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화. 개혁 (3)
현재 한국은 대에이튜브의 시대.
아이부터 노인까지 하루 종일 에이튜브를 달고 산다.
에이튜브는 어느새 페이스노트와 린스타그램을 제치고 이용시간이 가장 많은 앱으로 올라섰고, 에이튜브는 인기 직업으로 급부상했다.
방송이나 뉴스 대신 에이튜브를 통해 정보를 접하는 게 당연해지며, 정치 에이튜버들 역시 대거 등장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채널은 ‘현대 시사 연구회 TV’.
줄여서 현시연TV인 이곳은 개그맨 출신 김판호와 NBS 기자 출신 노용국이 만든 채널로, 김판호의 찰진 입담과 노용국의 취재력 덕분에 단기간에 급속도로 성장했다.
현시연TV는 한국 정치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진정한 언론이라 주장했지만…… 실체는 그냥 가짜뉴스의 온상지였다.
무엇보다 섬네일을 기가 막히게 뽑는 것으로 유명했다.
[충격! 남궁석 대통령, 치매 초기 증상 발견!]
막상 내용을 보면 그다지 충격적이진 않았다.
[경악! 남궁석은 남씨가 아닌 남궁씨. 전국민 속였나?]
아무도 속지 않았기에 아무도 경악하지 않았다.
[남궁석! 탄핵이 눈앞에 보인다!]
안 보였다.
[사전투표함 바꿔치기 증거 발견! 남궁석, 이제 끝났다!]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고, 아직 안 끝났다.
섬네일은 그저 관심을 끌기 위한 도구일 뿐.
어쨌거나 이러한 노력 덕분에 구독자는 무려 120만 명, 조회수는 평균 100만씩 찍혔다. 이는 정치 에이튜브 중에서는 최대였다.
두 사람은 매일 저녁 7시에 뉴스 스튜디오 같은 세트장에서 뉴스처럼 방송을 진행했다.
내용은 역시나 남궁석에 대한 비판이었다.
“혹시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까 봐 다시 말씀드리는데, 남궁석은 남씨가 아닌 남궁씨입니다! 여러분. 무협소설 많이 보시죠? 거기 오대세가로 나오는 남궁세가가 바로 이 남궁입니다. 한자도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런데도 중국과 아무 관계가 없다구요? 웃기는 소리죠. 남궁석 아버지가 조선족이 아니라고 해도, 위로 계속 올라가다 보면 분명 중국이 나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남씨나 남궁씨나 전부 중국에서 유래한 성씨고, 이렇게 말하는 노용국의 성인 노씨 역시 중국에서 유래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김판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이건 명백하게 국민들을 속인 겁니다. 저희가 시청자들에게 설문을 해봤는데, 남궁씨인 걸 알았으면 안 뽑았을 거라는 의견이 무려 95퍼센트였습니다.”
현시연TV를 구독하는 시청자들은 남씨든 남궁씨든 상관없이 남궁석을 안 뽑았겠지만…… 이 역시 별로 중요하진 않았다.
어차피 누구도 진실에는 별 관심이 없으니까.
방송을 진행하는 동안 쉴 새 없이 도네이션이 쏟아졌다.
조회수에 따른 광고 수입, 도네이션, 그리고 계좌로 들어오는 후원금까지 더해 현시연TV는 매달 수억 원을 벌어들였다.
* * *
언제는 안 그랬겠냐만, 최근 한국 정치는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남궁석은 3선을 하는 동안에도 당내 주류와 타협하지 않고 본인의 길을 걸었다.
때문에 당내 지지기반은 사실상 제로였다. 이는 대통령이 된 이후 역시 마찬가지.
