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화. 소울푸드 (1)
메기 퇴원 며칠 후.
난 유재호 회장과 만났다.
“록허트 대표님은 잘 돌아가셨습니까?”
“네. 떠나면서 회장님께 감사드린다고 전해달라고 하던데요.”
유재호 회장은 손을 내저었다.
“뭘요. 감사 인사는 이미 충분히 받았습니다. 덕분에 돈 벌었으니, 감사는 제가 드려야죠.”
유성바이오뿐 아니라, 유성그룹주 전체가 순조롭게 상승했고, 주주들은 두 팔 들어 만세를 부르는 중이다.
내 주식 올려주는 경영자가 좋은 경영자인 법이지.
“레전드덱 생산은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몇 차례 테스트와 설계 변경 끝에 드디어 디자인 및 성능이 확정됐다.
디스플레이는 7인치에 16대9 비율의 터치 OLED. 해상도는 720p, 최대 프레임은 60. 무게는 480그램.
스마트폰이 200그램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두 배 이상 무겁다.
휴대 모드시 플레이타임은 모바일 게임 같은 저사양 게임을 돌릴 경우 4시간 반, 고사양 게임의 경우 2시간 정도다.
플레이타임을 늘리려면 더 많은 배터리를 탑재해야 하지만, 그 경우 지금도 무거운 무게가 더 크게 증가하게 될 테니 어쩔 수 없다.
난 레전드덱 목업을 만져보았다.
“첫 제품치고는 꽤 잘 나왔네요.”
“실제 시제품이 나오면 테스트를 거쳐야합니다. 아무래도 휴대용 디바이스인 만큼 거치용 콘솔보다는 성능이 떨어진다고 하네요.”
“그건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는 클라우드가 있으니까.
레전드덱이 다른 UMPC나 콘솔과의 차별점은 USIM을 넣을 수 있는 셀룰러 모델이라는 것.
이를 통해 각종 앱과 클라우드 게이밍을 즐길 수 있다.
웬만한 고사양 모바일 게임은 다 돌릴 수 있지만, PC용 트리플A급 게임은 힘들다.
따라서 이러한 게임들은 클라우드 게이밍으로 서비스할 생각이다.
“조립과 생산은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진행할 예정으로 양산을 위한 생산 라인을 구축 중입니다.”
“흘륭하네요.”
커스텀 칩셋 설계는 ADM이, 칩셋 생산은 유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디스플레이는 유성디스플레이, 배터리는 유성SB, 그리고 그 외에 다른 부품들은 유성전자와 관련된 벤더들이 맡았다.
유성전자가 아니라면, 이렇게 일이 빠르게 진행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전세계를 뒤져봐도 이 정도로 수직계열화가 잘된 기업은 찾기 힘들지 않을까?
“다 좋은데 가격이 마음에 걸리는군요. 개발비를 제외한 생산원가는 700달러 수준입니다.”
“좀 아슬아슬하네요.”
원화로는 약 80만 원.
여기에 유통비와 부가세를 더하면 100만 원까지 올라갈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은 200만 원씩 주고 사도, 게임기 하나에 100만 원을 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국내에 판매되는 콘솔 가격은 50~60만 원 수준.
“물론 생산량을 늘리면 좀 더 내려가겠지만, 그래도 500달러 아래로는 힘듭니다.”
“뭐, 초기에는 적자를 좀 감수해야겠죠.”
콘솔 한 세대를 보통 7년 정도로 본다.
중간에 한 차례 업그레이드가 있긴 해도 최소 3년 이상. 때문에 출시 초기에는 이 정도 사양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오버스펙으로 출시한다.
최신부품과 최신 공정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출시 초기에는 개발비는커녕 생산비에서 적자가 나가도 한다.
이후 시간이 지나며 부품값이 낮아지고 생산공정 개선이 이뤄지면, 그때부터 흑자로 돌아서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구블 쪽에서 연락도 많이 받았습니다.”
“뭐라던가요?”
“직접적으로 말은 안 하는데, 견제하는 분위기더군요.”
