 한다 한들 게임이 재미없으면 아무 소용없다.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지 나도 좀 궁금하다.
* * *
판타지 테일즈R은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 출시됐다.
첫날에만 100만 명의 가입자를 끌어모았다. 이것만 해도 엄청난 기록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입자와 동접자 수는 점점 늘어났다.
게임스파크 편집장 짐 슈나이더는 직접 리뷰 기사를 작성했다.
[(게임스파크) 난 이 게임이 한번 망했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전략)
이름에서 ‘R’이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듯, 판타지아 테일즈R은 전에 출시됐던 게임을 리메이크해서 재출시했다.
대부분은 이 사실을 잘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만 출시됐고, 글로벌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전에 운영이 종료되었기 때문.
게임이 망했던 이유는 다양하다.
결제를 하지 않으면 게임 진행이 불가능한 수준의 악랄한 과금 유도, 그로 인한 밸런스 붕괴, 부실한 콘텐츠, 확률조작이 의심될 정도의 랜덤박스 등등.
그러나 결정타가 된 것은 바로 운영 미숙이다. 당시 운영진은 아이템을 복사해서 팔아먹었고, 이를 신고한 유저의 계정을 차단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중략)
우리는 왜 MMORPG를 사랑했을까?
RPG란 롤플레잉 게임. 한마디로 역할극이다. 우리는 게임 속에서 공주를 구하는 기사도 될 수 있고, 마왕과 싸우는 마법사가 될 수도 있고, 세계를 구하는 용사가 될 수도 있다.
동료들과 함께 모험을 떠나고, 새로운 지역을 탐험하고, 수많은 유저들이 힘을 합쳐 보스를 물리치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미다.
판타지아 테일즈R은 처음 MMORPG를 접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이스스톰의 월드 오브 워로드(World of Warlords)와 LD스튜디오의 브라더후드가 얼마나 많은 게이머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는가? (오해하지 말기를. 그때의 브라더후드와 지금의 브라더후드M은 전혀 다른 게임이다)
총평을 하자면 판타지아 테일즈R은 MMORPG의 장점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게임으로, 방치형 게임(Idle Game)이 가득한 시대에 한 줄기 빛과도 같다.
MMORPG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저 그동안 할 만한 게임이 없었을 뿐이다.
리딧을 비롯한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판타지 테일즈R에 대한 유저들의 반응이 속속 올라왔다.
-와! 짐 슈나이더가 이렇게 칭찬하는 건 오랜만인데.
-MMORPG 때려치운 지 오래됐는데, 한번 해봐야겠다.
-이거 졸라 재밌음.
-요즘 게임 불감증에 걸려있었는데, 판타지아 테일즈R로 치유함.
-오랜만에 밤새워서 게임했네~
-그동안 사놓고 안 한 게임 하려고 레전드덱 샀는데, 정작 사놓은 게임들은 손도 못 대고 하루 종일 판타지아 테일즈R만 하는 중.
-난 레전드덱 못 사서, PC로 하는 중 ㅜㅜ
-아니, 이렇게 재밌는 게임이 대체 왜 망했던 거야?
-그건 LD스튜디오에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