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화. 개혁 (5)
남궁석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걸고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하자, 반대만 하던 국민 여론도 조금은 돌아섰다.
-저렇게까지 해서 추진하는 거 보면, 진짜 사회보험을 뜯어고치긴 해야 하나 보네.
-지금 개혁 안 하면, 나중에는 세금을 쏟아부어야 하니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거지.
-그래도 당장 내는 돈이 늘어나는 건데.
-국민연금 올리고, 건보료도 올리면, 월급쟁이들은 뭐 먹고 살라고?
-내 대출은 누가 갚아주나?
-그저 직장인만 만만하지~
-사회보험 개혁은 서민 증세다! 부자들에게 더 뜯어내라!
-건보료 지원 줄이면 아픈 사람은 다 죽으라는 건가요?
-사회보험 폐지 청원 갑니다!
여전히 반대가 컸지만, 그래도 개혁의 필요성 자체에는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정치권에서는 협상 끝에 정부와 여야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보험 개혁위원회가 출범했다.
* * *
난 SW게임즈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선우와 대화를 나눴다.
“커피는 역시 맥심이야.”
“돌아갈 때 몇 봉지 챙겨가.”
“그래야겠다.”
아리비카고 스페셜티고 다 필요 없다.
맥심이 최고다.
“일은 어때?”
“바빠 죽겠어. 대체 스튜디오를 몇 개나 인수한 거야?”
이제 SW게임즈는 산하에 여러 스튜디오를 인수한 거대 게임사로 거듭났다. 그리고 선우는 본인 게임뿐 아니라, 산하 스튜디오의 게임 개발을 전부 관리하는 총괄 디렉터가 됐고.
“좋잖아. 만들고 싶은 게임 실컷 만들 수 있고.”
“뭐, 그렇긴 한데.”
“좀만 기다려. 아이스스톰도 사줄 테니까.”
내 말에 선우는 깜짝 놀랐다.
“뭐!? 진짜 사주게?”
“니가 사달라며?”
“그거야 그냥 해본 말이지. 돈은 있어?”
“이제부터 만들어 봐야지.”
선우는 살짝 미심쩍다는 표정이었다.
“그냥 사주는 거야?”
“뭔 소리야? 게임 만들어서 갚아야지.”
“뭐라고?”
“왜? 자신 없어?”
“어째 일을 하면 할수록 빚만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인데.”
“인생이 원래 다 그런 거야.”
남들도 다 열심히 일해서 차 할부금과 집 대출금 갚는다.
그래도 싫다고 안 하는 거 보면 갖고 싶긴 한 모양이다.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가긴 어딜 가? 일해야 해. 대충 시켜 먹어.”
가만히 놔두면 계속 회사에 틀어박혀 있을 것 같다.
비티민D 부족으로 쓰러지지 않을까?
“광합성 좀 하자.”
난 강제로 선우를 끌고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입구 쪽이 소란스러웠다.
한 직원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누군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카메라와 마이크를 코앞으로 들이밀었다.
“현시연TV의 노용국 기자입니다! 컨티뉴 캐피탈 직원입니까? 직원 맞죠? 지금 사장은 어디 있습니까?”
“예? 누구……?”
직원이 붙잡혀 강제 취재를 당하는 모습을 본 나는 회전문을 돌아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안에 있던 선우는 황당해하며 말했다.
“뭐야? 왜 다시 돌아와? 회전문 이용 방법 알려줘?”
“잠깐만.”
난 건물 안에서 밖을 살폈다.
처음에는 언론사에서 취재라도 나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건물 입구에는 어느새 시위대가 몰려와 있었다.
“컨티뉴 캐피탈은 해명해라!”
“해명해라! 해명해라!”
“대통령과 유착관계 실토해라!”
“실토해라! 실토해라!”
머리에 빨간 띠를 동여맨 남자가 확성기를 들고 소리쳤고, 뒤에는 ‘현시연TV’라고 적힌 깃발을 든 사람들이 구호를 따라 외치고 있었다.
난 그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저놈들은 뭐야?”
* * *
[(충격영상) 남궁석과 컨티뉴 캐피탈과의 유착관계!]
“뭐? 개헌을 하겠다고? 지랄하고 자빠졌네.”