내각 구성은 늦어졌고, 선거 당시 내세웠던 각종 공약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지지율은 계속 하락세였다. 오죽하면 허니문 기간임에도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남궁석 대통령은 직접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카메라 앞에 선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이 자리에서 사회보험 개혁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회보험이란 산재보험, 국민건강보험, 고용보험, 장기요양보험, 그리고 국민연금을 통칭하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보험은 현세대의 부담을 미래세대로 전가하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지금 개혁하지 않는다면 정부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성장률은 크게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누적된 적립금이 있으니 당장이야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재정이 고갈되는 순간부터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지금만 해도 국민연금을 제외한 4대 연금 적자에 정부는 연간 10조 원씩 세금을 투입하고 있고, 건보료는 10년 후 10조 원씩 적자가 나기 시작해 30년 뒤면 누적적자가 2500조 원이 됩니다.”
남궁석 대통령은 사회보험의 재정 전망과 적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다음 말을 이었다.
“당장은 어렵고 고통스럽겠지만, 이번 정부에서 이를 개혁하지 못한다면 다음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할 테고, 다음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다음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따라서 저는 제 임기 안에 반드시 이 문제를 개혁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여야가 함께 참여하는 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추진하겠습니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대한민국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즉시, 기사가 쏟아졌다.
[남궁석 대통령, 새정부 개혁안 발표!]
[사회보험 개혁 추진!]
[국민건강보험료, 연금보험료 줄줄이 오르나?]
[4대 연금 통합. 현실성 있는 계획인가?]
건보료든 국민연금이든 개혁의 핵심은 동일했다.
바로 더 내고 덜 받는 것.
당연하게도 여론이 좋을 리 없었다.
-말이 좋아 개혁이지, 결국 더 내고 덜 받으라는 거 아니야?
-건보료를 어디까지 올리려는 거지?
-쥐꼬리만한 월급에서 더 뜯어가겠다고?
-ㅋㅋㅋ 이러다가 나중에 줄 때 되면 말 바뀌겠는데.
-국민연금 좀 없애면 안 되냐? ㅜㅜ
-당장 죽게 생겼는데, 나중에 받을 연금이 무슨 소용이냐?
-애초에 국민연금 자체가 폰지사기나 다름없다! 당장 폐지해라!
-대통령은 환매청구 안 되나? 다시 뽑자~
-역시 대통령은 임창식이 됐어야 했어~
* * *
동호 선배는 깜짝 놀랐다.
“어! 뭐야? 갑자기 사회보험을 개혁하겠다고?”
나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
“저건 방 안에 있는 코끼리나 다름없어요.”
동호 선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뭐였지?”
“해결하지 못할 문제라면 못 본 척하는 게 최선이라는 거죠.”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란 말이 있다.
방에 코끼리가 들어와 있으면 모두가 불편하다.
코끼리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서는 소란이 발생하고 문이 부서질 수도 있다.
당장 코끼리를 내보낼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건 아예 코끼리의 존재에 대해 모른 척하는 것이다.
때문에 모두가 코끼리를 마주하면서도 이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코끼리는 점점 덩치를 키운다.
이제 코끼리를 내보내려면 문이 아니라 벽을 부숴야 한다. 이제는 더더욱 내보낼 생각을 하지 못한다.
결국 코끼리로 인해 집이 부서질 때쯤 돼야 부랴부랴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임기 초에 이런 개혁을 시도하면 지지율 폭락으로 국정 동력을 상실한다. 반대로 임기 말에는 레임덕으로 인해 개혁을 추진할 만한 동력이 없다.
이게 바로 선거 때면 다들 개혁을 부르짖다가도 막상 집권을 하게 되면 손을 놓는 이유다.
“앞으로 10년만 지나도 사회보험 적자 규모가 감당이 안 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요.”
그러나 국민들은 연금보험료를 더 낼 생각이 없고, 정치인들은 구조 개혁을 할 생각이 없었다.
때문에 모두가 이 문제를 알고도 모른 척, 보고도 못 본 척했다.
엄밀히 따지면 이건 굳이 지금 정부가 해결할 필요는 없는 문제다. 적자가 심각해지는 건 다음 정부 때니까.
