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99화 (399/529)

399화. 모카뱅크 (11)

IPO는 투자금을 모집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벤처캐피탈과 엔젤 투자가 활발해지며, IPO 외에도 투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창구가 많아졌다.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투자자들은 너도나도 뛰어들었고, 투자의 선순환이 이뤄졌다.

시리즈A, 시리즈B, 시리즈C, 프리IPO 등등.

일부 기업은 일부러 상장을 미루고 장외에서 투자를 받아 매출을 늘렸다. 덩치를 최대한 키운 다음에 상장하여 최대한 높은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생각이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는 시총이 1조 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들이 넘쳐났다.

이들 중 대부분은 적자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금은 계속 밀려들었다.

어차피 상장만 하면 손쉽게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으니, 투자자 입장에서도 옥석을 가릴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모카뱅크 사태 이후 분위기가 반전됐다.

* * *

루트비 스튜디오.

렉슨의 개발자였던 기영식이 나와서 만든 게임사다.

비교적 개발이 쉬운 양산형 모바일 게임을 만들었지만, 매출은 그저 그랬고,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며 투자금으로 연명하던 회사였다.

그런데 최근 출시한 수집 방치형 RPG ‘로드 오브 타워’가 엄청난 대박을 터트리며, 플레이마켓과 엔스토어 양대마켓에서 2위를 기록했다.

신작 대박으로 매출과 이익이 치솟자, 이 기세를 몰아 루트비 스튜디오는 IPO에 나섰다.

상장 주관사는 미래증권.

시총 3조 원 규모로 이 중 7천억 원을 모집했다.

게임사는 신작 발매 직후가 가장 매출과 수익이 높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는 떨어지기 마련.

그런데 루트비 스튜디오는 이를 기준으로 기업 가치를 산정했다.

게다가 구주매출 비중은 73퍼센트로, 이 중 대부분은 기영식 대표의 지분이었다.

그럼에도 공모주 청약은 성황리에 마감됐다.

그런데 상장 직전 모카뱅크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분위기가 급변했다.

[루트비 스튜디오 기업 가치 거품인가?]

[루트비 스튜디오 공모주, 기영식 대표 구주매출 비중 높아]

[공모가 산정, 과연 적절했나?]

‘따상’에 대한 기대감은 사라졌고, 이제는 폭락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루트비 스튜디오 상장 첫날.

시초가는 공모가의 90퍼센트에서 정해졌고, 바로 하한가로 직행했다.

-에라이 씨! 뭔 놈의 주식이 상장 첫날부터 하한가냐?

-당연한 거지. 맨날 적자이던 기업이 뽑기좆망겜 잠깐 떴다고 시총 3조가 말이 됨?

-게임도 신규 캐릭 출시로 한 번 빨더니 망해가는 중.

-출시 두 달 만에 100위 권 밖으로 추락 중.

-뭐? 일본, 중국, 북미, 유럽 진출하면 매출이 열 배 이상 상승할 거라고?

-ㅎㅎㅎ 한국에서나 이딴 쓰레기 게임에 결제하지, 외국애들은 찍먹도 안 함.

-괜히 공모주 청약했다가 망했네 ㅅㅂ

-하지만 환매청구권을 행사하면 어떨까?

-환! 매! 청! 구! 권!

-파워 반품 들어간다!

-옜다! 환불 받아라~

-그런데 환매청구권이라고 하니, 무슨 필살기 이름 같지 않냐?

-어! 나도 그 생각했는데.

상장 첫날부터 주가가 날개 없는 추락을 했지만, 공모주 투자자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90퍼센트 가격에 환불을 받을 수 있기 때문.

이전까지만 해도 상당수의 투자자는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지만, 모카뱅크 사태 이후 모두가 알게 됐다.

밀려드는 환매청구를 본 미래증권 오준일 사장은 기절할 것만 같았다.

“으억! 아니, 불똥이 왜 여기로 튀어?”

직전까지만 해도 KD증권에서 벌어진 일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았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보니 미래증권이 함께 불타고 있었다!

* * *

모카뱅크에 이어 티슬라 요건으로 상장한 다른 공모주들까지 일제히 추락하자, 충격은 장외시장으로까지 번졌다.

