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화. 개혁 (2)
난 데이비드와 화상통화를 했다.
기업들은 보통 잼비디오를 쓰지만, 우리는 스노우 크래시에서 자체 개발한 클라우드 기반 화상통화 프로그램 후긴(Hugin)을 사용한다.
기존 프로그램과의 차별점은 로키를 활용해 화질 보정을 해준다는 것.
덕분에 모니터에 나타난 데이비드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깔끔했다.
“메기는 어떻게 지내나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새집을 매우 마음에 들어하더군요.]
“다행이네요.”
무려 2억 달러짜리 집이다. 마음에 안 들어 하기는 쉽지 않겠지.
딸과 함께 지내서 그런지 얼굴이 좋아 보인다.
[가끔 보스를 보고 싶다는 얘기를 합니다.]
“저도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주세요.”
안부 얘기가 끝나자 일 얘기가 시작됐다.
[일전에 말씀하신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경영진과 접촉했습니다.]
“어떻게 됐나요?”
[지분을 매각할 생각은 크게 없어 보입니다.]
컨티뉴 캐피탈은 어느새 투자한 것마다 대박을 터트린 유명 사모펀드가 됐다.
투자업계에서 유명세를 얻으면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많은 기업이 우리에게 투자를 받고 싶어 하는 반면, 지금처럼 기업 인수에 나서면 ‘혹시 우리 기업에 조만간 호재가 있나?’ 하며 매각을 주저하게 된다.
이 기업 같은 경우는 후자다.
“현재 주가에서 두 배를 준다고 하세요.”
제안을 거절한다면, 제안한 금액이 적지 않았는지 의심해봐야 한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법이지.
데이비드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그 정도 기업은 없어도 그만일 텐데요. 아무리 살펴봐도 성장성은 없어 보이구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분석하기에는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봤어요.”
그의 말대로 이 기업은 성장성이 없다. 현상 유지만 해도 다행이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투자해 놓으면 분명 돈이 될 거예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내 말을 믿기 때문인지 데이비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조만간 뉴욕에서 뵙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우리는 화상통화를 끝냈다.
* * *
동호 선배는 오전부터 연락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구예요?”
“지난번에 명함을 좀 돌렸더니. 여기저기서. 대연차그룹, DS그룹, LK그룹 등등.”
“뭐라고 하는데요?”
“그냥 쓸데없는 얘기야.”
내가 이래서 명함을 안 뿌린다.
내 개인정보는 소중하니까.
그래도 학교 선배이자 직장 선배가 재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걸 보니 괜히 뿌듯하다.
“인기 좋네요.”
“인기는 무슨. 아! 모레 대연차 신차 공개 행사한다고 오라는데.”
“아름 씨랑 한번 가봐요. 친해지면 할인 좀 해주지 않을까요?”
“어, 그런가? 안 그래도 부모님 차 바꿔드려야 하는데.”
저쪽에서 친하게 지내자고 하는데,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동호 선배는 한국에서 계속 투자와 사업을 해야 하는 만큼 인맥이 넓으면 좋을 테고.
동호 선배는 내 노트북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넌 아까부터 뭐 보고 있는 거야?”
“에이튜브요.”
“충격 진실. 내란 임박. 부정선거. 대통령 탄핵. 남궁석 북한으로 망명 준비 중…….”
동호 선배는 주옥같은 섬네일을 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너 설마 이런 거 봐?”
“인기 순위에 올라오기에 궁금해서 한번 봤어요.”
“아, 정치 에이튜브는 인기가 장난 아니지. 지하철만 타도 다들 그거 보고 있다니까.”
최근 정치판 여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방송 3사나 대형 신문사가 아닌, 바로 에이튜브.
여기에 올라오는 정치 영상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조건적인 비난 또는 무조건적인 찬양을 한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말도 안 되는 극단적인 주장을 마치 사실처럼 얘기했다.
일부는 기자를 자칭하며 취재도 다니고, 뉴스 데스크처럼 차려놓은 스튜디오에 정치평론가라는 사람이나 유명 정치인들을 불러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마치 언론처럼 보이지만, 그저 개인 채널일 뿐. 진짜 언론이 아닌 만큼 책임을 지고 말 것도 없었다.
어느 쪽으로 편향되어 있든, 언론은 최소한의 보도 윤리라는 게 있다.
그러나 에이튜브와 페이스노트에는 그딴 거 없다. 이렇다 보니 온갖 가짜뉴스와 편향된 의견들이 넘쳐났다.
정치인을 말과 행동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진영에 따라 평가한다. 상대편이 했으면 잘한 것도 욕하고, 우리 편이 했으면 못한 일도 칭찬한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열심히 방송을 하는 걸까?
설마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동호 선배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다 돈 때문이지.”
“정답.”
에이튜브 영상에는 광고가 붙는다. 그리고 이 광고 수익은 영상 제작자와 에이튜브가 반반씩 나눠 갖는다.
“후원도 장난 아니게 들어온대. 한국 후원 상위 랭킹 보니까 버튜브가 반이고, 정치튜브가 반이더라.”
관심과 조횟수는 곧 돈으로 연결된다.
진영을 딱 반으로 나눠서 우리 쪽은 무조건 찬양하고, 상대 쪽은 조롱하고 비하한다.
