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화. 개혁 (7)
로키는 스노우 크래시에서 만든 CG 프로그램.
이를 활용하면 실제 인간과 똑같은 수준의 가상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에이튜브는 크리에이터를 위해 각종 편집 프로그램과 AI 기반 필터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는 에이튜브만 아닌 린스타그램, 투위치, 톡틱 등 역시 마찬가지.
외모를 보정한다든지, 얼굴을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바꾼다든지 등등. 가끔 생방송 도중 필터가 꺼지는 바람에 전혀 다른 사람 얼굴이 나오는 대참사가 터지기도 한다.
“저희 역시 CG 프로그램이 있고, 실시간 라이브 방송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구블은 AI 하면 빠질 수 없는 회사.
바둑 AI 프로그램을 만들어 세계 최강의 기사를 꺾은 그 유명한 마인드딥도 구블 산하에 있다.
“하지만 로키 정도의 성능을 보이지는 못합니다. 로키는 마치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가상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그렇죠.”
MFW는 가상인간을 활용한 홍보로 대박을 터트렸다.
사진과 영상은 실제 인간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똑같았지만, 일부러 가상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했다.
게임 속에 들어갈 때면 2D나 3D로 외형을 바꾸며, 대중들에게 인터넷 세상을 탐험하는 친구처럼 받아들이게 했다.
“사람들은 인터넷상에서 자신을 표현할 수단을 갖고 싶어 합니다. 저희는 가상인간이 그러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뭘 원하는지 이해했다.
“혹시 로키를 활용한 버추얼 스트리머를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버추얼 스트리머, 또는 버추얼 에이튜버.
실제 사람이 아닌 가상의 캐릭터로 방송을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인을 뜻한다.
버튜버는 초기에는 일상 대화나 게임 스트리밍을 주로 했으나, 이제는 리뷰, 브이로그, 교육, 정치, 시사 등 여러 분야로 가리지 않고 진출했다.
버튜버들끼리 모여 합방을 하기도 하고, 버추얼 그룹을 결성해 음반을 내기도 하고. 아예 이쪽만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MCN도 등장했다.
현재 에이튜브에서 버튜버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
대체 가상 캐릭터에 누가 돈을 쓰나 싶겠지만…… 이미 전세계적으로 조회수와 도네쳇 순위 최상위권을 버튜브가 점령하고 있다.
대체 이 사이에 현시연TV가 어떻게 껴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만…….
현재의 버튜버 외형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캐릭터 같은 이유는 실시간 그래픽 기술의 한계 때문.
그러나 로키는 그러한 한계를 뛰어넘어, 실제 인간과 똑같은 캐릭터를 실시간으로 랜더링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은 버튜버도 이 정도로 인기가 많은데, 가상인간으로 버튜버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단지 버튜버를 대체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도 있다.
그러니 구블 쪽에서 이렇게 큰 관심을 갖는 거겠지.
“사실 저도 에이튜브를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자 존 킴 사장은 반색했다.
“오! 그렇습니까?”
“예. 에이튜브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앱이니까요.”
한국인의 이용 시간 1위 앱은 뭘까?
타피오카톡? 네오틴? 페이스노트? 린스타그램?
정답은 바로 에이튜브.
거의 모든 앱은 젊은 층의 이용 시간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수록 스마트폰에 친숙하니까.
그러나 특이하게도 에이튜브만은 반대로 50대 이상의 이용 시간이 10~20대보다 훨씬 높다.
“최근에 재밌는 영상을 하나 봤습니다.”
“어떤 건가요?”
“영국 여왕이 죽기 전에 한국으로 귀화를 하고 싶어 한다는 영상이었습니다. 설마 영국 여왕이 여생을 고국인 영국이 아닌 한국에서 보내고 싶어 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 영상을 보니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이 느껴지더군요.”
“…….”
그러자 존 킴 사장은 뭔 개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나마 이런 건 귀엽기라도 하다. 적어도 피해자는 없으니까.
“얼마 전에는 한 에이튜버가 걸그룹 연습생 출신을 저격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남자관계가 문란하고 학창시절 원조교제를 했다는 의혹이 있다구요. 당사자는 아니라고 수차례 해명했지만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았고, 그녀는 결국 자살했습니다. 그런데도 해당 영상을 만든 에이튜버는 여전히 활동하고 있더군요.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
이 정도까지 얘기했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을 것이다.
“더 신기한 건 그 채널을 누가 운영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얼굴을 가리고 방송을 하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사자를 특정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에이튜브에서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계좌를 등록해야 한다. 따라서 계좌 정보만 알아내면 당사자를 추적할 수 있다.
“한국 경찰이 수사에 나서서 에이튜브 측에 신원 파악을 위해 공문을 보냈지만, 구블코리아 측에서는 고객 개인정보를 알려줄 수 없으니, 구블 본사를 상대로 소송하라는 답변을 보냈다고 하더군요.”
존 킴 사장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졌다.
“무슨 말씀이 하고 싶은 겁니까?”
“루카스 CEO는 로키가 악용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해서는 안 될 일이 있으니까요.”
다시 말해 니들은 돈에 환장해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뜻.
“지금 말씀하신 건 어디까지나 극히 일부의 사례입니다. 에이튜브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영상은 별문제가 없습니다.”
“그렇긴 하죠.”
어디를 가나 미친놈들은 있기 마련.
