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화. 치킨 게임 (1)
국민소득이 오르면 물가는 따라 올라가기 마련.
1회차 때 경험한 바에 따르면 치킨값은 3만 원 이상으로 올랐다. 따라서 치킨값 2만 원이 그렇게 신기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도 훨씬 빠르게 오르는 중이라는 것이다.
대체 왜 벌써 치킨값이 2만 원이 넘었지?
1회차 때와 달라진 이유는 뭘까?
난 원인을 찾기 위해 자료를 조사해보았다.
치킨강국답게 전국민이 닭만 먹고 사는 것 같지만, 실제 한국의 1인당 닭 소비량은 미국의 3분의 1, OECD 국가의 절반 정도로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음식점 통계를 보면 얘기가 다르다.
프랜차이즈 브랜드 숫자만 약 500여 개. 가맹점 숫자는 2만 5천여 개에 달한다. 그 외에 개인 가게까지 포함하면 무려 8만여 개.
이는 프랜차이즈의 대명사나 다름없는 맥도날드 전세계 매장 수의 두 배, 세계 최대 치킨 프랜차이즈라는 KFC 전세계 매장 수의 여덟 배다.
이 정도면 인구 대비 치킨가게의 수가 가장 많은 나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치킨공화국에서도 상위 3개 업체가 절반이 넘는 시장을 과점하고 있으니, 바로 한정치킨, BQQ치킨, 루루치킨이다.
이중 업계 1위는 한정치킨.
1회차 때 나와 선우가 함께 가맹점을 차렸던 바로 그곳이다.
치킨은 서민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가격을 올리면 돈이야 더 벌겠지만, 재벌그룹이 치킨 비싸게 팔아 서민들 등쳐먹냐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한정그룹에 속해있을 때는 대놓고 가격을 올리거나 가맹점에 갑질을 하기는 힘들었다.
1회차 때 멋대로 가격을 올리고, 중간에 유통회사 세워서 이익 빼돌리기를 한 것도 한정그룹과 계열분리가 완전히 이뤄지고 난 뒤의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정그룹이 해체되는 바람에 한정치킨은 바로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한정치킨을 인수한 사모펀드가 가장 먼저 신메뉴를 출시하며 가격을 인상했다.
내 얘기를 들은 선우는 나를 보며 말했다.
“잠깐만. 그러니까 한정그룹 해체로 인해 한정치킨이 사모펀드에 팔리는 바람에, 치킨 가격 인상이 가속화됐다는 거야?”
“바로 그거지.”
“그럼 결국 너 때문이라는 거잖아.”
“응? 아니,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당황하는 나에게 선우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니가 한정그룹을 해체했잖아. 너만 아니었어도 한정치킨이 사모펀드에 팔릴 일은 없었을 테고, 치킨 가격이 오를 일도 없었을 거 아냐?”
“그렇긴 한데…….”
선우는 새삼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럼 너 때문에 전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는 거잖아.”
“그게 뭔 소리야?”
“치킨값 인상으로 3천 원이 부족해 오랜만에 고향에 온 손주들에게 치킨 시켜주지 못한 할머니한테 당장 사과해!”
“…….”
* * *
난 치킨값 2만 원에 대한 여론의 반응을 한번 살펴보았다.
여론은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었다.
-치킨값 2만 원 ㅎㄷㄷ
-내 월급은 그대로인데, 치킨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네.
-치킨값이 미친 거냐, 세상이 미친 거냐?
-그 돈이면 뭐하러 치킨 시켜먹냐? 뜨끈한 국밥 먹으러 가지!
-아이들에게 1인 1닭을 시켜주고 싶었는데, 가격 인상으로 못 시켜줬습니다. 못난 아빠를 둔 서준이 서린이에게 정말…… 미안하다!!!
-용돈 모아서 친구들끼리 치킨 사먹는 게 낙이었는데, 이제는 그 낙이 사라졌습니다.
-정부는 아파트는 분양가 상한제처럼 치킨 가격 상한제도 실시해라!
-다음 선거에서는 치킨값 인하 공약 내세운 후보를 뽑읍시다!
