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화. 모카뱅크 (4)
부동산 중개인은 집값이 오르면 좋을까, 떨어지면 좋을까?
당연히 오르는 걸 좋아한다. 그 이유는 집값에 비례에 수수료를 받기 때문.
증권사 역시 마찬가지.
최대한 공모가를 비싸게 책정해야, 공모 주관사가 챙기는 수수료도 그만큼 커진다.
청약이 미달되지만 않는다면, 기업은 공모로 투자금을 받아서 좋고, 초기 투자자는 엑시트하며 수익을 챙겨서 좋고, 증권사는 수수료 수익을 얻어서 좋다.
하지만 주가란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기 마련.
상장 이후 주가가 폭락하면 이를 청약받은 투자자들의 피해로 연결된다.
한두 번이라면 모를까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경우 공모 시장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이렇게 되면 우량 기업들마저 상장이 힘들어진다.
때문에 금융당국에서 공모가가 너무 높다고 생각될 경우 재심사를 지시하기도 한다. 사실상 공모가를 낮춰서 다시 제출하라는 지시다.
문제는 신생 업종은 기업 가치를 책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그렇다면 공모가가 비싼지 싼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티슬라 요건으로 상장하는 기업은 전문평가기관의 평가를 거치지 않고, 증권사 추천으로 상장된다.
수요예측과 공모가 산정 역시 공모를 주관한 증권사의 역할.
금융당국에서는 증권사들이 멋대로 부실기업을 상장하거나, 상장 이후 주가가 공모가 이하로 폭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 가지 안전장치를 뒀다.
바로 환매청구권이다.
티슬라 요건으로 상장하는 기업의 경우, 공모를 받은 투자자를 대상으로 공모를 주관한 증권사가 1~3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주가가 얼마로 떨어지든 간에 80~90퍼센트 가격에 되사줘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주가가 1원까지 떨어졌더라도 공모를 주관한 증권사에 80~90퍼센트 가격을 받고 되팔 수 있다.
일종의 풋백옵션(Put Back Option)인 셈이다.
물론 공모를 받은 당사자만 해당되고, 이후에 매수한 사람은 해당되지 않는다.
* * *
“모카뱅크 역시 티슬라 요건으로 상장한 만큼 환매청구권이 붙어 있어요. 1개월 안에 공모가의 90퍼센트로 되사주는 조건이죠.”
내 얘기를 들은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간 안에 공모가 이하로 폭락시키겠다는 거군요.”
“예. 그래야 개인 투자자들 피해가 적을 테니까요.”
“그만큼 증권사가 손해를 떠안을 텐데요.”
스타트업에 투자했거나 비상장주식을 매수했다면, 그건 투자한 사람이 온전히 책임지는 것이 맞다.
그러나 공모주 투자는 다르다. 이건 한국의 금융시스템과 해당 증권사를 믿고 투자하는 거니까.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투자자들 자금을 끌어모아 상장시켰다면, 당연히 증권사도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어요?”
“맞는 말씀입니다.”
현재까지 티슬라 요건을 상장한 기업 중 환매청구권을 행사한 경우는 없다.
왜냐하면 증시가 활황이라 상장 이후 다들 주가가 올랐으니까.
또한 당연하게도 증권사 역시 환매청구권 기간 동안에는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 이후에야 어찌 되든 알 바 아니라는 식이지만.
데이비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티슬라 요건이라…… 티슬라가 성공했다고 해서 모든 기업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지는 않은데 말이죠.”
“그러니까요.”
티슬라 요건으로 상장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투자금으로 연명하는 적자 기업이다.
성장성이 큰 기업과 부실기업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따지고 보면, 그 티슬라조차도 상장 이후 흑자를 내기까지는 10년도 넘게 걸렸고, 매년 망할 거라는 보고서가 쏟아져 나왔으니.
“모두의 인식이 바뀌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모카뱅크가 공모가 아래로 떨어지는 건 상장 후 6개월이 지난 이후. 제대로 된 폭락은 그 뒤로도 몇 개월이 지난 뒤다.
내가 하려는 건 그 기간을 최대한 앞당기려는 거고.
“리포트로 상승세를 되돌리기만 하면, 그다음은 알아서 될 거예요.”
이제까지의 성장이 그러했듯 앞으로도 성장할 거라는 믿음. 그리고 시장을 장악하면 엄청난 수익을 낼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업 가치가 산정될 수 있었다.
하지만 믿음이 꺾이는 순간, 주가도 함께 꺾이기 마련이지.
