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화. 게임스타트 (8)
그린후드의 매수 버튼이 비활성화된 것과 함께 외국 개인투자자들의 매수 역시 일제히 차단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그린후드는 일부 투자자들의 주식을 강제로 매각하기도 했다.
-ㅅㅂ 뭐야? 분명 매수했는데, 주식이 사라졌어!
-나도! 30주가 사라짐!
-아까 산 내 주식 어디 갔어?
-이게 말이 되는 거야?
-그린후드 앱 대체 왜 이래?
믿기지 않은 현실 속에서 닐 라우디츠는 외쳤다.
“모두 매도하지 말고 버텨!”
그러나 별 소용 없었다.
매수는 불가능하고 매도만 가능해지자, 주가는 속절없이 추락했다.
직전까지는 수직으로 내리꽂더라도 금방 다시 반등했지만, 이번에는 반등 없이 순식간에 미끄러져 내렸다.
채팅창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미친. 대체 얼마가 날아간 거야?
-ㅅㅂ 이거 어떻게 해야 해? 지금이라도 던져?
-이대로 끝나는 거야?
-지금 마이너스 90퍼센트가 넘었어!
-주가가 계속 밀리고 있는데!
-방금 100달러 깨지고 계속 내리꽂는 중!
-젠장! 이러다가 50달러도 깨지겠는데!
-아악! 내 돈!
-대장! 뭐라고 말 좀 해봐.
-지시를 내려줘! 어떻게 하면 돼?
닐 라우디츠는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주가와 채팅창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왜 이 게임이 공정할 거라 생각했지?’
시장의 규칙은 가진 자들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그랬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월스트리트 금융사들의 탐욕 때문에 일어났다. 그로 인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집을 잃고 거리를 전전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저지른 놈들은 어떻게 됐을까? 회사는 파산하고, 경영진들은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갔을까?
천만에.
정부는 천문학적인 세금을 투입해 금융사들을 살려냈고, 경영진들은 그 돈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고, 누구 하나 처벌받지 않았다.
그들은 집을 잃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고 비웃으며, 샴페인 파티를 벌였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헤지펀드의 평가손실액은 이미 증거금을 넘어섰다.
만약 개인에게 이런 상황이 생겼다면 증권사는 가차 없이 포지션을 청산시키고, 남은 자산을 압류했을 것이다.
그러나 증권사들은 헤지펀드들이 복구할 수 있을 때까지 기꺼이 기다려줬다. 그것도 모자라 계속 공매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었다.
애초에 이건 공정한 게임이 아니었다. 심판도 저쪽 편이니까.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주가는 속절없이 폭락했고, 손실을 입은 개인투자자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끝인가…….’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닐 라우디츠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입을 열었다.
“모두…….”
‘모두 잘 싸웠고 함께해줘서 고마웠어’라고 말하려 했지만,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48달러까지 내려갔던 주가가 어느새 490달러로 올라 있었다.
닐 라우디츠는 혹시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가가 570달러로 올랐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여전히 그린후드의 매수 버튼은 비활성화되어 있었다.
‘그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거래창에는 아까는 보이지 않던 공시가 한 줄 떠있었다.
[(공시) 컨티뉴 캐피탈, 게임스타트 지분 38퍼센트 인수!]
* * *
어린 시절부터 마이클 프레스턴에게 투자는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프레스턴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투자를 접했다. 그는 시장의 본질을 파악했고, 언제나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지금은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시간이 얼마 없어.’
얼마 못 버틸 거라 생각했던 개인투자자들은 여전히 베팅닐을 중심으로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미국뿐 아니라, 외국의 개인투자자들까지도 달려들었다.
그의 예상이 맞다면 게임스타트는 다른 곳에 매각됐다.
아마 조만간 공시가 뜰 것이다.
인수 공시는 때에 따라 호재가 될 수도 있고, 악재가 될 수도 있다.
인수 계약은 당연히 주가 폭등 전에 맺었을 것이다. 만약 그 이후였다면 창업자들이 매각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매각가는 지금 주가에 비해 현저히 낮을 것이다.
‘기껏해야 주당 20달러 수준이겠지.’
만약 인수 발표 전에 매수심리를 꺾어 놓는다면?
그럼 주당 20달러 가치밖에 없다는 인식이 퍼질 테고, 이는 주가를 폭락시키는 작용을 할 것이다.
불붙은 매수심리를 꺾기 위해서는 단지 매도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이상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바로 매수 차단이었다.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그린후드의 매수를 일시적으로 중단시키고, 이미 확정된 거래를 취소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더해 외국 개인투자자들의 매수를 차단시켰다.
대부분의 외국 개인투자자들은 현지 증권사를 통해 거래한다. 그리고 이 주문은 금융브로커를 통해 다시 미국 증권사가 처리하는 방식이다.
그는 이 금융브로커의 활동에 개입해, 외국 개인투자자의 매수를 막아버렸다.
이는 당연히 불법이다.
엄청난 비난이 쏟아질 테고,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샤크 인베스트먼트는 궁지에 몰려있었다.
샤크 인베스트먼트는 운용자산이 수백억 달러 규모로, 수많은 우량 기업들에 투자하고 있었다.
원래 게임스타트에 투자한 돈이라고 해봐야 전체 자산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로 인해 펀드 전체가 파산하게 생겼다.
이는 다른 헤지펀드들 역시 마찬가지. 자산을 전부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할 상황인 만큼, 모두가 그의 계획에 동조했다.
