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411화 (411/529)

411화. 개혁 (4)

난 유재호 회장을 만났다.

“남궁석 대통령이 큰 결심을 했군요.”

“개혁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존경스러울 정도입니다.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 시한폭탄을 본인이 해체하겠다고 나선 거니까요.”

현재 사회보험은 지속이 불가능한 구조.

건강보험과 연금 모두 현세대를 위해 미래 세대가 희생하는 구조로 설계된 만큼, 미래 세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개혁해야 한다.

문제가 생긴 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이미 늦다.

그나마 지금이 골든타임.

이 시기를 놓치면 개혁은 더욱 힘들어진다.

유재호 회장은 약간 회의적인 투로 말했다.

“누구에게나 좋은 계획이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걸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죠.”

“그렇긴 하죠.”

사회보험 개혁은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부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사안이다.

국회가 반대한다면, 죽도 밥도 안 된다.

대통령은 여야가 함께 참여하는 개혁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여야 모두 반응이 냉담하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반대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그래서 남궁석 대통령의 개혁이 성공할 거라고 봅니까?”

“글쎄요.”

유재호 회장은 농담처럼 말했다.

“미루 씨도 모르는 게 있군요.”

다시 말하지만, 나 1회차 때는 대통령이 임창식이었다. 그는 이 문제를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다음 정부 때 슬슬 문제가 터져나왔지만, 역시나 제대로 손을 대지 못했고.

그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국채를 발행해 메우고 있었을 뿐이다.

과연 남궁석 대통령이 해낼 수 있을까?

* * *

남궁석 대통령은 여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우리국민당 임창식 대표.

그는 강력한 대권후보였으나, 정작 대통령이 된 건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보통의 경우 여당 대표는 대통령과 사이가 좋기 마련. 그러나 남궁석 대통령을 대하는 임창식 대표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남궁석이 운 좋게 대통령이 된 사람이라면, 임창식은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친 사람이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딱 한 걸음만 나아가면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당내 경선에서 패하며 꿈은 물거품이 됐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지금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 그를 대통령 자리에서 밀어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 자리에 앉은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

비록 대통령이 되지는 못했지만, 임창식은 여전히 당내에서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다.

국무총리는 물론 내각의 절반을 친임계파가 차지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정작 가장 원하던 대통령 자리를 빼앗겼으니까.

임창식은 남궁석을 볼 때마다 부러움과 질투에 휩싸였다.

‘니가 사는 그 청와대. 그 청와대가 내 청와대였어야 해. 니가 타는 그 전용기. 그 전용기가 내 전용기였어야 해.’

집권 초기 혼란이 커지자, 역시 임창식이 대통령이 돼야 했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만약 지금 다시 대선을 치른다면 그가 당선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끝난 선거를 되돌릴 방법은 없다.

지금으로서는 5년 뒤를 기약하는 수밖에.

식사가 끝난 뒤.

본격적인 정치 현안에 대한 얘기가 시작됐다.

남궁석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밝힌 사회보험 개혁에 대해 말했다.

“개혁위원회에 국회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개혁안에 대해 의원들의 반대가 큽니다. 국민들도 크게 우려하고 있구요.”

“그럼 대표님께서는 반대하시는 겁니까?”

“크흠.”

차라리 잘못된 정책이면 반대하겠지만, 이건 옳은 정책이다. 또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대놓고 반대했다가는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생길 지도 몰라.’

개혁에 찬성할 생각은 없지만, 개혁에 반대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건 피해야 한다.

임창식 대표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반대한다는 건 아니지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천천히 진행하다가 지금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현재 사회보험이 폭탄 돌리기나 다름없습니다.”

지금도 적자를 메우기 위해 매년 수조 원씩의 세금을 쏟아 붓고 있다. 앞으로 10년만 지나만 수십조 원, 그리고 그 이후에는 수백조 원씩을 투입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이런 적자를 감당할 수 없으니, 그때가 되면 등 떠밀리듯 개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다음 정부는 그만큼 부담을 덜 수 있다.

“이번 정부에서야 별문제 없겠지만, 당장 다음 정부에서 이 문제가 불거질 거라는 것은 대표님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임창식은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강력한 대권 후보였다. 만약 그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임기 중에 이 문제를 떠안게 될 것이다.

그때는 개혁을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겠지.

‘그래서 이번에 대통령이 됐어야 했는데.’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대표님께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임창식 대표는 탐탁지 않다는 투로 물었다.

“어떤 제안입니까?”

어떠한 제안을 하든 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제안을 듣는 순간 임창식 대표는 깜짝 놀랐다.

“진심입니까?”

