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화. 게임스타트 (4)
난 뉴욕의 JR블랙우드 호텔에 장기 숙박을 끊었다.
지배인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랜만에 오셨군요.”
“잘 지내셨죠? 한동안 신세 좀 지겠습니다.”
“별 말씀을요. 모시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직원들에게 지시해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난 대충 짐을 풀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왠지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공짜라는 것.
전세계 곳곳에 집이 있다고 생각하니, 어디를 가도 마음이 편하다. 호텔에서 머물면 식사, 청소, 세탁도 신경 쓸 필요 없고.
난 대충 짐을 풀었다.
예전에는 여행 갈 때면 짐을 바리바리 챙겨 다녔던 것 같은데, 이제는 필요한 것만 챙기고, 나머지는 그때그때 산다.
굳이 직접 사러 갈 것도 없이 호텔 프론트에 말하면 알아서 준비해준다.
이런 게 최고급 호텔의 장점이지.
이런 서비스를 공짜로 누리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말로라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지.
난 피터 테일러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어쩐 일인가?]
“그냥 블랙우드 호텔에 체크인 했더니, 회장님 생각이 좀 나서요.]
[하하! 빈말이라도 고맙군. 지금은 어디인가?]
“뉴욕입니다.”
[한동안 한국에만 있더니. 이번에는 무슨 일로 온 건가?]
“그건 다음번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번 입원하셨다고 들었는데, 건강은 괜찮으시죠?”
[그럼. 앞으로 20년은 더 할 수 있으니 걱정 말게.]
* * *
난 컨티뉴 캐피탈 본사로 출근하며 계속해서 게임스타트의 동향을 체크했다.
컨티뉴 캐피탈이 인수계약을 맺은 건 아직 시장에 공표하지 않았다. 현재 이 사실을 아는 것은 경영진과 대주주 몇 명뿐이다.
때문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공매도는 컨티뉴 캐피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현재 게임스타트의 공매도에 나선 헤지펀드는 약 10여 곳.
이중 가장 큰 규모로 공매도를 한 곳은 멀린 캐피털(Merlin Capital), 샹그릴라 리서치(Shangri-La Research), 그리고 마이클 프레스턴이 이끄는 샤크 인베스트먼트(Shark Investment)다.
컨티뉴 캐피탈 만큼은 아니지만, 이 세 곳 모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름만 들으면 알 정도로 유명하다.
그야말로 월스트리트의 유명 사모펀드들이 공매도를 주도하는 중.
일반적으로 특정 종목에 대한 매도 리포트가 쏟아지고, 공매도의 타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주가는 하락하기 마련.
그런데…….
게임스타트는 오히려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 * *
월스트리트 타임즈(Wall Street Times).
한때 뉴욕의 작은 인터넷 언론사였던 이곳은 어느새 뉴욕시를 넘어 미국 전역,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언론사가 됐다.
WST가 이렇게 유명해진 것에는 한 기자의 역할이 매우 컸다.
바로 트리시 오코너다.
토머스 모터스 사태, 페이스노트 사태, 상속녀 스캔들 등 여러 특종을 터트린 그녀는 이번에도 새로운 특종을 잡기 위해 취재 중이었다.
바로 게임스타트다.
취재를 하다 보니, 자연히 리딧의 월스트리트 에이프에 대해 접하게 됐다.
유저 수가 약 800만 명에 달하는 대형 커뮤니티인 이곳에서는 게임스타트와 관련된 글들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이전에도 게임스타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것은 공매도가 본격화된 이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베팅닐’이 있었다.
베팅닐은 계속해서 글을 올리며 매수를 독려했다.
[헤지펀드들이 1주를 공매도하면, 우리가 2주를 매수하면 그만이야. 게임은 이미 시작됐어. 난 저놈들이 파산할 때까지 이 게임을 멈추지 않을 거야.]
유저들은 하나같이 베팅닐의 주장에 동조했다.
일전에도 게임스타트를 매수하자는 얘기가 오갔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개인투자자들은 베팅닐을 대장으로, 그리고 월스트리트 에이프 채널을 본진으로 삼아 뭉쳤다.
여기에는 그동안 헤지펀드를 비롯한 기관들에게 털린 분노도 한몫했다.
-우리가 힘들게 올려놓은 주가를 한 번에 떨어트리겠다고?
-그만해, 이 개자식들아!
-대장을 따르겠습니다!
-오늘 바로 물타기 들어가자~
-사서 응원한다!
-그러니까 저놈들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다는 거지?
-ㅅㅂ 좋아.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
* * *
난 퇴근 후 트리시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타임스퀘어 광장 쪽으로 나왔다. 거리를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물들였고, 쌀쌀한 날씨임에도 광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우리는 창가의 테이블에 앉아 피자를 먹었다.
“취재는 잘 돼가요?”
“예. 재밌는 주식이던데요.”
“어떤 점이요?”
“일단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회사라는 거죠. 그리고 다들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한국에서는 동네 게임샵이 사라진 지 오래다.
애초에 콘솔 비중이 낮은 데다가 온라인 유통이 발달했기 때문. 그러나 콘솔 중심인 미국 시장에는 아직도 게임숍이 성업 중이다.
게임스타트는 미국 전역에 무려 5500개의 매장을 두고 있다.
웬만한 동네에 하나쯤은 있고,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가본 곳이다.
어린 시절 용돈을 모아 친구들과 게임을 사러 갔거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갔거나.
그래서인지 한때 게임스타트가 경영 위기로 파산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걱정했다.
