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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성공 투자법-405화 (405/529)

405화. 소울푸드 (3)

인원수에 맞춰 예약을 해놓은 만큼, 자리에는 이미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차피 여기는 메뉴가 닭한마리뿐이라 고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반조리된 상태에서 테이블에 올라오는 냄비에 불을 켜서 끓이기만 하면 된다.

부스코프스키 위원은 자리에 앉아 실내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말은 안 했지만, 적잖이 당황한 것 같은 표정이다.

만찬이라고 하면, 호텔 연회장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하기 마련. 설마 이런 동네 음식점 같은 곳으로 올 줄은 몰랐겠지.

그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분위기가 아늑하네요.”

“예. 알아보니까 여기가 직장인 맛집이라 합니다.”

“흠, 그렇군요.”

부스코프스키 위원은 벽에 있는 메뉴판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는 뭐라고 쓰여있는 겁니까?”

“메뉴입니다.”

“음식의 이름은 뭡니까?”

“닭한마리(One Chicken)입니다.”

“재밌는 이름이군요. 그 옆에 써진 숫자는……?”

“가격입니다. 2만 4천 원이네요. 대략 20유로쯤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

그나마 이것도 2인분이 기준이다.

1인으로 치면 10유로인 셈.

그러나 한 냄비에 끓인 음식을 각자 퍼서 먹는 것이 어색한 서양인의 특성을 고려해, 그냥 한 사람 앞에 하나로 하기로 했다.

1인1닭이라는 K-인심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스코프스키 위원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동호 선배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루야. 아무래도 우리 망한 것 같아.”

“그걸 알았으면 예약할 때 말리지 그랬어요?”

“……응?”

“기다려 봐요.”

오히려 잘됐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기대가 바닥까지 떨어지면 기쁨도 큰 법이지.

* * *

조용한 가운데 양푼냄비에 담긴 닭한마리가 조용히 끓기 시작했다.

다들 입을 다문 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유재호 회장은 겉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실제 속은 타들어 가는 중이었다.

부스코프스키 위원과는 그가 장관 시절 독일에서 몇 번 만남을 가지며 친분을 쌓았다. 그 인연 덕분에 이번에 경제인 만찬을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업들에게 있어서 EU는 미국 다음으로 중요한 시장.

차기 EU 집행위원장과의 만남인 만큼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그래서 눈도장을 찍기 위해 신중하게 식당을 골랐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도중 한미루가 맡겨달라고 나서자 안심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한미루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설마 닭한마리 집을 예약할 줄이야!’

고급 음식만 먹던 사람에게 한국의 서민적인 음식으로 반전을 주고 싶었던 거라면…… 완전히 실패다.

차라리 인테리어가 좀 허름하더라도 역사가 오래된 맛집이면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그냥 동네 음식점.

‘대체 뭔 생각으로 여기를 예약한 거야?’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옆에 있던 차태완 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오늘 아주 특별한 음식을 먹는군요.”

너무 특별해서 문제다.

주위 사람들이 일제히 맞장구를 쳤다.

“한국 가정식이네요.”

“식당도 깔끔하고.”

“이 근처에서 오래 일했는데,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그 이유는 3년 전쯤 생겼기 때문.

허민웅은 민기진에게 물었다.

“통통치킨은 여전히 잘되고 있죠?”

“예. 저희 매출 효자 상품입니다. 다 한미루 팀장 덕분이죠.”

그 말에 유재호는 실날 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그 한미루다.

설마 그가 아무 생각 없이 이곳을 예약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엄청난 맛집일 거야. 분명 상상도 못 할 맛이 나겠지.’

종업원들이 냄비 뚜껑을 열어주며 말했다.

“조리 다 됐습니다. 이제 드시면 됩니다.”

유재호는 기대를 품고 슬쩍 맛을 보았다.

그러고는 깜짝 놀랐다.

‘이건…… 그냥 닭한마리 맛이잖아!’

딱히 맛없는 건 아니지만, 딱히 맛있는 것도 아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닭한마리라는 음식은 이름 그대로 닭 한 마리를 넣어서 삶은 것. 딱히 맛이 없기도 힘들지만, 반대로 엄청나게 맛이 있기도 힘들다.

유재호 회장이 당황하는 사이, 부스코프스키 위원 역시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한 입 먹어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멈칫했다.

모두가 어떤 반응이 나올지 주목하는 가운데, 그가 숟가락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탁!

그 모습을 보며 모두가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망했다!’

부스코프스키 위원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좌불안석이었다.

‘대체 얼마나 맛없으면 눈물까지?’

‘설마 억울하고 분해서 우는 건가?’

‘하긴, 일본에서 온갖 산해진미를 먹고 온 사람에게 이런 걸 먹였으니.’

‘누구인가? 누가 여기 오자 했는가?’

유재호 회장은 일단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혹시라도 입맛에 안 맞거나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근처 레스토랑 두 곳을 예약해두었다.

지금이라도 자리를 옮기는 게 최선이다.

그가 일어나서 말하려는데, 부스코프스키 위원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실망할 뻔했습니다. 하지만 이 음식이야말로 제 인생 최고의 요리입니다.”

* * *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부스코프스키 위원은 서툰 젓가락질로 닭고기를 열심히 집어 먹었다. 살면서 고기 처음 먹어본 사람 같은 모습이다.

어찌나 잘 먹는지, 10대 그룹 사람들이 손을 멈춘 채 이쪽을 쳐다볼 정도였다.

어느 정도 고기를 건져먹고 나자, 난 칼국수를 넣으며 설명해주었다.

“이제는 면을 드시면 됩니다.”

“오! 이건 파스타 면인가요?”

