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화. 게임스타트 (11)
지금 상황이 1회차 때와 비슷해 보이지만, 세부적으로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먼저 1회차 때 이 사태의 전면에 나선 것은 멀린 캐피탈과 샹그릴라 리서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샤크 인베스트먼트다.
공매도 수량도 그때보다 크게 늘었다.
금요일 장 마감 직전 그린후드 앱에서 개인투자자들의 매수를 차단한 것은 1회차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지만 1회차 때는 주가가 급등락 하는 사이, 일부 헤지펀드들이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서면서 포지션을 청산해 공매도 수량을 크게 줄였다.
덕분에 숏스퀴즈가 약해졌고, 이후 주가는 100달러 대로 폭락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헤지펀드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매도를 쏟아냈고, 공매도 수량은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그 이유는 개인투자자들이 베팅닐을 중심으로 뭉친 것처럼, 헤지펀드들은 마이클 프레스턴을 중심으로 뭉쳤기 때문.
즉, 마이클 프레스턴으로 인해 1회차 때와는 다른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만약 컨티뉴 캐피탈이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주가를 완전히 무너뜨린다는 이들의 계획은 성공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마이클 프레스턴이 이번 일의 전면에 나선 걸까?
1회차 때, 샤크 인베스트먼트는 게임스타트 공매도를 했다가 조기에 바로 청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장 많은 양을 공매도했고,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난 잠시 생각해본 다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데이비드 록허트 때문이구나.
원래 1회차 때 데이비드는 샤크 인베스트먼트에서 일했다. 아마 그가 회사에 있었다면 마이클 프레스턴에게 조언했을 테고, 초기에 바로 손절하고 빠져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데이비드는 컨티뉴 캐피탈에서 일하는 중.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니요. 그냥…….”
데이비드가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다.
잡은 물고기라고 방심하지 말고, 더 잘해줘야지.
결국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샤크 인베스트먼트가 파산 위기에 내몰리게 된 것은 내 잘못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긴 해도 죄책감은 눈곱만큼 들지 않았다.
모든 투자설명서 하단에 적혀있듯 투자의 손실은 본인 책임이다.
누가 공매도하라고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니고.
SEC가 조정회의를 여는 것 역시 1회차 때는 없었던 일.
출석에 앞서 먼저 자료 제출을 요구받았다.
SEC가 요구한 자료의 양은 엄청났다.
게임스타트의 인수 계약서는 물론이고, 송금 내역, 그리고 협상 과정에서 오간 이메일과 메시지, 통화 내역 등등.
기업 활동에 중요한 정보까지 포함되어있지만 어쩌겠나?
규제 기관이 요구하면 따를 수밖에.
아마 게임스타트 CEO 미켈 코헨에게도 같은 연락이 갔을 것이다.
다행히 이런 상황이 생길 걸 대비해 우리는 이미 자료를 다 준비해 놓았다.
난 이를 SEC로 보냈다.
데이비드는 나에게 물었다.
“이런 상황이 생길 걸 예상하고 계셨습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사태가 심각해지면 당국이 나설 거라고 예상했죠.”
게다가 다음 주는 하필 옵션만기일이다.
주가가 어떤 변동성을 보일지 알 수가 없다.
월스트리트 에이프 유저들은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자고 결의했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시장이 붕괴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 관계 당국이 나서는 수밖에.
“어떻게든 해결은 해야죠.”
게임스타트 인수는 대박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평가금액이 30배가 올랐다. 문제는 아무리 주가가 올랐어도 이를 시장에 쉽게 팔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개인들처럼 매수에 뛰어들었다면, 얼마든지 비싼 가격에 매도해 차익을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것은 기업 인수.
컨티뉴 캐피탈이 대주주인 만큼 멋대로 주식을 매도했다가는 주가가 폭락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가 조작의 오명을 뒤집어쓸 테고, 투자자들의 분노가 우리에게로 향할 수도 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은 우리는 레전드덱 출시를 앞두고 있고, 게이머들의 민심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국에서 강제로 주식을 매각하라고 압박한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겠지.
난 웃으며 말했다.
“뭐, 우리 입장에서는 잘된 일 아니겠어요?”
* * *
[(WST) SEC, 게임스타트 사태에 대한 조사 시작]
(전략)
……투자환경의 변화로 인해 밈 주식의 파급력은 증시를 뒤흔들 위력을 지니게 됐다.
개인투자자들은 월스트리트 에이프에 모여 주식 매수를 결의했고, 그린후드 앱을 통해 마치 게임을 하듯 투자를 즐겼다.
한번 이슈가 되기 시작하자, 투위치, 에이튜브, 톡틱, 페이스노트, 린스타그램 할 것 없이 게임스타트와 관련한 얘기가 인기를 끌었고, 알렌 에버하트 같은 유명인들까지 언급하며 다시 밈으로 회자되었다.
이는 다시 주가를 끌어올리는 순환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게임스타트는 처음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하는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산 주식으로 집계됐다.
정상에서 구르기 시작한 눈 뭉치가 산 아래 도착할 때쯤에는 마을을 뒤덮을 정도의 거대한 눈덩이가 된 셈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SEC는 즉각 조사에 나섰다.
위원들은 관련자들을 화상으로 소환해 질문했다.
SEC 위원: 월스트리트 에이프에 지속적으로 글과 영상을 올려 매수를 독려한 것이 주가 조작이라 생각하지 않습니까?