“공매도에 대항해 베팅닐이라는 닉을 쓰는 사람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어요. ‘유인원들은 뭉치면 강하다’고 소리치면서요.”
난 피식 웃었다.
혹성탈출 영화에서 주인공 침팬지가 했던 대사는 어느새 월스트리트 에이프의 구호가 됐다. 합성 사진도 엄청나게 올라오고 있고.
“숏스퀴즈를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 잘했어요.”
“헤헷.”
칭찬을 받았기 때문인지 트리시는 해맑게 웃었다.
“그런데 정말로 개인이 이길 수 있는 건가요?”
“쉽지 않죠.”
개인은 정보력에서도 자본력에서도 헤지펀드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때문에 이런 경우 대부분 개인들이 손실을 보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두가 팔지 않으면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 다른 마음을 품는 순간, 주가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겠죠.”
피해를 줄이려면 남들보다 먼저 파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결국 모두가 팔며 주가가 붕괴되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네요.”
“바로 그거예요.”
이게 바로 개인이 헤지펀드를 이길 수 없는 이유다.
개인은 수가 많고 분열되어 있는 반면, 헤지펀드는 수가 적고 하나로 움직이니까.
“그런데 최근에는 투자환경이 좀 변했죠.”
이전에 개인투자자들은 다른 이들의 생각을 알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월스트리트 에이프 채널에서 빠르게 정보를 공유했고, 추천을 많이 받은 정보는 바로 베스트로 올라갔다.
이전까지 각자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이제는 집단사고가 가능해진 셈이다.
심지어 이들 중에는 대장(Chief)도 있었다.
아예 자기들끼리 각 주 별로 간부를 정해 게임스타트 주식 매수를 독려하고, 매수량을 관리했다.
때문에 이들의 매수는 각각의 개인이 아닌, 마치 거대 조직이 움직이는 것 같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
개인들이 이 정도로 집단행동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아마 당사자들도 모르고 있겠지.
“숏스퀴즈라면 주가가 어느 정도나 오를 거라고 생각해요?”
2008년 폭스바겐 사태나, 지난번 GL엔텍 사태 모두 공매도 모두 숏스퀴즈로 주가가 폭등한 사례.
그러나 게임스타트는 이 기업들과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그건 바로 시총이 작다는 것.
폭스바겐이나 GL엔텍은 각국 증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이지만, 게임스타트는 원래 시총이 10억 달러에 불과한 중소기업.
사실 숏스퀴즈가 발생해 주가가 치솟는 건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게임스타트가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에 남은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아마 상상도 못할 수준까지 튀어오를 거예요.”
트리시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어, 얼마나요?”
난 1회차 때를 떠올렸다.
당시 10달러 수준이었던 게임스타트 주가는 440달러까지 치솟았다. 무려 40배 넘게 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떨까?
그 이상으로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 * *
최근 수년 동안 미국 증시는 활황이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주가가 오른 기업들도 많았고, 이들을 노리고 월스트리트에서는 공매도 전문 헤지펀드들이 활개를 쳤다.
헤지펀드들은 고평가된 기업을 공매도한 다음, 매도 리포트를 내서 주가를 떨어트려 이익을 냈다.
멀린 캐피탈과 샹그릴라 리서치가 바로 그러했다.
멀린 캐피탈은 월스트리트의 스타 펀드매니저인 케빈 멘더슨이 설립한 헤지펀드로 공매도로 매년 40퍼센트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리고 샹그릴라 리서치는 오웬 가필드가 만든 헤지펀드다.
샤크 인베스트먼트의 CEO 마이클 프레스턴은 비밀리에 멀린 캐피탈과 샹그릴라 리서치의 대표를 만났다.
세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다음 자리에 앉았다.
월스트리트의 유명 사모펀드 CEO 셋이 이렇게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각각 독립된 펀드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세 곳은 자본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멀린 캐피탈과 샹그릴라 리서치의 투자금을 댄 곳이 바로 프레스턴 가문이기 때문.
케빈 CEO가 말했다.
“게임스타트 주가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공매도 리포트가 나온 뒤, 주가는 10달러까지 밀렸다.
그런데 그 뒤로 개인들의 매수가 붙으며 주가는 어느새 15달러를 회복했다. 잘못했다가는 수익은커녕 손실을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가필드 CEO 역시 말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현재 베팅닐이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매수운동을 벌이는 중입니다. 지금이라도 포지션을 청산하는 게 어떻습니까?”
어차피 게임스타트는 여러 공매도 종목 중 하나일 뿐이다. 여기서 손실을 본다고 해도 다른 종목에서 메우면 그만이다.
그러나 마이클 프레스턴의 생각은 좀 달랐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일대오를 유지한다 해도 이런 상황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붕괴될 겁니다.”
다 같이 손해를 보고 있을 때야 원금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로 뭉칠 수 있다.
그나 이익을 보기 시작한다면?
이 경우 누군가는 먼저 손을 털고 나가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가는 순식간에 폭락하고, 주가가 폭락하면 더 많은 매물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주가가 오르는 것은 오히려 호재입니다. 개인들이 비싼 가격에 사준다면, 공매도로 더 큰 돈을 벌 수 있을 테니까요.”
주식투자는 모두가 돈을 벌 수 있는 플러스섬 게임이다. 그러나 공매도는 누군가의 손실이 누군가의 이익으로 연결되는 제로섬 게임이다.
그리고 그 이익을 보는 것은 당연히 자신들이 될 것이다.
마이클 프레스턴은 자신 있게 말했다.
“게임스타트 공매도를 늘리세요. 지금 상황은 우리에게 좋은 기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