엔플의 엔스토어나, 구블의 플레이마켓의 수수료 수익 대부분은 게임에서 나온다. 그 수익을 빼앗을지 모를 기기가 나온다고 하니, 좋아할 리 없겠지.
“소비자들 기대감도 꽤 큰 모양이더군요. 홈페이지에 레전드덱이 언제 출시되냐는 문의가 넘쳐납니다.”
이는 그만큼 컨티뉴 캐피탈이 게임업계에서 유명세를 얻었기 때문.
때문에 직접 휴대용 콘솔을 만들겠다고 하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다.
구블의 스테피아가 그 많은 돈을 쏟아 붓고도 망한 걸 보면 알 수 있듯, 이 업계에서 성공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클라우드, ESD, 게임, 그리고 간편결제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이 모든 걸 유기적으로 연결해놓은 만큼, 레전드덱만 잘 나와 준다면, 시장을 뒤흔들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콘솔 시장은 소뉴의 플레이스테이트, NS의 Z박스, 린텐도의 포터블로 삼분 되어 있고, 이들은 각자의 콘솔에 맞는 퍼스트파티를 거느리고 있다.
기존 콘솔들이 독점작을 중심으로 전략을 짜는 것과는 달리, 레전드덱은 반대의 전략을 취하고 있다.
리눅스 기반의 레전드OS를 사용하고, 레전드스토어와 코스믹스토어가 기본적으로 깔려있긴 하지만, 다른 OS나 스토어도 설치가 가능하다.
잘만 하면 콘솔, PC, 모바일 게임 시장의 파이를 전부 끌어올 수 있지 않을까?
잘못하면 이도저도 아는 기기가 되겠지만.
“제 생각에는 PC와 콘솔보다는 모바일 쪽 수요를 더 많이 끌어올 수 있을 거예요.”
약간 내렸다지만, 여전히 구블과 엔플은 30퍼센트에 가까운 수수료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레전드스토어는 수수료가 12퍼센트에 불과한 데다가 외부결제도 얼마든지 허용한다.
엔플과 구블과 소송전을 벌이는 동안 인앱결제 수수료에 대한 부당함을 널리 알렸고, 수많은 우군을 확보했다.
바로 앱공정성연합(CAF)이다.
레전드덱에 들어오는 게임들은 전부 페니 결제를 도입할 테고, 이는 향후 페니가 게임 업계의 기축통화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블록밸리와 나이트라이트가 페니 결제를 지원하는 만큼, 이미 일부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아이템 현거래가 페니로 이뤄지는 중이다.
게임 결제에 쓰이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앱마켓 매출의 70퍼센트 이상이 게임에서 나온다.
이 시장만 장악해도 페니가 온라인상에서 범용 화폐로 사용될 것이다.
“그리고 런칭 타이틀로 판타지아 테일즈도 출시할 테니까요.”
아직 완성되려면 한참 남았지만, SW게임즈 내부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벌써부터 갓겜의 향기가 난다랄까?
모바일 MMORPG의 틀은 그대로 유지한다.
독점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판타지아 테일즈는 레전드스토어뿐 아니라, 엔스토어와 플레이마켓에도 올릴 예정.
다만 인앱결제를 빼놓았을 뿐.
이걸 허용할지 안 할지는 엔플과 구블이 알아서 판단하겠지.
일 얘기가 대충 끝나자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눴다.
“이번에 S마트에서 런칭한 통통치킨에 레시피를 제공해줬다면서요? 민기진 전무가 기뻐하는 모양이더군요.”
“예.”
“집들이하며 직접 치킨을 만들어줬다고 아름이에게 들었습니다. 요리에도 조예가 깊은 줄은 몰랐습니다.”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러나 치킨 튀기는 일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 있다.
난 슬쩍 물어보았다.
“치킨 좋아하세요?”
“물론입니다. 제 소울푸드라 할 수 있죠.”
“그 정도예요?”
유재호 회장은 회상을 하듯 말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시켜주셔서 같이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먹었던 치킨이 정말 맛있었는데요.”