캐리마켓.

신선식품 배송을 주력으로 하는 온라인 쇼핑몰이다.

상장 전 진행한 프리IPO에서 4조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고, 5조 원 이상의 몸값을 받기 위해 상장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모카뱅크 사태 이후 장외거래가가 폭락했다.

일각에서는 기업 가치가 1조 원도 안 될 거라는 얘기가 나왔고, 상장 추진은 중단됐다.

쏙카.

한국 최대 카셰어링 업체.

기존의 렌터카는 하루씩 빌리는 것에 비해 쏙카는 필요한 시간만큼만 빌려서 탈 수 있고, 전국 어디서든 대여하고 반납할 수 있다.

이러한 편의성을 앞세워 800만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했고, 설립 10년 만에 기존 렌터카 업체들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장외에서 2조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정작 수요모집에서 참패했다.

어쩔 수 없이 기업 가치를 절반인 1조 원으로 낮췄으나, 시장에서는 5천억 원도 힘들 거라 평가했다.

풀다이스 엔터테인먼트.

한국 3대 MCN 중 하나로 소속 크리에이터 600명에 직원 수 1천 명 이상의 기업이다.

그동안 업계 최저 수수료와 최고 계약금으로 에이튜브와 카프리아, 투위치 등의 크리에이터들을 끌어들이며 급성장했다.

하지만 수익 대부분을 크리에이터들에게 분배하다 보니, 매출이 늘어날수록 적자 역시 늘어나는 구조였다.

매년 매출의 10퍼센트가 넘는 적자가 났지만, 투자금이 계속 들어왔기에 그동안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갔다. 오히려 투자를 받을 때마다 기업 가치는 계속 상승했다.

그런데 얼마 전 시리즈F 투자모집에서 처음으로 실패했다.

더 이상 투자금이 들어오지 않자, 회사는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과 비상 경영에 돌입해야 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조직을 개편하고, 일부 직원에게 권고사직을 했다. 또한 홍보 목적으로 운영하던 e스포츠팀을 해산하고, 신규 사업을 매각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금융 당국은 앞으로 공모가 산정에 문제가 없는지 면밀하게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모카뱅크 사태는 상장 규정마저 바꿔놓았다.

한국거래소는 상장 예비심사 승인을 마친 기업에 대해서는 경영진의 스톡옵션 행사 계획을 사전에 보고하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권고 사항이지만 거래소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기업은 없으니, 사실상 강제라고 봐도 좋았다.

상장을 앞둔 기업들은 부랴부랴 스톡옵션 행사를 반드시 공시하겠다고 발표했고, 경영진에게 일정 기간 매도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기도 했다.

* * *

며칠 후.

난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진세연을 만났다.

청바지에 티셔츠, 모자를 눌러 쓴 편한 차림이다.

“요즘 라디오 청취율 엄청나게 올랐던데.”

“이게 다 컨티뉴 캐피탈 익명의 직원 B씨 덕분이지.”

진세연은 웃으며 방송 후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말해주었다.

국장이 실컷 화를 내다가 나중에는 제발 한 번 더 섭외해보라고 사정사정했다는 얘기에 난 웃음을 터트렸다.

“컨티뉴 캐피탈은 공매도 청산했지?”

“응.”

공매도 청산을 위해서는 그동안 판 주식을 다시 사들여야 한다.

대규모 청산이 이뤄졌지만, 악재에 악재가 겹친 만큼 숏스퀴즈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공매도 청산으로 인한 매수세 덕분인지 모카뱅크 주가는 다시 1만 원을 회복했다.

“컨티뉴 캐피탈 엄청나게 벌었겠네. 기사 보니까 3조 원은 벌었다는 얘기가 나오던데.”

“에이, 그 정도는 아니야.”

그거보다는 조금 덜 벌었다.

“그런데 왜 B야?”

“응?”

“주변 사람들이 B라고 부른다며? 그런데 이니셜에는 B가 안 들어가잖아.”

“아! 그건 말이지…….”

보스(Boss)에서 따왔기 때문이지.

대충 얼버무리려는데, 진세연이 말했다.

“혹시 주변 사람들이 브로(Bro)라고 불러?”

