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418화 (418/529)

418화. 게임스타트 (2)

다음 날.

호텔에서 푹 잔 나는 점심 무렵 차를 타고 스노우 크래시로 향했다.

몇 개월 만에 왔는데, 그사이 많은 게 바뀐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스노우 크래시는 업계 4위의 클라우드 기업으로 올라섰으니까.

창가 쪽 자리에서 20대 초반 정도의 청년이 헤드폰을 끼고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쪽 모니터에는 좀비가 나오는 드라마를 틀어놓았고, 다른 쪽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일했다.

난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돌려 나를 본 청년은 재빨리 헤드폰을 벗으며 반갑게 소리쳤다.

“형!”

“잘 지냈어?”

“그럼요.”

우리는 휴게실에 앉았다.

“일하느라 고생이 많네.”

“고생은요. 재밌어서 하는 건데요.”

시드는 이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실리콘밸리 최고의 천재 개발자로 이름을 날리는 중이다.

그럼에도 처음 만났을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모습이다.

쇼핑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일.

천재가 괜히 천재가 아니다.

“이번에 진행하는 프로젝트 내용 잘 봤어.”

시드는 우유를 마시며 물었다.

“어떤 것 같아요?”

“아주 좋던데.”

스노우 크래시는 이미 음성채팅과 메신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화상채팅 프로그램인 후긴을 만들었다.

로키를 활용해 영상을 후보정하는 만큼, 후긴은 기존에 출시된 프로그램보다 월등히 나은 성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아예 이 기능을 하나로 통합해 원격 미팅, 채팅, 스케줄 관리가 가능한 업무용 메신저를 출시할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메신저는 기능보다는 선점 효과가 중요하다. 메신저의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쓰느냐’니까.

그러나 업무용 메신저는 보통 일반용과 분리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본인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회사에서 쓰라고 지시한 걸 쓴다.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기존에 나온 모든 업무용 메신저를 압살하고, 판게아와의 연결성도 훨씬 뛰어난 만큼, 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많은 사람이 업무용으로 이를 사용하면, 나중에는 일반 대중에게도 확대해나갈 수 있다.

“대체 어떻게 그런 걸 만든 거야?”

“전부 미미르 덕분이죠.”

미미르는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AI 프로그램.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범용성이다.

원래 AI는 각각 용도에 맞게 따로 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바둑 AI를 체스에서 사용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미미르는 마치 인간의 두뇌처럼, 학습을 시키기만 하면 어느 분야에서든 활용할 수 있다.

“아! 레전드덱 OS는 완벽하게 구동된다고 탐 스콧 CEO가 극찬하던데.”

일반적으로 콘솔은 자사의 OS와 자사의 ESD만을 쓸 수 있다. 반면 레전드덱은 리눅스 기반의 오픈소스인 만큼, 원한다면, 얼마든지 커스텀해서 사용할 수 있다.

엔도어즈를 깔아 UMPC로 쓸 수도 있고, 모바일 에뮬레이터를 깔 수도 있다. 다른 스토어를 설치해 게임을 다운받는 것도 가능하고.

기존 운영체제가 아닌 자체 운영체제를 만든 이유는 빠르게 버그를 수정하고 업데이트를 하기 위함.

이 OS를 누가 만들겠는가?

당연히 시드다.

“레전드덱은 저도 기대 중이에요. 모바일과 PC를 아우르는 휴대용 게임기라니. 대체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한 거예요?”

“그야 뭐…….”

1회차 때 스트림덱이라고 비슷한 게 있었기 때문이지.

시드는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형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내, 내가?”

“예. 아무도 못 한 일을 하잖아요.”

“아, 아니. 내가 한 일이라고 해봐야 니가 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무슨 말이에요? 형이 최고예요!”

내가 원래 칭찬을 사양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진짜 천재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부끄러워 어디 숨고 싶다.

난 단지 미래를 알고 있을 뿐이지만, 시드는 그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니까.

* * *

시드와 만난 뒤, 이번에는 바로 LA로 향했다.

가는 길에 트리시가 동행했다.

그녀는 좌석에 털썩 주저앉더니 말했다.

“아! 편하다. 역시 전용기가 좋네요.”