원래 어린 시절 입맛은 평생을 가는 법이지.
“그래서 가끔 딸이랑 시켜먹곤 합니다.”
힘들 게 일하다가도 집에 가서 딸 얼굴 보면 피로가 싹 풀리지 않을까?
반면, 나는 집에 돌아갈 때마다 혹시 한세나가 몰래 와있지는 않은지 공포에 떠는 중이다. 주기적으로 집 비번을 바꿔야 하나?
“미루 씨가 만들어준 치킨도 언제 한번 맛보고 싶군요.”
“언제든 놀러오세요. 최고로 맛있는 치킨을 튀겨드릴 테니.”
다시 말하지만, 치킨 튀기는 거 하나는 자신 있다.
얘기를 하던 유재호 회장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세요? 무슨 걱정이라도 있나요?”
“음식 얘기를 하다 보니, 신경 쓰이는 일이 하나 떠올라서요.”
“뭔가요?”
“클라우스 부코프스키라고 아십니까?”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인데.
“누군가요?”
“독일 연방노동사회부 장관이었습니다. 현재는 차기 EU 집행위원장으로 내정된 상태죠.”
“아아…….”
EU 집행위원장 클라우스 부코프스키.
현 독일 집권여당인 사민당 출신의 정치인.
EU가 미국과는 달리 느슨한 연방제 형태다 보니 실권은 크지 않지만, EU의 정책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유성그룹 입장에서 EU는 미국 다음으로 중요한 시장. 당장 린카스픽의 EMA 판매허가 문제도 걸려있고.
컨티뉴 캐피탈 역시 마찬가지. EU는 엔플과 구블의 반독점법 위반에 대해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중이니까.
이번 기회에 친해져서 나쁠 건 없겠지?
“부코프스키 전 장관은 현재 휴가 중입니다. 중국과 일본을 들렀다가 다음 주 한국에 올 예정인데, 한국 경제인들과 만찬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군요.”
외국 주요 정치인이 한국에 와서 경제인들을 만나는 건 흔한 일이다.
애로사항을 듣고, 자국에 투자를 부탁하기 위함.
“문제가 되는 건 만찬의 메뉴입니다.”
“메뉴요?”
“예. 그가 엄청난 미식가라서요.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의 현지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럼 한식을 대접하면 되지 않나요?”
유재호 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입맛이 매우 까다롭다는 겁니다.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음식이라 해도 입에 안 맞는다 싶으면 한두 입만 먹고 내려놓습니다.”
무슨 요리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 같다.
입이 즐겁고 배가 부르면 이야기가 술술 풀리기 마련.
그러나 음식이 맛없으면?
그때부터는 얘기도 꼬인다.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채점관들이 점심식사 직전에는 점수를 짜게 주고, 점심식사 이후에는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혹시 좋아하는 메뉴가 있나요?”
“대체로 다 좋아합니다.”
“그럼 싫어하는 메뉴는요?”
“없습니다.”
“아…… 어렵네요.”
차라리 좋아하는 메뉴가 있으면, 그 메뉴를 가장 잘하는 곳으로 데려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다 좋아한다고 일단 메뉴를 정하는 것부터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볼 때 가장 난감한 대답이 바로 ‘아무거나’다.
이 말 듣고 정말로 ‘아무거나’ 먹으러 가면, ‘내가 언제 그거 먹고 싶다고 했어?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아!”
생각났다.
보통 프랑스 대통령과 독일 총리 이름은 알아도 EU 집행위원장 이름은 잘 모르기 마련.
하지만 클라우스 부코프스키는 한국에서 제법 유명했다. 그리고 그건 정치와는 관련 없는 전혀 다른 이유 때문.
“지금 서울 전역의 음식점을 물색 중인데, 적당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이 문제는 너무 쉽게 해결이 가능하다.
“음식점 선정을 저한테 맡겨주시겠어요?”
그러자 유재호 회장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잘 아시는 곳이라도 있습니까?”
난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럼요. 분명히 만족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