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화. 모카뱅크 (8)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모카뱅크 임재경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상장 전 ‘대량 매도는 없을 거라고 예상한다’는 말은 오버행 이슈에 대해 대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어디까지나 대주주들의 매도가 없을 거라는 얘기였지, 스톡옵션을 매도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발언을 악의적으로 보도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한 기자가 물었다.
“매도 이유는 뭡니까? 컨티뉴 캐피탈의 지적대로 정말로 기업 가치가 고평가됐기 때문입니까?”
“그건 경영상의 이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한두 명이 아닌 경영진 모두가 매도에 나섰는데, 혹시 사전에 논의가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개개인의 선택이었습니다.”
“상장 한 달도 안 돼 경영진이 스톡옵션을 대량매도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모럴 헤저드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계속된 질문에 임재경 대표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보호예수가 걸려있는 것도 아닌 만큼, 경영진이 스톡옵션을 매도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경영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임재경 대표는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 대답을 피하며 말했다.
“모카뱅크는 어느 은행보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향후 다양한 서비스로의 확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가치를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 * *
임재경 대표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그런데 기자회견 바로 직후.
이 해명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기사가 떴다.
[지니페이, 모카뱅크 지분 10.8퍼센트 블록딜 매각 발표!]
중국의 지니페이는 모카뱅크의 초기 투자자이자 3대 주주.
이곳에서 가진 지분을 전부 팔고 나간 것이다.
이 소식에 주가는 또다시 20퍼센트 넘게 하락하며 3만 원 선이 무너졌다.
여론은 분노했다.
-이야! 이건 뭐 다 팔고 나가네.
-ㅋㅋㅋ 뭐? 대주주들의 매도가 없을 거라고?
-초기 투자자는 구주매출로 팔고 나가고~ 대주주는 블록딜로 팔고 나가고~ 대표와 경영진은 스톡옵션 장내매도로 팔고 나가고~
-이놈도 팔고, 저놈도 팔았는데…… 나만 못 팔았네 ㅜㅜ
-정상적인 기업의 상장 이유 = 투자금을 모집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함. 모카뱅크의 상장 이유 = 먹튀
-살다살다 이런 기업은 처음 봄. 이런 기업이 코스피 10위 안에 들었다는 게 말이 됨?
-그래도 우리사주 받은 직원들은 안 팔았잖아.
-걔들은 안 판 게 아니라 못 판 거 ㅎㅎ
-난 거지 같아서 다 팔았다. 퉤퉤!
그러나 가장 분노한 것은 역시나 모카뱅크 직원들.
직원들은 모이기만 하면 경영진의 행동을 성토했다.
“저걸 지금 변명이라고 한 건가?”
“어떻게 우리에게 이럴 수 있어?”
“이건 그냥 대놓고 직원들 뒤통수 때린 거 아니야?”
“대출해 줄 테니 우리사주를 사라고 꼬드겨 놓고선, 막상 지들은 전부 팔아치워?”
손실도 손실이지만, 그보다는 배신감이 훨씬 컸다.
김근수는 들고 있던 종이컵을 와락 구겼다. 안에 들어있던 커피가 셔츠로 튀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차라리 회사에 악재가 생겨서 주가가 떨어진 거라면 이해라도 하지!’
그럼 임직원이 다 같이 힘을 합쳐 함께 위기를 극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경영진이 직원들을 배신한 것이다.
직원들이 우리사주로 받은 주식을 팔지 못하는 사이, 경영진은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을 신나게 팔아치웠다.
대표와 경영진은 수천억 원을 챙겼고, 그로 인해 주가는 더욱 떨어졌고, 직원들은 수억 원의 빚더미에 앉았다.
앞으로 이걸 갚아나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할 지경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료 직원이 물었다.
“어떻게 하게요?”
김근수는 이를 갈듯 말했다.
“경영진에게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해야죠.”
* * *
[(WST 단독) 모카뱅크의 모럴헤저드. 이대로 괜찮나?]
(전략)
모카뱅크의 초기 투자자들은 구주매출을 통해 3조 2천억 원어치 주식을 개인들에게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
임재경 대표를 포함한 경영진은 스톡옵션으로 받은 3천억 원어치 주식을 매각했고, 3대 주주인 지니페이 역시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임재경 대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경영진이 사전에 짜기라도 한 것처럼 상장 직후 스톡옵션을 매도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는 작전주에서나 벌어질 법한 행태로, 경영상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위험이 매우 크다.
초기 투자자, 대주주, 대표, 경영진이 돈잔치를 벌인 반면, 회사를 믿고 우리사주를 받은 직원들은 인당 수억 원씩의 빚을 떠안게 됐다.
(중략)
모카뱅크는 인터넷은행으로서의 강점을 지닌 기업이다.
만약 경영진과 직원이 합심해서 노력했다면 상장 이후에도 꾸준히 성장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일로 인해 서로의 신뢰가 완전히 깨졌다.
앞으로 직원들은 경영진의 말을 믿지 못할 테고, 직원들은 회사의 이익이 아닌 각자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수도 있다.
이런 기업이 앞으로 제대로 성장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 * *
임재경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이 단체로 스톡옵션을 팔고 먹튀한 건 1회차 때도 있었던 일.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 주가가 훨씬 빠르게 폭락하는 중이다.
그 이유는 컨티뉴 캐피탈이 나섰기 때문.
컨티뉴 캐피탈은 리포트 발표 이후에도 계속 공매도를 쏟아냈다. 현재까지 투입한 비용만 3조 원.
모카뱅크가 공매도 맛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인지, 글로벌 헤지펀드들도 달려들었고, 개인 투자자들까지 가세했다.
