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77화 (377/529)

377화. 선물 (2)

난 트리시와 함께 센트럴파크를 걸었다.

트리시는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센트럴파크에 오니 뉴욕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나네요.”

뉴요커들과 얘기해보면 자신의 도시를 사랑한다는 게 느껴진다.

그만큼 살기 좋은 곳이라는 거겠지.

“서울과 비교하면 어때요?”

“서울도 좋긴 한데, 거기는 이런 큰 공원이 없잖아요.”

한국에도 센트럴파크라는 이름이 붙은 공원은 많다. 하지만 진짜 센트럴파크의 규모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다.

제대로 둘러보려면 하루도 부족하고, 여기서 길을 잃으면 조난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집 산다는 건 어떻게 됐어요?”

“아! 지금 계약 진행 중이에요.”

워낙 큰 거래인 만큼 계약에는 며칠 시간이 걸렸다.

“정말요? 뭐 샀는데요?”

“저기요.”

난 고층 빌딩들 사이에서 홀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는 빌딩을 가리켰다. 전체가 커튼월로 마감되고, 위로 갈수록 살짝 좁아지는 형태라 마치 유리 칼날 같은 모습이다.

이렇게 높게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로즈 올가니제이션이 주변 빌딩들의 공중권까지 사서 건축했기 때문.

트리시는 깜짝 놀랐다.

“서, 설마 저기 펜트하우스를 산 건 아니죠?”

“맞는데요.”

“말도 안 돼…….”

“저기 알아요?”

“그럼요. 뉴욕에서 가장 비싼 주택이라고 언론에서도 많이 나왔으니까요. 정확히는 로즈 올가니제이션 측에서 광고로 낸 거지만. 그 가격에 팔릴지 궁금했는데, 설마 미루가 살 줄이야.”

“다 내고 산 건 아니고, 좀 깎았어요.”

“얼마나요?”

“실제로는 2억 달러인데, 외부에는 2억 3천만 달러쯤으로 나갈 거예요.”

이전 뉴욕의 최고가 거래는 맞은편 빌딩의 펜트하우스. 가격은 2억 1200만 달러로, 라이먼골드 PE의 대표인 제이미 라이먼이 사갔다.

로즈 올가니제이션은 뉴욕 최고가 펜트하우스를 분양했다는 명성을 얻고 싶어 한다.

때문에 매매는 2억 3천만 달러로 하고, 나머지 금액은 다른 방식으로 돌려받을 예정이다.

“혹시 투자예요?”

“아니요.”

초고가 주택의 가격 상승률이 엄청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수익률로 보면 일반 아파트만 못하다.

애초에 매도자와 매수자가 적은 시장에서는 제값 받고 팔기가 힘들다.

“선물로 줄 거예요.”

“선물이요? 누구한테요?”

내가 이름을 말해주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줄 만하겠네요.”

“그렇죠?”

트리시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저 구경시켜 주세요.”

“지금요?”

“네. 살면서 언제 저런 집을 구경해보겠어요? 사진도 좀 찍게요.”

하기야 선물로 주고 나면, 데려가기는 힘들겠지.

“따라와요. 구경시켜 줄게요.”

나한테 키가 없는 관계로 에릭 로즈에게 연락했다.

직원에게 얘기할 줄 알았는데, 에릭 로즈 본인이 빌딩으로 달려왔다.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마침 근처에 있어서요.”

인사를 하던 그는 내 옆에 있는 트리시를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트리시……?”

“어! 에릭 오빠?”

그 모습에 난 당황했다.

“둘이 아는 사이예요?”

“아! 친구 오빠예요.”

에릭 로즈는 웃으며 말했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그러니까요.”

“어렸을 때는 말괄량이 같아 보였는데, 엄청 예뻐졌네.”

“정말요?”

“응.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눴다.

난 에릭 로즈를 보며 생각했다.

아니, 고작 친구 오빠일 뿐인데, 뭐 이렇게 친한 척이야?

* * *

미국은 세계 1위의 경제대국.

경제 규모가 크고 자본주의의 역사가 깊은 만큼, 수많은 투자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최고의 투자사를 꼽으라고 한다면 각자 의견이 갈릴 것이다.

그러나 최근 3년 사이 가장 빠르게 성장한 투자사를 꼽으라고 한다면 모두가 한 곳을 꼽을 것이다.

바로 컨티뉴 캐피탈.

설립된 지 몇 년도 되지 않아 굵직한 투자에서 엄청난 대박을 터트리며 전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제는 사실상 모든 금융사들이 컨티뉴 캐피탈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 회사의 대표는 데이비드 록허트.

한때 실패한 투자자라며 손가락질받았던 그는 이제 세계적인 투자자 반열에 올라섰다.

사람들은 그의 생각을 궁금해했고, 민주당, 공화당 할 것 없이 유력 정치인들은 그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섰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명성을 얻고,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그의 삶은 별로 바뀐 게 없었다.

그는 여전히 살던 집에 계속 살았고, 타던 차를 계속 탔다.

뉴욕의 명사들이 그를 파티에 초대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그는 전부 거절했고, 다가오는 여자들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일에만 매진할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세계 최고의 투자자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를 고용한 사람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투자자이기 때문.

데이비드는 자신의 보스를 떠올렸다.

사실 실력이나 경력으로 보면 자신이 더 뛰어났다.

그러나 투자란 그런 게 아니다.

난다긴다하는 전문가들도 죽어 나가는 곳이 바로 금융시장이다. 이곳에서 남들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단지 지식이나 경험을 뛰어넘는 뭔가가 필요하다.

‘그건 대체 뭘까?’

어쩌면 운이나 직감 같은 손으로 잡히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의 보스는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겠지.

일을 끝마치고 퇴근할 무렵.

