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화. 치킨 게임 (7)
한정치킨.
한국 1위의 치킨 프랜차이즈로 원래는 한정그룹 계열사 HJ푸드 산하에 있었다. 그러나 그룹에서 분리된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한정물산 경영권 분쟁이다.
그 과정에서 오너 일가의 온갖 비리가 터져 나왔고, 주현진은 마약과 폭행 등으로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프랜차이즈의 경우 오너가 사고를 치면 가맹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때문에 한정치킨은 그룹 해체 과정에서 사모펀드 레이크폴K에 매각됐다.
한정치킨은 HJ푸드에서도 알짜 중의 알짜 기업.
주현진은 자신이 가진 돈을 다 끌어모아 레이크폴K의 후순위 출자자로 나섰다.
차명 지분을 포함하면 그는 레이크폴K 지분 70퍼센트를 보유했다. 덕분에 여전히 한정치킨을 지배할 수 있었다.
다행히 한정치킨은 한정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뒤, 두 배 이상 성장했다.
그 이유는 치킨 가격을 무려 세 차례나 인상했기 때문. 가격을 올렸음에도 판매량은 줄지 않았으므로, 인상폭은 고스란히 수익으로 연결됐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생겼다.
주현진은 박명훈에게서 보고를 받았다.
그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주현진을 대신해 각종 일 처리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통통치킨 출시 이후 가맹점들이 타격을 입고 있어. 당장 우려할 정도는 아니지만, 모든 지점에서 매출이 조금씩 줄고 있고.”
“고작 마트 치킨 때문에 판매량이 줄었다고? 그거 맛도 없지 않아?”
“먹어보니 우리 쪽 치킨에 비해 결코 밀리지 않는 수준이야.”
그동안의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이 줄지 않았던 것은 맛과 품질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
그런데 갑자기 툭 튀어나온 마트 치킨이 이 정도로 치고 올라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로 인해 타격을 입은 건 한정치킨만이 아니다.
“홍인균 회장은 뭐래?”
“중소 프랜차이즈들과 개인 치킨가게들과 연합해 통통치킨 판매 중단 시위를 벌일 거래. 가맹점주의 피해를 최대한 부각해서 여론몰이를 하자고 하던데. 예전에 리테마트 대통치킨 판매를 중단시켰을 때처럼.”
“당연히 그래야지.”
주현진은 박명훈이 사온 레드킹 치킨과 블랙시크릿 치킨을 차례대로 먹어보았다.
어째서인지 미묘하게 한정치킨과 맛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체 어떤 놈이 이런 레시피를 만든 거지?’
* * *
홍인균 회장의 출연 이후 SBC 라디오 방송 ‘즐거운 라디오 생활’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청취율도 올랐고, 에이튜브 구독자도 크게 늘었다.
그러나 라디오 방송국의 분위기는 별로 좋지 못했다.
박충일 국장은 담당 PD와 진행자를 불러다 놓고 소리치듯 말했다.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지금 홍인균 회장이 광고 다 빼겠다고 난리야! 그거 광고 단가가 얼마인지 알아?”
TV가 생겨난 이후에도 라디오는 여전히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나 현재는 팟캐스트나 인터넷 라디오 등 여러 경쟁자들이 생겨났고, 청취율은 점차 떨어지는 추세였다.
라디오국 예산이라고 해봐야 빠듯하고, 광고 수주를 받기도 쉽지 않다.
아무 말도 못 하는 진세연을 대신해 김지숙 PD가 항변했다.
“저희가 뭐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없는 말을 한 게 아니니까 더욱 문제지. 세상에서 팩트폭행이 제일 나쁜 거 몰라?”
박충일 국장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내가 지금 BQQ치킨 하나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 다른 치킨 프랜차이즈들도 비슷하게 나올까 봐 그러지.”
홍인균 회장은 한국프랜차이즈협회 협회장을 맡고 있다. 이들이 단체로 SBC 광고를 보이콧하면 보통 큰일이 아니다.