전국민이 치킨값 인상으로 인상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중이었다.
난 회귀 이후 수많은 투자를 해왔다.
나로 인해 어떤 기업은 큰 성공을 거뒀고, 어떤 기업은 몰락했다. 재벌그룹이 해체되기도 했고, 빅테크 기업이 박살 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이익을 본 사람과 손실을 본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아무래도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겠지만.
그러나 그에 대해 딱히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투자란 어디까지나 본인의 책임.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익이 나든 손실이 나든 본인이 감내해야 한다.
……라는 것이 나의 생각.
그러나 이번 일은 경우가 좀 달랐다.
투자와는 전혀 상관없는 서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으니까.
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눈물을 흘렸을지 생각하니, 죄책감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벌써부터 치킨값이 2만 원이라니!
내 책임도 큰 만큼 이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했다.
* * *
난 회사로 출근해서 직원에게 한정치킨에 대해 자료를 찾아 정리해 달라고 얘기했다.
잠시 후, 직원 대신 동호 선배가 직접 자료를 들고 내 자리로 찾아왔다.
“아까 얘기한 거 여기 있어.”
난 자료를 대충 훑어보았다.
한정치킨은 업계 1위의 프랜차이즈.
점유율과 매출은 안정적이고 탄탄했고,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굳이 매각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한정그룹 해체 과정에서 총수 일가의 온갖 비리가 드러났고, 주현진은 마약 투약으로 체포되기까지 했다.
금방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오너의 이미지가 이 모양이니, 한정치킨을 시켜먹고 싶은 생각이 들 리 없다.
프랜차이즈에서 오너 리스크가 터질 경우 정작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가맹점. 한정치킨의 매출은 급감했고, 가맹점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동호 선배는 옆에 붙어서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그러한 이유로 레이크폴K 사모펀드에 매각된 거지.”
“그렇군요.”
“보니까 주현진이 후순위 출자자로 참여했던데.”
“그래요? 지분은 얼마나 되는데요?”
“본인 지분은 32퍼센트.”
이게 무슨 말이냐면 레이크폴K가 한정치킨을 사고, 주현진은 한정치킨을 매각한 돈으로 다시 레이크폴K의 지분을 샀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외에 기관 출자자가 있는데, 이게 아무래도 주현진의 페이퍼 컴퍼니 같아. 그것까지 포함하면 71퍼센트까지 올라갈걸.”
“그 정도면 그냥 이름만 바꾼 거 아니에요?”
“그렇겠지?”
그렇다면 주현진은 레이크폴K의 대주주로서 여전히 한정치킨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한정치킨의 매출은 무려 6500억 원.
웬만한 상장기업 뺨치는 수준이다.
대체 치킨을 몇 마리나 팔아야 이 정도 수익이 가능한 건지 신기하다.
뭐, 매출이야 그렇다 치자. 중요한 건 영업이익이니까.
작년 영업이익은 32퍼센트.
그야말로 눈을 의심할 만한 숫자다.
동호 선배는 혀를 내둘렀다.
“놀랍지 않아? 난 처음에 숫자를 잘못 봤나 했다니까. 뭔 치킨 프랜차이즈 영업이익률이 반도체보다도 높다니.”
원래 10~15퍼센트였던 영업이익이 급격하게 치솟은 것은 원가는 그대로인데 가격을 미친 듯이 올렸기 때문.
“그런데 왜 갑자기 한정치킨에 관심을 갖는 거야?”
“요즘 치킨값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 들지 않아요?”
동호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비싸지. 얼마 전 보니 2만 원을 넘었던데. 미친 거 아니야?”
“미친 거죠. 한번 2만 원을 넘기가 힘들지, 2만 원을 넘은 이상 2만 9천 원까지는 직행이에요. 이대로 놔둔다면, 대한민국은 몇 년 안에 치킨 3만 원 시대를 맞이하게 될지도 몰라요.”
“에이, 설마.”
난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지켜보면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거예요.”
* * *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치킨값에는 배달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정치킨이 업계 최초로 배달비를 따로 받겠다고 선언.
사실상 3천 원을 인상했다.