확실히 편하긴 편하다.

참고로 전용기의 운용비용은 기름값을 제외하고도 수십만 달러가 들어간다. 조종사와 승무원 인건비만 해도 기본 50만 달러.

좀만 타고 다니면 100만 달러 넘는 건 순식간이다.

“트리시도 하나 사면 되겠네요.”

“제가요?”

“책 많이 팔렸다면서요?”

트리시는 눈을 살짝 치켜 떴다.

“……놀리는 거예요?”

“그럴 리가요.”

사실은 놀리는 거 맞다.

샌프란시스코에서 LA에까지는 차 타고 이동이 가능한 거리.

때문에 전용기는 금방 LA에 도착했다.

우리는 함께 산타모니카에 위치한 블록게임즈로 향했다.

한때 인디 게임 개발사였던 이곳에서 현재 서비스 중인 게임은 딱 하나.

바로 블록밸리다.

월간 이용자 1억 5000만 명, 하루 접속자만 해도 4000만 명이다.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이용자 절반 이상이 10대라는 것.

단일 게임으로는 최대 매출을 올린 덕분에, 블록게임즈는 블록밸리 하나로 최고의 게임사 반열에 올라섰다.

현재 시장에서는 블록게임즈의 가치를 500억 달러 정도로 추산 중이다.

난 이곳에서 찰스 그리핀과 켄 어틀리, 그리고 루퍼스 베일리를 만났다.

“어서 오십시오.”

“다들 잘 지냈어요?”

“물론입니다.”

그사이 변한 게 하나 있다면 피오나 해리슨이 법무팀에 합류했다는 것.

“이쪽은 WST의 트리시 오코너 기자. 다들 아시죠?”

트리시는 일전에 내 소개로 몇 차례 블록게임즈를 취재한 적이 있다.

이미 아는 사이인 만큼 다들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번에 책 출간하신 거 축하드려요.”

“안 그래도 선물로 가져왔어요.”

트리시가 책을 나눠주려 하자, 켄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 전 괜찮습니다.”

“예?”

당황하는 그녀에게 켄은 보란 듯이 책을 내밀었다.

“이미 샀거든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어머, 정말요?”

“예. 사인 좀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트리시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정성 들여 사인해주었다.

우리는 미팅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편하게 얘기를 나눴다.

현재 가장 큰 주제는 바로 레전드덱 출시.

프로토타입은 진작 나왔고, 호환성과 발열 테스트까지 거쳤다.

이제는 양산만 앞두고 있는 상황.

“출시 시점에 맞춰서 블록밸리에서도 대대적인 이벤트를 열려고 구상하고 있습니다.”

“오! 좋네요.”

콘솔은 역시 초반 흥행이 중요한 법이지.

트리시가 있기 때문일까?

루퍼스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 저는 SW게임즈의 신작이 가장 기대됩니다.”

“그래요?”

켄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예. 이제까지 나온 게임은 전부 해봤는데, 개발자가 천재라는 것에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퀵샤카 오션월드’와 ‘니더스에 어서 오세요’ 외에 블록밸리에서 세 개의 게임을 더 출시했고, 줄줄이 대박을 터트렸다.

이제 강선우의 개발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찰스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뿐만이 아니라, 게임 업계에 있는 사람과 게이머들 모두가 SW게임즈의 새 게임을 기대 중입니다.”

난 웃으며 말했다.

“그 말 친구에게 그대로 전해줄게요.”

강선우가 이 얘기를 들으면 부담돼 쓰러지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꼭 전해줘야지.

같이 블록게임즈를 나오는데, 트리시는 슬쩍 물었다.

“게임스타트 말이에요.”

“왜요?”

“지금 계속 취재하는 중인데, 혹시 힌트 없어요?”

“네. 없어요.”

“칫!”

트리시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설마 자신 없어요?”

그러자 그녀는 두 손을 불끈 쥐며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기다려요. 제 힘으로 반드시 알아낼 테니까!”

* * *

리딧(Riddit).

