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화. 게임스타트 (3)
트리시는 샌프란시스코에 이어, 일정대로 LA와 샌디에이고에서도 사인회를 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트리시가 사인회 일정을 소화하는 사이, 난 프리즈너에 들렀다.
프리즈너는 여전히 B급 영화사긴 하지만, 로키와 써릴 스크린 덕분에 CG 하나 만큼은 할리우드 대형 영화사들 뺨치는 수준으로 올라왔다.
자회사로 CG 전문회사 알카트라즈를 설립했고, 이를 통해 다른 영화사들과 협력하거나, 외주를 맡았다.
현재 알카트라즈는 할리우드와 한국에 스튜디오를 두고 있다.
덕분에 이를 활용한 K-콘텐츠들의 제작 역시 활발하게 진행 중에 있고.
사이먼 라이너스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좀비네이도3 개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큰 기대 중입니다.”
“기대하신 것 이상의 성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자신 있는 모양이다.
“개봉하면 루카스 CEO랑 함께 보러 가겠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일을 끝마친 뒤.
난 트리시와 함께 거대한 미 대륙을 가로질러 뉴욕에 도착했다.
트리시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미루 덕분에 엄청 편하게 왔네요.”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미국 땅은 미친 듯이 넓다.
미국 부자들이 돈 벌면 전용기부터 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지.
“미루는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바로 일하러 가야죠. 트리시는요?”
“저도요. 이따 끝나고 저녁 어때요?”
“좋죠. 오코너 펍에서 볼까요?”
오코너 펍은 뉴욕에 반드시 들러야 하는 명소.
오랜만에 흑맥주랑 오코너 버거를 같이 먹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아무리 한국에 체인점이 있다 해도 본점의 맛을 따라갈 수는 없는 법. 애초에 체인점은 프랜차이즈에 맞게 좀 바꾸기도 했고.
* * *
컨티뉴 캐피탈 본사에 들어서자 데이비드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잘 지냈죠?”
“그렇습니다.”
“메기는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데이비드의 얼굴은 전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더 잘생겨진 것 같기도 하고.
난 직원들과도 인사를 나눈 다음 자리에 앉아, 게임스타트의 리포트를 훑어보았다.
“계약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뭘요. 전 사인한 것밖에 없는데요.”
“아시겠지만, 계약 직후 공매도가 쏟아지는 바람에 주가가 하락 중입니다.”
“어디죠?”
“벌써 여러 곳이 달려들었습니다. 그중 가장 큰 곳은 멀린 캐피탈과 샤크 인베스트먼트입니다.”
“그렇군요.”
샤크 인베스트먼트는 마이클 프레스턴이 대표로 있는 곳이다.
1회차 때는 데이비드가 몸 담았던 곳이기도 하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째서 이 기업을 인수했는지 아직도 의문입니다. 시장에는 좋은 기업들이 많은데 말이죠.”
이번 인수가 별로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은 눈치다.
“게임스타트는 좋은 기업이 아닌가요?”
“좋은 기업이냐 나쁜 기업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오직 가격이죠.”
“너무 비싸게 샀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맞는 말이다.
좋은 기업도 비싼 가격에 사면 나쁜 거래고, 나쁜 기업도 싼 가격에 사면 좋은 거래지.
“현재 얼마죠?”
“11달러 20센트입니다.”
“많이 떨어졌네요.”
내가 계약할 때만 해도 18달러쯤이었던 것 같은데.
“…….”
그새 7달러 어디 갔어?
그런데 컨티뉴 캐피탈은 대주주 지분을 주당 23달러에 매수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매수가를 기준으로 보면 게임스타트의 시총을 약 20억 달러로 책정한 셈이다. 이중 우리가 38퍼센트를 인수했으니, 인수금으로 대략 8억 달러를 썼다.
“여기에 공개매수도 남아있습니다. 공개매수에 나설 경우 그 이상의 돈을 써야할 수도 있습니다.”
공개매수란 정해진 가격에 시장에서 주식을 매수하는 행위.
