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화. 퇴원 (1)
슈크릭.
명품과 한정판 거래에 특화되어 있는 떠오르는 중개거래 플랫폼이다.
창업자는 서연대에 다니던 공지훈과 함민욱.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아 운동화를 사고파는 걸 즐기던 공지훈은 중고월드에서 산 니케 운동화가 가짜라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했다.
믿고 살 수 있는 곳이 없다면, 직접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친구와 함께 창업의 길로 뛰어들었다.
시장에는 이미 여러 중고거래 플랫폼이 있다.
하지만 슈크릭은 큰 차별점이 하나 있으니, 바로 제품의 상태와 진품 여부에 대해 업체가 보증을 해준다는 것이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거래할 때, 판매자는 제품을 먼저 슈크릭으로 보내고 구매자는 슈크릭에 입금한다.
그다음 슈크릭이 검수를 마친 후 제품을 구매자에게 보내고, 판매자에게 입금해준다.
이러한 방식은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사기와 짝퉁 걱정이 없다는 인식이 퍼지며, 슈크릭은 명품과 한정판 거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고, 50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이 중 가장 많이 거래되는 것은 바로 니케의 운동화였다.
단기간에 마케팅과 확장을 거듭하며 매출이 크게 늘어났지만, 아직은 적자도 크게 늘어나는 구조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 추세라면 1년 안에 충분히 흑자로 돌아설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투자금 역시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모카뱅크 사태 이후 분위기가 급변했다.
스타트업 중 대표 기업으로 손꼽히던 모카뱅크의 가치가 폭락하자 시중에 투자금이 씨가 말랐다.
이전까지만 해도 돈을 싸 짊어지고 왔던 투자자들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예정되었던 시리즈C 투자는 완전히 중단됐다.
당연히 투자금이 들어올 거라 생각하고 사업을 진행 중이었는데, 투자금이 들어오지 않자 모든 게 멈췄다.
이러다가 직원 월급도 못 주고 망하게 생겼다.
이 모든 게 다 컨티뉴 캐피탈 때문.
‘그놈들만 아니었어도!’
그 순간, 투자금을 구하러 돌아다니던 함민욱이 회사로 돌아왔다.
공지훈은 그를 붙잡고 물었다.
“어떻게 됐어? 돈 구했어?”
“다 찾아가서 사정사정해봤는데 안 된대. 그런데 컨티뉴 캐피탈이…….”
공지훈은 발작하듯 소리쳤다.
“뭐? 컨티뉴 캐피탈? 그 개새끼들이 왜? 또 뭔 짓 했어?”
“야, 야. 진정해.”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그 새끼들이 지들 돈 벌려고 그 지랄한 것 때문에 우리가 쫄딱 망하게 생겼는데!”
그러자 함민욱은 당황하며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 그러니까 이분이 컨티뉴 캐피탈 한국 지사장님이거든.”
그 말에 공지훈은 멈칫했다.
“뭐!?”
그러고 보니 뉴스에서 본 거 같은 느낌이다.
‘아니, 진짜 컨티뉴 캐피탈 지사장이라고?’
이동호는 웃으며 명함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그 개새…… 아니, 이동호입니다.”
“아, 예. 무슨 일로 여기에……?”
“귀사에 투자하고 싶어서요.”
그 말에 공지훈은 언제 욕을 했냐는 듯 재빨리 허리를 폴더처럼 반으로 접었다.
“잘 찾아오셨습니다, 지사장님. 평소 항상 존경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무한한 영광입니다. 이번에 투자 성공 거두신 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 *
스타트업 투자를 위해 동호 선배는 직접 창업자들을 만났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스타트업은 아무 때나 투자를 받지 않는다. 자금이 필요하다 싶으면 공개적으로 투자를 모집한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그렇게 시리즈별로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같이 시장의 자금이 마른 상황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이전에는 언제든 투자금을 구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발품을 팔며 구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를 받는다면, 그것만으로도 건실한 기업이라는 것을 투자자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때문에 다들 기꺼이 투자를 받아들였다.