닐 라우디츠: 아니요. 헤지펀드들은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대량으로 공매도한 다음, 매도 리포트를 쏟아냅니다. 그것도 모자라 언론과 결탁해 그 기업은 망할 거고, 주가는 폭락할 거라는 주장을 끊임없이 되풀이합니다. 이로 인해 해당 기업은 대출과 투자를 받기 힘들어지고, 투자자들은 떠나갑니다. 그렇게 기업이 망하면 헤지펀드들은 큰돈을 벌어들입니다. 이러한 행위가 정당하다면, 개인들이 게시판에 글을 올려 매수를 독려하고, 주식을 팔지 말자고 하는 것 역시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겠습니까?
SEC 위원: 컨티뉴 캐피탈의 인수에 대해 사전에 들었거나,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까?
닐 라우디츠: 공시가 나오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따라서 이와 관련해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도 없습니다.
SEC 위원: 게임스타트가 가치가 있는 기업이라 생각합니까?
닐 라우디츠: 예. 저는 게임스타트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할 거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컨티뉴 캐피탈은 게임스타트가 지닌 가치와 잠재력을 알아보고 인수하지 않았습니까? 전 게임스타트의 미래를 믿습니다.
SEC 위원: 어째서 게임스타트에 투자했습니까?
닐 라우디츠: 전 이 주식이 좋습니다.(I like the stock.)
하임 코럴 그린후드 CEO에게도 위원들이 질문이 쏟아졌다.
SEC 위원: 게임스타트 매수 차단 배경에 외부의 압력이 있었습니까?
코럴 CEO: 아니요. 없었습니다.
SEC 위원: 매수 차단 조치 이전에 헤지펀드나 관련자들에게 연락을 받았습니까?
코럴 CEO: 아니요.
SEC 위원: 직원들에게 동일한 질문을 했을 때도 같은 대답이 나올 거라 생각합니까?
코럴 CEO: 그렇습니다.
SEC 위원: 증거금이 부족했다면 다른 주식의 매수를 차단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코럴 CEO: 증거금 부족은 게임스타트 매수 주문이 몰리며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우선 게임스타트 매수를 중단시키고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었습니다.
SEC 위원: 거래 차단이 불가피한 조치였다면, 어째서 매수와 매도를 함께 차단하지 않고 매수만 차단한 겁니까?
코럴 CEO: 매도 차단은 투자자들의 자산에 대한 접근을 막는 행위로,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SEC 위원: 매수 차단은 쉬운 결정이었다는 걸로 들리는군요.
코럴 CEO: 아, 아닙니다. 매수 차단도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SEC 위원: 해당 조치가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끼칠 거라는 사실을 인지했습니까?
코럴 CEO: 우리 회원들의 대부분은 주식투자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투자자가 폭등하고 있는 주식을 무턱대고 매수했다면, 이는 큰 손실로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투자자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중략)
SEC는 이 조사에 대한 내용을 바탕으로 일요일에 컨티뉴 캐피탈과 헤지펀드가 참석하는 조정회의를 열기로 했다.
* * *
SEC의 본부는 당연히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있다.
그러나 미국 땅이 워낙 넓은 만큼 전국에 총 11곳의 지부를 두고 있다.
난 차를 타고 SEC 뉴욕 지부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직원이 대기 중이었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직원은 서류를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진실만을 말하고 비밀을 유지하고 어쩌고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난 대충 읽어본 다음 서명했다.
난 직원을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이미 헤지펀드 대표들이 모여있었다.
멀린 캐피탈 CEO 케빈 멘더슨과 샹그릴라 리서치 CEO 오웬 가필드의 얼굴이 보였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록허트 대표가 올 줄 알았는데, 내가 와서 당황한 듯하다.
나를 보는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지만, 난 가볍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게빈 멘더슨이 입을 열었다.
“록허트 대표는……?”
“중요한 일이 있어서 공동대표인 제가 대신 왔습니다.”
메기랑 놀아주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한 남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나이는 40대 초반.
키는 190센티가 살짝 넘었고, 각진 얼굴에 떡 벌어진 어깨를 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마이클 프레스턴.
금융재벌 프레스턴 가문의 장남이자, 샤크 인베스트먼트의 CEO로 월스트리트 최고의 유명인이었다.
안타깝게도 요즘 데이비드 록허트에 밀려 2위로 떨어진 모양이지만.
TV나 언론에 나온 모습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참고로 그의 동생은 본 적이 있다.
바로 쿨라우드(스노우 크래시)의 창업자 알렉스 프레스턴.
게임스타트 공매도로 큰 피해를 입은 헤지펀드는 10여 곳.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곳이 샤크 인베스트먼트다.
그 이유는 당연히 가장 많은 공매도를 했기 때문.
난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컨티뉴 캐피탈의 한미루입니다.”
“한미루…….”
그는 내 이름을 한번 중얼거리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붙잡았다.
“반갑습니다. 샤크 인베스트먼트 대표 마이클 프레스턴입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회의실은 마치 재판장 같은 분위기였다.
속기사가 앉아 있었고, 한쪽에서는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되지만, 이 회의에서 한 발언은 전부 기록으로 남는다.
이걸 보니 SEC가 수사와 처벌 권한을 지닌 준사법기관이라는 게 새삼 실감이 난다.
앉아서 기다리자 흰색 머리에 흰색 수염을 깔끔하게 기른 풍채 좋은 할아버지가 들어와 중앙에 앉았다.
외모만 보면 여기보다는 흰색 양복을 입고 치킨가게 앞에 서있는 게 어울릴 듯하다.
“저는 SEC 위원장 랜디 체임벌린입니다. 다들 바쁘실 텐데 이 자리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석을 안 할 경우 받게 될 불이익을 생각한다면, 참석할 수밖에.
체임벌린 위원장은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주말에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부른 이유는 게임스타트 사태와 관련해 해결책을 찾기 위함입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