시장에서 11달러에 팔리는 주식을 23달러에 산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모두가 컨티뉴 캐피탈에 주식을 팔 것이다.
문제는 과연 게임스타트에 그만한 가치가 있냐는 것이다.
“기존 사업과 연계하고, 영업 효율화를 통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린다고 해도 게임스타트의 적정 가치는 15억 달러를 넘기 힘듭니다.”
“그렇군요.”
하기야 콘솔 판매한다고 기업 가치가 뛸 거였다면, 진작 소뉴나 NS가 인수했겠지.
따라서 우리 입장에서는 주식을 많이 매수할수록 손해가 불어나는 셈. 그러나 이런 식의 계약을 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공개매수를 해도 아무도 응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어요?”
“어떻게 말입니까?”
“주가가 23달러 이상이라면, 굳이 컨티뉴 캐피탈에 팔 필요가 없잖아요.”
컨티뉴 캐피탈에게 팔면 23달러인데, 시장에서 팔면 50달러라면? 당연히 주주들 입장에서는 공개매수에 응할 이유가 없다.
“설마 숏스퀴즈를 생각하시는 겁니까?”
숏스퀴즈(Short Squeeze).
공매도를 한 투자자가 포지션을 청산하며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맞아요.”
사실 공매도 세력들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게임스타트 주가는 현재 고평가된 게 맞으니까.
오프라인 판매는 사양 산업이고, 온라인 판매로 전환을 한다고 해도 ESD와 기존에 있는 수많은 온라인숍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전망이 불투명한 데도 개인들이 몰려들어 매수하는 바람에 주가는 단기간에 급격하게 치솟았다.
이러니 공매도 세력의 타깃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개인 투자자 비중이 크고, 고평가된 기업이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으면 결과는 뻔하다.
“컨티뉴 캐피탈이 매수에 나서서 주가를 끌어올리려는 겁니까?”
“아니요. 그랬다가는 헤지펀드들이 바로 포지션을 청산할 테고, 얼마 재미를 못 보고 끝나겠죠.”
“그럼요?”
“이번 싸움은 개인들이 끌고 갈 거예요.”
“개인들이 헤지펀드를 상대로 싸울 거라는 겁니까?”
“예. 아시다시피 게임스타트는 유명한 밈 주식이잖아요.”
밈(Meme)이란 인터넷 상의 유행.
그리고 밈 주식(Meme Stock)이란 소셜 네트워크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주식을 뜻한다.
마치 유행을 따라 옷이나 액세서리를 사듯 주식을 사는 것이다.
기업의 실적이나 장기 전망과는 상관없이 ‘남이 사니 나도 산다’는 식이다 보니, 투자라기보다는 도박에 가깝고, 주가의 급등락도 심하다.
이러니 공매도 세력이 달려들 수밖에.
“밈 주식의 결말은 대부분 비슷하지 않습니까?”
“대부분 안 좋긴 하죠.”
이유 없이 오른 주식은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를 거예요.”
여기에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숨어 있다.
“한국에서 개인 투자자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개미(Ant) 아닙니까?”
“맞아요.”
덩치는 작은 데 숫자는 많다. 그리고 항상 누군가의 발에 짓밟힌다.
“그럼 미국에서는요?”
“유인원(Ape)이죠.”
인간처럼 사고하지 못하고 마치 유인원처럼 무지성적으로 주식을 산다는 의미다.
“혹시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 영화 봤어요?”
“뭔지는 압니다.”
“거기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유인원들은 뭉치면 강하다.(Apes together strong.)”
데이비드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농담하시는 겁니까?”
“아니요”
개인은 정보력에서도 자본력에서도 헤지펀드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헤지펀드들은 집단적으로 거대한 자본을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반면, 개인들은 소액의 자본을 각자 움직인다.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면, 개인들은 주식을 내던지며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영화에서는 시저라는 침팬지가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유인원들을 군대처럼 만들어 인간에 대항하죠.”
혹시 1회차 때랑 다른 상황이 벌어질까 싶어서, 여기 오면서 계속 리딧의 월스트리트 에이프 채널을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중이다.
난 자신 있게 말했다.
