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화. 모카뱅크 (2)
하경태는 당황하며 말했다.
“어, 이미 샀는데.”
“얼마나?”
“살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그게 얼만데?”
“1만 주.”
공모가가 1주에 5만 2천 원이니, 무려 5억 2천만 원어치를 산 셈이다!
많이도 샀다.
“돈은 어디서 났어?”
“어, 일단 회사에서 우리사주 매입 지원금 1억 원 대출받았고, 나머지는 여기저기서 빌렸지. 우리 부모님한테도 빌리고, 처가에서도 빌리고.”
“…….”
한마디로 전부 빚내서 투자했다는 얘기.
하기야 사회초년생이 5억을 가지고 있을 리가 있나?
난 기가 막혔다.
“대체 뭔 깡으로 그만큼이나 산 거야?”
“아니, 나 말고 다른 직원들도 다 그렇게 샀어.”
하기야 나라도 모카뱅크에서 일했다면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가 우리사주를 받았을 것이다.
옆에서 얘기를 듣던 박승훈이 말했다.
“그거 상장만 하면 두 배 갈 거라고 하던데.”
다른 친구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따상할 거라고.”
최근 증시가 활황이라 공모한 기업들마다 대박을 터트렸다.
오죽하면 공모 관련한 기사에 ‘따상’, ‘따상상’이라는 용어까지 나올 정도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공모주가 증시에 처음 상장하는 날 시초가는 호가에 따라 공모가의 90~200퍼센트에서 형성된다. 공모가가 5만 원이라면 4만 5천 원~10만 원 사이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만약 시초가가 공모가의 200퍼센트로 결정되고, 바로 상한가로 치솟으면 이론적으로는 첫날 투자금액의 1600퍼센트를 벌 수 있다.
이를 따상(따블+상한가)이라 한다. 그리고 다음 날도 상한가를 치면 따상상이고.
모카뱅크는 워낙 시총이 커서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상장 직후 주가가 공모가보다 두 배 넘게 오르는 건 사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최한별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왜 그래, 미루야? 무슨 문제라도 있어?”
다른 애들도 일제히 물었다.
“나 모카뱅크 공모주 청약하려고 하는데.”
“그거 하면 안 되는 거야?”
“회사에서 뭐 들은 얘기라도 있어?”
어느새 모든 애들이 다 내 입을 쳐다보았다.
하기야, 내가 몸 담고 있는 곳은 컨티뉴 캐피탈.
현재 금융계에서 컨티뉴 캐피탈만큼 신뢰도가 높은 곳도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투자한 것마다 대박을 터트렸으니까.
난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공모가가 너무 높게 책정된 것 같아서.”
그러자 하경태가 반론했다.
“장외거래가에 비하면 60퍼센트밖에 안 되는데, 뭐가 높다는 거야?”
“상장 이후 장외거래가가 떨어지는 일도 얼마든지 있잖아.”
기업이 상장되면 장외에서 샀던 주식이라 해도 장내에서 팔 수 있게 된다.
그럼 장외에서 10만 원에 거래되던 회사 주식이 공모가 5만 원에 상장한다면, 장외가는 오를까, 떨어질까?
기본적으로 상장은 호재다. 거래의 편의성은 가격을 높이는 역할을 하니까.
그러나 반대로 떨어질 만한 요인도 있다.
먼저 공모 과정에서 유상증자를 하면 그만큼 주식 수가 증가한다. 또한 사려는 사람만큼이나 파는 사람도 많아진다. 반면 수요 일부는 저렴한 공모주 청약으로 몰려가서 줄어들 거고.
난 딱 잘라 말했다.
“아무튼 나라면 모카뱅크는 절대 안 살걸.”
내 말에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
“오, 그래? 이거 사면 안 되는 거였어?”
“우리사주 받았다고 한턱 쏘라고 하려고 했더니.”
“하긴, 공모가가 좀 높다는 기사도 있더라.”
진세연은 하경태와 최한별을 보며 말했다.
“미루 말 들어. 컨티뉴 캐피탈에서 일하는데 얼마나 정보가 많겠어? 그리고 그때 프리머스 펀드가 사기라는 것도 정확하게 맞췄잖아.”