“기업 가치가 높게 책정되었다면, 그걸 누가 가장 잘 알까요?”
데이비드는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이동호 지사장과 함께 공매도 실행을 준비하겠습니다.”
* * *
작년, 한국 증권사들은 악몽과 같은 일을 겪었다.
GL엔텍 사태.
컨티뉴 캐피탈이 상장 직후 GL엔텍 주식을 대량 매수해 주가와 지수를 멋대로 끌어올린 최악의 사건.
이 사태로 인해 거의 모든 증권사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해당 분기 매출은 줄줄이 적자를 기록했다.
이 중 가장 큰 피해를 본 증권사는 KD증권.
미래증권과 함께 1, 2위를 다투던 KD증권은 이 사태 이후 가입자와 예탁금이 감소하며 유성전자에게도 크게 밀리는 처지가 됐다.
이후 KD증권은 손실을 메우기 위해서 공격적인 영업을 벌였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스타트업의 전성기였다.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기업 중에는 현재 수조 원의 가치를 평가받는 기업들이 수두룩했다. 이 기업들을 상장시킬 때마다 증권사는 수수료로 수백억 원을 챙겼다.
KD증권은 여기에 영업력을 집중했다.
그리고 오랜 기간 영업 끝에 모카뱅크의 상장 주관을 맡았다.
공모가는 밴드 상단인 52,000원으로 정해졌다.
이걸 기준으로 보면 시총은 무려 25조 원.
이는 GL엔텍 이후 최대 규모의 상장이었다.
-와! 시총 25조. 미쳤네.
-너무 비싼 거 아닌가? 외국계 증권사들 리포트 보니 공모가가 비싸다고 지적하던데.
-DA금융지주가 23조 원, 한신금융지주가 21조 원인데, 모카뱅크가 이보다 높다는 게 말이 됨?
-모카뱅크는 그냥 은행이 아닌 ‘종합 금융 플랫폼’입니다. 기존의 금융 시스템을 개혁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혁신 기업을 기존 은행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모카뱅크는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해 개인신용을 분석해 대출을 해줍니다.
-인터넷은행은 지점도 없고 직원 수도 적음. 그만큼 예금금리를 더 주고, 대출금리를 깎아 줄 수 있음. 자금은 수익이 높은 쪽으로 이동하니, 조만간 모카뱅크가 자기자본 1위로 올라설 가능성이 큼.
-장외거래가 기준으로 보면 시총 40조 원 갈듯.
-넣으면 무조건 두 배 먹는다.
-그럼그럼. 모카뱅크 별로라고 하는 놈들 청약경쟁률 낮추려고 저러는 거~
-1억 넣으면 몇 주나 받을 수 있을까요?
-지금 경쟁률이면 한 50주나 받으면 다행.
-이건 돈 놓고 돈 먹기임.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가 넣어야 함. 나도 지금 대출 풀로 땡김.
-ㅋㅋㅋ 미친. 빚투하라고?
-어차피 청약 안 된 금액은 다시 돌려주니 상관없음. 며칠만 빌린 다음 갚으면 됨.
-이거레알. 지금 강남 부자들도 수백억씩 끌어다가 넣고 있음.
-모카뱅크 임직원들 부럽다ㅜㅜ 평균 6억 원씩 샀다는데.
일반 청약자의 물량은 약 4조 원 규모.
주식을 받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소식에 수십조 원의 시중 자금이 몰렸고, 청약경쟁률은 100 대 1을 훌쩍 넘었다.
* * *
기관이 특정 주식을 산 다음 매수 리포트를 내는 것은 합법일까 불법일까?
정답은 합법이다.
남에게 추천할 만큼 좋은 주식이면 본인이 먼저 매수하는 것이 상식이다.
오히려 본인은 한 푼도 투자하지 않으며, 남보고 투자하라고 권하는 게 더 이상하지.
그렇다면 기관이 특정 주식을 공매도한 다음 매도 리포트를 내는 것은 합법일까 불법일까?
주가를 조작해서 차익을 챙기려는 의도였다면 불법이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합법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투자 방식이다.
이런 짓 했다가는 바로 금융당국의 철퇴를 얻어맞는다.
때문에 국내 투자사들 중에는 후자의 방식으로 투자하는 곳이 없다고 봐도 좋다. 그러나 컨티뉴 캐피탈은 본사가 미국에 있는 외국계 투자사.