“한번 지켜봐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 펼쳐질 테니까요.”
* * *
리딧 채널 월스트리트 에이프의 유명 닉 ‘베팅닐(BettingNill)’.
그의 본명은 닐 라우디츠로 메릴랜드주에 거주하는 40대 초반의 가장이다. 원래 지역의 작은 투자회사에서 일했던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일자리를 잃었다.
그 뒤로는 먹고 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투자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자본이 생긴 닐은 다시 투자를 시작했고, 스트리머 겸 전업 투자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인터넷에 글을 쓰고, 방송을 통해 개인들에게 투자 정보를 공유했다.
최근 시장이 활황이었던 만큼 그는 적잖은 돈을 벌었고, 이 돈을 전부 게임스타트에 투자하며, 월스트리트 에이프에서 개인들의 게임스타트 매수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덕분에 게임스타트는 월스트리트 에이프에서 가장 인기 주식이 됐다.
모두가 힘을 합쳐 주가를 올려놓았는데, 그 과실을 제대로 따먹기도 전에 헤지펀드들이 공매도로 주가를 떨어트려 놓았다.
주가가 오를 때는 모두가 이익을 얻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손실을 보게 된 상황.
-게임스타트에 투자하자마자 스탑 됐네…….
-우리가 그럼 그렇지ㅜㅜ
-괜히 투자했다가 1만 달러 넘게 날렸음.
-다 같이 안 팔면 뭐하나? 헤지펀드가 공매도를 쏟아내는데.
-망했네. 망했어~
-이거 진짜 오르기는 하는 거야?
-오르긴 개뿔. 손실 줄이려면 당장 내던져야 함.
공포에 휩싸인 다른 개인 투자자들과는 달리, 그는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건 엄청난 기회일지도 몰라.’
닐은 방송을 켜고,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헤이, 가이즈. 모두가 알다시피 게임스타트는 헤지펀드들의 먹잇감이 됐고, 현재 공매도가 쏟아지는 중이야. 주가 역시 20달러를 목전에 두고 현재는 11달러까지 미끄러져 내렸지. 멀린 캐피탈은 목표주가로 5달러를 제시했어. 최대한 가격을 떨어트려서 이익을 챙기겠다는 생각이겠지.”
미리 월스트리트 에이프에 방송을 공지했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몰려와 그의 방송을 지켜보았다.
닐은 차분하게 말했다.
“공매도라는 게 기관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투자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리스크가 따르는 일이야. 첫째로 주식을 빌려다 파는 것인 만큼 그냥 주식을 사는 것에 비해 거래비용이 크고, 둘째로 기대수익은 정해져있는 반면 손실은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거든.”
100달러에 공매도 한 주식이 1달러까지 떨어지면 이익은 99달러로 한정된다. 하지만 이 주식이 1000달러가 되면, 손실액은 10배로 불어난다.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있어. 2008년 일어난 폭스바겐 사태가 그랬고, 얼마 전 한국에서 있었던 GL엔텍 사태가 그랬지. 이때 공매도를 했던 헤지펀드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몇몇 곳은 파산했어. 게임스타트는 대주주들 지분이 38퍼센트고, 시장의 유통물량은 62퍼센트야. 그런데 현재 공매도 물량은 그 이상이지.”
그는 화이트보드에 숫자를 적어가며 설명했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런 거야. 우리 모두가 팔지 않으면 주가는 오를 수밖에 없어. 주가가 오르면 공매도에 나선 헤지펀드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고, 우리는 엄청난 돈을 벌게 될 거야.”
닐은 선언하듯 말했다.
“공매도가 쏟아지고 있다고? 앞으로 더 쏟아낼 거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 물린 건 우리가 아니야. 바로 헤지펀드들이지. 난 당장 다른 주식을 전부 팔고, 이 돈을 게임스타트 콜옵션에 몰빵할 거야. 만약 모두가 내 말을 믿지 않는다면, 난 혼자 죽겠지. 그러나 모두가 내 말을 믿고 따라와 준다면 어떻게 될까? 다 같이 헤지펀드 놈들에게 한방 날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