유성증권, DA증권, 화안증권은 GL엔텍 사태 당시 공매도를 전산화했고, 개인도 공매도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덕분에 누구나 쉽게 주식을 빌려다 팔 수 있었다.
그 결과 모카뱅크는 상장 이후 내내, 거래량 1위와 공매도 잔고 1위 자리를 지켰다.
동호 선배는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초기 투자자, 대주주, 대표, 경영진 할 것 없이 싹 다 팔아치웠네.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정말이지 총체적 난국이다.
여기가 한국이라서 다행이지, 미국이었다면 소액주주들에게 바로 소송을 얻어맞았을 것이다.
난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신뢰를 저버린 기업의 말로가 어떤지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보여줘야죠.”
그래야 앞으로 비슷한 짓거리하는 기업이 안 나오겠지.
* * *
모카뱅크 경영진 먹튀 사건은 전세계에 보도됐다.
한국 언론은 물론 외신들은 해당 발언의 출처에 대해 당연히 SBC라디오 프로그램 ‘즐거운 라디오 생활’로 표기했다.
덕분에 라디오 청취율과 에이튜브 조회수는 급상승했다.
SBC라디오 입장에서는 본의 아니게 특종을 잡은 셈이다.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보도하면 어떡하냐고 난리를 쳤던 박충일 국장은 담당 PD와 진행자를 국장실로 불렀다.
일전에는 죄인처럼 세워놓고 소리부터 질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어, 거기 편하게 앉아.”
박충일 국장은 맞은 편에 앉아 직접 차를 따라주었다.
“얼마 전, 홍차를 선물 받았는데, 이게 향이 참 좋단 말이야. 그 뭐더라? 다즐링인가? 일단 마셔봐.”
김지숙 PD가 물었다.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박충일 국장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혹시 그 컨티뉴 캐피탈 직원이라는 사람 말이야. 혹시 한 번 더 섭외할 수 있나?”
지금 모든 언론사가 컨티뉴 캐피탈을 취재하기 위해 안달이 나 있다.
그중에는 SBC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컨티뉴 캐피탈은 리포트만 낼 뿐, 따로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이럴 때 컨티뉴 캐피탈 직원을 다시 인터뷰한다면? 또다시 모든 언론사가 이를 받아쓸 테고, 청취율과 조회수는 더 치솟을 것이다.
‘보도국장에게 내 체면도 살 테고 말이지.’
진세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난번처럼 사실 확인이 안 된 발언이 나가면요?”
김지숙 PD는 홍차를 마시며 말했다.
“맞아요. 지난번 같은 일이 생기면 누가 책임지나요? 그때처럼 저희 보고 책임지라고 하실 거 아니에요?”
“아니, 그건 그냥 답답해서 한 말이었고.”
“아닌 것 같은데.”
“어허! 나 SBC라디오 국장이야. 나 못 믿어?”
“…….”
두 사람의 표정을 본 박충일 국장은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치며 호탕하게 말했다.
“모든 건 국장인 내가 책임질 테니, 걱정 말고 당장 섭외해!”
* * *
방송실에 앉은 진세연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지난번 컨티뉴 캐피탈 본사 직원 B씨의 발언이 큰 화제가 됐습니다. 그로 인해 항의도 많이 받았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오늘 해당 직원과 다시 한번 전화 연결을 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지난번 하신 발언이 사실로 드러나며 시장이 큰 충격을 안겼는데요.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동안 모카뱅크가 높은 멀티플을 인정받은 것은 성장세 때문입니다. 이제까지의 성장을 앞으로도 이어갈 거라고 믿었기에 모두가 투자했습니다. 그러나 대주주와 경영진이 주식을 내던짐으로써 그 믿음을 배신했습니다. 한번 입은 손실은 회복할 수 있어도 한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진세연은 미리 준비해놓은 질문을 던졌다.
“공모주 투자자들은 대부분 큰돈 벌려는 목적보다 소액이라도 벌어볼 생각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처럼 주가가 크게 떨어지면 공모주를 청약하신 분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될 텐데요. 혹시 대처 방법이 있나요?”
[한 가지 있습니다.]
“어떤 건가요?”
[환매청구권입니다. 티슬라 요건으로 상장한 기업들은 환매청구권이 옵션으로 붙어있습니다. 모카뱅크의 경우 상장 이후 30일 안에는 공모가의 90퍼센트 가격에 공모 주관사인 KD증권에 되팔 수 있습니다.]
“공모주 청약으로 받은 주식은 환불이 가능하다는 말씀이신가요? 이건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해당 기간 동안 환매청구가 들어오지 않도록 최대한 주가를 띄우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실제로 행사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진세연은 무슨 얘기인지 알고 있었지만, 청취자들을 위해 계속 질문했고, B는 환매청구권의 내용과 행사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현재 모카뱅크 주가가 90퍼센트인 46,800원보다 한참 못 미치는 가격에 형성되어 있는 만큼, 공모주 투자자들은 시장에 매도하지 말고 꼭 환매청구권을 행사하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공모 이후 개인 투자자들이 계속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수량이 2500만 주가량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 되사기 위해서는 1조 2천억 원이 필요합니다. 모카뱅크의 현재 주가가 24,000원 정도니, KD증권은 5천억이 넘는 손실을 보게 될 텐데요.”
그 말에 B는 냉소적인 투로 말했다.
[사실 기업 가치가 얼마가 적절한지 개인들은 정확한 분석을 하기 힘듭니다. 특히 티슬라 요건으로 상장하는 기업들은 자산이나 수익이 아닌, 성장성을 중심으로 주가를 책정하다 보니, 실제 가치에 비해 고평가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성장성이라는 것은 시장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개인들이 청약을 한 것은 공모를 주관한 증권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인들이 가격을 잘못 책정해 공모가 이하로 주식이 떨어졌다면,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