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화. 모카뱅크 (5)
모카뱅크는 상장 전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우리사주 청약을 받았다.
우리사주로 구매하나 공모로 청약하나 가격은 52,000원으로 동일하다.
따라서 상장 후 1년 동안 못 파는 우리사주로 받는 것보다 공모주 청약을 하는 게 유리하다.
하지만 공모주 청약은 경쟁률이 치열해 1억을 넣어봐야 받을 수 있는 주식은 얼마 되지 않았다.
반면 우리사주는 근속연수에 따라 차이가 해도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었다. 회사 측에서도 우리사주 취득을 적극적으로 독려하며 대출을 지원해주었다.
올해 상장한 기업들 중 우리사주로 대박을 친 사례가 어디 한둘인가?
주식을 사기만 하면 최소 50퍼센트는 벌 수 있다. 이는 추정이나 희망이 아닌,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확실하게 돈 벌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직원들은 사방에서 돈을 빌려 우리사주를 매수했다.
김근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원래 한신은행에 지원했으나 면접에서 떨어졌다. 다행히 마침 모카뱅크가 생겼고, 이곳에 지원해 쉽게 합격했다.
인터넷은행의 기치를 걸고 출범하긴 했으나, 모카뱅크의 시작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시중 은행에 합격한 친구들은 은근히 그를 무시했고, 늦기 전에 더 큰 은행으로 이직 준비를 하라고 충고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모카뱅크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고, 5년 만에 상장을 앞뒀다. 장외에서 시총은 이미 모든 금융지주들을 전부 제쳤다.
상장 전 우리사주를 살 수 있다는 얘기에 친구들은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번, LK바이오테크 보니까 직원 한 명당 10억씩 벌었다는데.”
“모카뱅크 임직원 평균 6억 3천만 원씩 매수했다며?”
“아, 나도 모카뱅크로 갈걸.”
“너무 부럽다.”
김근수는 그동안 모은 전재산은 물론이고, 사방에서 대출을 받았다. 심지어는 카드론까지 써서 14000주, 총 7억 2800만 원어치 주식을 샀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았음은 상장 첫날 증명됐다.
시초가 65,000원으로 코스피에 입성한 모카뱅크는 바로 상한가로 직행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에도 모카뱅크는 올랐고,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11만 원을 넘어서 12만 원까지도 바라보았다.
상장 이후, 모카뱅크는 축제 분위기였다.
직원들 모두가 틈만 나면 모카뱅크 주가를 확인했고, 일하는 내내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사주를 많이 산 직원들은 좋아 어쩔 줄 몰랐고, 적게 산 직원들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
“아! 내가 왜 1억 밖에 안 샀을까?”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살걸!”
김근수는 점심을 먹고 난 뒤, 직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지금 주가 보면 첫날 바로 판 사람만 바보 아니야?”
“그러니까. 시초가 6만 5천 원에 던진 놈들 지금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 듯.”
“우리사주라서 오히려 다행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첫날 팔았을 테니까.”
“맞아. 1년 뒤면 20만 원쯤 되어 있지 않을 텐데.”
티슬라가 나스닥에 상장했을 때도 모두가 비싸다고 떠들어댔다. 이는 AMZ나 넷플레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이 기업들 모두 상장 후 수십 배가 올랐다.
김근수는 모카뱅크 역시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두 배는 기본이고, 서너 배는 가겠지.’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경태 씨는 지금쯤 팔았으려나?”
“뭐, 상장하면 바로 판다고 했으니 팔았겠죠.”
한 직원이 혀를 차며 말했다.
“참 나. 우리사주 팔아야 한다고 급하게 회사를 그만두다니.”
“금융권에 다시 취직하기 쉽지 않을 텐데. 대체 왜 그랬지?”
김근수는 하경태를 잠시 떠올렸다.
같이 우리사주를 받았을 때만 해도 1년 뒤 팔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디서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 갑자기 바로 팔아야 한다며 회사를 그만뒀다.
‘어디서 이상한 소리라도 듣고 온 건가? 멍청하기는. 가만히 놔두면 더 오를 텐데.’