그 이후에도 온갖 핑계를 대며 1천 원, 2천 원씩 슬금슬금 올리더니, 어느새 치킨 단품 가격이 2만 원을 넘어섰다.
업계 1위인 한정치킨의 가격 인상에 대해 2위와 3위인 BQQ치킨과 루루치킨의 반응은 어땠을까?
1위 업체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이 생겼다고 좋아했을까?
천만에.
과점 상태인 시장에서는 선두업체가 가격을 올리면 다른 업체들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한정치킨이 가격을 올리자 BQQ치킨과 루루치킨은 기다렸다는 듯 따라서 가격을 올렸다. 그렇게 한국은 치킨 2만 원 시대를 맞이했다.
당연하게도 여론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들이부은 사건이 발생했다.
SBC 라디오 방송 ‘즐거운 라디오 생활’.
평일 오전에 진행하는 생활 정보 프로그램으로, 아나운서 진세연이 진행을 맞고 있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안정적인 진행 덕분에 동시간대 라디오 방송 중 가장 높은 청취율을 자랑했다.
이중 가장 인기 있는 코너는 각계각층의 유명인들을 불러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즐거운 만남’.
“오늘 이 자리에는 한국의 치킨왕이라 불리는 BQQ 홍인균 회장님이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바쁘실 텐데 이렇게 나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최근 치킨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제 주변에도 치킨 한 마리가 2만 원이라 시켜먹기 부담된다는 의견이 많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행자의 물음에 홍인균 회장은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고객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치킨값 2만 원은 결코 비싼 게 아닙니다. 무게로만 비교했을 때 닭고기 1킬로그램은 삼겹살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생닭 가격에, 물류비 태우고, 파우더와 튀김기름, 인건비, 배달비 등등. 이런 가격을 따지면 본사가 수익을 남기는 게 아닙니다.”
“치킨값을 더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배추나 사과는 한번에 2~300퍼센트씩 올라도 뭐라고 안 합니다. 그런데 치킨 가격은 2, 3천 원만 올라도 난리가 납니다. 인건비, 임차료, 배달료 등 비용이 다 오르는데, 고객들 눈치 보느라 마음대로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사나 가맹점이 이렇게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 대변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 얼마가 적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홍인균 회장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치킨값은 지금처럼 2만 원이 아닌 3만 원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발언이 나가고 나자 들끓던 여론은 한순간에 폭발했다.
-대체 소비자를 얼마나 개돼지로 생각하면 라디오에 나와 저딴 말을 태연하게 지껄이는 거냐?
-할 말 많지만 고소당할까 봐 참는다. 운 좋은 줄 아쇼.
-야채나 과일이 흉년일 때 가격이 두세 배 뛰는 건 맞는데, 반대로 풍년일 때는 가격이 폭락함. 그런데 치킨값이 언제 한 번이라도 떨어진 적 있음?
-치킨값 3만 원 ㅋㅋㅋ
-지금도 감자튀김이랑 콜라 추가하고, 배달비 더하면 3만 원 넘지 않나?
-불매가 답이다.
-사지 않습니다. 먹지 않습니다.
-응~ 안 사먹어~
-응~ 그래도 팔려~
-야이! 그래서 쁘링쿨 안 먹을 거야? ㅎㅎ
-어처구니가 없네요. 비싸면 안 먹으면 되지 않나요? 누가 치킨 사먹으라고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니잖아요. 저 학력고사 앞둔 여고생인데, 제 동년배들은 3만 원이어도 사먹는다고 하거든요!
-홍 회장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업계 1위인 한정치킨의 영업이익이 32퍼센트임. BQQ는 26퍼센트고. 한정치킨에 비하면 남는 게 별로 없긴 하네.
-ㅋㅋㅋ 마진탐이라 불리는 엔플 CEO 탐 키튼도 못 낸 기적의 영업이익!
-이쯤 되면 한정치킨은 치킨계의 엔플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아니지. 엔플을 IT업계의 한정치킨이라 불러야지. 엔플 작년 영업이익이라고 해봐야 고작 30퍼센트였음.
-유성전자도 스마트폰이랑 반도체 때려치우고 치킨 파는 게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