괜한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한국지사가 아닌 미국 본사에서 공매도를 진행하기로 했다.
난 모카뱅크와 관련한 소식을 계속 보고받았다.
동호 선배는 자료를 보며 말했다.
“보다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 인터넷은행이라도 기존 은행과 마찬가지로 은행법의 규제 요건을 똑같이 적용받는데, 그럼 결국 비은행 서비스로 확장은 불가능하다는 거잖아. 그럼 다른 은행주와 비교해야 하는데, 상장 심사에서 비교 대상으로 올린 기업 중 국내 은행은 아예 없어.”
모카뱅크는 국내에 인터넷은행이 상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해외 인터넷은행 네 곳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그런데 비교 대상인 외국계 인터넷은행들은 사실상 사업모델이 달랐다.
“장외거래가도 어차피 거래량이 미미해서 의미가 없고. 대체 어떻게 이런 공모가가 책정된 거지?”
“기업과 증권사가 짜고 친 거죠.”
그러나 일반 투자자가 이런 사실까지 알 리 없다.
때문에 다들 한 주라도 더 받기 위해 돈을 끌어다 넣었고, 청약은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경태는 어떻게 됐어? 사표 냈대?”
“예. 아까 세연이한테 연락받았는데, 회사 그만뒀고 상장 첫날에 다 팔 거래요.”
“다행이네.”
상장 첫날 팔면 그래도 3, 4억은 벌 수 있을 것이다.
부부가 함께 10년 동안 빚 갚을 일은 없겠지.
* * *
거래소에서 모카뱅크 상장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모카뱅크 장은식 대표와 상장을 주관한 조경휘 KD증권 사장, 그리고 거래소와 금융위원회 인사들이 함께했다.
9시가 되는 순간 장이 열리고, 거래가 시작됐다.
모카뱅크의 시초가는 공모가 52,000원에서 25퍼센트 오른 65,000원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7만 원을 넘겼다.
그 모습에 상장기념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다들 박수를 쳤다.
오후장 들어서 상승세는 더욱 가팔라졌고, 결국 가격 제한선까지 오른 채 마감했다.
[모카뱅크, 상장 첫날 상한가! 종가 84,500원!]
[모카뱅크, 공모가 대비 62.5퍼센트 상승!]
[모카뱅크, 코스피 시총 10위 안에 진입!]
[모카뱅크 직원들, 우리사주로 잭팟!]
모카뱅크의 시총은 무려 40조 원으로 늘어나며, 코스피 순위 10위 안에 들어갔다.
설립된 지 5년도 안 된 인터넷은행이 수십 년의 역사를 지닌 시중 은행들을 전부 제친 것이다!
-와! 대체 이거 얼마까지 가는 거냐?
-공모가 비싸다고 욕한 놈들 다 어디 감?
-ㅋㅋㅋ 기업 가치가 고평가됐다고 리포트 쓴 애널리스트들 전부 이불킥 중.
-설마 그딴 쓰레기 리포트 보고 안 산 흑우들 없제?
-우리사주 받은 직원들 대박 터졌네. 인당 5억씩은 벌듯.
-공모주 청약으로 220주 받았는데, 이거 언제 팔아야 하나요?
-조만간 10만 원 넘을 것 같으니, 그때 파세요.
-뭔 소리야? 앞으로 15만 원까지 갈 테니, 꽉 잡아라!
다음 날, 장이 열리자 모카뱅크는 또다시 상승을 이어갔다.
증권사들은 일제히 목표 주가를 올려잡았다.
[모카뱅크 MSCI지수 조기 편입 확정!]
[모카뱅크, 글로벌 투자금 유입 기대감에 상승세!]
[KD증권, 모카뱅크 목표 주가로 17만 원 제시]
미국의 모건스탠리가 만든 MSCI지수는 글로벌 펀드의 투자 기준이 되는 지표다.
MSCI지수에 편입되면 지수를 추정하는 패시브 자금들은 자동으로 해당 종목을 매수한다. 따라서 이는 엄청난 호재였다.
외국계 투자금이 대량 매수할 거라는 기대감에 모카뱅크 주가는 10만 원을 넘어섰다.
주가는 11만 원을 찍은 뒤 매도세가 몰리며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10만 원 선에서 횡보했다.
이는 공모가 대비 무려 두 배가 오른 가격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외국계 사모펀드의 리포트 하나가 나왔다.
[컨티뉴 캐피탈, 모카뱅크 매도의견 리포트. 목표 주가 9,900원 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