최한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하지만 하경태의 대답은 좀 달랐다.
“내가 알아서 할게.”
하경태는 맥주를 들이마셨다.
표정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나 같아도 전재산…… 아니, 빚을 끌어다가 산 주식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나쁠 것이다.
난 프리머스 사태 이후 학교 친구들과는 거의 연락을 끊고 지냈다. 그래도 간간히 소식 정도는 들었다.
갑자기 1회차 때 하경태와 최한별 부부에 대해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회귀하기 전까지도 이때 진 빚 갚느라 고생하고 있다고 했던가?
* * *
대학생 때였다면 다음 날 생각 안 하고 새벽까지 퍼마셨겠지만, 이제는 그러기도 힘들다.
우리는 적당히 마신 다음 너무 늦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가려고 하는데, 진세연이 나를 붙잡았다.
“잠깐만, 미루야.”
“왜?”
“아까 한별이랑 얘기해서 같이 커피 한잔하기로 했거든. 니가 경태 좀 말려봐.”
“응?”
“모카뱅크 말이야. 그거 위험한 거 맞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지.”
“니가 얘기 좀 해줘. 결혼해서 애도 있는데, 빚 못 갚으면 큰일이잖아.”
혹시라도 친구가 잘못될까 봐 걱정하는 눈치다.
그러고 보니 얘는 한별이랑 친했지.
“그런데 내 말이 100퍼센트 맞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아?”
진세연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나라면 니 말 들을 거야.”
* * *
난 진세연과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잠시 후, 최한별이 하경태를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멀쩡한 최한별과는 달리, 하경태는 아까 술을 많이 마셨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앉아서 얘기를 하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최한별은 전화를 받았다.
“아, 엄마. 우리 좀 늦을 것 같아. 미안미안. 애 분유는? 알았어요. 금방 갈게.”
진세연이 물었다.
“애는 엄마가 봐주고 있는 거야?”
“응. 엄마 없었으면 육아휴직 끝나고 복직도 못 했을걸.”
최한별이 물었다.
“그런데 아까 한 말이 진짜야? 모카뱅크가 그렇게 위험해?”
내가 처음 리서치부서에 들어갔을 때 선배들이 해준 조언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절대 지인에게 투자 조언을 하지 말라는 것.
내 말 듣고 샀는데 떨어지면 욕먹고, 반대로 내 말 듣고 팔았는데 오르면 욕먹는다고.
실제로 영업점에서 이런 일로 고객에게 멱살 잡히는 직원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나마 일 때문에 하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개인적인 조언은 철저하게 피해야 한다.
때문에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투자에 대해 이래라저래라하지 않겠지만……
모카뱅크가 상장 이후 어떻게 되는지 나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다.
웬만큼 떨어졌으면 애초에 말도 안 꺼냈다.
그렇다고 내가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없으니, 난 회사 핑계를 댔다.
“이 얘기는 너희만 알고 있어. 나도 사내 리포트에서 본 거니까 절대 외부에 새나가면 안 돼. 만약 내가 얘기한 게 알려지면 나 회사에서 잘릴 수도 있어.”
내가 나를 자를 리는 없겠지만, 이 정도는 얘기를 해놔야 소문이 퍼지지 않겠지.
최한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뭔데?”
“컨티뉴 캐피탈에서 모카뱅크에 대해 분석을 했는데, 적정 가치에 비해 공모가가 너무 높게 책정되어 있어. 향후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아.”
하경태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어, 그래? 어, 얼마나? 설마 반토막 난다는 건 아니지?”
“응.”
두 사람은 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 그 표정은 180도 바뀌었다.
“반의 반토막, 아니 그 이하로 생각하면 될 거야. 적정 주가는 공모가의 20퍼센트에 못 미쳐.”
“…….”
둘 다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실제로 모카뱅크는 상장 이후 1년 안에 폭락한다.
주가는 공모가 대비해서도 80퍼센트 날아가며, 나중에 둘이 그 빚 갚느라 전세는 월세로 옮기고,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꾸는 신세가 됐다.
잠시 후, 하경태는 소리치듯 말했다.
“그게 뭔 소리야? 왜 우리 회사 주식이 폭락한다는 건데?”