난 블록게임즈 공동대표인 찰스 그리핀에게 연락했다.
“잘 지내시죠?”
[물론입니다.]
“아! 임신 소식은 들었어요. 축하드립니다.”
[하하! 아닙니다.]
찰스는 엔플과 소송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알게 된 피오나 해리슨 변호사와 약혼해 지금은 같이 사는 중이다.
어떻게 보면 엔플이 맺어준 인연이랄까?
[딸인 것 같습니다.]
“벌써 성별이 나왔나요?”
[그건 아닌데, 느낌이 그렇습니다.]
“…….”
그걸 느낌으로 알 수가 있나?
“결혼은 언제쯤 할 생각인가요?”
[글쎄요. 급한 건 아니라서 천천히 생각 중입니다.]
결혼하고, 같이 살고, 애를 낳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순서인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이러한 순서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다.
동거하며 애 두셋 정도 낳고 결혼해도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난 연락한 목적을 얘기했다.
“소규모 게임 스튜디오 몇 곳을 인수하려 하거든요. 괜찮은 곳 있으면 소개 좀 부탁드리려구요.”
[컨티뉴 캐피탈이 직접 인수하는 겁니까?]
“아니요. SW게임즈가 나설 예정입니다. 강선우 대표의 지휘 아래 더 많은 게임을 만들 예정이라서요.”
[그렇군요. 마침 잘됐습니다. 스테피아 서비스 중단으로 스튜디오들이 뿔뿔이 흩어졌으니까요. 그중에서 괜찮은 곳들을 추려서 한번 접촉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미국에는 언제 오시나요? 강선우 대표님도 꼭 한번 뵙고 싶네요. 이번에 나올 판타지아 테일즈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한번 찾아갈게요. 켄과 루퍼스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난 통화를 끝냈다.
스튜디오 인수 문제는 찰스에게 부탁했으니 됐고.
난 강선우가 말한 아이스스톰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았다.
아이스스톰 엔터테인먼트는 오버클락, 모닝스타, 스타스페이스, 메피스토 등을 만들어낸 미국 굴지의 개발사.
게임 하나하나가 한 시대를 풍미한 명작들로, 전세계에 수많은 스톰빠들을 양산해냈다.
아이스스톰은 맥스비전 스톰 소속이다.
맥스비전 스톰은 맥스비전, 아이스스톰, 퀸닷컴 세 스튜디오의 합작사.
각각 본사도 따로 쓰고, 개발도 따로 한다.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건 아이스스톰이지만, 실제로는 이 셋 중 아이스스톰의 매출이 가장 떨어진다.
어쨌거나 맥스비전 스톰은 한때 게임사 중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 거대 기업.
지금이야 각종 삽질로 인해 지금은 침체를 겪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 게임사 중 하나로 군림하는 중이다.
이 거대한 기업을 누가 인수할 수 있을까 싶지만…… 놀랍게도 1회차 때는 NS 게임 사업부가 인수한다.
당시에도 게임 업계 역사상 사상 최대의 인수였다.
따라서 아이스스톰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NS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
난 자료를 보며 중얼거렸다.
“문제는 돈인가?”
아무리 컨티뉴 캐피탈이라고 해도 이 거대한 기업을 집어삼키기는 쉽지 않다.
뭐, 통째로 인수하기는 힘들어도, 아이스스톰 하나만 분할해서 인수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역시 돈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돈이야 벌면 되니까.
사람이 사고 싶은 건 사야지.
* * *
연락을 받은 나는 유성병원으로 향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못 보던 여자애가 혼자 앉아 있었다.
교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고등학생인 듯하다. 적당한 키에 예쁘게 생긴 얼굴. 눈이 크고 눈 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왠지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인데.
스마트폰을 하던 여자애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아저씨는 누구예요?”
“응? 아저씨!?”
혹시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나 해서 둘러봤는데, 나밖에 없다.