진세연은 홍인균 회장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와! 더럽게 치졸하네.’
더럽게 치졸하긴 해도 효과는 확실했다.
“일단 김 PD가 홍인균 회장에게 전화해서 사과해.”
“제가 왜요?”
“그럼 국장인 내가 하랴?”
자신 때문에 모두가 곤란해졌다는 생각에 진세연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그 순간, 광고 담당 직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박충일 국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뭐야? 노크 안 해!?”
“크, 큰일 났습니다, 국장님.”
“큰일? 헉! 서, 설마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전부 광고를 빼겠대?”
“그게 아니라 방금 신세기그룹에서 연락이 왔는데, S마트와 신세기몰에서 저희 라디오에 광고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응?”
박충일 국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아직 놀라긴 일렀다.
“그리고 민기진 전무가 ‘즐거운 라디오 생활’에 출연하고 싶다고 합니다.”
박충일 국장은 놀라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뭐!? 그게 사실이야? 진짜야?”
가뜩이나 통통치킨에 대해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기진 전무가 라디오에 출연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라디오 청취율과 에이튜브 조회수는 폭발할 것이다.
김지숙 PD가 슬쩍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국장님? 홍인균 회장님께 연락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할까요?”
그 물음에 박충일 국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허! 사과는 뭔 사과? 우리가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광고 빼고 싶으면 빼라고 해. 어디서 광고를 가지고 협박질이야!”
진세연은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리 통통치킨이 이슈라지만, 재벌그룹 후계자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일전에 한미루와 통화했던 게 떠올랐다.
‘설마 미루가?’
* * *
SBC 라디오 방송 ‘즐거운 라디오 생활’.
진행자인 진세연은 특유의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 정말 모시기 힘든 분을 모셨습니다. 출연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는데요. 아마 청취자 여러분들도 저처럼 깜짝 놀랄 거라 생각합니다. 신세기그룹 민기진 전무님이십니다.”
민기진 전무는 인사를 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민기진입니다.”
“라디오 출연은 처음이시죠?”
“예. 이런 좋은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벼운 인사와 잡담을 나눈 다음, 진세연은 본론을 꺼냈다.
“최근 가장 반응이 뜨거운 음식이라고 하면 통통치킨을 들 수 있는데요. 저도 아까 PD님과 스태프 분들과 다 같이 먹어보았습니다.”
“어떤 치킨이 가장 맛있었나요?”
“전 골드캐슬이 가장 맛있었어요. 물론 다른 치킨들도 맛있었지만요. 그런데 이전에 먹었던 마트 치킨과는 맛과 퀄리티가 완전히 다르던데요.”
“S마트를 맡고 있는 양재호 사장님은 수년간 글로벌 치킨 프랜차이즈 회사의 한국 대표를 역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치킨에 대해서는 정말 진심이십니다.”
“그럼 이 소소들도 양재호 사장님이 개발하신 건가요?”
“아니요. 소스의 레시피는 컨티뉴 캐피탈에서 제공해주었습니다.”
그 말에 진세연은 깜짝 놀랐다.
“컨티뉴 캐피탈이요?”
“예.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컨티뉴 캐피탈에 로열티를 지급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컨티뉴 캐피탈 측에서는 로열티를 받지 않을 테니, 그만큼 가격을 더 낮춰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뜻에 따라 지금처럼 계속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그, 그렇군요.”
설마 여기에 컨티뉴 캐피탈이 관련되어 있을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미루가 알고 있었던 거구나.’
진세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아시겠지만 요즘 치킨값에 대한 논란이 크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스시만 해도 저렴한 회전 스시가 있고 비싼 오마카세가 있듯, 치킨도 얼마든지 고급화시켜 높은 가격을 받아도 된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말에 민기진 전무는 소리 내서 웃었다.
“하하, 스시랑 치킨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어째서인가요?”