이렇다 보니, 합리적인 생각과 의견은 사라지고, 양극단의 주장이 마치 정론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이게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고, 전세계가 마찬가지.
21세기 들어서 오히려 민족주의가 부흥했고, 극단주의 정당이 선거에서 표를 얻는 일이 많아졌다.
보고 싶은 걸 보고, 듣고 싶은 걸 듣는 세상이다. 나는 옳고 남은 틀리고, 내가 믿는 게 곧 진실이다.
“그런데 남궁석 대통령은 잘하는 거 맞아? 지지율이 쭉쭉 떨어지던데. 여당과의 내홍도 심각하고.”
“원래부터 우리국민당에서도 내놓은 자식이었잖아요.”
당에서 하지 말란 짓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어찌나 말을 안 듣는지 출당시키자는 얘기까지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임창식이 대통령이 됐어야 했다는 얘기가 많아.”
“음…….”
임창식이 나라 말아먹는 꼴을 봤다면 이런 얘기 절대 못 할 텐데.
참고로 난 봤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거다.
“국회의원 때는 잘하는 것 같았는데, 대통령 되니 영 일을 못하네. 왜 그 무슨 법칙 같은 거 있잖아. 조직 구성원들은 자신의 무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위치까지 승진한다는.”
“피터의 법칙이요?”
“어, 맞아. 그거.”
직급이 달라지면 업무가 달라진다.
뛰어난 플레이어가 감독까지 잘하란 법은 없다. 마찬가지로 국회의원을 잘했다고 해서 대통령까지 잘한다는 법은 없다.
“아직 정권 초기니까 좀 더 지켜봐야죠.”
많은 사람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나다.
그래서인지 왠지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가 잘해야 할 텐데…….
* * *
남궁석.
신라대 교수였던 그는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고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 낙선하면 다시 상아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선거에서 계속 이기는 바람에 어느새 3선 국회의원이 됐고, 경선과 대선에서까지 이기는 바람에 대통령이 됐다.
사실 그가 대통령이 된 건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때문에 그는 가장 운 좋은 대통령으로 불렸다.
어쨌거나 대통령이 된 이상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할 생각이었다.
지금 한국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저출산 고령화는 심각했고, 온갖 사회적 갈등 요소들이 산적해 있다.
당장의 경제지표는 큰 문제가 없지만, 지금 손을 대지 못한다면 국가의 성장률을 갉아먹을 것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가 추진하는 개혁 과제들은 번번이 국회의 문턱에 가로막혔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이상이 있다.
문제는 이를 실행할 만한 힘이다.
비록 국민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긴 했지만, 그는 여당의 지지조차 받지 못했다.
뭐 하나 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국회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가 하려는 개혁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다. 이 때문에 국회의 문턱을 넘기가 힘들었다.
여당과의 내홍이 깊어지며 신당 창당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어쩌면 남보다도 못한 여당과 5년을 함께 가느니, 차라리 지지 세력을 모아 신당을 창당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권력 다툼을 하다 보면 임기 초반이 훌쩍 지나갈 테고, 그럼 개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남궁석은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몸이 힘든 것보다도 정신적으로 너무 지쳤다.
그를 짓누르는 것은 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교수가 잘못하면 학생이 피해를 본다. 국회의원이 잘못하면 당과 지역구 주민들이 피해를 본다.
그런데 대통령이 잘못한다면?
그럼 온 국민이 피해를 본다.
‘나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자신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대체 어쩌다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걸까?
‘난 그저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만들고 싶었을 뿐인데.’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그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여기서 단 한 사람만은 예외다.
남궁석은 자신을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든 사람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러면 정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일을 끝마친 뒤, 차를 타고 퇴근하는 길에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이군.]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설마 그에게서 연락이 올 줄은 몰랐기에 살짝 당황했다.
“무슨 일로 연락하셨나요?”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네만.]
“예.”
[왜 하필 나였나?]
목적어는 없었지만, 난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글쎄요.”
난 1회차 때 회귀하기 전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떠올렸다.
당시 한국은 온갖 대내외적인 악재로 무너져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정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양 진영은 권력 다툼에만 몰두했다.
이 와중에 남궁석은 쓰러져가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했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더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내가 성공한 대통령이 될 거라 생각하나?]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눈앞에 미래가 홀로그램으로 뜨는 것도 아니고. 난 그저 환생SUV(?)에 치여 회귀를 했을 뿐이다.
1회차 때와 똑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예측할 수 있어도, 여기서 어긋나면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1회차 때는 없었던 일.
따라서 그가 잘할지 아닐지는 나도 모른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나?]
목소리와 톤에서 그가 느끼는 갑갑함과 두려움이 전해졌다.
난 피터의 법칙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는 국회의원은 잘할지 몰라도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안 맞는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내가 그에게 대통령이라는 무거운 짐을 강제로 떠넘긴 셈이다.
뭐라고 말을 하는 게 좋을까?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시면 됩니다.”
[하고 싶은 일이라……. 어려운 얘기로군.]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난 그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결심한 게 하나 있지.]
“뭔가요?”
내 물음에 남궁석 대통령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면…… 차라리 실패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
이게 무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