“탄핵당하기 전에 먼저 내려오겠다는 거죠. 남궁석에게 필요한 건 개헌이 아니라 감방입니다.”
김판호와 노용국은 언제나 그렇듯 남궁석 욕을 실컷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컨티뉴 캐피탈과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이놈들 아주 그냥 투기꾼이야. 그런데 신기하게도 투자한 것마다 대박을 터트렸네.”
“와! 진짜 얼마나 해 처먹었는지 감이 안 잡힐 정도네요.”
“무슨 투자의 신도 아니고 이 정도면 눈앞에 홀로그램이 뜨는 수준 아니야?”
“말도 안 되죠. 대체 컨티뉴 캐피탈이 이 정보를 어디서 알았겠습니까? 이건 정치권과 커넥션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맞아맞아.”
노용국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가 취재를 해보니 남궁석이 주목받은 게 GL엔텍 사태 때문입니다. 이때 컨티뉴 캐피탈 관계자의 제보를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척만 한 겁니다. 자기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말이죠.”
“이놈들이 완벽하게 짜고 쳐서 국민들을 속인 거지.”
“그리고 또 하나. 경선 당시 암호화폐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할 때 임창식은 규제 반대 쪽이었고, 남궁석은 규제 찬성 쪽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때 마침 컨티뉴 캐피탈이 페더를 공격해 암호화폐 시장을 붕괴시키는 바람에 남궁석이 경선에서 이겼거든요. 그러니까 남궁석이 뜬 것에는 두 번 다 컨티뉴 캐피탈과 관계가 있었던 겁니다.”
김판호는 맞장구를 쳤다.
“한 번이라면 우연일 수 있지만, 두 번이라면 우연이라 볼 수 없지. 이건 짜고 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야.”
노용국은 자신 있게 말했다.
“저희가 반드시 남궁석과 컨티뉴 캐피탈의 유착관계를 밝혀내서, 남궁석을 탄핵시키겠습니다. 내일부터는 컨티뉴 캐피탈 앞에서 현장방송을 진행하겠습니다. 주위 분들께 이 사실을 말씀해주시고 구독과 좋아요, 댓글, 그리고 아래 계좌로 후원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시연TV는 구독자님들의 도움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 * *
강남 유성타운.
유성그룹이 한국 최대 재벌인 만큼, 이 주변에서는 연례행사처럼 각종 시위가 벌어졌다.
보통은 회장실이 있는 A동 쪽에서 시위가 벌어진다. 그런데 이번에는 D동 앞에 시위대가 몰렸다.
다름 아닌, 현시연TV와 구독자들이다.
동호 선배는 그 모습을 보며 기가 막혀했다.
“아니, 저놈들은 왜 날 찾아? 난 남궁석을 본 적도 없는데.”
“선배가 사장이니까요.”
그것이 사장이니까…….
“화력 미쳤네. 시위한다고 하니 구독자가 저렇게 몰려나오다니.”
“으음…….”
이쯤 되면 에이튜브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닐까?
“현시연TV는 개그맨 김판호랑 기자였던 노용국이 만든 채널이라며?”
노용국은 잘 몰라도 김판호는 잘 안다.
그는 한때 각종 개그 프로그램에 나오던 유명 개그맨이었으니까. 대략 중학생 때쯤 재밌게 보고, 유행어를 따라 했던 기억이 난다.
“언제부터인가 방송에서 안 보인다 싶었는데, 정치 에이튜버의 길로 들어선 모양이네요. 잘나가던 개그맨이 어쩌다 저렇게 된 건지…….”
내가 안타까워하자, 동호 선배는 고개를 저었다.
“뭔 소리야? 완전 성공했는데.”
“저게 성공한 거라구요?”
“조회수랑 도네이션 쏟아지는 거 보면 개그맨 할 때보다 수입이 훨씬 짭짤할걸.”
“…….”
난 동호 선배와 함께 현시연TV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다.
에이튜브에는 좌파 우파,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수많은 정치 채널이 있지만, 그중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채널이 바로 현시연TV.
구독자는 무려 120만 명. 조회수는 기본 100만씩 나온다.
워낙 인기 채널이다 보니, 현역 정치인들의 출연도 줄을 이었다.
“얘들 도네챗 장난 아니야.”