미국 최대의 소셜 커뮤니티 사이트로, 이곳에서는 유저들이 자유롭게 뉴스와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사실상 미국의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는 곳이다. 한국으로 치면 DG아웃사이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리딧의 여러 채널 중에는 월스트리트 에이프(Wallstreet Ape)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는 주로 주식 투자자들이 모여 있었다.

이중 ‘베팅닐’은 이 채널에서 오래 활동한 유명한 닉이었다.

그는 개인 전업투자자로 투위치에서 개인 방송을 하고, 투자 관련한 글들을 월스트리트 에이프에 올렸다.

그런 그가 몇 개월 전부터 놀라운 주장을 펼쳤다.

[주식은 많은 사람이 사면 오르고, 많은 사람이 팔면 떨어진다. 그렇다면 월스트리트 에이프에 있는 모두가 다 같이 특정 주식을 사면 그 주식은 오를 테고, 우리 모두는 큰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에 그의 주장은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전재산을 털어 매수한 종목을 공개하며 매수를 독려했다.

[게임스타트 주식을 사자. 난 전재산을 게임스타트에 걸었다.]

한때 5달러까지 내려갔던 게임스타트의 주가는 그가 매수 글을 올릴 시점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베팅닐’은 보란 듯이 자신의 수익률을 인증했다.

6달러 초반에 10만 주를 사들인 그의 수익률은 매수 한 달 만에 100퍼센트를 넘었다.

[게임스타트의 상승은 이제 시작이다. 지금이라도 사자.]

시장에는 수많은 주식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많은 주식 중 어째서 게임스타트였을까?

그 이유는 좀 복합적이다.

먼저 시총이 너무 큰 기업은 개인들이 매수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에 한계가 있다. 개인들이 아무리 달려들어 엔플을 사봐야 주가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총이 적고 유통물량이 적으면, 개인들이 매수하는 것만으로도 주가를 올릴 수 있다.

게임스타트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게임스타트가 익숙하다는 것이다.

리딧의 주 이용자는 20~40대 남성들.

이들 중 게임스타트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어린 시절 용돈을 모아 게임을 사거나, 아버지나 형의 손에 이끌려 게임스타트에 가본 경험이 있었다.

여기에 향후 온라인 판매에 나선다는 호재까지 있었다.

‘베팅닐’의 매수 독려가 실제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자, 월스트리트 에이프에서는 갑자기 게임스타트 매수 열풍이 불었다.

유저들은 자발적으로 게임스타트 주식을 사자는 다양한 챌린지를 벌였다.

-게임스타트 주식 사서 응원하자!

-고고! 게임스타트!

-딱 한 주씩만 사자.

-한 주 산 사람은 한 주 더 사자.

-계좌에 게임스타트 주식 하나 정도는 있어도 괜찮잖아?

-스타박스 커피 세 잔 마실 돈이면, 게임스타트 주식 한 주를 살 수 있습니다.

-게임스타트는 제군을 필요로 한다!

심지어는 모든 글에 ‘됐고, 게임스타트나 사자!’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모두가 열심히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고, 홍보 포스터와 패러디 사진을 만들어 공유했다.

이제 게임스타트는 밈 주식(Meme Stock)으로 불리며,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종목이 됐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주가는 점점 상승했다.

10달러를 넘은 지 얼마 안 돼, 이제는 15달러마저 돌파했다!

누가 ‘이제는 팔아야 하지 않아?’라고 묻자, ‘베팅닐’은 또다시 계좌를 공개하며 말했다.

[뭔 헛소리냐? 난 오히려 더 사고 있다. 열 배 갈 때까지는 단 한 주도 팔지 마라!]

월스트리트 에이프 유저들은 ‘베팅닐’을 대장(Chief)으로 부르며 따랐고, 주식투자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유저들까지도 스마트폰으로 계좌를 만들고 게임스타트 주식을 매수했다.

모두가 마치 투자를 한다기보다 게임을 한다는 느낌이었다.

-다 같이 사서 올리자!

-우리가 사면 주가가 오른다!

-앞으로 이 채널은 게임스타트와 함께 살고 죽는다!

-모두가 게임스타트 주주가 되는 그날까지!

-대장! 얼마나 더 사면 됩니까?

게임스타트 주가는 계속 올라 이제는 20달러를 눈앞에 뒀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