“뭐…… 그렇지.”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하는데, 잠시 후, 최한별과 하경태 부부가 들어왔다.

“미안. 많이 기다렸어?”

“아니.”

진세연은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겼고, 두 사람은 우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모카뱅크는 어떻게 됐어?”

그 물음에 최한별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마. 경태 얘가…….”

퇴사했을 때만 해도 첫날 다 팔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상한가를 치고 나니, 생각이 살짝 달라졌다. 공모주가 첫날 상한가를 치면 높은 확률로 다음 날도 오르기 마련.

그래서 첫날 절반만 팔고, 나머지는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폭락이 시작되는 바람에 매도 타이밍을 놓쳤고, 결국 나머지 절반은 헐값에 팔아야 했다.

하경태는 변명하듯 말했다.

“그, 그래도 1억은 벌었어.”

최한별은 남편을 쏘아보며 다그쳤다.

“그러게 내가 첫날에 다 팔라고 했잖아!”

“아니,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참 나.”

하경태는 우리사주를 총 1만 주, 5억 2천만 원어치 샀다.

만약 첫날 전부 팔았다면 3억 2500만 원을 벌었을 것이다. 그런데 늦게 파는 바람에 수익이 3분의 1로 줄었다.

대체 그놈의 욕심이 뭔지.

진세연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빚 안 진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네. 지금 모카뱅크 직원들 어떻게 됐는지 알지? 다들 투잡 쓰리잡 뛴다고 하잖아.”

최한별은 몸서리를 쳤다.

“그러니까. 상상만 해도 끔찍해.”

모카뱅크 직원들은 그야말로 빚더미에 앉았다.

오죽하면 ‘코스피 상장기업 중 직원 한 명당 빚 액수 1위 기업’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해봐서 아는데, 월급 받아 빚 갚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1년에 3천만 원 모으기가 쉽지 않다.

만약 5억 원을 빚졌다 치면, 이자 포함해 1년에 3천씩 20년을 갚아야 한다.

게다가 사내대출을 받았으니 파업도 못 하고, 임금인상 요구도 못 하고, 퇴사도 못 한다. 그야말로 빚 다 갚을 때까지는 회사의 노예랄까?

한 직원은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가 경찰이 출동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여론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동안 모카뱅크 직원들이 여기저기 기만질을 하고 다녔기 때문.

‘그 돈 받아 입에 풀칠이나 하냐?’, ‘월급 모아서 언제 집 살래?’, ‘몇 푼 안 되는 돈 벌라고 다들 고생이다’, ‘우리는 전부 서울에 아파트 한 채씩 마련했는데’ 등등.

이래서 사람은 평소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최한별은 나를 보며 말했다.

“정말 고마워, 미루야. 네 덕분에 살았어. 오늘 우리가 밥 살 테니,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말해.”

하경태는 옆에서 구시렁거리듯 말했다.

“아니, 컨티뉴 캐피탈이 공매도하는 거였으면, 미리 말 좀 해주지.”

그러자 진세연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뭐어? 팔라고 언질 준 것만 해도 감사한 줄 알아야지. 그것만 해도 미루한테는 엄청난 리스크였다는 거 몰라?”

그러자 하경태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아, 알아. 그냥 해본 말이었어. 미안해.”

“넌 고마운 줄도 모르고!”

진세연에 이어 최한별까지 화를 내자, 하경태는 싹싹 빌었다.

“미안해. 정말 고마워하고 있어. 진짜 너무 고마워, 미루야.”

난 피식 웃었다.

“어쨌거나 다행이네.”

신혼부부가 5억 빚을 졌다면, 인생이 노멀 모드에서 하드 모드로 변했을 것이다.

남들 내 집 마련하고 자산 불려갈 때 빚만 갚아야 했을 테니.

“앞으로는 어쩔 거야?”

진세연의 물음에 최한별이 대답했다.

“어떡하긴. 일단 내가 열심히 일해야지. 경태 얘는 취직하기 위해 열심히 이력서 돌리는 중이야.”

그러자 내 눈치를 보고 있던 하경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컨티뉴 캐피탈에서 사람 구하면…….”

난 딱 잘라 말했다.

“응. 안 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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