한 동양인 청년이 그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데이비드는 깜짝 놀랐다.

“보스!”

“잘 지냈어요?”

“어쩐 일로 말도 없이 오셨습니까?”

그러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놀래켜 주려구요. 지금 시간 괜찮아요?”

“네네. 무슨 큰일이라도 있습니까?”

“선물이 있어요.”

데이비드는 살짝 당황했다.

“선물이요?”

* * *

난 데이비드와 함께 센트럴파크빌딩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집에 들어서자 뉴욕의 야경이 발아래 펼쳐졌다. 마치 하늘에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집 어떤가요?”

데이비드는 집을 둘러보았다.

“좋군요. 설마 이 집을 사신 겁니까?”

“예.”

난 그에게 카드키를 내밀었다.

“받으세요.”

“이게 뭡니까?”

“말했잖아요. 선물이라고.”

내 말에 데이비드의 표정에서 놀라는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 집을 저에게 주겠다는 겁니까?”

“예. 지금 사는 집, 월세 아니에요? 컨티뉴 캐피탈 대표인데 이 정도는 지내셔야죠.”

그동안 그가 벌어들인 돈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 선물을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

말은 선물이라고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내가 사서 주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가는 집 가격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할 테니까.

때문에 컨티뉴 캐피탈에서 집 가격과 세금만큼의 성과급을 지급해서 그의 앞으로 등기를 칠 생각이다.

어째서인지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해가 안 되네요.”

“뭐가 말입니까?”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 해도 2억 달러짜리 집을 선물로 받으면 뛸 듯이 기뻐할 텐데요.”

잠시 난감해하던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보스의 마음은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사는 집이 편합니다.”

“그런 걸 흔히 거짓말이라고 하죠.”

“…….”

세상에 좋은 집, 좋은 차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뭐, 없지는 않다.

에런 화이트의 경우 신혼 때 샀던 10만 달러에 샀던 집에서 아직도 살고 있고, 20년 된 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아침마다 맥모닝을 먹으니까.

스웨덴 최고의 부자인 아케아 창업자도 낡은 차를 몰고 전용기 없이 이코노미석을 타고 다니고.

그러나 적어도 그는 아니다.

난 1회차 때 봤던 그에 대한 기사를 떠올렸다.

거기엔 그가 낡은 집에서 살며, 낡은 차를 타고 다녔다는 얘기는 없었던 것 같다. 반대로 호화 파티에 참석해 미녀들과 염문을 뿌린다는 얘기는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남들만큼은 쓰면서 살았을 것이다.

“연봉에 보너스가 만만치 않은데, 번 돈은 다 어디에 쓰나요? 회사에서는 최고급 정장에 최고급 차를 타고 다니면서, 어째서 퇴근한 뒤에는 낡은 집에 낡은 차를 고수하는 거죠?”

수천만 달러를 쉽게 기부하면서도 자신에게 돈 쓰는 데는 인색하다.

파티를 즐기지도 않고, 여자를 만나지도 않는다.

어째서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메기 때문인가요?”

“…….”

데이비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난 반드시 대답을 듣겠다는 듯 가만히 기다렸다.

한참 후, 데이비드는 쏟아져 나오려는 감정을 억지로 삼키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메기는 태어난 이후로 지금까지 좁은 병실에서 고통받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 고통을 제가 대신 겪을 수 있다면, 수백 번이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버지인 제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자식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라고 하면,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차라리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하는 거라면 희망이라도 가졌을 것이다. 돈을 벌어서 치료하면 되니까.

하지만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하고 최고의 치료를 받게 해도 메기의 병은 낫지 않았다.

그걸 지켜보는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는 컨티뉴 캐피탈의 공동대표다.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러나 딸이 병원에 있는 한 그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난 그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사실 진짜 선물은 이거예요. 한번 보시겠어요?”

“이건…….”

“루나백스에서 개발한 소아 림프종 신약 린카스픽이 한국에서 승인됐습니다.”

루나백스의 신약은 유성바이오가 투자하기 전부터 개발 중이었다.

때문에 약이 완성된 시기는 1회차 때보다는 빠르긴 해도 그렇게 크게 차이 나지는 않았다. 그보다 더 크게 차이 난 것은 임상실험과 승인까지 걸린 속도.

원래 2년은 더 걸려야 했는데, 그 기간을 최대한 단축했다.

그사이 3상 시험을 끝마쳤고, 각국에 판매 신청을 넣었다. 현재 FDA(미국식품의약국)과 EMA(유럽의약품청)에서는 심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들보다 앞서서 한국에서 먼저 사용 승인이 떨어졌다.

심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유재호 회장이 힘을 썼기 때문.

유성그룹의 힘은 정재계는 물론, 학계와 언론 할 것 없이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물론 아무리 유재호 회장이라고 해도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있는 약을 승인받는 것은 힘들다.

한국 시스템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으니까.

다만 되는 걸 최대한 빨리 될 수 있도록 하는 건 가능하다.

“FDA에서는 아직 승인이 안 나서 미국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용이 가능합니다. 한국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유성병원에 자리 마련해뒀어요. 메기를 데려가서 치료받게 하는 게 어떨까요?”

“…….”

데이비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뒤, 그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는 겁니까?”

“예. 메기는 완치될 테고, 병원을 나와 이 집에서 살게 될 겁니다.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죠.”

잠시 후.

그는 감정을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는지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잔뜩 웅크린 어깨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전 먼저 가볼 테니, 천천히 집 둘러보세요.”

몸을 돌려 나오려는데, 뒤에서 여러 감정이 뒤섞여있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뭘요.”

난 데이비드를 넘겨놓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자 길게 호흡을 한번 내쉰 다음 두 손가락으로 눈가를 지그시 눌렀다.

아, 하마터면 나도 울 뻔했네.

1