“먼저 저렴한 스시와 비싼 스시는 원가부터가 다릅니다. 똑같은 물고기라도 양식이냐 자연산이냐, 어디서 잡았느냐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입니다. 하지만 치킨의 경우 똑같은 품종의 닭을 똑같은 가공업체에서 공급받습니다. 기름과 파우더, 소스 등도 맛의 차이가 날 뿐이지, 가격은 크게 차이나지 않습니다.”
“스시와는 달리 치킨은 어떤 닭이든 원가가 비슷하다는 건가요?”
“예. 그리고 뛰어난 실력을 지닌 스시 장인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그 사람이 매장을 열 곳, 스무 곳으로 늘릴 수 있을까요?”
“음, 그건 힘들겠죠?”
“맞습니다. 레시피를 알려준다 한들 숙련된 요리사의 솜씨를 일반인이 쉽게 따라 할 수는 없으니까요. 똑같은 스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3년 이상은 힘든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할 겁니다. 하지만 치킨은 요리를 전혀 못 하는 사람이라도 길어야 한 달만 교육받으면 똑같은 치킨을 조리할 수 있습니다.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의 경우 보름만 교육받으면 맛있는 치킨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 짧은 시간 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쉽게 똑같은 맛을 낼 수 있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거군요.”
“예. 그렇기 때문에 치킨은 프랜차이즈화에 적합한 메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회전 스시 프랜차이즈는 있어도, 오마카세 프랜차이즈는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이 둘을 비교하는 것은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홍인균 회장의 발언을 전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현재 웬만한 프랜차이즈 치킨의 단품 가격이 2만 원을 넘어섰습니다. 전무님께서는 이렇게 가격이 오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알던 마케팅비가 많이 들어가는 걸 들 수 있겠네요. 몇몇 유명 프랜차이즈의 경우 톱스타를 모델로 내세워 TV와 인터넷 광고를 진행합니다. 이는 결국 치킨값에 반영됩니다. 또한 일부 프랜차이즈의 경우 본사에서 식자재를 직접 공급하는 것이 아닌, 중간에 유통업체를 끼워 넣어 통행세를 붙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부분들만 개선해도 치킨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진세연은 바로 이어서 물었다.
“이건 좀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치킨값이 비싸다는 여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말로 민감한 질문이네요.”
그러나 민기진 전무는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가격을 얼마에 책정하든 그건 프랜차이즈 업체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찾아보면 싼 치킨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 가격을 내고 먹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사 먹고, 아닌 분들은 안 사 먹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싸게 파는 것 역시 자유입니다. 마트는 치킨을 싸게 팔 권리가 있고, 소비자들은 저렴한 치킨을 사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 생각합니다.”
진세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통통치킨으로 인해 대형 프랜차이즈보다 동네 치킨집들이 타격을 입을 거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반박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민기진 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그러한 우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S마트는 소상공인들과의 상생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그러한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떤 대책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통통치킨의 차별화된 강점은 레드소스, 골드소스, 블랙소스입니다. 저희는 이 소스를 개인 치킨매장에 판매할 계획입니다.”
진세연은 깜짝 놀라 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생닭 크기, 기름, 튀김옷 등에 따라 각 치킨집마다 기본적인 맛 차이는 나지만, 똑같은 소스를 사용한다면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소스의 가격은 레시피 제공자의 뜻에 따라 원가에 판매할 예정이고, 해당 소스로 치킨을 만들 경우 골드캐슬, 레드킹, 블랙나이트라는 이름을 쓰는 것도 허용하겠습니다. 또한 신세기그룹이 운영하는 백화점, 마트, 쇼핑몰에서 치킨 교실을 열어 누구든 제조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그야말로 폭탄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이 발언은 지금 즉시 기사로 나가고 있을 것이다.
민기진 전무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맛있는 치킨을 신세기그룹 혼자 독점할 생각은 없습니다. 치킨은 서민 음식도 부자 음식도 아닌, 온 국민의 음식입니다. 저 역시 평소에 치킨을 즐겨 먹습니다. 누구나 맛있는 치킨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고, 누구도 이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