난 1회차 때를 떠올렸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임창식은 이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고 다음 정부로 넘겼고, 다음 정부 역시 개혁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그러나 남궁석은 달랐다.
온 국민에게 이 문제를 알리고, 자신의 임기 내에 해결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동호 선배는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저게 가능할 것 같아?”
난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겠죠.”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할 것 같은데. 지금 직장인들 난리 났어.”
지금도 가뜩이나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이 큰 상황이다.
그런데 정부가 제시한 계획안을 보면, 9퍼센트인 연금보험료율을 15퍼센트로 인상하고, 단계적으로 20퍼센트까지 인상하겠다는 것.
말이 좋아 6퍼센트 인상이지, 기존 보험료에서 무려 66퍼센트를 올리는 것이다. 직장인 입장에서는 당장 그만큼의 돈이 월급에서 깎이는 셈이다.
이걸 누가 반기겠는가?
게다가 더 문제가 되는 건 4대 공적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
여기에 해당되는 공무원, 군인, 교사들이 단체로 들고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때문에 그가 말한 개혁은 누구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구도 하지 못했고, 누구나 필요하다는 것은 알면서도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이걸 하겠다는 것은 모두에게 욕을 먹는 것을 각오하겠다는 것.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 대통령 지지율은 10퍼센트로 떨어지지 않을까? 아니, 그 이하로 떨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 개혁이 성공하든 성공하지 않든, 그는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모두에게 기억될 것이다.
난 남궁석 대통령의 말을 떠올렸다.
실패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게 이걸 뜻한 거였나?
* * *
사회보험 개혁안을 발표한 직후 여론조사에서 남궁석 대통령의 지지율은 5퍼센트가 폭락했다.
수십 개의 단체에서 반대 성명을 발표했고, 정치권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고 갔다.
세상에는 정치에 관심 없거나 투표를 안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건 당장 월급에서 떼가는 돈이 많아지는 것인 만큼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남궁석 대통령이 사회보험 적자를 방관하고 있다고 비난하던 언론들은, 막상 그가 개혁안을 발표하자 다시 비난을 쏟아냈다.
[국민 부담은 고려하지 않은 독단적인 개혁안!]
[보험료율 인상시, 실질적인 임금 감소]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찬물 끼얹나?]
[사회보험 개혁, 신중하게 접근해야……]
자칭 진정한 언론인 현시연TV 역시 이 문제를 심도 깊게(?) 다뤘다.
노용국은 거세게 성토했다.
“사회보험을 개혁하겠다고? 이건 그냥 월급쟁이들 다 죽으라는 거죠. 미친 거 아닙니까?”
김판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쳐도 곱게 미쳐야 하는데, 이 정도면 중증 치매라고 봐야지.”
“부정선거로 대통령이 됐으면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다 갈 것이지, 지가 뭐라고 개혁을 하겠다는 겁니까?”
“남궁석은 진정한 대통령이 아니야. 탄핵만이 답입니다.”
“생각해 보면 원래 대통령감도 아니었던 인간이 운 좋게 대통령이 된 거잖아요.”
“그러니까. GL엔텍 사태 때 나서는 바람에 주목받은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국회의원직도 유지 못 했을 인간인데.”
“경선도 못 나가고 탈락이었죠.”
남궁석은 GL엔텍 물적분할 상장 당시 이 문제를 지적하며 당과 대립각을 세웠고, 덕분에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
김판호는 농담처럼 말했다.
“혹시 컨티뉴 캐피탈과 짜고 친 게 아닐까?”
“어! 진짜 그럴 수 있겠네요.”
노용국은 NBS 기자 시절부터 촉이 꽤 좋은 편이었고, 덕분에 여러 특종을 취재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 촉이 발동했다.
‘GL엔텍 사태 이전에 컨티뉴 캐피탈 관계자가 몰래 제보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부분을 한번 취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아니면 그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