“예. 뭐 비슷합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파스타는 건면이지만,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생면을 쓴다고 한다. 어차피 밀가루로 만든다는 점은 똑같으니 칼국수 같은 파스타 면도 있겠지.

아니면 말고.

칼국수를 먹어본 부스코프스키 위원은 다시 눈물을 글썽거렸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셨던 닭고기 수프가 생각나는군요. 제가 아프거나 힘들어할 때면 항상 이와 비슷한 요리를 해주셨죠. 그게 먹고 싶어서 일부러 아픈 척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군요.”

“어렸을 때는 잘 속여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고 나니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할머니는 손자가 꾀병을 부린다는 걸 아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웃으며 닭고기 수프를 끓여주셨죠.”

감동적인 회상과는 별개로 손과 입은 쉬지 않았다.

칼국수 사리는 물론이고, 죽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어느새 그 커다란 양푼냄비가 바닥을 드러냈다. 한 냄비가 2인분인데 그걸 혼자서 다 해치운 것이다.

그 먹성에 수행원들 역시 놀란 듯했다.

부스코프스키 위원은 만족한 표정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정말로 오랜만에 만족할 만한 식사였습니다. 이 요리를 만든 쉐프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잠시만요.”

난 주방으로 가서 쉐프 겸 주인을 모셔왔다.

부스코프스키 위원은 정중하게 말했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통역을 해주자, 주인아주머니는 혼이 나간 것 같은 표정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이 요리의 레시피를 알 수 있겠습니까? 고국으로 돌아가서도 꼭 이 음식을 먹고 싶습니다.”

“별거 없는데…….”

이렇게 말하는 건 알려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별것 없기 때문.

난 알아서 통역해주었다.

“기꺼이 알려드리겠다고 합니다.”

이제 이 레시피는 닭한마리 성애자(?)인 그로 인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갈 예정.

주인아주머니는 여전히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하기야 단체 손님 예약을 받았더니, 설마 재계 회장들과 차기 EU 집행위원장이 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 * *

만찬은 무사히 끝났다.

이곳에서 얘기를 나누기는 힘든 관계로 우리는 다시 JR블랙우드 호텔 연회장으로 옮겼다.

이동하며 유재호 회장은 나에게 물었다.

“대체 부스코프스키 위원이 닭한마리를 좋아할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어렸을 때 맛본 음식은 평생 가는 법이잖아요. 회장님께서 어린 시절 먹었던 치킨 맛을 기억하는 것처럼요.”

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온갖 산해진미를 다 먹어도, 어렸을 때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끊기가 힘들다.

누가 나에게 캐비어와 떡볶이 중 하나만 평생 먹을 수 있다고 하면 당연히 떡볶이를 선택할 것이다.

이래서 성공한 실리콘밸리 창업자들도 햄버거와 콜라를 입에 달고 사는 거겠지.

부스코프스키 위원이 지금은 미식가로 유명하지만, 그는 독일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성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는 폴란드계로, 그의 친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폴란드 사람. 그리고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폴란드에 로수우라고 닭한마리와 비슷한 요리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종교나 문화적 이유에 따라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안 먹는 곳은 있어도, 전세계에 닭 안 먹는 문화권은 없다.

그중 삶아서 국물을 내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레시피인 만큼, 어디나 비슷한 요리가 있다.

하지만 로수우의 경우 들어가는 재료까지 닭한마리와 상당히 비슷하다.

파, 양파, 마늘은 물론이고, 서양인들은 잘 안 먹는다는 부추까지 들어간다. 그리고 국물에 파스타를 말아먹는다는 점에서 더욱 비슷하다.

내 설명을 들은 유재호 회장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할머니가 폴란드인이고, 어렸을 때 할머니 손에 자랐다는 것만으로 닭한마리가 입맛에 맞을 거라 예상한 거군요.”

“뭐, 그런 거죠.”

사실은 그 반대다.

폴란드에 이런 음식이 있다는 사실이 한국에 알려진 건 전부 클라우스 부스코프스키 때문이니까.

1회차 때도 그는 한국에서 닭한마리 성애자로 유명했다.

그가 닭한마리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건 원래 이번 방한 시점.

각종 만찬에서 별로 음식을 먹지 못한 그는 밤에 급 허기가 졌고, 문득 야밤에 닭고기 수프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 비슷한 음식을 파는 가게 있나 알아봤는데, 마침 근처에 닭한마리 집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이거라도 먹자는 생각에 밤에 수행원들과 함께 가서 먹어봤다가 그 맛에 반했다.

여기까지였으면 그냥 맛있게 먹은 걸로 끝날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닭한마리 사랑은 좀 유별났다.

돌아가서도 가정의 달을 맞아 직접 가족들을 위해 닭한마리를 요리하는 영상을 올리고, 동료 정치인들을 집에 초청해서 닭한마리를 대접했다.

한국에 올 때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닭한마리를 먹었고, 음식점을 갈 여건이 안 될 경우에는 배달이라도 시켰다.

이후 국빈으로 방문했을 당시에는 아예 가게를 통째로 빌려 만찬을 벌였다.

외국 정상 귀빈 만찬은 보통 영빈관이나, 아니면 호텔 연회장에서 하기 마련. 비용은 한 끼에 수십만 원씩 나간다.

그런데 EU 집행위원장의 만찬을 2인분에 2만 4천 원짜리 닭한마리집에서 한 것이다!

그 음식점이 바로 이곳.

웃긴 건 정작 이곳은 닭한마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그저 그런 집으로 평가받지만…… 뭐, 자기 입맛에 맞으면 그만이지.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이유가 있죠.”

“뭡니까?”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세상에 닭고기 싫어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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