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화. 게임스타트 (13)
샹그릴라 리서치 CEO 오웬 가필드가 나섰다.
“컨티뉴 캐피탈의 게임스타트 인수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체임벌린 위원장이 물었다.
“어떤 문제입니까?”
“컨티뉴 캐피탈은 현재 게임업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게임스타트는 미국 최대 게임유통 회사입니다. 컨티뉴 캐피탈의 인수는 경쟁사들에게 위협일 뿐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큰 피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FTC에서 인수를 불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FTC(연방거래위원회)는 우리나라로 치면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장 스타트업을 인수한 것도 아니고, 엄연히 상장기업을 인수한 거다. 따라서 FTC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인수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거나, 인수 회사가 제대로 경영을 하지 못하고 피인수 회사의 부실을 키울 위험이 있거나, 독과점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피해가 예상될 경우 FTC는 인수를 불허하거나, 주식을 강제 매각시킬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인수 과정은 지극히 합법적이고, 인수 후 게임스타트의 돈을 빼가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돈을 투자해 기업을 정상화시킬 계획이니까.
그나마 걸 만한 건 독과점.
실제로 이것 때문에 인수가 불발 나는 경우가 가장 많다. 그러니 이걸 물고 늘어지는 거겠지.
일단 뭐라도 트집을 잡겠다는 생각이다.
난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컨티뉴 캐피탈이 투자한 게임사들은 게임 개발, ESD, 게임 엔진과 관련이 있지, 오프라인 판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따라서 게임스타트 인수는 독과점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또한 소뉴의 플레이스테이트나 NS의 Z박스의 경우 게임스타트의 유통망을 통해 판매된 물량이 전체 판매량의 채 3퍼센트도 되지 않았습니다.”
“컨티뉴 캐피탈이 레전드덱을 출시할 경우 콘솔 경쟁사들에게 불이익을 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는 소비자들의 피해로 연결될 겁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합니까?”
“레전드덱은 콘솔만 출시할 뿐 따로 게임 디스크를 출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경쟁사들의 콘솔과 디스크 판매를 막을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소뉴, NS, 린텐도 셋 중 한 곳에라도 보이콧을 당한다면 망하게 될 겁니다.”
체임벌린 위원장이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FTC가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애초에 개별 종목 때문에 주말에 조정회의가 열렸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당국이 이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
그의 말대로 현재 SEC(증권거래위원회)뿐만 아니라, CFTC(상품선물거래위원회)와 FTC(연방거래위원회)도 각자 조사에 나선 상황.
어차피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한참이 걸릴 테지만.
그 뒤를 이어 멀린 캐피탈 CEO 게빈 멘더슨이 나서서 열변을 토했다.
“주가 폭등으로 인해 여러 헤지펀드가 매우 심각한 위기에 몰려있습니다.”
난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런. 그러니까 공매도 투자는 신중하셨어야죠.”
그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계속 말했다.
“헤지펀드가 파산할 경우 피해가 업계 전반으로 커질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헤지펀드에는 누가 투자할까?
돈 많은 개인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연기금과 재단 등 기관들 자금이다. 심지어 여기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 MIT 등 미국 유명 대학들의 기부금도 들어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 대학들은 기부금을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게 가능하고, 대부분의 대학들은 이를 펀드나 주식에 투자했다.
“펀드가 파산할까 봐 걱정이 되신다면 저에게 좋은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여기 계신 헤지펀드 운영자들께서 사재를 털어 지원하는 겁니다.”
“…….”
내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멘더슨 CEO는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뭐라구요?”
“헤지펀드들은 그동안 막대한 수익을 냈고, 운영자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성과급으로 챙겨갔습니다. 멀린 캐피탈의 경우 작년에 무려 38퍼센트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했고, 멘더슨 씨께서는 3억 달러를 받아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받아간 돈을 다시 회사에 넣는다면,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 말에 동의하시는 분들은 손을 들어주시기 바립니다.”
당연하게도 아무도 들지 않았다.
멘더슨 CEO는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난 그 모습을 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개인투자자들은 적어도 자신의 돈을 넣고 이 게임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자기 돈 한 푼 안 건 상태에서, 문제가 생기면 금융계 전체가 위기에 처할 거라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시장을 걱정한다면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사실 엄밀히 따지면 자기 돈 한 푼 안 건 것은 아니다.
CEO들은 대부분은 펀드에 일정 지분을 가지고 있으니까. 어쨌거나 이런 상황에서 자기 돈을 쏟아붓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
체임벌린 위원장은 지친 표정으로 이마를 매만지며 말했다.
“30분 동안 휴식하겠습니다.”
대략 세 시간 정도에 걸친 회의가 잠시 중단되고,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몸을 풀려고 하는데, 체임벌린 위원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잠깐 커피 한 잔 하시겠습니까?”
회의에서 한 발언은 전부 기록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기록되지 않을 만한 말을 하고 싶다는 뜻이겠지.
“알겠습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우리는 따로 미팅실에 앉았다.