그만큼 누구도 상상도 못 할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남궁석 대통령은 어느새 식어버린 차를 마시며 말했다.

“예. 모든 비난은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 * *

그동안 모두가 사회보험 적자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지만, 남궁석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발표 이후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일반 국민들은 반대 여론이 큰 반면, 관련 전문가들은 찬성을 나타냈다.

특히 사회보험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는 방호식 교수는 학계 교수들과 함께 찬성 성명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방송사에서는 긴급 토론을 개최했고, 이 자리에서 찬반의견이 오갔다.

“국민연금은 현재 700조 원의 자산이 있고 향후 1500조 원까지 늘어납니다. 하지만 앞으로 30년 뒤면 기금은 고갈되고, 그때부터는 납입금액보다 지출금액이 커지며 내년 수십, 수백조 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구조입니다.”

“차라리 국민연금을 폐지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국민 모두가 각자 노후를 준비할 수 있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을 겁니다. 노후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은퇴자가 늘어나면, 어차피 기초연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이 역시 재정에 부담이 됩니다.”

“기초연금도 폐지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럼 고령층의 생계형 범죄가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제소자 한 명당 들어가는 관리비용이 하루 4만 원 정도입니다. 한 달이면 120만 원이 들어가는 셈이죠. 고령층에게는 노역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각종 질환과 치매 등으로 교도관들이 달라붙어 수발을 들어줘야 합니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이미 고령층 교도소는 양로원화 됐고, 그나마도 포화상태라 출소를 안 하려는 노인들을 강제로 내보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민건강보험 역시 첨예한 주제였다.

국민연금은 폐지하자는 의견도 있는 반면, 건강보험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필요성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연금은 나중에 받을지 말지 알 수 없지만, 건강보험은 지금도 모두가 혜택을 받고 있으니까.

그나마 국민연금은 30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지만, 건강보험은 당장 5년 안에 재정이 고갈된다.

그렇다고 건강보험을 폐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결국은 내는 돈을 늘리고 지원을 축소해야 한다.

이것 역시 감기나 타박상 같은 경증질환에 대한 지원을 줄일지, 암이나 심장수술 같은 중증질환에 대한 지원을 줄일지 의견이 엇갈렸다.

“건보료 부정수급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겁니까?”

“그건 물론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늘어날 적자는 천문학적입니다. 지금 구조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건강보험은 폐지되고, 미국처럼 사보험으로 치료해야 할 겁니다.”

갑론을박이 오가는 가운데, 남궁석 대통령은 다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사회보험 재정 전망과 적자 규모에 대해 상세하게 국민들에게 알렸다.

“그동안 정부는 미봉책으로 그때그때 대응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됩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지금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은 정치권이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대통령 이전에 3선을 한 국회의원으로서 이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개혁을 완수하는 대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려 합니다.”

남궁석 대통령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정부는 국회와 함께 사회보험 개혁과 함께 개헌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현재 5년 단임제인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중임제로 바꾸겠습니다. 개헌이 통과되면 다음 총선 때 대선을 함께 치르겠습니다.”

* * *

[남궁석 대통령 개헌 카드!]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개헌!]

[다음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함께 치르는 방안 제시. 이 경우 현 대통령 임기를 절반 단축!]

[남궁석 대통령, 사회보험 개혁은 미룰 수 없는 과제]

[정권의 명운을 걸고 개혁 천명!]

유재호 회장은 나에게 물었다.

“개헌이라니. 혹시 예상했습니까?”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혀 예상 못 했습니다.”

5년 단임제인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것은 이전부터 논의돼왔고, 대다수의 국민이 찬성하는 안인 만큼, 국회 문턱만 통과하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개헌의 핵심은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바로 현 대통령의 임기를 축소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궁석 대통령은 5년 임기 중 절반을 내놓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부자가 재산을 빼앗기지 않으려 않듯, 권력자는 권력을 내놓기를 싫어한다.

한때 뛰어난 지도자였던 이들조차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기 위해 독재자의 길을 걷는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다.

그가 앉아있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누군가는 단 하루라도 앉고 싶어 하는 자리다.

그런데 그는 그 권좌에서 스스로 내려오겠다고 밝혔다.

대체 어느 누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유재호 회장은 놀랐다는 듯 말했다.

“대통령 하나는 정말 잘 뽑았네요.”

그 말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아마 그가 정치인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가 아닐까?

난 일전에 만났던 남궁석을 떠올렸다.

그는 새로운 개혁이나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의 가장 심각한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그의 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질 테고, 그는 실패한 대통령으로 권좌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다.

그저 임창식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해서 그를 밀었던 건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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