특정 이용자가 가짜뉴스나 혐오 콘텐츠를 올린다고 해서, 해당 플랫폼이 그러한 성향을 지닌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영상들이 인기 동영상으로 치고 올라오고, 이를 올린 에이튜버들은 막대한 조회수와 후원금 수입을 얻고 있습니다.”
자극적인 콘텐츠는 돈이 된다.
따라서 돈은 더욱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영국 여왕 자선행사 참여’와 ‘경악! 영국 여왕 한국으로 귀화 의사 밝혀!’라는 영상이 있으면, 사람들이 둘 중 어느 영상을 클릭하겠는가?
나 같아도 후자를 클릭할 것이다.
“페이스노트는 가짜뉴스와 혐오 콘텐츠로 인해 큰 사회적 문제가 됐고, 마이크 골든버그 CEO는 미의회 청문회에 불려 나갔죠.”
가짜뉴스와 혐오 콘텐츠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
다행히 그 이후 페이스노트는 많은 점이 개선됐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가짜뉴스에 대한 팩트체크.
뉴스를 등록하면 관련된 언론 기사가 자동으로 뜬다. 이를 통해 기사의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에이튜브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고, 사진은 글보다, 그리고 영상은 사진보다 훨씬 파급력이 큽니다.”
소문은 안 믿더라도 영상을 보면 믿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에이튜브는 알고리즘을 통해 이용자가 원하는 영상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가짜뉴스가 가짜뉴스를 부르는 버블필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에이튜브에서 나온 얘기만이 진실이라 굳게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가짜뉴스, 극단주의, 혐오, 선동 등은 사회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칩니다. 특히 정치 쪽에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에이튜브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이 큰 만큼, 그에 따른 책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면전에 대고 문제를 지적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인지 그는 불쾌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 말씀은 좀 과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과장이요? 당장 정치 에이튜버 하나가 컨티뉴 캐피탈 앞에서 며칠째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요. 그로 인해 직원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고, 저와 록허트 대표님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예. 제가 바로 에이튜브 가짜뉴스의 피해 당사자입니다.”
표정을 보니 정말로 몰랐던 모양이다.
“지금 말씀하신 부분들은 해결을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러나 콘텐츠의 검열을 강화할 경우 표현의 자유를 해칠 우려가 큽니다.”
“표현의 자유라……. 중국에는 남쪽에 있는 귤나무를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열린다는 고사가 있습니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과 유럽에서는 잘하는 걸 한국에만 오면 제대로 못 하더군요.”
그 이유는 법과 규제가 약하기 때문.
한국 기업이라면 정치권 눈치를 봐서라도 알아서 잘하지만, 글로벌 기업은 그딴 거 없다.
이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가 에이튜브를 통해 퍼지는 가짜뉴스와 혐오 콘텐츠로 몸살을 앓고 있으니까.
요즘 큰일은 유럽이 한다고, 독일과 프랑스는 법을 만들어 규제에 나섰다.
독일의 경우는 ‘사회적 네트워크 집행법’을 만들어 이용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일주일 내에 반드시 플랫폼 사업자가 콘텐츠를 심사해 적합성 여부를 판별하도록 했고, 프랑스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가짜뉴스를 삭제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수십억 유로의 벌금을 부과할 수도 있고, 아예 플랫폼을 폐쇄할 수도 있다.
난 존 킴 사장을 보며 물었다.
“혹시 구블이 이런 가짜뉴스에 대해 일부러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에이튜버들이 가짜뉴스나 혐오나 선동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
그렇다면 에이튜브는 어째서 이 채널들을 가만히 두고 있는 걸까?
조회수에 따른 광고수익 절반은 에이튜브의 몫이다.
또한 이들이 받는 멤버십과 도네이션에서도 30퍼센트의 수수료를 떼간다.
에이튜버들의 수익이 곧 에이튜브의 수익인 만큼, 굳이 열심히 가짜뉴스를 검열하거나 채널을 삭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저희는 최선을 다해 문제가 되는 콘텐츠를 걸러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다만 인력 부족으로 인해 모든 콘텐츠를 일일이 확인하기는 힘듭니다.”
“그렇군요.”
난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
“그럼 인력을 더 고용하시면 되겠네요. 한국에서 돈도 많이 벌고, 법인세도 별로 안 내는 걸로 알고 있는데.”
존 킴 사장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렇겠죠.”
컨티뉴 캐피탈이 투자한 기업도 아닌데, 남의 회사가 직원 뽑는 것까지 간섭할 이유는 없다.
간섭한다고 해도 듣지도 않을 테고.
하지만…….
로키는 스노우 크래시가, 그리고 컨티뉴 캐피탈이 콘텐츠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저희는 이미 로키와 써릴 스크린을 제공해 영상 제작 업체들과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톡틱과 투위치 등과도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겠죠.”
난 일부러 에이튜브의 경쟁사를 언급했다.
한국에서 에이튜브는 압도적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동영상 플랫폼의 경쟁자는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는 톡틱.
톡틱은 1분 이내의 짧은 동영상인 숏폼을 무기로 10대들이 가장 선호하는 앱으로 올라섰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에이튜브 역시 숏폼을 올릴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톡틱의 아성을 꺾기는 무리였다.
“현재 에이튜브는 가짜뉴스와 혐오 콘텐츠의 온상지나 다름없습니다. 스노우 크래시와 협력을 원하신다면 이러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