SEC 위원장과 둘만 따로 있으니 좀 어색한 느낌이 든다.
“뭐로 드시겠습니까?”
“아이스 아메리카노면 됩니다.”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안 그래도 목이 타던 참이었다.
비서로 보이는 남성이 커피를 내왔고, 난 바로 들고 마셨다. 몇 모금 마시니 좀 살 것 같다.
“미스터 한에 대한 얘기는 전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난 웃음을 지었다.
“좋은 얘기였으면 좋겠군요.”
그는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컨티뉴 캐피탈은 이번 일 덕분에 큰 이익을 얻었겠군요.”
난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게임스타트를 인수한 목적은 어디까지나 콘솔 판매와 신규 사업을 위해서지, 주가폭등으로 시세차익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뭐, 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은 주가 폭등으로 시세차익을 얻기 위함이 맞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적자 회사를 인수했을 리 있겠는가?
“확실히 자료를 보면 인수 타이밍에 폭등이 일어난 것은 우연처럼 보이는군요. 어쨌거나 천문학적인 수익을 얻게 된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저는 이번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책임 소재와 잘잘못은 나중에 밝혀지게 될 겁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시장의 피해를 막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주식 강제 매각과 인수 취소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꽤나 강경한 발언이다.
SEC는 누구의 편일까? 그리고 체임벌린 위원장은 누구의 편일까?
워싱턴의 금융관료들이 월스트리트와 긴말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금융관료들이 퇴직 후 금융회사의 이사나 고문으로 들어가고, 금융회사에서 일하던 이들이 직을 내려놓고 정부 내각에 참여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 역시 임기 이후의 일을 생각한다면, 헤지펀드의 편을 들 수밖에 없겠지.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필요하다면요.”
원래 법이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규제 당국이 하겠다는데 누가 막겠는가?
“당국의 결정이라면 저희는 그에 따를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 뒤의 일을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내 말에 그는 흰 눈썹을 꿈틀거렸다.
“무슨 뜻입니까?”
“이게 기업들끼리의 싸움이라면 어떻게 마무리되든 다들 별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천만 명이 넘는 개인투자자들이 얽혀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헤지펀드들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린후드 매수 차단 말이군요.”
“예. 게임이 불리해지자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룰을 바꾸고 골대를 옮겼습니다. 이는 금융시장 전체의 신뢰를 해치는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그게 실패하자 이제는 컨티뉴 캐피탈과 개인투자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만약 SEC가 헤지펀드 편에 서서 일을 처리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대중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저희는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대중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요.”
“대중의 관심은 쉽게 가라앉기 마련입니다.”
“그거야 남의 일일 때 얘기죠. 내 돈이 걸려있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 사안이야 어떻게 되든 별 상관없다.
그런데 내 주식이 떨어지는 꼴을 누가 가만히 지켜보겠는가?
“정치권은 어떨까요? 의원들이 대중들의 분노를 못 본 척할까요, 아니면 여기에 편승해 자신의 지지율을 올리려 할까요? 이미 다수의 의원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성명서를 발표했고, 상하원 합동으로 조사에 나서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뒷배 없이 정부 기관과 맞서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다행히 나는 워싱턴 정가에 연줄이 좀 있다.
바로 마크 필립스 상원의원.
“저희는 SEC뿐 아니라, 마크 필립스 상원의원실에도 관련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나에 대해 알고 있다면, 내가 필립스 상원의원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
그래서인지 그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졌다.
“현재 개인투자자들의 분노는 극에 다다랐습니다. 지금 월스트리트 에이프의 분위기가 어떤지 아실 겁니다. 지금도 ‘유인원들은 뭉치면 강하다’고 소리치며, 월요일 시장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처음 개인투자자들이 ‘유인원들은 뭉치면 강하다’고 외치며 주식 매수를 독려할 때만 해도 모두가 이를 비웃었다.
그러나 이 구호는 이제 헤지펀드들에게는 공포가 되었다.
정말로 월요일 장이 열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주말에도 모여 회의를 하고 있는 거고.
“이런 상황에서 강제로 주가를 내리는 조치를 취한다면, SEC가 그 분노를 뒤집어쓰게 될 겁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일에 책임을 져야겠죠.”
“…….”
참고로 책임은 보통 수장이 지기 마련이다.
“그럼 이대로 시장이 큰 충격을 받거나 무너지게 놔두라는 겁니까?”
이 경우 역시나 수장이 책임을 져야한다.
이번에 한탕 하고 끝낼 게 아닌 이상, 규제 당국과는 어느 정도 친분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저 역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투자자들이 납득할 만한 방향으로 진행돼야겠죠.”
체임벌린 위원장은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컨티뉴 캐피탈이 생각하고 있는 방법은 뭡니까?”
“일단 저희는 주식을 매각할 생각이 없습니다. 주식을 팔아서 차익을 챙겼다가는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대체 뭘 어쩌자는 겁니까?”
금방이라도 화낼 것 같은 모습에, 난 재빨리 다음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매각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라면 한번 생각해볼 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