다행히 그의 계획은 완벽하게 먹혀들었다. 갑자기 매수가 막히자 주가는 바로 100달러 아래로 폭락했으니까.
이대로 폭락시킨 채 거래를 끝낸다면, 주말 사이 하락 심리가 가속화될 테고, 이다음부터는 알아서 매물이 쏟아져나올 것이다.
마이클 프레스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최악의 상황은 피했군.’
다 이겼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장 마감 직전에 나온 공시로 인해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컨티뉴 캐피탈의 인수 소식에 떨어지던 주가는 순식간에 치솟았고, 전 고점을 넘어 687달러로 올랐다.
공시가 나온 순간, 마이클 프레스턴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어째서 컨티뉴 캐피탈이!”
설마 컨티뉴 캐피탈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왜냐하면 게임스타트는 컨티뉴 캐피탈이 인수할 만한 가치가 없는 기업이니까.
대체 왜 이런 기업을 인수한 걸까?
‘서, 설마 이번 일의 배후에 컨티뉴 캐피탈이 있었나?’
그의 첫 패배는 컨티뉴 캐피탈 때문이었다.
다음 패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실패한 투자에는 언제나 컨티뉴 캐피탈이 관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번 역시.
마이클 프레스턴은 분노의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
* * *
SW게임즈.
한국의 신생 게임사인 이곳은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를 받은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블록밸리에 출시한 게임으로 전세계에서 팬층이 생겼다. 특히 10대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현재는 신작 게임 출시를 앞두고 있다.
판타지아 테일즈는 SW게임즈가 처음으로 내놓는 오리지널 게임이자, 레전드덱의 런칭 타이틀.
때문에 출시 전부터 업계의 관심이 쏟아졌다.
유명 게임 웹진에서 인터뷰 메일이 날아왔고, LD스튜디오에서 출시했던 게임을 분석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SW게임즈 본사에서는 판타지아 테일즈의 재출시를 앞두고 막바지 테스트 중이었다.
대표이자 개발자인 강선우는 퇴근도 하지 않은 채 회사에서 먹고 자고 하며 개발에 매진했다.
처음에는 시네마틱과 일러스트를 추가하고 BM만 고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개발을 시작하니 손볼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UI, 컨트롤, 모션, 타격감 등등.
‘대체 내가 이때는 왜 이렇게 만든 거지?’
그때만 해도 완벽하게 만든 게임을 회사가 망쳐놓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미흡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스스로 만들어 놓고도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때문에 반쯤은 다시 만드는 거나 다름없었다. 다행히 기본 시스템을 워낙 잘 구축해놓은 덕분에 일을 크게 덜 수 있었다.
출시까지 시간이 빠듯했지만, 강선우는 힘을 냈다.
무엇보다 힘이 되는 건 자신을 믿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고의 게임을 만들 생각이었다.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게임은 출시 전까지 흥행을 확신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밤낮을 잊은 채 개발에 매진하는데, 차수연이 커피를 내밀며 말했다.
“좀 쉬어가며 하세요.”
“아, 고마워요.”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이다.
강선우는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수연 씨, 집에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까 수면실에서 눈 좀 붙였어요.”
사무실에는 두 사람 외에도 몇몇 직원들이 일하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잠시 쉬며 잡담을 나눴다.
차수연이 물었다.
“혹시 게임스타트라고 아세요?”
그 물음에 강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알죠. 미국 최대 게임숍이잖아요.”
게임 소매점 중에서는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때문에 개발사들과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기도 하고, 일부 게임사들은 게임스타트에 유통하는 물량에 대해 따로 특전을 넣기도 한다.
“최근 거기 주가가 엄청나게 급등한 모양이에요.”
“그래요? 거기가 오를 이유가 있나?”
“그냥 투자자들과 게이머들이 몰려든 모양이에요.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이 일로 난리예요. 하루 만에 몇 배를 벌었다는 사람도 있고.”
다른 회사 주가가 급등하든 말든 신경 쓸 건 없다.
하지만 강선우는 잠시 머리도 식힐 겸 사이트를 들어가 보았다.
굳이 미국 웹진이나 리딧 채널까지 찾아볼 것도 없이, 한국 주식채널과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수많은 글이 올라왔다.
-게임스타트 미친 거 아님? 저거 10달러에 샀으면 지금 대체 얼마를 번 거야?
-와! 100만 원어치만 샀어도 3, 4천은 벌었을 듯.
-게임스타트를 샀어야 했는데ㅜ
-미장이 최고다! 아직도 국장하는 흑우들 없제?
-당장 게임스타트 풀매수 들어간다!
-게임스타트는 폭등하는데, 왜 LD스튜디오 주가는 이 모양이야?
-흑우야! 아직도 LD스튜디오를 들고 있느냐?
-강선우 디렉터만 있었어도ㅜㅜ
-레알 ㅅㅂ 강선우만 안 잘랐어도 주가가 지금보다 두 배는 높을 듯.
처음에는 단지 밈 주식이라 주가가 폭등했다고 생각했는데, 기사를 읽어보니 개인투자자와 헤지펀드의 전쟁이었다.
마침 게임스타트는 금요일 장 마감을 앞두고 혈투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흥미진진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문득 생각나는 게 하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미루는 레전드덱 판매를 위해 인수할 기업이 있다며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때마침 게임스타트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잠시 생각하던 강선우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그러자 차수연이 물었다.
“뭐가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공시가 떴다.
그 공시를 본 순간, 강선우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역시 너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