아마 지금쯤 크게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 진짜 10억씩 버는 건가?”
“그럼요. 이번에 KD증권 리포트 못 봤어요? 17만 원 간다잖아요.”
“다들 강남에 아파트 한 채씩 사겠는데.”
“예전에는 10억쯤 벌면 부자인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아니네.”
“그래도 10억 버는 게 쉽지 않지. 변호사나 의사라면 모를까.”
“에이, 요즘 지천에 깔린 게 변호사, 의사인데. 걔들 월 천만 원이나 벌라나?”
“푸훗, 다들 그 돈 벌어서 어떻게 사는지 몰라.”
퇴직할 때까지 10억을 모은다는 것은 직장인에게 있어서 꿈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그 꿈이 너무 쉽게 이뤄졌다.
“김 과장님 이번에 벤츠 새로 뽑은 거 봤어? 1억 넘는다는데.”
“어, 그래? 나도 이번에 차 새로 살 생각이었는데. 딜러 좀 소개해달라고 해야겠다.”
“난 휴가 때 애들 데리고 유럽이나 한번 다녀오려고.”
한 직원이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신입사원에게 물었다.
“입사한 지 1년 만에 떼돈 번 기분이 어때?”
그러자 신입사원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실감이 잘 안 납니다. 지금도 얼떨떨해요.”
그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다들 휴식시간을 즐기는데, 핸드폰을 보고 있던 신입사원이 갑자기 들고 있던 커피를 떨어트렸다.
종이컵이 바닥이 부딪히는 순간 커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 뒤로 물러났다.
김근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뭐야? 바지에 다 튀었잖아. 조심 안 해?”
혼을 내려고 하는데, 어째서인지 신입사원의 표정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다.
“너 왜 그래?”
“저, 저기…… 그, 그게…….”
김근수는 호통을 쳤다.
“뭔데? 똑바로 말 안 해?”
“하, 하한가 쳤는데요.”
“뭐가?”
“모카뱅크가요.”
신입사원은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걸 본 순간 다른 직원들 역시 일제히 들고 있는 커피를 떨어트렸다.
* * *
[(WST 단독) 컨티뉴 캐피탈의 모카뱅크 매도 리포트]
(전략)
컨티뉴 캐피탈의 데이비드 록허트 대표는 모카뱅크의 목표주가로 9,900원을 제시했다.
이는 현재 주가에 비하면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록허트 대표는 그 근거로 모카뱅크는 플랫폼 기업이 아닌 어디까지나 은행이라는 점이 들었다.
비대면 영업은 그저 영업 방식의 차이일 뿐,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모카뱅크의 공모가는 BOC, 티켓페이, 노르딧, 머니켓 네 개의 외국 기업과 비교를 통해 정해졌다.
BOC는 보험과 증권에 특화되어 있고, 티켓페이는 결제서비스 수수료가 수익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핀테크 회사고, 노르딧과 머니켓은 결제대행서비스가 주력사업이다.
따라서 이들은 상업은행(CB)인 모카뱅크와는 사업모델이 아예 다른 기업들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이 과정에서 사업모델이 가장 유사한 일본의 유뱅크와 중국의 나인뱅크는 빠졌고, 한국의 은행들 역시 마찬가지다.
록허트 대표는 모카뱅크가 공모가를 높게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높은 PBR을 가진 외국 기업들만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요인들을 근거로 록허트 대표는 모카뱅크 주가가 90퍼센트 하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모카뱅크의 공모가는 사실상 기업과 상장 주관사가 짜고, 투자자들에게 사기를 친 것에 가깝다. 현재의 주가는 무엇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당장 매도하는 것만이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컨티뉴 캐피탈은 이미 공매도에 나섰다.’
컨티뉴 캐피탈의 리포트는 바로 한국어로 번역됐고, 기사로 쏟아졌다.
이를 본 투자자들은 경악했다.
-목표 주가가 9,900원이라고? 9만 9천 원이 아니라?
-아무래도 0 하나를 잘못 쓴 것 같은데.
-ㅅㅂ 9900원. 1만 원도 아니고 9900원은 뭐냐?
-ㅋㅋㅋ 누구 놀리나?