술 때문에 벌게진 얼굴에는 분노와 창피함 등이 섞여 있었다.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애초에 우리사주 받으려고 이직하고, 여기저기 빚까지 끌어다가 수억 원어치나 샀다는 것은 그만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난 그 확신을 면전에서 대놓고 부정한 거고.
“애초에 공모가 책정 자체가 잘못됐어. 은행주 멀티플이 그 정도라는 게 말이 안 돼.”
“그야 우리는 인터넷은행이니까.”
“인터넷은행은 시중 은행과 뭐가 달라?”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하는 금융 플랫폼 기업이라는 게 다르지.”
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스노우 크래시 대주주인 내 앞에서 감히 빅데이터와 AI를 논하다니.
“빅데이터와 AI로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서 뭐할 건데?”
만약 모카뱅크가 투자은행(IB)이라면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해 각종 파생상품을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업은행(CB).
상업은행 수익은 결국 예대마진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그걸 활용해 개인신용을 분석해서 중금리 대출 늘리는 거지.”
사실 이는 인터넷은행이 도입된 목적이기도 하다.
좋은 직장이 있고 담보가 있는 고신용자는 저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지만, 프리랜서거나 담보가 없는 저신용자는 고금리 대출로 내밀린다.
때문에 각종 빅데이터를 분석해 중신용자에 중금리로 신용대출을 해주겠다는 것이 인터넷은행의 계획.
난 고개를 내저었다.
“마이너스통장과 소액대출이 얼마나 돈이 되는데? 미래은행에서 일해 봤으니 알잖아. 큰돈 되는 건 기업대출과 부동산담보대출인 거.”
“그, 그렇긴 한데…….”
진세연이 말했다.
“그런데 요즘 공모주들 다 대박이었잖아. 이번에 모카뱅크 청약경쟁률도 엄청 높을 거라고 다들 예상하고 있고.”
“지금 분위기에서는 상장 직후 오르긴 하겠지.”
“어! 그럼 상장된 뒤 바로 팔면 되는 거 아니야?”
난 고개를 저었다.
“우리사주는 보호예수가 1년이야. 그 안에는 못 팔아.”
우리사주를 살 경우 주식이 바로 계좌에 꽂히는 게 아니다.
1년 동안에는 우리사주조합에서 관리하고, 그 기간이 지난 뒤 계좌로 넣어준다.
애초에 우리사주제도의 목적은 직원들의 자사주 취득을 독려하기 위함. 사자마자 바로 팔아 차익을 남기라고 있는 제도가 아니다.
때문에 최소한 1년은 팔지 않고 가지고 있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번 산 주식을 환불할 수도 없는 노릇.
“그, 그럼 어떡해?”
다행히 1년 안에 우리사주를 팔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난 딱 잘라 말했다.
“사표 써.”
하경태는 당황했다.
“……응?”
“퇴사하면 팔 수 있잖아.”
우리사주를 받은 직원은 1년 이상 보유해야 팔 수 있다.
하지만 회사를 나와 더 이상 직원이 아니게 되면, 이러한 제약이 사라진다. 퇴사를 하게 되면 주식은 바로 계좌로 들어오고 매매가 가능해진다.
“주식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라고?”
차라리 한 10억 정도 번다면 기꺼이 사표 쓰고 나갈 만하겠지만, 이번 공모주로 벌 수 있는 돈은 기껏해야 3억 원.
이 정도면 인생을 바꿀 만한 금액은 아니다.
그렇다고 퇴사 후 바로 다시 비슷한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도 쉽지는 않다. 이력서에 찍힌 경력만 봐도 모카뱅크에서 우리사주 받자마자 퇴사한 게 티가 날 테고.
하지만…….
“직장이야 다시 구하면 되잖아.”
하경태는 고개를 내저었다.
“모카뱅크 같은 기업에 취직하기가 쉬운 줄 알아? 이번에 이직도 간신히 했는데.”
최한별은 사색이 된 얼굴로 물었다.
“다른 방법은 없어?”
난 하경태와 최한별을 보며 말했다.
“선택해. 퇴사하고 바로 주식 팔지, 10년 동안 둘이서 빚 갚아 나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