그럼 대체 ‘아저씨’는 누구를 칭한 거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성윤아가 들어왔다.
그러자 여자애는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언니!”
“앗! 세정이 와 있었네.”
여자애는 일어나서 쪼르르 두 사람 곁으로 다가가더니, 나를 가리키며 성윤아에게 물었다.
“언니. 이 아저씨는 누구예요?”
“…….”
아니, 성윤아는 언니인데, 왜 난 아저씨야?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여자애는 나와 성윤아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설마 언니 남자친구?”
그 말에 성윤아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야. 남자친구는 무슨. 얘는 참 못하는 말이 없어.”
“그럼 남사친이에요?”
“언니랑은 회사 동기야. 한미루라고.”
여자애는 알았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아! 아저씨가 한미루구나. 아빠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난 성윤아에게 물었다.
“누구예요? 설마 숨겨 놓은 여동생?”
내 물음에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여동생을 왜 숨겨요? 세상에 여동생을 숨기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야…….”
놀랍게도 있다.
그것도 바로 이 자리에.
난 하루에도 열두 번쯤 한세나를 숨기고 싶다.
“그래서 얘는 누군가요?”
대답은 뒤에서 들려왔다.
“제 딸입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유재호 회장이 서 있었다.
유재호 회장은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남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라고 들었는데, 딸은 아직 고등학생인 모양이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유재호 회장과 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아니, 그보다는 민아름과 많이 닮았다. 그래서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든 모양이다.
여자애는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유세정입니다.”
“어, 안녕.”
그런데 유재호 회장 딸이 여기에는 왜 온 거지?
유세정은 웃으며 말했다.
“메기 보러 왔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원래 한 달에 두세 번씩 소아병동에서 애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가 메기랑도 친해져서 같이 놀아주고 공부도 가르쳐준 모양이다.
이 얘기를 들으니 애가 좀 다르게 보인다.
난 이 나이 때 놀러 다니기 바빴던 것 같은데, 병원에서 봉사활동이라니!
설마 대학 진학 때문인가?
외국 대학에서는 성적이나 입상 경력뿐 아니라, 이러한 봉사활동 역시 중요하게 본다.
뭐, 목적이야 어떻든 좋은 일 하면 좋은 거지.
잠시 후, 민아름과 동호 선배도 왔다.
“고모!”
“어! 세정이도 왔네.”
“네. 안녕하세요, 아저씨.”
인사를 하는 걸 보니, 서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난 동호 선배에게 물었다.
“언제 만났어요?”
“어! 지난번에 같이 밥 한번 먹었어.”
이렇게 다 같이 병실에서 모인 이유는 오늘 메기가 퇴원하는 날이기 때문.
잠시 서로 잡담을 하며 기다리자, 데이비드가 메기와 함께 돌아왔다.
뒤따라 들어온 담당 의사와 원장은 우리에게 얘기해주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로써 치료는 완전히 끝났습니다. 검진 결과 건강에는 문제없으니, 퇴원하셔도 좋습니다.”
데이비드는 마치 확인이라도 받듯 다시 물었다.
“정말로 완치된 겁니까?”
“예. 병은 완치되었습니다. 다만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한 만큼 또래보다 몸이 약합니다. 퇴원 후에도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뭐라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러자 류현우 병원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건 의사로서 당연한 일인데요.”
메기는 데이비드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
“아빠! 그럼 이제 집에 갈 수 있는 거예요?”
“응. 같이 집에 가자.”
우리는 다 같이 메기의 퇴원을 축하해주었다.
데이비드는 나를 보며 말했다.
“오늘이 제 평생 두 번째로 행복한 날입니다.”
“첫 번째는 언제인데요?”
“당연히 메기가 태어났을 때입니다.”
“…….”
당신은 딸밖에 모르는 바보.
메기를 바라보는 데이비드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 옆에서 유재호 회장은 딸과 대화를 나눴다.
왠지 부러워 죽을 것 같다.
난 대체 언제 딸 낳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