카프리아TV에서 달풍선을 쏘듯, 에이튜브에서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에이튜버에게 후원금을 쏠 수 있다.
이를 도네챗이라 한다.
“얼마나 들어오는데요?”
“작년에만 30억 받았다는데.”
“…….”
이게 어느 정도냐면 에이튜브 도네챗 순위 6위다.
한국에서 6위가 아니라, 전세계에서 6위다.
참고로 상위 1위에서 5위는 실제 사람이 아닌 2D나 3D 캐릭터가 등장해 방송을 진행하는 버튜버가 차지하고 있다.
이는 7위에서 10위 역시 마찬가지.
“그런데 이 버튜버들 사이에서 한국의 현시연TV가 당당하게 6위를 차지하고 있는 거지. 이 정도면 버튜버들이 판을 치는 에이튜브계에서 한줄기 빛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흠, 왠지 국뽕이 차오르네요.”
“그치?”
이걸 보고 외국인들은 뭐라고 생각할지 궁금하다.
한국인은 대체 왜 저렇게 정치에 미쳐있나 신기해하지 않을까?
“아무튼 30억이면 수수료 30퍼센트 떼면 21억쯤 챙겼겠네. 이게 다가 아니야. 조회수로 들어오는 수입, 방송 도중 진행하는 광고 수입, 그리고 계좌로 들어오는 수입까지 합치면 50억도 훌쩍 넘을걸.”
“미쳤네요.”
이 정도면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나 다름없다.
이 얘기를 들으니 나도 더 늦기 전에 에이튜브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충격! 유재호 회장에게 채권 판매한 비법 공개!]
[경악! 모카뱅크 폭락, 그날의 진실!]
[스노우 크래시 인수한 썰 푼다!]
[페이스노트 완전히 끝났다!]
[컨티뉴 캐피탈의 행보에 엔플이 놀라고, 구블이 무릎을 꿇다!]
……대충 이런 섬네일만 박아도 대박 치지 않을까?
내가 지금 공매도 같은 거나 할 때가 아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동호 선배가 계속 설명했다.
“일단은 정치 채널이지만, 연예계 얘기를 비롯해 각종 이슈를 폭넓게 다뤄. 한마디로 말해 사이버 렉카랄까?”
“그게 뭐예요?”
“왜 도로에서 교통사고 나면 렉카가 제일 먼저 달려오잖아. 그런 것처럼 인터넷상에서 사고가 터지면 사이버 렉카들이 우르르 몰려와 이슈를 다루지. 현시연TV는 정치인, 연예인 할 것 없이 성매매, 스폰, 탈세, 도박 이런 거 의혹을 제기하며 공격하거든. 얘들한테 찍히면 그냥 간다고 보면 돼.”
“제기한 의혹은 사실이에요?”
“어쩌다 맞는 경우도 있긴 한데, 대부분은 아니지.”
“그럼 어떡해요?”
“어떡하긴. 아님 말고지.”
“…….”
“당사자가 아무리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해봐야 소용없어. 어차피 구독자들은 김판호와 노용국의 말만 믿으니까.”
그렇게 해서 보낸(?) 사람이 한 트럭이라고 한다.
“이건 뭐 마녀사냥도 아니고…….”
의심되면 일단 물에 집어 던져서 위로 뜨면 마녀고, 가라앉으면 마녀가 아니다. 어느 쪽이든 당사자가 죽어야 끝나는 건 마찬가지다.
에이튜브에 남궁석 대통령을 비난하는 채널은 셀 수도 없이 많다.
현시연TV 역시 그들 중 하나일 뿐.
문제는 이놈들이 갑자기 컨티뉴 캐피탈과 남궁석 대통령이 유착관계를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근거도 없고, 논리도 없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핵심을 정확하게 짚었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남궁석은 내 제보를 받고 움직인 게 사실이니까.
갑자기 뒷골이 당기는 느낌이다.
재벌치고 내 이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나에 관한 기사가 없는 이유는 유성그룹에서 언론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
내가 무슨 사고를 치거나 범죄를 저질렀다면 모를까, 굳이 최대 광고주와 척을 저가며 나를 언급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에이튜브 채널은 다르다.
이들은 조회수를 올리고, 후원금을 받을 수 있다면 뭐든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