-지금보다 주가가 90퍼센트는 폭락해야 한다는 건데, 이게 말이 됨?
-공매도 친 다음 매도 리포트 내서 돈 벌려는 개수작이네!
-천하의 나쁜놈들!
-어쩐지 상장 직후 공매도가 쏟아진다 싶더니 ㅎㄷㄷ
-맞아. 이놈들 항상 그랬음.
-문제는 그게 항상 맞았다는 거.
-그래서 기사 뜬 거 보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팔았음. 남은 분들 성투하세요~
-공매충들 다 죽었으면 ㅜㅜ
이전에도 공모가 고평가를 지적하는 리포트는 여럿 있었다.
따지고 보면, 컨티뉴 캐피탈의 리포트는 이들이 이미 했던 주장을 다시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달랐다.
주가는 바로 하한가로 떨어졌다.
108,000원에 출발했던 주가는 순식간에 30퍼센트 하락한 75,600원이 됐다. 추가 하락을 예상한 투자자들이 그 가격에라도 주식을 팔려고 던졌지만,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하한가에 수백만 주의 주식이 쌓인 채 장이 마감됐다.
* * *
상장 직후 주가는 변동성이 심하다.
어떨 때는 크게 오르고, 어떨 때는 크게 떨어지며, 시장참여자들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가격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누군가는 저평가 됐다고 생각해 매수에 나서고, 누군가는 고평가 됐다고 생각해 매도를 하거나 공매도를 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매수만큼이나 공매도 역시 크게 늘어난다.
컨티뉴 캐피탈의 공매도 소식에 주가는 하한가로 떨어졌다. 다음날에도 시초가는 하락했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자 상승세로 돌아서 8만 원 선으로 올라섰다.
이는 모카뱅크 측에서 적극적으로 반박에 나선 덕분.
우리가 공매도한 건 현재까지 1조 5천억 원 규모.
평균 가격은 8만 5천 원 선. 때문에 지금 가격이면 이익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반대로 섣불리 공매도 청산에 나선다면 숏스퀴즈로 인해 주가가 오르며 오히려 손해를 보겠지.
하지만 공매도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동호 선배는 혀를 찼다.
“생각만큼은 안 떨어지네.”
“토머스 모터스나 LD스튜디오 때와는 다르잖아요.”
사기나 확률조작을 폭로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그저 주가가 고평가됐을 뿐이다.
리포트 하나로 낮추는 것에는 한계가 있겠지.
“그런데 왜 9,900원이야?”
“1만 원보다는 9,900원이 싸보이잖아요. 그리고 이 정도가 딱 실제 가치예요.”
“그렇다 해도 정말로 주가가 그 금액까지 떨어질까?”
장기적으로라면 몰라도 단기간에 주가를 이만큼 끌어내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하지만 다 방법이 있다.
난 동호 선배에게 물었다.
“일단 모카뱅크 주가가 공모가의 90퍼센트인 46,800원 이하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아직 공모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장내에서 매도하는 대신 환매청구권을 행사하겠지.”
공모주 참여자들 중 50퍼센트가 아직 보유 중이다. 그 이유는 첫날 상한가를 친 데다가 장기전망이 워낙 좋았기 때문.
이것만 해도 공모가 기준으로 약 1조 5천억 원 규모다.
이를 90퍼센트 금액에 매수해야 한다면, 약 1조 3천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미 KD증권을 비롯한 KD금융그룹에서는 모카뱅크 주식을 차고 넘치게 가지고 있단 말이죠.”
이는 오래 전부터 투자를 한데다가 상장 직전 진행 된 프리IPO에도 참여했기 때문.
반면 보유 현금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환매청구권 행사로 인해 3천만 주가량을 본인들이 다시 되사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걸 계속 보유하고 있을 수 있을까요?”
“팔아야겠지?”
“바로 그거죠. KD증권은 반품 받은 주식을 다시 시장에 팔 수 밖에 없어요. 가뜩이나 오버행 이슈가 큰 판에 1조 원의 매도폭탄이 터질 거라는 소문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요?”
“어…….”
내 설명을 들은 동호 선배는 입을 쩍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